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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하얀색, 검은색, 붉은색 ⅱ _ 아메리칸 사이코, 메리 해론 감독

그냥_ 2022. 9. 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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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색, 검은색, 붉은색 ⅰ _ 아메리칸 사이코, 메리 해론 감독

# 0. 하얀색 검은색 그 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메리 해론 감독, 『아메리칸 사이코 :: American Psycho』입니다. # 1. 사이코에 대한 이야기로만 흘러갈 뿐, 미국인과 타국인이 대결하는 식의 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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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나는 인간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살, 혈액, 피부, 머리카락. 
그런데 확실한 감정이 하나도 없다. 탐욕과 혐오감을 빼고는."

 

살인보다 흥미로운 것은 살인의 방식인 거겠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이코의 폭력성을 아메리칸스러움이 과격하게 투사되는 순간이라 이해한다면, 살인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여피의 특성이 가장 진하게 묻어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쾌락적이고 과시적이고 전시적이고 현학적인 면모들 말이죠. 폭력 그 자체에 중독되어버린 자가 스포츠를 즐기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만, 동시에 무수한 종류의 흉기들과 각기 다른 살인의 방식들은 폭력으로도 해갈되지 않는 내적 갈증에 발버둥 치는 불쌍한 인격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클라이맥스에서 출입 기록에 사인을 하고 가라는 경비에게는 총을 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반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비에게는 인사와 함께 사인을 남기죠. 중요한 것은 사인이 아닙니다. 자신의 발길을 가로막는 것. 권위에 대한 도전이죠. 캐릭터의 독선을 힘들이지 않고 적당한 위트와 함께 장르적으로 녹여낸 명장면 중 하나라 할 법합니다.

 

 

 

 

 

 

# 7.

 

킴블 형사는 패트릭을 압박하는 스트레스의 존재입니다. 형사와 처음 대면하는 시퀀스는 특히 흥미로운데요. 그것이 칭찬이든 분노든 압박이든 무엇이 되었든 간에 감정이 증폭되면 클로즈업으로, 감정을 통제하면 멀리서 잡는 리듬이 재미있죠. 롤러코스터를 타듯 샷이 널을 뛰는 패트릭과 형사에게 일정하게 떨어지는 샷을 비교적으로 편집하는 구성도 재미있습니다. 면담 이후 정신적 스트레스를 캐릭터를 망가트리는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격렬한 운동과 영화 속 비명소리로 대신하는 것 역시 유쾌합니다. 형사의 방문이 잦아질수록 불안은 커집니다. 소금을 뿌리는 과장되게 떨리는 손. 어색하게 깜빡이지 않는 피곤한 눈. 땀으로 번들거리는 얼굴은 이전까지의 과시적인 연기와 대비되어 더욱 초라합니다.

 

형사를 만나는 동안 패트릭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짚어볼 가치가 있을 겁니다. 살인을 실패하는 것이라거나, 살인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거나, 더 큰 폭력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형사로 인한 평판의 붕괴죠. 허구적인 평판에 목을 매는 동안 자아가 단단하게 자리잡지 못한 인격의 위태로움입니다.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고 살인하고 있다고 영화 내내 끊임없이 말 함에도 아무도 믿지 않는 아이러니는 고독감으로 확장됩니다. 탐욕과 혐오를 제외하고는 확실한 감정이 하나도 없는 자의 비극은 결말부 변호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폭발하게 되는 데, 이 부분은 말미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죠.

 

 

 

 

 

 

# 8.

 

영화는 3이라는 숫자의 반복으로 디자인됩니다. 과시와 욕망의 하얀색, 불안과 공포의 검은색, 폭력과 광기의 붉은색은 주인공 패트릭과 패트릭이 대변하는 아메리칸의 정체성이죠. 섹스를 하는 순간마다 반복되는 쓰리썸은 그 자체로 장르적이기도 하지만, 하얀색과 검은색과 붉은색의 자아가 불안정하게 뒤엉켜 있는 형상을 미학적으로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을 겁니다. 심지어 여자 친구와 둘이 전화하는 순간조차 티브이에선 포르노 배우의 신음소리가 새어 나고 있죠.

 

내레이션이라 해서 '사실'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진심'임에는 분명할 겁니다. 독백을 거짓으로 말한다면 독백의 의미가 사라지기 때문이니 당연한 이야기겠죠. 주인공의 하얀색과 붉은색은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용이하지만 검은색 내면은 묘사하기 난해할 수 있었을 텐데요. 이 부분을 내레이션을 통해 적절히 해소하는 데 성공합니다. 물론 사이코 패트릭을 자신의 머릿속 목소리에 가두고 고립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고립이라는 코드에는 다시 국제 사회의 경찰, 자유주의의 수호자, 세계인의 친구를 표방하는 미국을 풍자하는 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볼 수도 있겠죠.

 

많은 감독들은 관객의 생각과 달리 배우를 캐스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거리낌 없이 마스크라 답하기도 하는데요. 크리스찬 베일은 그런 면에서 너무나 탁월한 캐스팅이라 해야 할 겁니다. 마스크, 보다 정확히는 각도에 따라 그림자가 미친 듯이 깊게 드리우는 입체적인 이목구비는 그 자체로 최고의 미학적 미장센으로 작동합니다. 연기력 역시 탁월하다는 것은 분명 하나, 어디까지나 나중 문제죠.

 

 

 

 

 

 

# 9.

 

사람들을 학살한 후 변호사에게 거는 전화는 마치 고해성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수많은 희생자들을 늘어놓는 것을 넘어 식인에 대한 이야기까지 치닫는 대목은 추악한 과거에 대한 고백이라 할 수 있겠죠. 흥미로운 것은 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울고 있지만 웃고 있기도 하고, 두려워하지만 홀가분해하고 있기도 하다는 점입니다. 일련의 버라이어티 한 폭력은, 스스로 추락을 선택함으로써 내적 갈등으로부터 해방되는 축제 같다는 점에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의 클라이맥스와 정서적 연결성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앞서 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평판의 붕괴를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이라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만큼이나 두려운 것은 내가 누군지 모르는 상황에서 통제력을 잃어가는 데 대한 불안인 것이겠죠.

 

이튿날 몸을 깨끗이 씻는 것은 붉은색을 지워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검은 정장이 도열한 옷방에서 옷을 꺼내 입는 주인공을 역광에 세운 것은 이 인물이 숨겨둔 검은색 얼굴이 폭로되는 것을 각오했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습니다. 이후의 반응은 스스로를 끝내고 멈출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무너짐으로 인한 패닉인 것이죠. 패트릭이 사이코가 되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 아닌 아메리카라는 사회문화적 시스템의 선택이라는 전제 위에서 펼쳐지는 작품의 성격을 고려한다면, 당연한 결말인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속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속마음으로 전개되는 영화에서 속마음이 중요하지 않다 말하는 아이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 비극이자, 수많은 사람을 죽여온 그리고 앞으로도 죽일 수밖에 없을 사이코의 비극입니다.

 

 

 

 

 

 

# 10.

 

패트릭은 내내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화내거나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감독이 정의하는 미국인이죠.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조롱하고 지적합니다. 그것의 비윤리성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넘어 그 자체로 본인에게도 비극이라 연민합니다. 패트릭이라는 인물에게 최악의 모욕은 연민일 것이라는 점에서 일련의 연민하는 결말은 다시금 통렬한 풍자로 승화됩니다.

 

알싸한 블랙 코미디의 기반 위에 고전적 문법의 호러와 액션과 심리극을 엮어냅니다. 허들이 그렇게 높지 않아 범용성은 충분하면서도 각각의 맛은 깊고 좋습니다. 많은 메시지를 두터운 밀도로 담아내고 있으면서도 너무 진지충 메타로 가지 않아 그 자체로 풍부하고 재미있는 오락영화랄까요.

 

블랙 코미디를 상징하는 씬은 장 폴 고티에와 명함 지갑의 콩트. 호러를 상징하는 씬은 발가벗은 몸으로 전기톱을 들고 내달리는 모습. 액션은 권총 빵야빵야에 폭발하는 경찰차와 어리둥절하게 쳐다보는 주인공의 표정. 심리극은 관객을 잡아먹을 듯 타이트한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모두 고전 할리우드 영화의 클리셰를 적극적으로 오마주하고 있다는 면에서 작품 스스로 거대한 아메리카스러움을 표상하고 있기도 합니다. 메리 해론 감독, <아메리칸 사이코>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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