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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하얀색, 검은색, 붉은색 ⅰ _ 아메리칸 사이코, 메리 해론 감독

그냥_ 2022. 9. 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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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하얀색 검은색 그 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메리 해론 감독,

『아메리칸 사이코 :: American Psycho』입니다.

 

 

 

 

 

# 1.

 

사이코에 대한 이야기로만 흘러갈 뿐, 미국인과 타국인이 대결하는 식의 내셔널리즘과 관련된 설정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감독은 '패트릭 베이트먼'이라는 괴물에게 아메리칸 사이코라 이름 붙였죠. '아메리칸'이라는 출신이 '사이코'라는 정체성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고, 폭력의 뿌리에 구체적 개인의 기질 외에 출신과 깊은 연관관계가 있음을 추론케 합니다. 실제 영화는 주인공과 그를 둘러싼 무리들에게 1990년대 여피(Yuppie)의 스테레오 타입을 강박적으로 부여하는 것을 넘어, 아예 여피를 의인화시킨 우화처럼 그리고 있죠.

 

사이코는 아메리칸스러움의 극단적인 형태로 과격화된 과장에 불과합니다. 섬뜩한 흉기를 휘두르는 사이코의 영화가 아니라 언제고 사람을 죽여도 이상하지 않은 맨해튼을 배회하는 아메리칸들의 영화인 것이죠. 크리스찬 베일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힘입어 전개되지만,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폭주해 내달리는 패트릭의 뒤를 떠받치는 꺼지지 않는 조명으로 가득한 마천루의 숲입니다.

 

 

 

 

 

 

# 2.

 

호화 레스토랑입니다. 모두 화려한 의복과 장신구를 두르고 있죠. 수다스러운 대화의 주제는 모조리 물질과 허영입니다. 낮의 레스토랑은 과시적인 신용 카드의 공간으로 정의됩니다. 지하로 카메라는 옮겨갑니다. 우아한 척하는 고상 떠는 인간들의 깊은 곳엔 퇴폐적인 욕망이 숨어있습니다. 밤의 지하실은 주인을 묻지 않는 현금의 공간입니다. 낮의 레스토랑과 밤의 지하 바는 여러모로 대조적이지만 마약에 찌들어 있다는 점에서만큼은 동일합니다.

 

일련의 오프닝은 당대 미국에 대한 염세적이고 자조적인 진단입니다. 영화는 뜬금 레이건의 연설로 막을 내리는데요. 오프닝과 연결 짓는다면 미국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끝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때마침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은 '아메리칸' 가든 빌딩 11층 어퍼 웨스트사이드 55번가입니다.

 

도입은 화이트 컬러 직종에 종사 중인 젊은 엘리트 남성상에 대한 묘사를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군데군데 녹아있는 스테레오 타입의 동양인 서비스직 노동자들에 대한 비하라거나, 백인의 손에 들린 베트남산 애완동물 돼지 등 미국 사회의 모순과 한계를 지적하는 대목은 유쾌합니다. 피가 줄줄 흐르는 시체가 든 가방을 끌고 지나가는 주인공을 보면서도 가방의 디자인을 묻는 친구와, 그 순간에조차 '장 폴 고티에'라 답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메리칸은 통렬하죠.

 

 

 

 

 

 

# 3.

 

새하얀 벽지와 금속 질감 주방 따위의 모던한 디자인은 결벽성과 냉정함, 그 외엔 아무것도 들이지 않는 차가운 내면을 상징합니다. 근육질 몸매와 27살이라는 나이, 부사장이라는 직함, 수많은 미용 용품 따위에서는 열정적이고 물질적이고 과시적인 면모를 엿보게 하죠. 두 얼굴에 대한 암시로서 마스크를 천천히 떼어내는 연출은 친절합니다. 구태여 투명한 마스크를 준비한 이유라 할 수 있겠죠.

 

쓸데없이 깐깐한 일정 관리와 비서의 복장을 무례하게 지적하는 대목 따위는 통제적인 지배욕을 의미합니다. 친구(라 주장하는 사람들)와의 식사자리에서 듣기 거북할 정도의 원론적이고 이상적인 가치를 구구절절 역설하는 데요. 당대 여피들이 적어도 대외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주장하는 정치적 스텐스의 나열이라 이해하면 무난합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친구 중 하나가 사레에 들린 듯 물을 내뱉는데요. 똑같은 사람들 앞에서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거짓말을 늘어놓는 친구의 모습에 어이없어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마스크 아래 본얼굴을 숨기고 뻔뻔하게 내뱉는 일장연설에 대한 감독의 조소이기도 합니다.

 

길가의 여인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본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죠. 이전과 달리 심각한 순간이라는 것을 전달하는 압도적인 사운드와 함께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그림자가 깊게 드리우며 앞서 마스크의 은유를 이어받습니다.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향해 걷습니다. 어두운 곳은 끝이 보이지 않는 은유적 공간입니다. 횡단보다 건너 붉은 글씬 Don't Walk는 경고. 이내 하얀색의 Walk로 바뀝니다. 하얀색은 집을 가득 채우고 있는 패트릭의 색이죠. 두 사람을 발맞춰 어둠을 향해 걷습니다. 잔혹한 표현 하나 없이 불길한 결말을 편안하게 전달합니다.

 

 

 

 

 

 

# 4.

 

값비싼 정장의 원단보다 중요한 것은 브랜드의 이름입니다. 값비싼 식당의 음식보다 중요한 것은 예약의 난이도죠. 명함의 콩트는 백미라 해야 할 겁니다. 결투를 앞둔 무사들이 검이라도 꺼내는 것만 같은 연출은 그 자체로도 우스꽝스럽거니와, 명함으로 카드 게임을 벌이는 것도 황당한 데 심지어 명함의 내용보다 디자인과 질감, 서체로 다투는 모습은 대단히 풍자적이죠.

 

명함 배틀에 패퇴한 주인공은 이전까지 보인 적 없는 가장 격렬한 분노를 표출합니다. 여기서의 '이전까지 보인적 없는'에는 약혼자와의 다툼까지 포함되죠. 분노한 패트릭은 노숙자에게 돈을 빌미로 힐난하고 모욕합니다. 돈 때문에 모욕을 들으면서도 고맙다 친절하다 말하는 노숙자의 모습으로 관객 또한 모욕합니다. 영화 안팎의 사람들을 한껏 기만한 주인공은 노숙자를 끔찍하게 살해하는데요. 구태여 개를 준비해 놓고 살해하는 것은, 이 개가 없었더라면 관객이 대신 패트릭에게 살해당했을 것이라는 긴장감을 연출하기 위함이라 이해하면 무난합니다.

 

 

 

 

 

 

# 5.

 

흥미로운 것은 명함 배틀이 두 번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 명함 배틀에서도 패배하자 역시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 패트릭은 폭력을 저지르려 하는데요. 화장실로 쫓아가 죽이려고 봤더니 상대가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이전과 180도 달라져 무기력하게 움츠러들어 달아납니다. 패트릭은 자신의 남성성이 강간당한다 느꼈으리라 추측합니다. 과시적인 태도에는 남성성에 대한 콤플렉스가 역으로 녹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춘부와 잠자리를 가질 때마다 굳이 두 명을 부르는 이유, 굳이 동성애를 주문한 후 알아 듣지 못할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이유, 피학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가지는 이유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미모의 매춘부를 둘이나 곁에 두고서도 거울에 비친 자신의 근육에 경탄하며 포효하는 장면은 상징적이죠. 미국인의 마초적인 면모의 숨겨진 겁쟁이 같고 찐따 같은 내면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 달까요.

 

 

하얀색, 검은색, 붉은색 ⅱ _ 아메리칸 사이코, 메리 해론 감독

하얀색, 검은색, 붉은색 ⅰ _ 아메리칸 사이코, 메리 해론 감독 # 0. 하얀색 검은색 그 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메리 해론 감독, 『아메리칸 사이코 :: American Psycho』입니다. # 1. 사이코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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