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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말풀이 _ 뜨거운 녀석들, 에드가 라이트 감독

그냥_ 2022. 11.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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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Greater Good!

 

 

 

 

 

 

 

 

에드가 라이트 감독,

『뜨거운 녀석들 :: Hot Fuzz입니다.

 

 

 

 

 

# 1.

 

코르네토 트릴로지 두 번째 작품입니다. 작년 초 <새벽의 황당한 저주>를 다시 보고 난 후 1년 여만에 에드가 라이트군요. 감독의 절친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랑 함께한 트릴로지 중 한 작품이긴 합니다만, 사실 전후의 두 작품과는 결이 제법 다른 영화라 봐야 할 겁니다. 예외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히 목적지향적인 작품이기 때문이죠.

 

# 2.

 

딱 잘라 말하자면 [애국자법 디스 영화]입니다. 한창 영미권이 테러에 불안해하던 시기, 공동체의 안전을 명분으로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법인데요. 원래대로라면 외국 법령을 설명드리기 위해 있는 지식 없는 지식 짜내야 했을 테지만, 다행히도 우리에게도 비슷한 법이 있었습니다. 테러방지법을 기억하실까요. 필리버스터라는 마이너한 정치 용어가 예능 프로그램 퀴즈 문제 수준의 시사 상식으로 격상되게 된 계기였더랬죠. 대충 테러방지법과 큰 틀에서의 명분과 골자가 비슷하다 이해하시면 영화를 즐기는 덴 무리가 없으실 겁니다.

 

 

 

 

 

 

# 2.

 

감독은 애국자법의 논리구조를 소수의 엘리트 집단에 의해 지배당한 감시 사회로 정의한 후 적당한 수준의 도덕적 헤이와 연출된 평화를 버무려 샌드포드라는 이름의 마을을 창조합니다. 그 속에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와 법치주의의 화신이 된 사이먼 페그가 샤브르 대신 총기로 무장한 백마의 쾌걸 조로가 되어 악의 무리를 도륙 내는 정치적 우화라 할 수 있죠.

 

공공선이란 결국 통제력을 독점하게 될 소수 엘리트 집단의 이익에 철저히 복무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으로 향유되다 타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특유의 코미디로 승화시킵니다. 무언가 대단한 경제적 음모가 숨어 있을 거라는 사이먼 페그의 의심을 조롱하기라도 하는 듯한 연쇄 살인의 동기들은 통렬한 맛이 일품이라 할 수 있겠죠. 일련의 상황 논리를 애국자법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할만한 모함(?)인 파시즘이라 정의하는 대목은 감독의 인식을 분명히 엿보게 합니다.

 

안전과 평화라는 명분을 비웃기라도 하듯 결말에선 기다렸다는 듯 가방이나 수납에서 무기가 쏟아집니다. 애국자법의 안전이란 무기와 감시를 독점한 사람들의 오만한 아량과 위선임을 고발합니다. 이 같은 사회란 당장은 아닐지라도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는 폭탄과 다를 바 없고, 폭발의 장소가 다름 아닌 경찰서라는 것은 물리적 피해를 넘어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라 할 수 있겠죠. 

 

 

 

 

 

 

# 3.

 

이 정도의 틀을 잡은 상태에서 요소요소 밑밥과 조롱과 풍자와 몸개그와 적당한 폭력을 장르적으로 섞어 내고 있는데요. 완성도는 여타의 작품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와 비교하더라도 제법 부족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애드가 라이트의 매력이라 한다면 역시나 현란한 편집과 적극적인 패러디, 클리셰에 대한 높은 이해도에 기반한 의외적 전개 등을 꼽을 수 있을 텐데요. 이 작품은 각각 모두 감독의 이름값에 비하면 심심하다는 평인 것이죠.

 

상대적으로 작품에 리듬감을 부여하는 연출이 약합니다. 작품을 지배해 관객의 뇌리에 새기는 음악적 완성도는 크게 떨어집니다. 엔젤 경사가 샌드포드에 자리 잡는 순간까지의 리듬은 훌륭합니다만, 중반 넘어서는 순간부터 현란한 편집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 효과보다는 피로감이 먼저 전달되고 말았죠. 특히 결말부 광장 액션씬. 말 타고 등장하는 사이먼 페그와 질겅질겅 씹는 이쑤시개의 패러디, 온갖 무기가 난무하는 현란한 액션 덕에 장면 자체는 명장면이라 해야겠습니다만, 과잉된 컷 전환만큼은 옥의 티라는 생각입니다. 실패한 연출이라고 까지 말할 수는 없으나 이게 최선인 걸까 싶은 의문 역시 가시지 않는달까요.

 

전개 역시 심심합니다. 수많은 cctv들로부터 얻은 빅브라더의 이미지와 파시즘 등의 키워드를 통해 애국자 법이라는 맥락을 짚는 순간 영화의 진행이 한눈에 잡히고 맙니다.

 

아~ 이건 주요 마을 사람들 죄다 공범이겠네.

 

라고 말이죠. 애드가 라이트의 영화인 걸 감안하면, 아니 그걸 감안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닉 프로스트의 대니가 빌런일 리 없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구요. 노골적으로 범인 연기를 하는 사이먼이 최종 보스일 리는 없으니 보스(진)는 따로 있을 텐데, 마을 사람들과 엔젤 사이에서 적당히 줄을 타는 프랭크가 수상하다는 생각까지 손쉽게 닿아버릴 겁니다. 이쯤 되면 관객은 영화라는 미로를 탐험하는 모험가가 아니라, 이미 어떤 모양일지 훤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빈칸의 단어(메타포)를 찾아 끼워 맞추는 십자말풀이를 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죠.

 

 

 

 

 

 

# 4.

 

특유의 찐따 감성까지 주제의식에 밀려 자리를 잃고 나면 영화 내내 백마 탄 정의의 기사 엔젤의 모험 활극을 구경하는 것으로 관객의 역할은 제한됩니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에서 느꼇던 바보 좀비들이 창문을 두드리는 동안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의 가운데 앉아 아이스크림을 게걸스럽게 퍼먹으며 콘솔 패드 잡고 게임을 즐기는 듯한 재미와 밀착감은 기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는 것이죠.

 

위대한 당위(안전)가 본질(자유)을 훼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을 다룬 작품인데요. 정작 스스로가 위대한 당위(애국자법을 비판하겠다는 명분)에 매몰되어 본질(영화의 재미)을 희생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아이러니 한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영화가 개봉하고 난 후 호평들 역시 영화에 대한 호평인 것인지, 정치적 메시지에 대한 정치적 목적의 호평인 것인지 모호하다는 것 역시 한계이자 상처라 할 수 있겠죠. 에드가 라이트 감독, <뜨거운 녀석들>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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