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Drama

붕괴 _ 솧, 서보형 감독

그냥_ 2021. 2. 11. 06:30
728x90

 

 

# 0.

 

영화를 보기도 전에 기분이 조금 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류의 제목을 썩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죠. 고어 '솧'은 일상적이지도 직관적이지도 않으니까요.

 

영화 제목은 뭐가 되었든 기본적으로 관객을 위한 마중물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감독이 발견한 메시지에 대한 가치판단과는 별개로, 관객의 입장에서 제목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작품인지 전혀 유추할 수 없다면 그건 제목이라 할 수 없죠.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거푸집'이라는 의미로 사전을 뒤지다 '심연深淵'이라는 또 다른 의미에 꽂혀 즉흥적으로 지은 것과 뭐 그리 다르냐 빈정댄다 하더라도 딱히 할 말은 없을 겁니다.

 

 

 

 

 

 

 

 

'서보형' 감독,

솧 :: Soh입니다.

 

 

 

 

 

# 1.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앞서서의 고까운 감정을 적어도 이 영화에서만큼은 예외로 해야겠군요. 감독은 '거푸집'이라는 상대적으로 편안한 단어가 아니라, 왜 하필 '솧'이라는 고어를 활용해야만 했는 지를 작품을 통해 설득합니다. 그렇죠. 거푸집을 이야기하는 데 '거푸집'이라는 속살을 내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죠.

 

문득 '솧'이라는 글자를, 어떤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니라 그림과 같은 아이콘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매우 매력적인 제목이기도 합니다. 뭐랄까요, 영화가 되게... <솧>스럽게 생겼거든요. 'ㅅ'처럼 두 선이 맞닿은 하나의 점에서 출발한 영화가 두 축 위를 직선적으로 확장되다가, 'ㅗ'자 모양으로 된 두 겹의 레이어를 거치게 되고, 그 결과 경계가 붕괴되며 하나의 'ㅇ' 모양의 원을 이루는 것만 같은 이야기였달까요. 좌우 대칭의 단어가 영화의 구도와 묘하게 닮아 있기도 하고 말이죠.

 

 

 

 

 

 

# 2.

 

스쳐 지나듯 말씀드렸지만, 붕괴. 보다 정확히는 무너트리는 힘에 대한 이야기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논픽션의 픽션과, 픽션의 논픽션과, 모든 것을 아우르는 픽션과, 그 픽션을 관람하는 논픽션 사이 경계의 붕괴. 그 경계를 더욱 어지럽게 흐트러트리는 구별할 수 없는 진실과 거짓의 난입. 끝까지 모호한 이미경 살인 사건 용의자의 정체와, 이미경의 룸메이트인 이수진의 심리와, 이수진을 연기하는 이수진이었을지도 모를 이미경의 해석과, 이수진을 연기하는 이미경이 이수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연기하는 '주보영'의 해석 사이의 점층적 붕괴입니다.

 

일련의 위계가 무너져 내리게끔 몰아세우는 힘입니다. 몰아붙이듯 추궁하는 형사의 폭력성과, 이수진에 대한 해석을 질문하고 노출을 요구하는 작중 감독의 폭력성과, 그 픽션 속 감독과 배우를 메세지 하에 통제하는 감독 '서보형'의 폭력성과, 그들 모두를 제압하고 사건의 실체와 캐스팅의 실체와 영화의 실체를 강렬하게 추궁하는 관객의 폭력성입니다.

 

 

 

 

 

 

# 3.

 

각각 다른 위계에 놓인 각기 다른 규율의 이름들이, 주조하기 전의 거푸집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처럼 영화의 빈 여백을 둥둥 떠다닙니다. 이를 담아내는 시네마라는 시스템의 구조와, 이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창작자가 스스로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작품입니다. 어째 '타비아니' 형제의 <시저는 죽어야 한다>에서 느꼈던 탐미적 성향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저는, 가려져 있던 혹은 외면하고 있던 폭력성이 일거에 까발려지는 순간, 영화가 통째로 장엄하게 무너져 내리는 순간의 소름 끼치는 카타르시스를 매력적으로 즐겼습니다. 만, 어찌 되었든 과격하고 복잡하고 난해하고 형이상학적인 메시지의, 전혀 친절함을 기대할 수 없는 '실험작'이라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기는 합니다. 한 없이 얕은 제 배경 지식으로도 머리가 어지러운데, 저보다 더 깊은 식견을 가지신 여러분들은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으실 테죠. 영화관보다는 현대미술 전시관의 영상 예술 섹션에 더 잘 어울리는 느낌적인 느낌의 영화라는 걸 감안하시고 보셔야겠네요. '서보형' 감독, <솧>이었습니다.

 

# +4. 살인사건 목격자 겸 용의자를 취조하는 영화 정도로만 생각하고 적당히 자투리 시간을 태우려고 본 단편에 머리 깨질 뻔했네요. 보통의 영화였다면 '뭐 이런 게 다 있어?' 하고 있고 넘어갔을는지도 모르지만, 결말의 강렬한 에너지가 이를 허락하지도 않구요... 음. 여러모로 폭력적인 영화군요. :)

# +5. 글을 봐도 뭔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시겠다구요? 물론, 저도 모르겠습니다. :))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