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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운수 좋은 날 _ 엑스트라, 곽진 감독

그냥_ 2021. 2. 1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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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일본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면이 강한 나라입니다. 정치, 사회, 경제, 교육, 그중에서도 문화 쪽은 더더욱 말이죠. 덕분에 그들이 그린 10년 후 일본의 모습은, <안락사 정책>, <AI에 의해 지배된 교육>, <디지털 유산과 잊힐 권리>, <원전 사고와 환경오염>, <평화 헌법 개정과 전쟁> 처럼 넓은 스펙트럼의 자유분방함에도 불구하고 다소 두루뭉술하고 평이한 소재와 뜬구름 잡는 듯한 전개 등의 한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만약 상대적으로 더 역동, 아니 격동激動의 시대를 지나고 있는 사회가 있다면 그들이 그린 미래는 조금 더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요.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문화권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을 폭압적으로 강요당하게 된 사람들이 그린 미래는 아마도 조금은 더 특별하고 조금은 더 엄숙할 겁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제작의 <10년>은 사실 프로젝트의 세 번째 주자였는데요, 그 첫 번째는 2015년 '홍콩'에서 열렸었습니다. 우연찮게도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만들어져 지금으로부터 5년 후를 상상한 작품이 되겠군요. 제35회 홍콩영화 금상장 작품상 수상작 <10년>의 첫 번째 단편입니다.

 

 

 

 

 

 

 

 

'곽진' 감독,

『엑스트라 :: Extras』입니다.

 

 

 

 

 

# 1.

 

"정숙, 남을 배려할 것"

 

학교로 보이는 건물의 입구에 새겨진 위의 문구는 이 영화 속 배경의 모든 것입니다. '공동체의 권위를 독점한 누군가'를 위해 정숙. 아무런 말을 하지 말고 조용히 할 것.

 

문구 앞에 일정한 간격으로 도열한 어린아이들이, 정숙을 강요할 힘을 가진 '공동체의 권위를 독점한 누군가'를 위해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똑같은 율동을 준비합니다. 이내 홍콩 입법회 소속 '장쿤샹' 의원의 얼굴이 새겨진 사진이 등장함으로써, 앞서 말씀드린 정숙을 강요하는 누군가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합니다. 그는 <정숙>을 대가로 <쌀>을 주는 사람이군요.

 

# 2.

 

"까만 피부를 물려주지 않은 엄마를 탓해요."

 

두 남자가 등장합니다. 총을 겨누며 두목을 운운하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무언가 사고를 치려는 듯합니다만, 기자와 대서특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 걸로 봐선 그 목적이 폭력보다는 언론을 활용하는 데 있어 보입니다. 내지인은 외국인에 비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지만, 대신 무기력함과 패배의식에 젖어 있습니다. 그의 엄마가 중국인의 노르스름한 피부가 아니라 까만 피부를 물려줬더라면 지금처럼 배를 늘어트린 채 <재능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았을 거라 짚어 말합니다. 감독의 자조적 비판이죠.

 

두 사람의 대화를 누군가가 들여다보는 모습을 담던 카메라는, 이내 천천히 건물을 훑으며 위층의 누군가에게로 넘어갑니다. 건물의 격자형 외관과 복도형 구조는, 이 공간이 마치 감옥과 같은 폐쇄성과 일방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은유합니다. 그를 증명이라도 하듯, 두목은 부하에게 두 사람에 대한 감시를 지시합니다. 내지인과 외국인 가릴 것 없이. 대화는 감시되고, 신변은 통제됩니다.

 

 

 

 

 

 

# 3.

 

"더 큰 효과를 보려면 누굴 쏴야 할까요?"

 

회의장에서의 시퀀스는 사회 지도부의 의사결정 구조를 은유합니다.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의견을 주고받지만, <인민복>을 입은 '장쿤샹' 의원만은 대화를 무시한 채 스마트폰을 주시합니다. 이내 '장쿤샹' 의원은 사람들의 말을 폭압적으로 끊어 내며 대화를 일축합니다. 앞으로 홍콩에서 벌어질 중국 공산당과의 대화는 이렇게 하게 될 것이다. '장쿤샹' 의원이 말하는 모습 뒤로 학교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이와 같은 의사 결정 방식은 의회뿐 아니라 학교와 교육까지 잠식하게 될 겁니다.

 

'장쿤샹' 의원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의 의견에 열렬히 동조합니다. "좋습니다. 그럼 다 동의하신 겁니다." 이들의 '동의'는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의원은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그들의 공을 치하합니다.

 

# 4.

 

"삼합회는 여태껏 최고의 직장이야"

 

내지인은 2003년 편도 허가증을 가지고 홍콩으로 왔습니다. 요리사로서 식당을 열었지만 폐업했고, 건설일을 하고자 했지만 노동 인력을 외주로 주는 열악한 환경이었죠. 택시 운전사를 하려고도 했지만 만다린어(북경어) 시험에 가로막혔습니다. 공공 지원 주택의 신청서는 10년째 소식이 없고. 그런 그에게 삼합회는 그나마 가장 나은 직장이었다고 합니다.

 

감독은 반환과 무관하게 홍콩 사회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내부 모순과 경제적 불평등을 지적함으로써 내지인을 일부 변호합니다. 그들은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안정적인 삶을 원할 뿐이라 말합니다. 감독은 홍콩의 문제가 홍콩인과 내지인의 갈등이 아니라, 출신 성분과 무관하게 홍콩에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자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 주장합니다.

 

 

 

 

 

 

# 5.

 

"카레와 털북숭이"

 

홍콩에 드리운 새로운 질서는 인간이 '수단'이 된 사회입니다. 인도 출신의 외국인은 <카레>라는 멸칭으로, 내지인 역시 <털북숭이>라는 멸칭으로 불립니다. 그들은 누가 총구를 당기게 될지 끝내 선택할 수 없고, 용기 내 던진 동전의 선택은 전혀 존중받지 못하죠. 하지만 이는 소외계층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동료 의원들 역시 '국가보안법'이라는 누군가의 대의 앞에, 총에 맞으면 더 기사가 많이 실릴 <여자>와 그렇지 않을 <남자>가 될 뿐입니다. <카레>, <털북숭이>, <여자>, <남자>. 그들은 모두 나름의 사정에 따라 수단으로 폄하되는 것을 감수하고 보상을 탐냈지만, 돌아온 것은 고작 총상과 죽음뿐이었죠.

 

영화의 제목은 <엑스트라>입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엑스트라>입니다. 인민복을 입은 '장쿤샹'까지 모두 말이죠. 엑스트라가 아닌 이는 오로지 '장쿤샹'에게 명령을 하달한, 보이지 않는 전화 속 인물뿐입니다. 국가보안법은 어느 누구도 주인공을 만들어 주지 못합니다. 모두가 언제고 수단으로 소비될 뿐인 엑스트라의 세상입니다. 

 

결국 중앙당의 계획대로 총기 테러가 발생합니다. 언론에서는 테러를 '사회 운동으로 사망한 남아시아 청년이 불씨가 된 공격'으로 정의하기도 하고 일부는 순교자라 주장하기도 합니다만, 단편 내내 관객이 따라갔던 두 인물이 어떤 생각을 가진 어떤 사람인지는 끝내 보도되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결과는 <국가보안법의 보다 빠른 시행>으로 귀결될 뿐이죠. 

 

# 6.

 

홍콩의 운수 좋은 날

 

일본 편과는 달리, 첫 번째 작품부터 확실히 육중합니다. 신원을 모두 파악할 수 없는 일정 규모 이상의 시위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먼저 폭력을 행사해 시위의 정당성을 훼손하는 건 우리에게도 너무 익숙한 모습이다 보니, 더더욱 엄중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군요.

 

조용히 할 것을 대가로 쌀을 받았지만 그 쌀 속엔 총이 들어 있었습니다. 총을 쏘지 않으려던 계획은 총을 쏘는 계획으로 바뀌고, 한 명만 쏘려던 계획은 두 명을 쏘는 계획으로 바뀝니다. 절대 감옥에 갈 리가 없다던 두 사람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맙니다. 과연 지금 조용히 한다고 괜찮은 걸까. 당장 괜찮다고 해서 앞으로도 괜찮은 걸까. 당신과 홍콩의 운수 좋은 하루는 과연 끝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곽진' 감독, <엑스트라>였습니다.

 

# +7. 일본편에 비해 아이템이 구체적이라는 말은, 역으로 콘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다면 애로사항이 꽃필 수 있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저의 경우엔, 두 부하를 질타하는 두목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일본어 알림음이라던지, we are all khan이라는 시위대의 문구라던지, 등장하는 각 정당의 이름과 그에 얽힌 역학 관계는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네요.

# +8. 물론 영화가 외국인에게까지 콘텍스트를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혹여나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중에 홍콩의 실태를 국외에 알리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다소 아쉬운 점이라 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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