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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라기보다는 _ 이웃집 야마다군,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그냥_ 2020. 3.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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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애니메이션이라기보다는 만화. 만화라기보다는 낙서.

음악이라기보다는 노래. 노래라기보다는 흥얼거림.

대사라기보다는 수다. 수다라기보다는 온기.

영화라기보다는 이야기.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이웃집 야마다군 :: ホー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 입니다.

 

 

 

 

 

# 1.

 

귀엽습니다. 사랑스럽습니다. 소박하고 소탈하고 소담하고 앙증맞습니다.

 

무난하고 삼삼한 우리 사는 이야기와, 평범한 사람들 나름의 진지함과, 그럼에도 잃지 않는 본질적인 귀여움입니다. 일전에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의 정신적 후계자라는 '포녹 스튜디오'의 단편선의 리뷰에서, 일본의 드라마 영화의 매력을 소소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하고 풍부한 상상력이라 말한 적이 있는데요. 이 영화 역시 좋은 예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대체 20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작품들은 다 사라지고 지랄맞은 특촬물만 남은 걸까요.

 

 

 

 

 

 

# 2.

 

고전적이고 가정적인 영화입니다.

 

사회 구성의 최소 단위를 '개인'으로 보는 개인주의적 자유주의와 배치되는 가족 중심의 공동체주의 가치관이 영화 전체에서 반짝입니다. 현대 사회의 왕좌에 앉아 있은 '개인'과 '자유'에 밀려나 있는 '관계'와 '함께'의 가치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새삼스레 환기합니다. 감독은 가족의 가치에 대한 단편적인 '수사'들과 '관념'들을 최대한의 상상력으로 구체화한 후, 어마어마하게 큰 애드벌룬 풍선처럼 부풀려 감각화합니다. 그런 일련의 연출 방식과 쓱쓱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낙서와 스케치의 중간 어딘가 즈음의 화풍이 굉장한 밀착감으로 구현되는군요.

 

영화는 그렇게 풍부하면서도 심심하게 흘러갑니다. 전반적으로 담백하면서 퍽퍽하기도 한 갓 구운 삼치구이 같달까요.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일본 특유의 실없는 만담형 유머는 목 넘김을 돕는 짭짤한 양념간장쯤 되겠네요.

 

 

 

 

 

 

# 3.

 

스마트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시절. 손잡이 빙글빙글 돌려 창문 여는 자동차. 동네마다 있던 길가의 꽃집. 작은 마당 한켠의 심드렁한 강아지 집과, 수화기 달린 집전화. 가족이 한데 둘러앉은 좌식 밥상과, 마당 넘어 거칠게 쏟아지는 빗소리. 드르륵 소리가 우렁차기도 했던 낡은 미닫이문과, 집집마다 하나쯤은 있던 나이 많은 장롱과, 밝으면서도 어두침침했던 형광등 스탠드와, 한 장씩 찢어 넘기는 벽걸이 달력과, 출근 전 아빠를 위한 조간신문과, 길게 줄이 늘어진 전등과,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던 최신식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와, 공부하라는 엄마의 잔소리와, 현관에 매달린 구둣주걱과, 온 가족을 옹기종기 모여들게 만드는 4대3 비율 브라운관 테레비와, 집집마다 꼭 하나씩은 있던 정체모를 분재와, 앞치마와, 장바구니와, 가위바위보와, 엄마와 나눠 먹었던 우동과, 아빠와 함께 한 캐치볼과, 할머니.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기억과 그때의 공기와 분위기와 기분과 감수성을 한 순간에 불러일으키는 영화입니다.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말고 맹꽁이 서당』과 『크레용 신짱』을 볼 때만 느낄 수 있었던 그 시절의 매력과 향수를 느끼게 하는 영화입니다. 우리에겐 서태지와 IMF로 기억될 세기말 언저리의 이런 감정은 아마도 지금의 어린 친구들은 느끼기 힘들겠지요.

 

 

 

 

 

 

# 4.

 

집중해서 관람하기보다는 맑은 날 두둥실 떠가는 구름처럼 흘러가듯 놓아두는 영화입니다. 어릴적 만화책 대여점에서 검은 비닐 봉지에 빌려오던 만화책을 볼때처럼 대사도 음악도 그림도 시간도 그렇게 심드렁하게 흘러 보내듯 보는 영화입니다.

 

먹는다는 느낌보다는 마신다. 마신다는 느낌보다는 숨 쉰다는 느낌으로 보는 영화입니다. 조금은 더 젊어지는 듯한. 젊어지는 것보다는 어려지는 듯한 감각의 영화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어떤 건가 한 번쯤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마음속 깊은 곳에 쌓아둔 묵은 때를 아주 조금은 씻어내는 듯한. 화가 나 있었다면 왜 화가 나 있었는지를 잠시 잊게 만드는, 슬퍼하고 있었다면 왜 슬퍼하고 있었는지를 잠시 잊게 만드는, 걱정하고 있었다면 왜 걱정하고 있었는지를 잠시 잊게 만드는. 그런 마법 같은. 아니, 기적 같은 영화입니다. 때론 눈물 쏙 빼는 격정적인 드라마보다, 휘황찬란한 수사나 연출보다, 이런 작품이 더 본질적인 감동에 가까이 닿아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죠.

 

잊고 있었던 우리들의 이웃집 야마다군들과, 잊고 있었던 이웃집 야마다군이였던 우리.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컥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사소하지만 그래서 고마운 영화. 까짓거 명작이 아니면 또 어떻고 위대하지 않으면 또 어떤가요. 좋으면 됐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 『이웃집 야마다군』 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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