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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무능한 사람의 선량함 _ 시타라,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 감독

그냥_ 2020. 4.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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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팔려가듯 시집 가게 되는 파키스탄의 어린 소녀들. 자기 실현의 기회를 꽃피워보지도 못한 채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사그라들고 마는 소녀들의 가능성과 폭압적 풍습에 대한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동화적인 애니메이션을 통해 대조적으로 풀어낸 작품. 뭐 그런거라는 건데요.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 감독,

『시타라 - 렛 걸스 드림 :: Sitara - Let Girls Dream』입니다.

 

 

 

 

 

# 1.

 

메시지고 나발이고 할말은 해야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무신경합니다.

 

어린 아이가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만 같이 뻔하고 또 뻔뻔한 영화입니다. 감독이 영화를 찍은 이유는 책이나 기사 등의 여타 매체에 비해 관객이 더 많다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이유는 표현하기에 만만했기 때문입니다. 무성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문제 의식을 전달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그 외의 영화라는 분야에 대한 이해는 거의 전무합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찰 역시 전무합니다. 무성 영화가 가지는 매력과 한계에 대한 준비 역시 전무합니다.

 

소재가 되는 조혼 풍습은 기본적으로 '능동적 가해'가 아니라 '피동적 제약'의 성격을 가집니다. 결혼이 그 자체로 명목적인 악이거나 정량화된 피해는 아니니까요. 아이템은 본질적으로 소녀가 결혼을 일찍 하게 됨으로 인해 잃게 되는 '기회비용'에 대한 문제의식일 수 밖에 없고,  그 정도는 소녀가 꿈꾸는 가능성의 크기에 비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영화가 전달하고자하는 조혼 소녀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제약의 크기는 감독이 연출하는 '소녀의 자유로움'의 크기와 동치된다는 뜻이죠. 목적의식을 생각한다면 소녀와 비행기에 대한 연출은 영화에서 가장 공을 들여 묘사해야 되는 부분이란 뜻입니다. 소녀가 신부옷으로 갈아입는 부분이 아니라구요. 이 댕청한 감독님아.

 

 

 

 

 

 

# 2.

 

속도감을 확실히 전달해야 할 3D의 퀄리티는 처참할 정도로 조악합니다. 단순히 단편 독립 영화의 질적인 부분을 탓하자는 게 아닙니다. 흔히 빠르게 운동하는 요소를 묘사할 때의 검증된 연출적 기술들조차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감독이 자신의 작품에서 힘을 줘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그런 장면에서 힘을 주는 방법에 대해서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기술력을 탓하기엔 오브젝트에 속도감을 부여한다라는 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연출이 아닙니다. 십수년전의 종이에 물감 들고 그려 만들던 애니메이션들에서도, 동시대의 저렴이 단편영화나 1인 개발자의 인디 게임들에서도, 심지어 개인 유튜브 편집자들조차도 이 영화에서 필요로 했던 수준의 타격감과 운동감은 얼마든지 영상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애니메이션 퀄리티는 거칠게 말하자면 '질감'에 의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간단한 3D 작업을 해본적 있으신 분들이라면 누구나 아시는 대로, 쉐입을 따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모델링 쪽도 나름대로의 고충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컨셉 디자인만 안정적이라면 기본적으로 사람을 무지막지하게 갈아넣어야 하는 육체노동의 성격이 훨씬 강하죠. 일반적인 소비자의 눈에 '우와 기가막힌다, 죽인다' 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3D 요소의 퀄리티는 매핑을 하는 소스와 엔진의 퀄리티와 그 퀄리티를 북돋을 수 있는 광원의 구성과 렌더에 의해 대부분 결정됩니다. 만, 이 영화는 이 부분에 심각한 하자가 있습니다.

 

 

 

 

 

 

# 3.

 

까놓고 말해서 사람 피부와, 비단 커튼과, 종이로 접은 비행기와, 진짜 비행기와, 건물 벽 따위가 아! 무! 것! 도! 구분되지 않습니다. 안그래도 다채로운 염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남아시아 문화권의 알록달록한 배경이 심미성과 별개로 시인성에 방해가 되는데, 질감 연출마저 개판이다보니 더 정신없고 조악해져 버리고 말았죠. 인물의 '나이'가 영화의 주제의식 그 자체라 할 정도로 중요함에도 어린 동생과, 소녀와, 엄마와, 소녀를 알선하는 아저씨와, 늙은 신랑의 나이가 직관적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복식과 수염과 키 따위로 간신히 구분될 뿐이죠. 엄마와 소녀의 구분이 모호해져버리는 순간, 영화의 주제의식 역시 종이비행기와 함께 하늘나라로 승천하게 됨은 당연합니다.

 

뛰어다니고 날아다니는 요소들은 많은 데요. 운동하는 것들의 관성에 대한 연출은 충격적일 지경입니다. 비행기가 구름을 뚫고 날아가는 모습은 내가 뭘 보고 있나 눈을 비비게 합니다. 종이 비행기가 아저씨의 몸에 맞는 순간 정신을 놓게 됩니다. 소녀가 신부복으로 갈아입는 순간의 웅장한 척 하는 연출 역시 너무 무신경합니다.

 

작품의 균형이란 측면에서 신부복으로 갈아입는 순간은 또 너무 빨리 등장합니다. 결혼식 장면은 전체 런타임을 생각할 때 쓸데 없이 길고 왜 필요한 것인가 조차 설득되지 않습니다. 멀리 던져진 소녀의 종이 비행기와 그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가버리는 기계적인 연출 역시 대단히 무책임하죠.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서 어린 동생이 파일럿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카툰북처럼 끼워넣음으로 인해 본편의 종이비행기에 대한 '은유'는 파일럿이라는 장래희망에 대한 '직설'로 추락하고 만다는 점 역시 끔찍합니다.

 

 

 

 

 

 

# 4.

 

새삼스레 말하는 게 어색할만큼 당연하게도 영화는 감독에게 교육받기 위한 매체가 아닙니다. 그러기는 커녕 아쉬운 건 언제나 감독 쪽이죠. 연출자 홀로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은 메시지를 부둥켜안고 버려지는 동안 관객은 극장을 나와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뿐입니다. 영화를 유희로서 즐긴 결과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메시지라는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영화는 좋은 영화냐 아니냐 이전에 영화인지조차 의심하게 됨이 당연합니다.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 생각하는 순간부터 응축된 힘을 끌어 올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터트리는 게 아니라, 정의감에 불탄 감독이 '이런 영화를 만들어야 겠다!'라 생각하는 순간을 피크로 점점 힘이 빠지다 정작 결과물인 영화는 털썩 주저앉는 느낌이랄까요. 감독은 개봉에 앞서 스스로에게 이 애니메이션이 소녀들의 실태를 진득히 찍어서 편집한 다큐맨터리보다 더 낫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되물었어야 합니다.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죠. '샤르민 오바이드-치노이' 감독, 『시타라 - 렛 걸스 드림』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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