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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절친 인싸들을 사냥하는 짱 센 킬러 _ 사냥의 시간, 윤성현 감독

그냥_ 2020. 4. 2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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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 가 전부인 영화입니다.

 

가오가 몸을 지배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말초적 간지를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을 희생하면 이런 결과물이 나옵니다. 엽기적일 정도로 서사의 볼륨은 좁습니다.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만 제목에서 말씀드린 대로 졸라 짱 센 먼치킨 킬러가 힙한 슬럼가 인싸들을 사냥한다가 정말 영화의 전부입니다. 그 외 모든 요소들은 빈곤한 서사를 지탱하기 위한 억지와, 몇몇 주요 인물들을 멋있어 보이게끔 하기 위한 치장에 불과합니다. 

 

 

 

 

 

 

 

 

'윤성현' 감독,

『사냥의 시간 :: Time to Hunt』입니다.

 

 

 

 

 

# 1.

 

주인공 '준석'이 교도소를 다녀온 건, 이 인물에게 온갖 문제들을 대신 해결해줄 '교도소에서 알게 된 형님들'이라는 도라에몽을 쥐어주기 위해서입니다. 헌신적인 짱친 형님들이 많음에도 교도소를 지옥으로 기억하는 건, 교도소가 지옥 같아야 그곳을 헤쳐 나온 주인공이 더 간지 나 보이기 때문이죠.

 

준석의 패거리들은 단순 양아치를 넘어 보석상과 도박장을 털기 위해 미친 듯이 총질을 해대는 중범죄자들임에도 마음만은 자전거와 가족 사랑이 지극한 순수 청년들인 건, 감독이 이 간지 나는 일진 인싸들을 어떻게든 변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가족 문제로 힘들 때 도와줬건만 정작 중요할 때 통수를 갈기고 돈을 빼돌렸던 '상수'를 도박장 털이에 덜컥 합류시키는 건, 우리의 순수 청년들은 배신이라는 걸 절대 생각하지 못하는 우정의 화신들이기 때문이죠.

 

 

 

 

 

 

# 2.

 

서버실을 꾸려도 부족할 대용량 cctv 영상을 고작 하드 몇 개에 저장한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백업용 하드디스크와 VIP 정보가 담긴 장부를 함께 관리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설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사냥의 동기가 되는 그 중요한 VIP 정보에 대한 떡밥이 말끔하게 휘발한다는 건 차치하고서라도. '차라리 은행을 터는 게 더 나을 법한 무지막지하게 위험천만한 도박장'을 털면서 하드디스크 몇 개 챙긴 걸로 자신들이 추적당하지 않을 거라 기대하는 이 천진난만함은 대체 뭔지 모르겠습니다.

 

시-분-초 단위로 계획을 짜고 연습까지 하지만, 출국각은 미리 준비하지 않아 국내에 발이 묶이는 데다 '서'쪽에 있는 대만으로 빤스런을 계획하면서 '동'해안에서 룰루랄라 피서나 즐기는 이들의 멍청함은, 킬러 '한(박해수)'이 주인공들을 쫓아갈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감독의 눈물 나는 배려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죠.

 

 

 

 

 

 

# 3.

 

어찌어찌 시간은 벌었습니다만 '한'이 이들을 어떻게 추적할 것인가에 대한 최소한의 전개 따위는 당연히 없습니다. '상수'가 발각된 이유는... 그냥 감입니다. '한'이 총포상 '봉식'을 찾아간 것도 감이죠. '봉식'이 '준석'을 도와줬다는 걸 '한'이 알아채게 되는 것도 감이고, '봉식'이 죽임을 당하면서도 굳이 '준석'의 위치를 전화로 따준 것 역시 그냥이며, 텅 빈 총포상을 폭탄으로 시원하게 날려버린 것도 그냥 그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긴, 졸라 짱 센 투명드래곤 '한'이라면 관심법쯤은 기본 탑재하고 있었을 수는 있겠네요.

 

 

 

 

 

 

# 4.

 

밑도 끝도 없는 동해안 표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이후의 총기 추격신들의 효과를 더욱 극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밑밥처럼 보입니다만, 의도와 달리 그리 효과적이지는 않습니다. 따뜻한 엄마 밥상을 받아먹고 바닷가에서 폭죽놀이를 쳐 즐기고 나면 힘들게 죽을 고비 넘겨가며 대만의 에메랄드 빛 바다로 갈 바에야 '기훈'의 부모님 계시는 동해안에서 적당히 자전거 가게나 하나 차리는 게 나을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죠.

 

물론 도박장을 털 때까지만 하더라도 눈곱만큼도 신경 쓰지 않던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도박장을 털고 나자 갑자기 샘솟는다는 질척거림에서부터 말이 안 되지만요.

 

 

 

 

 

 

# 5.

 

이런 장르는 무식하게 말하자면 점점 옥죄어가는 맛으로 보는 영화입니다.

 

'김윤석'이 족발 뼈다귀 하나 들고서 '하정우' 조지러 가는 '나홍진' 감독의 『황해』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죠.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사정권 안으로 점점 포위해 들어가는 구도를 만들만한 서사적-공간적 볼륨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껏 중간다리라 해봐야 앞서서도 말씀드린 '봉식'의 총포상이 전분데 그나마도 감독 스스로 중반부에 시원하게 날려버렸죠. 그러니 다음 전개가 곧장 '준석'의 눈 앞에 '한'이 나타나버리는 것일 수밖에요.

 

 

 

 

 

 

# 6.

 

사냥 다니는 영화에서 시작부터 대상을 붙잡고 들어가다 보니, 그다음은 볼륨을 부풀리기 위한 억지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됨은 당연합니다. 관객을 놀리는 듯한 '5분 드립'이나 평소에 얼마나 심심하게 사는 건지 틈만 나면 떠들어대는 '재미있다'는 헛소리는 그 때문이죠.

 

'장호'가 두 번씩이나 총에 쳐 맞는 것도 주인공들이 팔자 좋게 병원에서 한참을 노닥거리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한'이 굳이 붙잡은 주인공들을 계속해서 풀어주고 득달같이 달려가 놓고 눈 앞에선 패션모델에 빙의해 짝다리 짚고 멀뚱멀뚱 서 있는 것도 그 때문이죠. '상수', '장호', '기훈' 순으로 번호표 뽑아가며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퇴장하는 것도 모조리 영화의 볼륨을 억지로 부풀리기 위한 시간 벌기일뿐입니다. 이게 총기 액션물인 건지 마약 범죄물인 건지 모를 빙글빙글 돌아가는 화면도, 툭툭 끊어지는 온갖 허세 대사들도, 통일된 테마 없이 과장되기만 한 공간 연출도. 모두 말도 안 되게 빈약한 볼륨의 공백을 어떻게든 때워내기 위해서 동원된 것들이죠.

 

 

 

 

 

 

# 7.

 

정상적인 영화였다면 '좁혀 나가는 구도'를 통해 빌런의 존재감을 키워야 하지만 감독은 결국 이 빌런을 '점점 더 대단한 놈으로 만드는 것'을 통해 존재감을 키우려 합니다.

 

하지만 다른 감독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덴 다 이유가 있는 법이죠. 총싸움 무진장 잘하는 독고다이 킬러로 묘사되던 '한'이 공권력까지 좌우하는 사회적 괴물이 되어버리는 순간 간신히 유지되던 빌런의 캐릭터성은 처참히 붕괴됩니다.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면 저 등신은 왜 위험천만하게 자기 발로, 그것도 혼자 싸돌아 다니는 걸까?" 라는 의문이 생겨나기 때문이죠. 그리고... 거 봐라. 총질 당하지. ㅉㅉ. 그런데 왠 걸? 벌집이 된 이 빌런이 또 살아있답니다? 아~ 감독님이 너 안 죽으니까 걱정 말고 싸돌아 다니라고 미리 귀띔이라도 해줬나 보군요! 그럼 인정. 

 

 

 

 

 

 

# 8.

 

언제나의 허술한 영화들이 보이는 총 들고 달리기하는 등신 짓은 이젠 슬슬 익숙해지기 시작합니다. 총질을 할 때면 엄폐물에서 제 발로 뛰쳐나오는 멍청함은 기본이죠. 주요 인물이 쏘지 않은 총알에는 절대 맞지 않는 회피력은 덤이고, 수십 명이 가드 하는 도박장을 털어먹은 놈들이 자신들 역시 무장을 했음에도 처음 보는 킬러 한 명에 벌벌 떨며 도망간다는 억지까지 더해지면 완벽합니다.

 

도무지 함의를 알 수 없는 하와이 타령은 감독님이 하와이를 무지 좋아하는 거 같구요. 안재홍이 자는 척하는 건 감독이 아는 인싸 친구 중에 그런 애가 하나쯤 있었나 보다 싶습니다. 자전거 얘기 역시 계속해서 나오는 데 왜 나오는지는 지금까지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쯤 왔으면 그런 문제들을 지적하는 관객이 나쁜 거겠죠.

 

 

 

 

 

 

# 9.

 

상황이 탄탄하게 쌓여 있고, 상황을 전달받은 관객이 스스로의 감정을 발견하고, 그렇게 유도된 감정을 연출이 적절히 서포트하는 게 아니라 공간과 조명, 음향 따위의 연출이 정서를 먼저 규정한 후 강렬한 감각을 동원 해 폭압적으로 강요하는 느낌입니다. 물론 굳이 자기 시간 들여가며 영화와 싸우고 싶을 리 만무한 관객이 연출의 장단을 맞춰줄 수는 있습니다만 그것도 정도껏 이어야죠. 길어야 1시간 남짓이면 모를까, 아무런 서사적 기반 없이 느낌적인 느낌의 사이버 펑크스럽고 갱스터스러운 분위기만 조지는 걸로 때워내기에 2시간 14분은 길어도 너무 깁니다.

 

서사도, 정서도 빈곤하다면 남는 건 메시지뿐이겠죠.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세계관이 아닌 무언가 현실성을 덧대려 애쓴 인상이 역력한 이 디스토피아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읽어 내는 건 그리 어렵지는 않아 보입니다.

 

벗어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도망 다니는 사냥감이 되어선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다. 친구도, 가족도 누구도 없이 도착한 도피처로서의 에메랄드 빛 바다는 결국 허상일 뿐이다. 사냥감이 될 것인가. 맞서 싸울 것인가. 제목의 사냥은 누가 누구를 사냥하는 것일까. 사냥의 시간은 두 시간여에 걸친 '사냥당하던 시간'이었을까, 마지막 한국으로 돌아오는 배에 올라탄 ''준석'의 시간'이었을까. 뭐 그런 것들 말이죠. 하지만 넓고 탄탄한 이야기의 토대 위에 세우지 못한 채 감흥 없이 쓰러지는 메시지만큼이나 허망한 것이 없죠. 메시지는 어디까지나 덤입니다. 무언가를 배우고 싶었다면 영화관이 아니라 학교를 찾았겠죠.

 

 

 

 

 

 

# 10.

 

보는 내내 김지운 감독의 흑역사 『인랑』이 떠올랐습니다. 느낌적인 느낌과 간지를 위한 간지에 대부분의 역량을 갈아 넣느라 이야기로서의 완성도와 설득력을 등한시하는 가운데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 공허한 메시지로 자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역설적이게도 '간지'는 폼을 안 잡아야 나옵니다. 우리가 죽인다 생각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은 대부분 전혀 폼을 잡지 않음에도 자신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개 멋있죠. 그 최선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라도 빈틈없이 촘촘한 서사와 설정이 필요함은 당연하구요. 하지만, 이 영화 속 주인공들은 자신의 최선을 다하는 것 대신 겉멋을 부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합니다. 혼신의 노력을 갈아 넣은 화면과 음향의 때깔, 배우들의 분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지점에서 안타까운 선택만을 반복하는 영화가, 유일하게 잘한 일이 '극장에 걸지 않고 넷플릭스에 파는 데 성공했다'라는 게 비극적이군요. '윤성현' 감독, 『사냥의 시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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