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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nimation

스튜디오 카탈로그 _ 겸손한 영웅, 스튜디오 포녹 단편선

그냥_ 2019. 9.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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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동심을 자극하는 상상력.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 동글동글한 작화. 수채화풍의 다채로운 색감. 이 모든 것들 위로 흘러내리듯 어루만지는 음악까지. 아! 이거 '미야자키 하야오'네요.

 

2000년 전후로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과 『벼랑 위의 포뇨』를 지나오신 분들이라면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아무런 배경 정보 없이도 지브리의 작품들과 풍경과 분위기를 떠올리실 수 있을 겁니다. 단편선을 제작한 '포녹'의 직원들이 '지브리'에서 나온 멤버들이기 때문이죠.

 

한국 드라마 영화의 특징이 '특별한 상황에 놓인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가득 담긴 진지한 고찰'이라 한다면, 일본 드라마 영화는 '소소한 상황에 놓인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하고 풍부한 상상력'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소위 지브리의 작품들은 이런 일본 영화를 대표하는 명작들 가운데 놓이기에 손색이 없죠. 

 

 

 

 

 

 

 

 

스튜디오 포녹의 단편선,

『겸손한 영웅 : 포녹 단편 극장』 혹은

『작은 영웅 : 게와 달걀과 투명인간』입니다.

 

 

 

 

 

# 1.

 

스타일의 스펙트럼을 과시합니다. 마치 새로 출발하는 스튜디오의 시제품 카탈로그 같달까요. 물론 이건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닙니다. 그만큼 짧은 시간 동안 지브리 시대의 향수를 풍부하게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일정한 풍의 작화가 단편선을 넘어 스튜디오의 정체성을 형성합니다. 누가 봐도 이건 '지브리'에 뿌리를 두고 있는 '포녹'의 작품이라는 브랜드 메이킹을 하는 거죠. 그 전제 위에서 배경 묘사에 대한 표현을 달리함으로써 작품 다의 분위기를 결정하려 하는군요. 

 

첫 번째 단편 <카니니와 카니노>는 총 3단계의 화풍이 적용됩니다. 단순한 선을 중심으로 명확하게 그려진 인물들과, 수채물감으로 그린 듯 뭉개져 흐르는 포근한 느낌의 배경과, 긴장감과 역동성을 전달하는 요소들에 적용된 실사화된 표현이 바로 그것이죠. 각기 다른 화풍으로 레이어를 명확히 구분 지음으로서 요소들을 대할 때마다 감정의 결을 구분 짓도록 돕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사무라이 에그>는 일상적인 그림체를 인물과 배경 모두 적용해 일상 속에 인물들이 녹아들어 합치되어 있다는 감각을 충분히 전달합니다. 순간적으로 역동성이 부여되는 장면들, 이를테면 엄마가 춤을 추다 빠르게 '슌'에게 달려가는 장면이라거나, 아이스크림을 잘못 먹은 '슌'이 계단을 미끄러져 내려오는 순간 등에서 습작처럼 선을 날리며 확실한 속도감을 부여하죠.

 

<투명 인간>에서는 아예 짙은 유화 풍으로 배경을 그려냅니다. (느낌만 비슷하다는 거지 진짜 유화라는 건 물론 아닙니다.) 특유의 침전된 분위기와 침식되는 내면을 육중하게 잡아냅니다. 순간순간의 씁쓸한 유머나 역동적인 연출이 벌어지는 순간에도 극의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는 데 성공합니다. 마지막 방긋 웃는 아이의 웃음이 주는 감동은 앞선 우울한 작화와 대조되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됩니다. 각기 다른 세 작품의 세 감독은 동질감을 살리면서도 상당한 스펙트럼의 분위기를 작화의 양식만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합니다.

 

 

 

 

 

 

# 2.

 

서사를 진행하는 방식도 상이합니다. <카니니와 카니노>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아무래도 대사가 없다는 것이죠. 인물들은 나름의 이야기를 하지만 관객은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관객의 모든 감각을 역동적인 물속 움직임과 풍부한 표정, 배경의 운동성과 생동감 있는 음악에 집중하도록 하면서도 서사를 이해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합니다.

 

<사무라이 에그>는 평범한 대화를 통해 진행됩니다. 주제 자체가 '가족 간의 사랑과 보호, 새 이가 돋아나듯 시련을 극복해 나가는 성장'이라는 걸 생각할 때 편안한 감상을 돕는 정석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겠죠. 반면 <투명 인간>은 또 다른 방식을 선택합니다. 마치 마임을 보는 것 마냥 동세를 통해 정서와 서사를 전달하죠. 그런데 또 재미있는 건 주인공은 제목에서처럼 표정을 전달할 수 없는 투명인간이라는 겁니다. 입은 옷의 나풀거림과, 안경 따위의 소품을 담아내는 구도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의 내면을 고찰하는 영화를 만들어 낸다는 건 독창적이면서 동시에 도발적입니다.

 

 

 

 

 

 

# 3.

 

아빠를 잃고 우는 아이가 흘리는 물속에서 떠오르는 눈물이라거나, 쨍한 햇볕 아래 내지르는 야구방망이라거나, 투명한 남자의 실루엣 위로 떨어지는 비의 질감은 그야말로 황홀합니다. 작은 '게' 가족을 의인화 해 아주 소소한 관찰을 신비하게 그려내는 사려 깊은 시선과, 달걀 알러지가 있는 아이와 그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함께 성장해 나가는 가정, 날아가버릴 듯 존재감을 잃은 사람이 스스로 자존감을 확보해 나가는 이야기 등에서, 평범한 상황에 대한 사려 깊은 상상력이 일관되게 느껴집니다. 이 단편들은 마치 십수 년 전 느꼈던 촌스럽지만 사랑스러운 감정들을 단숨에 상기시킵니다.

 

# 4.

 

물론 가혹하게 말하면 재탕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이 작품은 지브리의 영향력 아래 있어 보입니다. 

 

다만, 굳이 꼭 새로워야만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변화를 택하지 않는다면, '미야자키 하야오'라는 거인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겠지만, 그들의 전통을 계승해 깊이를 더한다 말할 수는 있겠죠. 반면 변화를 택한다면, 지브리의 후신으로서의 포녹이 아닌, 포스트 지브리를 정의하는 포녹이 되어야 한다는 막중한 숙제가 남을 겁니다. 

 

앞으로 이 스튜디오의 결과물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글쎄요, 아무도 알 수 없는 거겠죠. 하지만 적어도 시작으로서의 상품안내서가 이 정도라면, 갈림길에 서서 던지는 출사표가 이 정도라면 전 넉넉한 합격점을 주겠습니다. 스튜디오 포녹의 단편선, 『겸손한 영웅 : 포녹 단편 극장』 혹은 『작은 영웅 : 게와 달걀과 투명인간』 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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