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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트리뷰트 _ 황혼에서 새벽까지,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그냥_ 2023. 11.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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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그 모든 의미에서 흘러넘치는 유쾌하고 자유로운 펄프 픽션의 피비린내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황혼에서 새벽까지 :: From Dusk till Dawn』입니다.

 

 

 

 

 

# 1.

 

처음은 케이블 티브이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폭력과 섹스와 유흥이 조합된 말초적 쾌락이 이렇게까지 과격하게 펼쳐질 수 있구나라는 감상은, 한 떨기 가녀린 소년에게 충분히 충격적인 것이었죠. 그렇게 한동안 잊고 지냈었는데요. 적당히 이런저런 경험이 쌓일 만큼 나이를 먹은 후 다시 볼 기회가 있었고. 지금은, 좋은 영화라는 평이 현학적인 작품들만 독점적으로 향유하는 것이라 여기던 고정관념을 깨부숴 준 작품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괴상한 영화가 이렇게나 재미있다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걸까라는 고민이 며칠은 머릿속에서 가시질 않았더랬죠.

 

1996년, 그러니까 거의 30년 전에 개봉한 B급 액션 코미디 판타지 호러 존잘 발가락 핥짝 영화입니다. 특유의 속도감 넘치는 편집과, 예측을 원천전으로 불허하는 괴랄한 전개에 힘입어 전 세계 깨알 같은 마니아층을 거느린 작품이죠. 중년의 조지 클루니 다음으로 섹시한 젊은 조지 클루니의 스크린 데뷔작이자, 쿠엔틴 타란티노가 절친 여자친구 발가락 빨기 위해 출연을 결심한 것으로도 유명한 작품 되시겠습니다.

 

 

 

 

 

 

# 2.

 

전반부는 막장 탈옥수 형제가 목사 가족의 캠핑카를 인질 삼아 도망가는 과정으로 요약됩니다. 형제의 폭력에 근거한 긴장감으로 극을 옥죄면서도, 특유의 대사와 유머를 통해 일정한 리듬을 부여하는 완급 조절이 인상적인 파트죠. 윤리와 폭력의 경계를 조율하는 정석적인 스릴러 무비의 매력을 따라감과 동시에, 아내의 상실 속에서 의미를 찾는 로드무비의 성격도 강력한 파트라 할 수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은 멕시코 국경을 넘어 Titty Twister라는 술집에 도착하는 데요. 드넓은 거리에서 좁은 술집으로 공간을 제약하는 것을 시작으로 급격한 장르 전환을 시도합니다. 과격하고 관능적인 디자인의 뱀파이어와, 그보다 더 과격한 슬래셔 표현이 혼합된 판타지 호러 무비로의 전환이죠.

 

전반부를 게스 형제와 목사 제이콥이 상징한다면, 후반부는 미모의 셀마 헤이엑과 고간에 리볼버 달고 허리 흔드는 톰 사비니가 상징한다 할 수 있습니다. 전반부 아슬아슬하게 끌고 가던 긴장 관계를 일순간 무너트리는 폭발적 재미, 과시적이라는 수사조차 소박해 보이게 만드는 상상력과 연출력은 자신의 취향을 밀고 나가 관철시키는 자의 야심을 엿보게 하죠.

 

 

 

 

 

 

# 3.

 

이처럼 직관적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구분되는 구성상 두 개의 장르가 접붙여진 영화로 흔히 알려져 있는데요. 정확히는 '범죄 스릴러'와 '로드무비'가 결합된 전반부, '뱀파이어 판타지'와 '슬래셔 호러무비'가 결합된 후반부가 뒤엉킨 멀티 장르 영화라 이해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다수의 입체적 장르 경험은 그 자체로 싸구려 펄프 픽션들에 대한 오마주로서의 종합선물 세트 같은 느낌을 선사합니다. 특유의 자유롭고 과격한 감성이 은은한 노스탤지어로 승화되고 있는 이유라 할 수 있죠.

 

범죄 스릴러, 로드무비, 뱀파이어 판타지, 슬래셔 호러의 네 장르를 연결하는 윤활유이자 접착제는 단연 '코미디'입니다. 메가폰을 잡은 로버트 로드리게스와 펜대를 쥔 쿠엔틴 타란티노에게, B급 영화 속 코미디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가를 반증하는 작품이기도 한 것이죠.

 

리치가 망상을 품는 장면 등은 인물의 비정상성과 만나 코믹한 대조를 이룹니다. 리치가 죽은 여자를 상상 속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보는 장면들은 호러 무비의 클리셰를 비트는 것이죠. 후반부 다양한 무기들, 이를테면 콘돔으로 만든 성수 물폭탄이라거나, 야구 배트와 샷건으로 만든 십자가 총, 괴상한 디자인의 석궁들도 코미디에 크게 기여하구요. 무기를 갖춘 파티가 진영을 갖춰 뱀파이어를 쓰러트리는 장면 역시 공포 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서바이벌 장면을 흉내 내고 있습니다. 물론 백미는 그 이름도 웅장한 섹스 머신의 고간에 달린 리볼버입니다. 누구나 처음 보는 순간 미친놈인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코미디의 끝이죠.

 

 

 

 

 

 

# 4.

 

미국과 멕시코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등장한다는 면에서 사회적 알레고리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전반부 게스 형제의 이동이란 그들의 도덕성과 별개로 일종의 생존투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형제가 공격하는 이유는 먹고(편의점) 쉬고(모텔) 이동하기(캠핑카) 위해서지 특별한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아니었으니까요. 이들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로서 최소한의 욕망과 복수심을 충족하기 위해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동생 리치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폭력이고, 형 세스는 충동적인 분노조절장애에 시달리지만 적어도 서로에게만큼은 상당히 돈독한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후반부 접어들어 세계와 인물의 관계는 드라마틱하게 역전됩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투쟁하던 악인욕망에 물든 악인들 속 평범한 사람들로 전환되는 것이죠. 전반부 그렇게나 살벌하던 세스는 사람들과 협력하며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만약 세스와 리치가 태생적인 악당이었다면, 그들은 술집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것을 선택했을 겁니다. 술집에 들어서며 보인 만족감처럼 뱀파이어가 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욕망에 취해 살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한 표인트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일련의 구성은 미국 사회가 얼마나 비정하고 폭력적인 곳이며 그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가를 뒤틀린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미국 사회의 부패와 타락, 인간과 괴물의 대립과 협력, 인간성의 유지와 상실 등의 주제를 다양한 캐릭터와 상황을 통해 풍부하게 표현하는 작품이라는 면에서 마냥 만만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라는 것이죠.

 

물론 그렇다 해서 게코 형제의 범죄를 온전히 사회의 탓으로 돌린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욕망에 잠식당한 리치는 뱀파이어가 되는 대가를 치렀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한 세스 역시 지옥을 향해 걸어간다는 것을 잊어선 안되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진짜 주인공은 바로 케이트입니다. 부조리한 미국과 욕망의 멕시코 사이에서 가족 모두를 잃은 케이트는 갈림길에 선 미래를 상징합니다. 감독은 결말을 통해 소녀를 세스가 걸어간 지옥의 길을 걷게 할 것인가, 아빠가 걸어간 천국의 길을 걷게 할 것인가 질문합니다.

 

 

 

 

 

 

# 5.

 

기술적인 면에서도 볼 거리가 많은 작품입니다. 전반부는 상대적으로 직관적인 환경을 통제하는 스타일적 재미가 충만합니다. 인물에게 카리스마를 부여하는 로우 앵글이나, 윤리적 함의가 투사된 저조도의 조명, 어두운 색채 따위에 주목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할 수 있겠죠. 후반부는 역으로 고조도의 조명과 밝은 색조를 통해 뱀파이어의 기괴한 외모와 비상식적인 행동을 강조합니다. 앵글 역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어 카리스마를 부여하던 인물들을 위태롭게 만들어 공포감과 혐오감을 효과적으로 유도하고 있죠.

 

연기 이야기로 마무리할까요. 조지 클루니의 카리스마는 짚어 칭찬할만합니다. 형제간의 애정과 갈등을 표현하는 섬세한 연기도 훌륭하고, 선인을 압도하는 순간의 광기와 악인을 해치우는 순간의 박력 또한 훌륭합니다. 의학 드라마 ER을 통해 출세한 조지 클루니의 스크린 데뷔작이자 이후 화려한 필모그래피의 출발점으로 전혀 손색이 없을 연기죠. 그 외의 배우들 역시 개성적인 캐릭터들을 자유롭게 연기하며 작품과 함께 논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물론, 타란티노는 그런 것 잘 모르겠고 발 빨고 싶어서 출연한 게 확실합니다. 로버트 로드리게스 감독, <황혼에서 새벽까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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