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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오만과 편견 _ 가면과 거울, 민병훈 감독

그냥_ 2023. 11. 1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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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왜 하필 백영수인가.

 

 

 

 

 

 

 

 

민병훈 감독,

『가면과 거울 :: Mask and Mirror』입니다.

 

 

 

 

 

# 1.

 

백영수 화백(1922~2018)과의 동행입니다.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장욱진 등과 함께 신사실파(新寫實派)의 일원이었던 것으로 유명한 1세대 원로 화가인 데요. 다소 생소하신 분들조차 대표작이라 할 수 있을 <모자상> 시리즈만큼은 눈에 익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을 향해 다가가듯, 달아나듯, 밀려나듯 걷는 예술가와 그의 뒤를 쫓는 카메라입니다. 과감한 클로즈업은 인물의 상황에 주목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합니다. 초라하고 무방비한 아침 화장실과, 아래로 낮게 침전되는 동선과, 눈 마주칠 것을 강요하는 거울과, 짐짓 무덤처럼도 보이는 둔덕과, 늙고 마른 나무껍질을 만지는 늙고 마른 손길과, 줄지어 환영하는 듯한 묘비와, 문득 나라는 존재를 이방인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사람들과, 잠들지 못하는 눈꺼풀 등이 정석적으로 나열됩니다. 주인공의 목소리는 두어 마디, '많이 늙었다', '다 죽었다'가 전부입니다. 예술가가 느끼는 죽음에 대한 영화라는 것이죠. 장면들 사이로 시계나 석양이나 들판 따위의 과격하게 조작된 이미지들이 교차하며 다루고자 하는 죽음에 일정한 성격을 투사합니다. 스스로 실험작이라 칭할법하군요.

 

구분하는 것에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굳이 하자면 다큐멘터리에 조금이나마 가까워 보이기는 합니다. 감독의 연출이 강하게 개입함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주인공은 가상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아닌 실존인물이기 때문이죠. 영화가 포착하려는 죽음은 감독 민병훈이 아닌 화가 백영수에 가까이 있고, 관객이 궁금해할 것 역시 가치중립적인 죽음이라기보다는 백영수라는 특별한 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죽음일 가능성이 큽니다. 노년의 예술가는 죽음이라는 개념 혹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와 동시에, 예술가는 죽음이 자신의 눈앞에 다가왔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다루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 2.

 

영화의 제목은 <가면과 거울>입니다. 작품의 구성이 감독이 선별한 이미지가 교차되는 시퀀스화가의 걸음을 추적하는 시퀀스로 이분화된다는 면에서, 제목의 가면과 거울 역시 각각의 구성에 대응한다 추측하는 것은 썩 자연스러울 겁니다.

 

가면은 얼굴로 상징된 내면의 무언가를 숨기는 도구라는 면에서 타인이 통제할 수 없는 개념일 텐데요. 따라서 주인공이 직접 등장하는 백영수의 걸음은 가면, 그 사이 인서트되는 이미지는 거울이라 할 수 있겠죠. 화백이 등장하는 장면들, 이를테면 화장실이나 지하철 유리에 비친 얼굴이라거나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뒷모습 따위를 공들여 연출하는 것은, 지금 보고 있는 차분한 얼굴이 거울이 아닌 가면임을 증명하는 연출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작품의 본질은 감독이 나름대로 재해석해 연출하는 이미지에 있다는 뜻이 될 텐 데요. 그렇다면 다시 왜 하필 백영수인가? 라는 보다 근원적인 의문에 봉착합니다. 영화가 정의하는 죽음이 백영수의 죽음이 아닌 민병훈의 죽음이라면. 같은 동선을 감독이 직접 카메라 앞을 걷는 것에 비해 이 작품이 가지는 비교 우위가 뭐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 낸 이미지라는 것에 화가 백영수의 세계에 대한 설득 가능한 통찰이라도 녹아 있으면 또 모를까. 작품 어디에서도 백영수의 세계는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째깍째깍 시계 돌아가는 사운드 따위를 곁들인, 흔히 노인의 죽음 하면 떠올릴 법한 상투적인 이미지의 나열은 그저 지루하기만 할 뿐이죠.

 

 

 

 

 

 

# 3.

 

작품으로 말미암아 백영수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죽음이 눈앞에 닥쳐 잠들지 못하는 노인으로 전락합니다. 영화는 죽음을 직시하지 못하는 가면 쓴 백영수와 그의 내면을 비춘 거울로서의 영화라는 면에서 놀라울 만큼 오만합니다. 묘사하는 죽음이라는 것은 주체를 배제한 채 상투적인 모습으로만 그려내고 있다는 면에서 놀라울 만큼 편견에 가득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영화였다면 앤딩 크레디트가 오르고 난 후, 화가 백영수가 느끼는 죽음에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어야 했을 텐데요. 과연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관객들이 백영수의 세계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넓힐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면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기 쉽지 않죠. 한평생 순수하고 순진하고 순박하고 평온한, 그래서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던 화가의 말년을 겸허하게 인터뷰하던가, 아니면 차라리 죽음이라는 주제를 풀어내는 전시전을 하나 기획하는 편이 이런 낭비적인 결과보다는 훨씬 나았을 겁니다. 민병훈 감독, <가면과 거울>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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