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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죠 _ 다우팅 토마스, 윌 맥파든 감독

그냥_ 2022. 10.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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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물론 의심한다면 너는 인종차별자가 된다는 것만 알아둬.

 

 

 

 

 

 

 

 

윌 맥파든 감독,

『다우팅 토마스 :: Doubting Thomas』입니다.

 

 

 

 

 

# 1.

 

뼈대만 덩그러니 있는 듯한 영화입니다. 백인 부모 아래 태어난 흑인 아기라는 설정과 인종차별 메시지 정도를 제외하면 의미 있는 정보를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죠.

 

영화의 전개란 시나리오 단계에서 설정된 인물 관계의 내막을 주인공 등이 순차적으로 제공받는 과정으로 점철됩니다. 그로 인한 갈등이나 변화, 고민, 선택 따위는 사실상 전무해 대부분의 인물들은 내내 제자리에 멈춰있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서사가 존재하지 않으니 플롯이라 부를 만한 것도 없구요. 장르적 효과도 당연히 기대할 수 없습니다. 작품의 목적이 네가 톰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라는, 좋게 말하면 화두 나쁘게 말하면 추궁 밖에 없기에 촬영이나 편집에서도 관객을 압박하는 것 외에 다른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고, 몇몇 메타포 역시 메시지에만 기계적으로 복무할 뿐이죠. 막이 내리고 나면, 두어 줄짜리 시놉시스를 읽는 것 대신 굳이 영화로 만듦으로 인한 편익이 뭐가 있는 걸까? 라는 회의감마저 들게 된달까요.

 

 

 

 

 

 

# 2.

 

뼈대만 있는 영화라 말씀드렸으니 그 뼈대를 살펴봅시다. 백인 부모 아래 태어난 흑인 아기입니다. 부부가 모두 백인인 상황에서 아빠 톰은 이 아이가 나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가 확실한 것인가를 의심하게 되죠. 몇몇의 사소한 사건들과 아내 젠의 출신에 대한 내막이 공개된 후, 오랜 친구 론과 단란한 가정을 모두 잃고 자신의 의심을 후회한다는 결말에 도달합니다. 처음 침실에서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겠다 말하는 장면은 다른 사람(아내) 앞에서 보이는 연기된 진심이었다면, 결말의 유전자 검사지를 태우는 장면은 누구도 보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과오를 뉘우치는 진심 어린 참회를 의미한다는 식이죠.

 

누구 아이인지 의심하지 말고 닥치고 키워라. 의심하는 네가 나쁘다. 라는 결말인데요. 이 주장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을까 싶기는 합니다만, 사실 그건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관객이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로만 영화를 만들어야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모두가 동의하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이기 때문이죠.

 

되려 영화의 문제는 주장을 풀어내는 방식에 있습니다. 감독은 잘 조직된 이야기를 지나 결과적으로 주장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를 엄호하는 방식으로 인물과 설정을 동원합니다. 심지어 전혀 상관없는 당위를 끌어들이는 것에도 주저가 없죠.

 

 

 

 

 

 

# 3.

 

영화는 톰과 젠을 대립항으로 세운 후, 두 사람의 근본적 입장 차이라거나 톰의 불안은 철저히 무시하고, 젠의 불만은 과장하는 방식으로 묘사합니다. 케이트와 빌의 활용은 특히 노골적이죠. 케이트와 죽은 로저스의 관계는 톰의 의심을 비난하기 위한 수단으로 소비됩니다. 로저스가 흑인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빌이 떠났을 거라는 케이트의 항변은, 짐짓 자신을 변호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톰을 압박하는 젠을 변호하는 논거에 훨씬 가깝죠. 기다렸다는 듯 빌은 젠을 찾아가 케이트의 말이 맞다며 참회합니다. 빌이라는 캐릭터는,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음에도 군소리 없이 키우며 스스로 인종차별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자백하는 '착한 백인'이라는, 사실상 감독이 제안하는 톰의 모범답안인 것이죠.

 

심지어 감독은 설득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종차별을 동원합니다. 오프닝의 캐치볼이라거나, 론과 청소부의 일화 등을 통해 초반부터 차곡차곡 해당 코드를 누적해 온 이유죠. 론에 대한 톰의 의심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대한 평범한 불신임에도 불구하고, 이 의심은 인종 차별 때문이라 단정하는 논리 비약을 보노라면 심각한 것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톰이라는 인물을 모든 인간관계로부터 고립시켜 막다른 골목에 몰아놓고 누구의 아이인지를 의심하면 너는 인종차별자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작품이고, 이 매도의 대상은 당연히 같은 질문을 받게 되는 관객을 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네가 톰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했을까?

물론, 의심한다면 너는 인종차별자가 된다는 것만 알아둬."

 

랄까요. 이건 질문이 아니라 협박이죠.

 

 

 

 

 

 

# 4.

 

영화는 인종적 기준에서 미국 사회를 축약합니다. 죽은 로저스는 차별받던 과거 시대의 흑인이구요. 흑인 남자와 백인 여자 사이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다인종 국가 일 수밖에 없는 미국 사회를 의미합니다. 톰은 그 속에서 부양 책임과 권한을 독점하는 백인 남성을 의미하구요. 변호사라는 직업은 이들이 고소득층 화이트 컬러 계급임을 상징하죠. 톰은 내내 백인으로서의 스테레오 타입을 관철하고 싶어 하는 배타적 욕망을 가진 인격으로 묘사되구요, 론은 사회 경제적 계급 상승을 꿈꾸는 젊은 흑인 계급의 상시적 스트레스를 중심으로 묘사됩니다. 일종의 우화인 셈인데요. 단순한 나열에 불과할 뿐 구조적 고찰이 수반되지 않기에 깊이는 매우 얕다 해야겠네요.

 

사회적 문제를 핸들링하기에 감독의 고민과 통찰이 얼마나 부실한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 꼴이라는 생각입니다. 데뷔작으로 장편 영화를 핸들링하기에 감독으로서의 준비와 역량이 얼마나 부실한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 꼴이기도 합니다. 79분짜리 영화가 <싱크 앤 라이즈> 같은 8분짜리 단편보다도 볼륨이 빈곤하다는 건 창피한 일이죠. 윌 매파든 감독, <다우팅 토마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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