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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Romance

타는 목마름으로 _ 빌로우 허, 에이프릴 멀린 감독

그냥_ 2022. 5. 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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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파격적인 묘사는 잠재력 이상의 흥미를 유도하기도 하지만 역으로 저평가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이야기가 매력적이진 못했지만 그래도 미술과 연기, 고증, 촬영 등에서 나름의 성취가 있었던 작품임에도 폭력성과 선정성에 가려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했던 민규동 감독의 <간신> 같은 경우죠. 특히 우리나라는 그런 경향이 조금 더 심한데요. 국내보다 해외에서 훨씬 크게 평가를 얻고 있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네요.

 

 

 

 

 

 

 

 

에이프릴 멀린 감독,

『빌로우 허 :: Below Her Mouth』입니다.

 

 

 

 

 

# 1.

 

빌로우 허 역시 기본적으론 수위가 굉장히 높은 작품입니다. 수위뿐 아니라 비중도 높아 영화 내내 헐벗은 주인공들이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다 끝나는 영화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심지어 동성애를 다루다 보니 호불호를 더 타고 말았습니다. 물론 <가장 따뜻한 색, 블루>와 같은 훌륭한 반례도 있기에 작품에 대한 복합적 평가가 그저 과격한 묘사와 동성애 때문이라 말하는 것은 그것대로 관객에게 억울한 일이겠지만요.

 

갈증에 대한 영화입니다. 파격적 성애보다, 그런 성애로도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갈증을 담아낸 작품이죠. 인물의 등퇴장을 기준으로 보자면, 무표정하게 가짜 성기로 섹스를 하던 달라스와 약혼자 손톱에 몰래 매니큐어를 바르던 재스민이 만나, 편안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선 성장 영화라 볼 수도 있겠네요.

 

관객에 따라 직설적인 표현이 거북하실 수도 있어 보입니다만 나름의 이유는 준비해 둔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노골적인 묘사는 서로에 대한 사랑뿐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정체성의 갈증을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를테면 목마른 사람들이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영화랄까요. 퀴어와 표현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이면에 가려진 퀴어로 인해 포기하게 된 정체성과 결핍을 읽는다는 느낌으로 작품을 따라가 봅시다.

 

 

 

 

 

 

# 2.

 

갈증에 못 이겨 물을 끊임없이 들이켜는 사람, 재스민입니다. 과격한 묘사와 대조적이게도 은근히 미학적 은유가 풍부한 작품인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은유는 역시나 '물'을 꼽아야 할 겁니다. 빌로우 허에서의 물은 인물이 가진 갈증을 역설합니다. 달라스와 재스민이 만난 다음 날, 재스민은 욕조에 걸터앉아 자위를 하는데요. 자세가 영 어정쩡하죠. 수도꼭지에 성기를 가져다 대는 모습은 마치 목마른 사람이 입을 가져다 대는 것만 같이 연출됩니다. 일련의 표현은 관객을 감각적으로 자극하기 위함도 있겠습니다만 행위에 성욕의 분출뿐 아니라 갈증의 이미지를 함께 부여합니다.

 

달라스와의 이별을 고한 마지막 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데요. 비가 쏟아지던 밤 키스를 나눴다는 것보다, 온 세상을 뒤덮을 듯한 그 많은 물에도 불구하고 갈증을 해갈하지 못해 집 안으로까지 흘러들어 갔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두 사람은 영화 내내 잡아먹을 듯 성욕을 나누는 듯 보이지만 본질적인 갈증은 단 하나도 해갈되지 않았던 것이죠. 욕조에서 섹스를 하려는 순간 약혼자 '라일'이 등장하는데요. 라일의 등장은 몰래 나눈 사랑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정체성의 갈증을 해갈시켜주지 못함을 폭로하는 필연적 수순에 불과합니다.

 

 

 

 

 

 

# 3.

 

갈증을 외면해 나는 목마르지 않다 되뇌는 사람, 달라스입니다. 재스민이 욕조에서 자위하는 동안 달라스가 지붕 수리하는 장면이 교차 편집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재스민이 달라스가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위하고 있음을 표현한 장면이라 해야겠습니다만, '재스민의 자위'와 '달라스의 지붕 수리'에 공통점이 있다는 식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재스민을 끊임없이 물을 마시는 사람이라 한다면, 달라스는 물이 새어 들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붕을 고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을 거절하는 형태로 갈증을 부정하는 방어적인 인격인 것이죠. 달라스는 오프닝에서 섹스를 한다고는 믿을 수 없는 굳은 표정으로 소개되는데요. 관계가 끝나자마자 사랑을 거절하며 연인의 방을 벗어납니다. 사랑받기를 포기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사랑의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린, 어떻게 보자면 재스민보다 더 불행한 인물이죠.

 

그녀가 사들이는 도구들은 그 자체로 그녀의 모순을 폭로합니다. 영화 내내 핏이 딱 떨어지는 멋진 가죽재킷을 입은 모습으로 스스로 온전하다 과시하지만, 외면하고 있던 사랑하고 싶다는 욕구를 스스로 발견할 때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목마른 인격이라는 걸 자백할 때면 애처로운 모습으로 옛 연인과 스트리퍼를 찾아갑니다.

 

 

 

 

 

 

# 4.

 

재스민은 다른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정체성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달라스는 정체성을 얻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죠. 두 사람이 처음으로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 달라스는 하의를 입은 상태에서 상의를 벗고 있는 반면 재스민은 아주 짧은 드레스를 입어 하체를 노출하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두 사람의 갈증이라는 것이 대칭되어 있음을 의상을 통해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죠. 중반부 회전목마도 비슷한 의미를 은유합니다. 작동이 멈춘 회전목마에 재스민은 자연스럽게 올라타고 달라스는 힘으로 억지로 돌립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고 있지만 그 모습으론 제자리만 빙글빙글 맴돌 뿐이죠.

 

앤딩은 서사를 여러 각도에서 함축합니다. 해당 씬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보다 두 사람 앞으로 잔잔히 흐르는 호수의 전경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본성과, 통제할 수 없는 갈증과, 극복할 수 없는 슬픔 따위를 상징하던 아래로 쏟아지던 물은 처음으로 고요하게 흘러갑니다. 달라스는 잔잔히 흐르는 물을 배경으로 이전의 '톰보이'스러운 옷 대신 훨씬 편안해 보이는 옷을 입고 있죠. 평화로운 표정의 달라스에게 커피를 든 재스민이 다가오며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영화 내내 흘러내리는 물을 게걸스럽게 마시던 두 사람은 더 이상 목마르지 않습니다. 갈증에 못 이겨 물을 끊임없이 들이켜는 사람과 갈증을 외면해 나는 목마르지 않다 되뇌는 사람이 만나 서로의 사랑에 힘입어 물을 인정하게 되는 이야기인 것이죠.

 

 

 

 

 

 

# 5.

 

표현과 별개로 색감이 매혹적인 작품이기도 합니다. 달라스의 자기부정에게서 창백한 푸른색의 이미지를, 재스민의 끝없는 결핍에게서 불안한 붉은색의 이미지를 끌어낸 후, 두 색감이 보라색으로 뒤엉키는 이야기를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미술적으로 표현해 서사를 끌어안는 데 성공한 것은 유의미한 성취 중 하나라 해야겠죠.

 

다만 과격한 묘사에 치중하느라 인물의 내적 모순을 탐구하는 것은 다소 등한시하고 있기는 합니다. 서로에게 사랑을 느끼는 과정에 대한 설득은 크게 부족하죠. 균형의 실패는 일부의 관객으로부터 '이야기는 없고 섹스만 있다'는 류의 혹평으로 이어지고 말았네요. 영화를 긍정적으로 보신 분들이 매력을 느낀 대상이 배역 '달라스'인지 배우 '에리카 린더'인지, 배역 '재스민'인지 배우 '나탈리 크릴'인지에 확신을 주는 것에도 미흡합니다. 시나리오의 지배력 역시 비판의 지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죠. 에이프릴 멀린 감독, <빌로우 허>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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