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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꼭. 이렇게. 어려워야만. 속이 후련했냐! _ 아니마,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그냥_ 2019. 9.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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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미술관에 갈 때가 있습니다. 친구 없는 찐따가 혼자 다니면서 쪽팔리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죠. 쥐뿔 아는 게 없더라도 온 바닥청소 다하고 다닐 것만 같은 롱코트와 와인색 스웨터에 뿔테 안경을 끼고 한 손엔 스마트폰, 한 손엔 전시 브로셔를 든 채 팔짱을 끼고 천천히 걸으면 손쉽게 지적인 느낌의 쿨한 인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꿀팁이니 메모해 두세요.

 

요즘엔 워낙 갤러리도 많고 양질의 전시도 많다 보니 사진전이나 고전 미술, 조형예술, 행위예술 등 다양한 전시들이 걸리긴 합니다만, 그래도 역시나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건 만만한 현대미술입니다. 현대미술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2/3 지점 즈음 후미진 곳에 영상을 무한 반복해둔 암실 같은 게 곧잘 있는데요. 그런 모퉁이진 곳에는 꼭 이런 애들이 걸려 있곤 하죠.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아니마 :: ANIMA』 입니다.

 

 

 

 

 

# 1.

 

영화라기엔 애매합니다. '예술 영화'라기보단 '영상 예술'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특정한 메시지나 감각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어보겠다 라기보다는 예술을 하기 위해 영화라는 수단을 차용하고 있다는 느낌에 훨씬 가깝습니다.

 

누가 뭐래도 영화의 본질은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에 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영화나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영화만큼 공허한 것도 없죠. 반면 예술의 본질은 '표현하고자 하는 관념' 그 자체에 있습니다. 예술은 표출되는 순간 스스로 가치를 가집니다. 타인과 소통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죠. 지리산 자락 숲 속 한복판에 틀어놓은 '영화'는 무의미하지만, 그곳의 바위에 새겨진 '벽화'는 예술로서 의미를 가집니다.

 

친절함과 선명성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친절함에 우위를 두는 영화와는 달리 예술은 선명한 메시지를 우위에 놓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영화만큼이나 선명하지 못한 예술은 허망하죠. 영화에서는 평론이 메인 콘텐츠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극히 드물지만 예술은 매 작품마다 작가 평이 꼬박꼬박 함께 있는 건 그런 차이 때문일 겁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친절하게 떠먹여 주는 영화에 익숙한 제겐 예술적 소양이 하나도 없다는 거죠.

 

 

 

 

 

 

# 2.

 

대충 그런 것 같습니다.

 

도시를 표류하는 현대인. 기계적으로 작동되는 사람들. 깊이 가라앉아 매몰된 공간. 내면화된 피로감. 무채색의 옷들로 뒤덮인 상실된 정체성. 군집으로서 패턴으로서만 존재하는 인물. 이 모든 것들에 잠식된 남자와, 그에게 감정이란 이름의 목적을 가지게 만든 여자. 그녀를 쫓아가게 되는 동기. 육중한 인력으로 표현된 관성적인 통념.

 

내면으로의 이동.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무기력이란 이름의 독. 벗어나려는 발버둥과 붙잡고 매달리는 잡념. 끝내 바스러지고 무너지고 흐트러진 관성. 각성하고 벗어나는 순간에 선 남자의 눈빛. 누적된 비틀거림과 대조적인 강렬한 발걸음. 차례차례 쓰러지는 사념. 힘차게 내디뎌 올라서는 영혼의 계단.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를 벗어던진 남자 그리고 여자. 집단으로만 읽히던 공간에서 관계의 영역으로의 확장. 마주하는 눈빛. 바라보는 사람들의 세상. 지하에서 지상으로, 도시에서 숲으로. 굴레를 벗어던지며 점점 더 개방되는 자유로움. 남자를 싣고 오던 전차는 답답함을 스스로 벗어던진 후 다시 눈 앞에. 처음의 지치고 피로한 모습과는 대조적인 서로를 향한 감정의 뚜렷한 몸짓.

 

 

 

 

 

 

# 3.

 

현대인으로 재미없게 사는 건 존나 허무한 거예요.

사랑하고 삽시다!

 

라는 메시지의 작품입니다. ... 솔직히 아무리 생각해도 이 메시지가 특별한 건가라는 의문이 자꾸 듭니다. 애매하고 다층적인 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감각적인 표현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인상이 전혀 없습니다. 음... 천박하게 말하자면, 그냥 존나 쓸데없이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굳이 왜 이렇게 어렵고 복잡해야 돼? 이게 그렇게까지 해야 할 메시지나 감정이야?'라는 질문에 솔직히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모르겠네요. 물론 뭔가 현대무용스러운 움직임과 미디아 아트 풍 화면의 때깔은 좋습니다. 뭔지 모를 삐용삐용하는 일렉트로니카 음악도 간지가 나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스타일이 목적의식을 잡아먹어버린 듯한 공허한 영화라는 인상은 차마 지울 수가 없군요. PTA 대단한 거 알겠고 톰 요크 천재인 건 알겠어요. 어려운 거 좋아요. 다 좋은데. 우리 최소한 '어려울 만한 걸로' 어렵게 합시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아니마 :: ANIMA』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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