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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뱀과 사다리 _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그냥_ 2020. 7.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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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자칫 간과하곤 합니다만 이해력에도 한계는 있습니다. 일정 범위, 규모, 시행을 넘어서는 정보에 대해선 취합해 정리하는 것은커녕 아예 이해를 포기하게 되죠. 백조 천조가 넘어가는 돈의 규모에 단위 감각 자체가 사라진다거나 수십만 수백만 광년을 넘나드는 우주적 스케일 앞에 현실 감각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 カメラ を止めるな!』입니다.

 

 

 

 

 

# 1.

 

'합의된 허구로부터 어떻게 리얼리티를 설득해 낼 것인가'

 

라는 질문은 창작자에게 있어 벗어날 수 없는 필연적 화두일 겁니다. 창작의 자유로움과 관객에 대한 존중을 위해 자신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충분히 합의하면서도 동시에 가상의 세계관으로 관객을 불러들여 다채로운 장르적 체험을 전달하고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죠. 만약 가상의 이야기를 진짜인 것처럼 위장한다면 '기만'이라 비난받을 테고, 리얼리티를 만드는 것을 등한시한다면 '졸작'이라 비난받을 겁니다. 나루토도 아니고 왼쪽을 보면서 동시에 오른쪽을 봐야 하는 것만 같은 어려운 미션이죠.

 

재기 발랄한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이 난제에 대해 새로운 해법을 제시합니다. 명확한 픽션을 논픽션인 것처럼 연출적으로 꾸며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픽션 Fiction과 논픽션 Nonfiction을 구분하는 사고의 작동 그 자체를 마비시키려 합니다. 무수히 많은 상황적 레이어들이 어긋나고 겹쳐지고 역전되는 가운데 경계와 분류에 대한 판단 자체가 불가능해진 상황 앞에서 관객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지켜보자 말합니다.

 

 

 

 

 

 

# 2.

 

정수장에서 선보인 '아이카'의 연기는 본질적으로 픽션입니다. 그 픽션을 소화하는 동안의 민망한 연기력은 상대적인 논픽션이죠. 하지만 그녀의 발연기 역시 연출된 픽션이라는 게 밝혀집니다. 감독이 컷을 날린 후 '카즈유키'에게 핀잔을 주는 장면은 앞서의 연기 상황이 픽션임을 확인하는 논픽션입니다.

 

화가 난 감독이 피양동이를 찾아 나가 버린 후 분장사 '하루미'는 정수장에 얽힌 괴담이라는 픽션을 이야기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 있어서 만큼은 배우 '아이카'와 배우 '카즈유키'는 논픽션 속 인물이 되죠. 하지만 '타카유키'감독이 카메라를 들고 돌아와 "액션!"을 외침과 동시에 괴담을 듣던 논픽션 속의 두 사람 역시 다시 호러 무비라는 픽션 속 배역으로 회귀됩니다.

 

광기에 찬 호러 영화감독 '타카유키'의 모습조차 사실은 연기된 픽션이었고 그걸 원테이크로 담아내는 tv시리즈 감독 '타카유키'라는 논픽션의 존재가 공개됩니다. '타카유키' 감독이 쓴 원래의 붉은색 대본은 이미 결정된 명확한 픽션입니다만 예기치 않은 논픽션적인 변수들로 인해 무자비하게 파괴되게 되죠. 물론 우연에 힘입은 일련의 상황들이라는 것조차 신생 호러 전문 채널을 보게 될 영화 속 임의의 관객들에게 있어선 연출된 픽션에 불과합니다.

 

영화의 절정부, 무수히 많은 우연으로 대본이 파괴되는 논픽션의 과정들은 그 자체로 대단히 높은 현장감을 과시하지만 그래 봐야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영화라는 보다 고차원적인 플랜 앞에선 다시 픽션으로 격하됩니다. 광기의 호러 영화감독 '타카유키'를 연기하는 tv 시리즈 감독 '타카유키' 역시, B급 독립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에 캐스팅된 '하마츠 타카유키' 씨의 배역에 불과합니다.

 

 

 

 

 

 

# 3.

 

현실성을 강하게 주장하던 [하위 레이어의 대본]은 [상위 레이어의 애드리브] 앞에 힘없이 붕괴되지만, 그 애드리브 역시 [보다 높은 상위 레이어의 대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애드리브의 형태로 쓰인 대본] 역시 [다음 상위 레이어의 애드리브] 앞에 재차 파괴되지만, 그 [상위 레이어의 애드리브]이라는 것 역시 [대본]이죠.

 

이 같은 경험을 짧은 시간 안에 수차례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경계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듯한 감각을 경험하게 됩니다. 보통의 감독들이 만든 진짜 같은 애드리브 보다 '신이치로' 감독의 뭐가 뭔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애드리브는 더 리얼하고 그래서 더 강력합니다.

 

픽션에 논픽션에 대본에 애드리브에... 어지러우신가요? 저런,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 봐야 여기까지는 창작의 위계에 따른 레이어의 순차적 적층에 불과하거든요. 여기서 멈춰 버린다면 몇몇의 똑똑한 관객들은 상황을 이해해버릴 수도 있겠죠. 감독이 원하는 건 무수히 많은 액자를 활용한 리얼리티 덧대기가 아닙니다.

 

리얼리티를 판단하는 이해력의 근본적인 붕괴,

'과부하'죠.

 

 

감독은 스스로 쌓아 올린 구조를 다시 한번 해체합니다. 마치 보드게임 뱀과 사다리처럼 후반부를 통째로 쏟아부어 적층 된 레이어를 미친 듯이 넘나들며 이야기를 재구성합니다. 일련의 레이어들을 넘나드는 동안 높은 차원의 레이어에 얹어져 있을 불필요한 현실감은 의식적으로 걷어냅니다. 상위의 레이어에서도 끊임없이 이것 역시 픽션이라는 힌트를 무자비하게 던집니다. 클리셰를 적절히 활용한 위트와 함께 말이죠.

 

 

 

 

 

 

# 4.

 

가장 낮은 위계에 있던 작위적인 픽션인 'tv 호신술'은 높은 레이어에 위치한 전직 배우 '하루미'라는 [사다리]를 타고 고차원적인 위계로 올라왔다가 [뱀]에 미끄러져 다시 매우 낮은 위계의 가상 호러 영화 속 대본으로 회귀합니다. 낮은 위계의 ''아이카'의 앞에 등장했다 사라지는 다리만 보이는 좀비'와 '운 좋게 떨어져 있는 도낏자루'는 서너 단계 상위 레이어의 현실성 높은 애드리브로부터 연결됩니다. 영화의 마지막 유치 찬란한 소년 만화스러운 인간 피라미드는 현실감 따위를 추구하고 싶지 않은 감독의 의도가 가장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자 작품의 장르적 쾌감에 대한 감독의 자신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무수히 많이 겹쳐져 있는 것만 같은 논픽션의 레이어들이 사실은 모조리 픽션이라는 점입니다. 당연합니다. 영화니까요.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것들은 기본적으로 픽션이니까요. 관객은 픽션만이 가득한 사막 속에서 논픽션이란 신기루를 찾아 헤맨 후 마지막 본편 스태프들의 모습이 담긴 쿠키 영상이라는 시원한 얼음물을 들이켜게 됩니다. 잘 짜인 이야기를 즐기는 동안의 쾌감. 영화라는 장르를 통해서만 누릴 수 있는 유희의 진수라 할법하죠. 죽이네요.

 

# 5.

 

오랜만에 작품을 보기 전으로 돌아가 다시 새롭게 보고 싶다 생각하게 만든 영화입니다. 혹 싼마이 포스터가 의심스러우시다 하더라도. 좀비와 피가 낭자한 호러물이 취향에 맞지 않다 하더라도. 일본 특유의 만담 코미디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괜찮습니다.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였습니다. 

 

 

 

 

 

 

# +6.

 

수많은 레이어들을 공부하듯 정리하는 시선으로 본다면 아마도 흥미가 크게 떨어질 겁니다. 논픽션의 레이어들 속으로 기꺼이 몸 던져 들어간 후 픽션의 훼이크에 구출되어 나오는 과정이야말로 작품의 진짜 묘미라 할 수 있겠죠. 그리고 그런 높고 직관적인 몰입도를 만드는 데 있어 호러코미디는 검증된 최고의 장르일 테구요. 참... 어쩜 이리도 영리할까요.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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