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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뉴식이 두마리 치킨 _ 루프 트랙, 토마스 세인즈버리 감독

그냥_ 2024. 12. 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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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뉴질랜드산 특대사이즈 오골계 2마리 28000원. 계란 추가(+3)

 

 

 

 

 

 

 

 

토마스 세인즈버리 감독,

『루프 트랙 :: Loop Track』입니다.

 

 

 

 

 

# 1.

 

태만하게 못 만든 호러 영화는 짜증스럽지만, 열심히 못 만든 호러는 의외로 재미있다. 특유의 진지함이 나름 귀엽기도 하고, 열심히 해 보려는 과정에서 벌어진 황당한 부분들이 되려 코믹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생소한 뉴질랜드산 크리처 영화는 문자 그대로 열심히 못 만든 호러다. 대체 뭘 했길래 제작하는 데 7년씩이나 걸린 건지 알 수 없지만, 비장의 무기였을 크리처가 등장하는 순간부터 쉴 새 없이 웃음이 터져 나온다. 만약 이 영화를 보는 모습을 누군가 몰래 지켜봤다면, <와일드 로봇>(2024)을 볼 때만큼이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의미는 크게 다르지만 말이다.

 

감독은 다루려는 불안을 지나친 성실함으로 적립한다. 주인공 이안(토마스 세인즈버리 분)은 뭐 하는 놈인지 알 수 없고, 왜 트래킹을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뭘 그렇게 불안해하는 건지 알 수 없고, 왜 이렇게 찐따같이 구는 건지 알 수 없고, 왜 사람들을 도망 다니는 건지 알 수 없고, 그러면서도 왜 따로 가지 않는 건지 알 수 없다. 우연히 같은 산장에 묵게 된 성격 좋은 세명의 트래커, 니키(헤이든 J. 윌 분), 오스틴(타완다 마니모 분), 모니카(케이트 시몬즈 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박애적 오지랖으로 주인공 뒤치다꺼리를 갓난아기 똥기저귀 갈듯 하지만, 그럼에도 배은망덕한 주인공은 불 지르고 모함하는 등 패악질만 부린다는 것이 유감스럽게도 영화의 2/3이다.

 

 

 

 

 

 

# 2.

 

물론 나름대로 이런저런 장치들을 설치하려 노력하고 있긴 하다. 오프닝의 이상한 노숙자가 나타나 겁을 준 것은 최선을 다한 복선이다. 작은 규모의 영화에서 인서트를 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등산로만 따라가기엔 심심하니까 중간중간 물고기도 잡고 계곡물도 마시며 분투한다.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는다는 핑계로 대낮의 수풀에도 숨어보고, 300불짜리 렌턴을 줍기 위해 한밤의 수풀에도 내려간다. 변사체로 발견되게 되는 여성 엑스트라를 무려 둘이나 썼다는 것도 큰 결단이다. 주인공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니키를 치워야 할 때마다, 고육책으로 자꾸 똥을 싸게 만든다는 것도 개꿀잼 재미요소다. 내내 다정하고 유쾌한 니키는 최후조차 똥 싸다가 닭둘기에게 잡아먹혔다는 것이다. 자신을 살인자로 모함한 찐따에게 수면제를 준 것밖엔 잘못한 게 없는, 유난히 발냄새가 심한 니키의 죽음을 생각하노라면 올해 가장 슬픈 영화라도 본 듯 눈물이 앞을 가린다.

 

70분가량을 주인공의 찐따미에 꼬라 박은 영화의 반전은 초거대 오골계다. 2023년의 크리처라기엔 지나치게 하찮은 괴수의 습격은 놀라울 정도로 유쾌하다. 대체 거대 오골계가 어떻게 해야 사람을 휙 하고 낚아챌 수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 그러려니 해야 한다. 날개는 장식인 건지 단 한순간도 날아오르지 않는 오골계가 어떻게 은밀 기동을 펼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러려니 해야 한다. 오프닝의 노숙자가 겁나 센 오골계를 덫으로 잡으려 했다는 게 황당하지만 역시 그러려니 해야 한다.

 

뚝심의 오골계는 그냥 부리찍기다. 그 옛날 뿌끼먼들도 구사했다던 비전머신 02번 공중날기나 기술머신 47번 강철날개 따위는 사치다. 그냥 냅다 부리찍기 뿐이다. 왜? 나머지 부분까지 만들면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괴수의 뒷모습만 간신히 연출할 수 있도록 대충 닭털 달린 담요 정도만 준비한 후, 크리처의 머리 모형에 올인하기에도 버거웠다는 뜻이고, 이는 절대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걸면 안 될 것 같은 조악한 모형의 눈깔에 카메라를 들이밀 수밖에 없었던 감독의 페이소스로 확인된다. 모든 액션은 공격당하는 배우가 긴 부리 달린 머리통 모형을 들고 파닥거리는 방식으로 연기되어 있다. 그 모습을 화면 너머에서 지켜본다 상상하면 귀여움에 몸서리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한번 만든 모형을 일회용으로만 쓰기 아쉬웠던 감독은 백종원 못지않은 장사수완을 발휘, 바로 1+1 행사를 진행한다. 새까맣게 잘 익은 맥반석 계란도 세 개 추가했다. 치열한 원가절감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넉넉한 인심은 손쉽게 여건을 탓하는 나약한 인디 감독들에게 크나큰 귀감이다.

 

 

 

 

 

 

# 3.

 

조금 진지해보자면 결국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란 불안은 결과론이고 인간은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실체적 불안과 정신적 불안은 자신도 타인도 구분할 수 없고, 우리는 대상에 대한 불안뿐만 아니라 '불안이라는 감정의 불확실성 그 자체에 불안해하는 존재'라는 것이 토마스 세인즈버리의 이해다.

 

나무의 미로에 가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잎사귀에 덮여 발밑에 놓이 덫이 보이지 않고, 굽이치고 갈라진 등산로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숲은 인간의 숙명을 상징한다. 후반부 크리처를 통해 이안을 뒤쫓는 불안이 실존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그럼에도 이안이 니키를 의심했던 불안이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안은 숲에 들어서기 전부터 충분히 불안한 인간이었고, 크리처를 벗어난 이후에도 불안할 것이라는 것은 어려운 추측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안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다. 긍정적인 선량함으로 불안에 태만했던 세 명의 트레커는 모두 잔혹한 최후를 맞이한다. 인간은 불안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주인공 이안은 불안이라는 감정 덩어리로서 일종의 그릇과 같은 존재다. 다소 우스꽝스럽게 이야기하긴 했지만 이안의 과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 건 영화가 인물이 아닌 개념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고, 관객들 저마다 경험했고 경험하고 경험할 다양한 위상의 불안을 관통하는 원리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련의 주제의식은 연출적 분투와 함께 작품을 '열심히' 만든 영화라 평한 이유다. 만듦새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창작자가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임한 영화는 적어도 불쾌하진 않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Netflix, Tving, WatchaPlay, CoupangPlay, Appletv,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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