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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Citizens, Be Ambitious _ 브이 포 벤데타,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

그냥_ 2019. 1. 1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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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이 영화에 열광하게 하는 걸까.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

『브이 포 벤데타 :: V for Vendetta』입니다.

 

 

 

 

 

# 1.

 

Revolution도, Revenge도 아닌

Vendetta의 'V'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토록 'V'에 열광하게 하는 걸까요. 낭만적인 언변 때문일까요? 화려한 가면 때문일까요? 유려한 칼솜씨 때문일까요? 아니면 신사적이고 여유로운 태도 때문일까요? 마지막 모습에 담긴 비장미 때문일까요? 아니면 형이상학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지적인 존재에 대한 막연한 동경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부패한 사회에 대한 불만을 투영하는 걸 수도 있겠죠.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어쩌면 그 이외의 것 때문일 수도 그 모든 것 때문일 수도 있겠죠.

 

다만 분명한 것은 V라는 인물은 생각하는 것만큼 이상적 인물은 못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추구하고 민주주의는 절차의 정당성을 의미하니까요. 민주주의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최선의 결과를 담보하기 위한 체제가 아닙니다. 결과가 때론 불합리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차가 공정하다면 그 비용을 받아들이는 게 민주주의입니다.

 

 

 

 

 

 

# 2.

 

V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믿는, 대단히 마키아벨리적인 인간입니다. 신봉하는 올바르고 공정한 결과를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은 정당화된다 믿습니다. 불가피하다 생각되면 폭탄테러를 감행하거나 경찰의 목을 칼로 긋는 데 주저함이 없죠. '이비'를 지하의 저택에 1년간 연금하겠다고 이야기할 때도, 어린아이의 옷을 입힌 그녀를 주교의 방에 밀어 넣는 때도 그에겐 아무런 죄책감이 없습니다. '프로데로'의 자택에 숨어들기 위해 이비의 라이선스를 훔쳐 그녀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 역시 그게 최선이라 어쩔 수 없었다 말할 뿐이죠.

 

민주주의는 권력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민의에 의해 모인 권위에 대한 존중이 없으면 민주주의 사회는 애초에 성립할 수 없죠. 하지만 V는 모든 종류의 권력과 권위를 존재론적으로 부정합니다. V는 보다 나은 권력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의회는 이러해야 한다. 종교는 이러해야 한다는 이상향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의회 권력과 경찰 권력과 종교 권력과 언론 권력 모두 올바름의 범주가 아닌 존재 자체에서부터 철저히 부정합니다. 그런 면에서 V는 사상적으로 아나키스트에 가깝다 할 수 있겠죠.

 

그래서 이 영화의 제목은 V for Revolution도, V for Revenge도 아닌 V for Vendetta입니다. 혁명가(Revolution)라기엔 지향점을 제시하지 못하고, 복수자(Revenge)라기엔 너무 많은 자기희생을 감내하거든요. 그의 복수는 숭고하고 아름다우며 고결하지만, 동시에 파괴적이고 지협적이고 퇴행적입니다. 그래서 숙명적 복수자. 'V for Vendetta'죠.

 

 

 

 

 

 

# 3.

 

현대를 사는 우리에겐 V의 마키아벨리즘도 아나키즘도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범주의 이념이 아닙니다. 때문에 그의 행동 역시 적지 않은 부분에서 시대착오적이라 느껴지게 되죠. 존스턴 매컬리의 <쾌걸 조로>나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등의 오래된 고전에 대한 짙은 향수 역시, 그가 아무리 좋게 봐줘봐야 전근대적 시대정신에 정체된 과거를 사는 인간에 불과함을 은유합니다.

 

V의 호쾌한 활극보다 그의 한계를 다루는 작품입니다. 영화 초중반까지 멋들어진 망토 휘날리며 악에 물든 파시스트들을 단호하게 무찌르는 그가 클라이맥스에서 그동안 고민하지 못했던 한계에 부딪히며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복수는 올바르고 정의로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던 V는 이비에게 가한 고문과 고통을 목격하며 이념적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결국 스스로 신념에 문제가 있음을 자백하게 되죠. '권위의 부정'이라는 타자에 본의가 깃들어 있는 이념이라는 수동적 한계를 아나키스트 V는 끝끝내 극복하지 못합니다. V의 장렬한 죽음은 자신의 이념에 따른 행동에 대한 합당한 책임을 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V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 역시 지고지순한 이상향은 아니라고, V는 시민들의 히어로가 될 수 없다 말합니다.

 

 

 

 

 

 

# 4.

 

파시즘의 한계이자 아나키즘의 한계입니다.

파시즘의 의장의 죽음이자, 아나키즘의 V의 죽음입니다.

 

V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가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종의 이이제이以夷伐夷인 셈입니다. 민주주의자에게 양 극단은 모두 극복해야 할 퇴행에 불과합니다. 파시즘이 죽어버린 근대의 유산이듯 아나키즘 역시 우리 시대의 답이 되진 못합니다. 의장의 시체와 V의 죽음 위에 우뚝 선 시민들이란 결말은, 아나키즘과 파시즘의 무덤 위에 올라선 데모크라시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V가 아닌 이비 해몬드를 주목해야 합니다. 불길 속에서 태어난 V와 달리 폭풍우 속에서 태어난 이비는 가면을 쓰지 않습니다. 그녀는 끝내 '또 다른 V'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죠. 긴 머리의 두려움을 가득 품은 눈의 '이비 해몬드'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나약한 개인이지만 짧게 자른 머리와 흔들리지 않는 눈의 그녀는 다음 시대의 시민상이라는 관념의 표상으로 진화합니다. V가 파시스트 악당을 물리치며 놓아두던 장미꽃을, 이비가 V의 시신 위에 올리는 장면은 의미심장합니다. 진화한 이비에겐 V 역시 떠나보내야 하는 악당이기 때문이죠. 다신 사랑할 수 없을 거라던 V가 죽기 직전 이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은 아나키즘의 화신이 자신을 극복한 민주주의의 화신에게 보내는 헌사입니다.

 

V가 뿌린 가면을 쓰고 행진해 폭파되는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바라보는 시민들 역시 마지막엔 가면을 벗고 스스로의 얼굴을 드러냅니다. 그들 역시 '또 다른 V'가 아닌 V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새로 태어난 민주주의의 시민. 또 다른 이비 해몬드입니다.

 

 

 

 

 

 

# 5.

 

이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껜 죄송한 말씀이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생각입니다. 군데군데 구멍이 너무 많거든요. V의 과거의 개인사와 정치철학과 수단 간의 연결이 전반적으로 나태합니다. 거창한 담론과 시대정신을 주창하지만 정작 자신이 하는 행동은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에 국한되고 있죠. 개인적인 복수가 빅벤과 의사당의 폭발이라는 클라이맥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다 보니 그럴싸한 언변은 그의 이상주의적 철학의 극단적 표출이 아닌 개인적 복수를 위한 자기 합리화처럼 보이고 맙니다.

 

이비에게 할당된 역할이 너무 수동적이라는 것도 아쉬운 지점입니다. 물론 롤 자체가 'V에 의해 변화하는 인간'이라는 수동적인 롤이기는 합니다만, 머리를 깎고 V에게서 독립한 이후의 이비는 조금 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존재여야 했죠. 진짜 주인공인 이비가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하다 보니 주제의식은 희석되고, 남는 건 가면의 군중과 터져나가는 건물들 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 느슨하게 영화를 본 관객에겐 V라는 민주투사의 액션 활극을 감상한 것처럼 오해되고 말죠.

 

 

 

 

 

 

# 6.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란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민주투사의 액션 활극이 원래의 길을 벗어난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그 의도치 않은 결과물에 대한 수요가 존재했다는 것 역시 부정하기 힘들죠.

 

그럼 다시. 사람들은 왜 이런 각시탈스러운 영화를 사랑하는 걸까요? 아무래도 우리 사회가 한동안 파시즘적인 빅브라더의 사회에 가까워져가고 있었다는 뜻이겠죠. 억눌리는 용수철과 같은 사회적 스트레스가 뿜어져 나갈 창구로서 이 영화가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는 거라 볼 수 있겠네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에 대한 호평에는 좋은 영화보다는 필요한 영화, 조금 더 정확히는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로서의 평가가 개입되어 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를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든 사용자가 그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의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되든 낮다고 평가되든, 사용자가 그 평가를 수용할 이유도 감상이 폄하될 이유도 전혀 없죠. 구매하는 순간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온전히 사용자 개개인의 몫입니다.

 

관객이 이 영화를 통해서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고양감'을 받아들였다면 그것만으로도 썩 훌륭합니다. V를 저항정신의 상징물로 재해석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죠. 몇 보 양보해 원작의 고매한 아나키즘에 대한 깊이 있는 고찰이 영화화된 작품에서 평범한 민주투사물로 전락했다는 진단에 동의한다 치더라도 그게 이 영화를 폄하될만한 근거가 되는 것인지에 대해선 재고가 필요합니다.

 

 

 

 

 

 

# 7.

 

전 조로를 좋아합니다.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마스크 오브 조로>를 특히 좋아하죠. 캐서린 제타 존스 존예.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좋아합니다. 영화판 중엔 케빈 레이놀즈의 <몬테크리스토>를 가장 많이 본 것 같네요. 물론 원작 팬들은 매우 싫어하는 영화고 왜 그러는 지도 알겠습니다만은 제 알바 아니구요. 둘 모두 썩 잘 만든 영화인가라는 데에는 이견이 있겠으나 역시 알 바 아닙니다. 전 재밌었으니까요.

 

'조로'나 '에드몬 단테스', 혹은 '장고'같은 캐릭터들은 언제 봐도 멋있습니다. 이성적이고픈 시민들의 차가운 심장에 소년의 야망이란 불길을 불어넣어 주는 그런 영웅도 때론 필요한 법인 거겠죠.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 했던가요. 가혹한 고문 없이도 당신을 초월자로서의 시민 '이비 해럴드'로 만들어 줄 'V'를, 멋들어진 망토 휘날리며 파시스트들에게 정의의 응징을 가할 'V'를, 잠든 소년의 가슴에 야망을 불러일으켜줄 'V'를, 마블 열풍이 불기 이전에 관객의 가슴을 뛰게 했던 슈퍼히어로 'V'는 어떠신가요. '제임스 맥테이그' 감독, <브이 포 벤데타>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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