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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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영화 7

고통스러운 진실, 절망스러운 성찰 _ 뉴 오더, 미셸 프랑코 감독

# 0. 불편한 진실과 비관적 성찰을 집요하게 추궁하는 광기 어린 야심 미셸 프랑코 감독,『뉴 오더 :: New Order』입니다. # 1. 논쟁적인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을 몰아세운다. 형이상학적인 미술과 헐벗은 여성의 오프닝을 지나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세계, 호화로운 상류층 결혼식과 그 너머 폭력이 뒤섞여 제시된다. 깨끗하고 풍요로운 저택은 견고한 성처럼 보이지만 이미 위태롭다. 직관적으로도 불안한 녹색의 침입이다. 수도꼭지에서는 녹색 물이 흘러나오고 페인트를 뒤집어쓴 손님이 도착하는 등 외부의 오염과 분노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스며들고 있음이 상징적으로 연출된다. 감독은 파티에 모인 상류층 사람들의 이미지를 통해 구체제를 성실히 묘사한다. 여성들의 화려한 원색 드레스를 통해..

부끄부끄 _ 오퍼나지 비밀의 계단,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

# 0. 부끄부끄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 감독,『오퍼나지 비밀의 계단 :: The Orphanage』입니다.     # 1. 물론 제작자의 명성이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노련한 관객들은 수상할 정도로 스타 제작자의 이름값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 강한 경계심을 내비칠 정도다. 그럼에도 몇몇의 작품들은 왜 저 양반이 이 영화를 선택한 건지 알겠다 싶기도 한데, 스페인 감독 후안 안토니오 바요나의 데뷔작은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고아원(Orphanage)에서 펼쳐지는 잔혹 동화를 특유의 서정성으로 엮어낸 작품이다.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린 아들을 찾아 헤매는 간절한 어머니의 이야기로, 나름 호러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휘발적인 몇몇의 효과에 의존하는 대신 진중하게 ..

Film/Horror 2025.02.20

죽음에 관하여 _ 피노키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 0. 고르는 것과 남겨진 것으로 말하는 유한한 생명에 대하여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피노키오 :: Pinocchio』입니다. # 1. 다정한 부자의 이야기는 아들 카를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시작한다. 제페토의 소나무는 카를로의 죽음 위에 피어난 존재고, 피노키오는 다시 그 소나무를 베어 쓰러트린 죽음에서 태어난 존재다. 이후로도 누구와 만나 무슨 일을 겪는가와 별개로 단계마다 피노키오는 죽었다 살아나길 반복한다. 죽지 않는 피노키오가 그럼에도 죽음을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제페토를 죽음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다. 생동감 넘치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관한 영화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가 인간이 됨은 돋아난 새살이 아닌 오직 '죽음'으로서 증명된다. 귀뚜라..

Film/Animation 2024.10.12

다시 만나는 자연 _ 다이에나 케네디,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 0. 과카몰레(스페인어: Guacamole)는 멕시코 요리의 소스로, 으깬 아보카도에 다진 양파, 토마토, 고추, 라임즙 따위를 넣어 만든다. 콘칩과 유사한 '토토포(Totopo)'라고 하는 튀긴 토르티야 조각으로 퍼서 먹는다. '과카'는 멕시코에서 아보카도를 뜻하는 '아과카테(Aguacate)'에서 온 것이며, '몰레'는 멕시코 원주민 어로 '소스'를 뜻한다. 엘리자베스 캐롤 감독, 『다이애나 케네디 :: Nothing Fancy Diana Kennedy』입니다. # 1. 다이애나 케네디의 전기 다큐멘터리입니다. 멕시코 전통 요리 전문가이자, 다수의 저술 활동을 펼친 작가이기도 한 인물인데요. 독특하게도 태생은 이름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 영국인이죠. 1923년생으로 작품이 공개된 당시에도 이미 아..

이런 문제가 있다 _ 3분간의 허그, 에베라르도 곤잘레스 감독

# 0. 늦은 밤 전화를 합니다. 다음날 해가 뜹니다. 약속된 장소에는 행사가 서서히 준비됩니다. 저 멀리 그리운 얼굴들이 보입니다. 누군가는 손을 흔들고, 누군가는 마른 입을 다시고, 누군가는 소리쳐 부르기도 합니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찰나와 같은 3분. 그만 돌아가야 한다는 행사 안내가 울립니다. 차마 놓지 못하는 손을 붙잡은 채 팔을 길게 뻗어 보지만, 그래도 돌아가야만 합니다. 행사는 끝났습니다. 해가 진 저녁. 빈 행사장만이 덩그러니 스크린에 남았습니다. '에베라르도 곤잘레스' 감독, 『3분간의 허그 :: A 3 Minute Hug』 입니다. # 1. 영화는 그렇게 막을 내립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떨어져 지내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모습과 잠시 동안의 만남과 돌아서..

왜 때문에 우리는 _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후안 카를로스 룰포 감독

# 0. 소녀가 달립니다. 화려하면서도 순박한 무늬가 그려진 품이 넓은 치마를 두르고, 맑고 어린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둔탁한 발을 낡은 샌들에 얹고 달립니다. 숨 막히게 만드는 깨끗한 산등성이를 넘어 소녀는 힘차게 내달립니다. '후안 카를로스 룰포' 감독, 『로레나 - 샌들의 마라토너 :: Lorena, La de Pies Ligeros』입니다. # 1. 마라톤에 대한 영화입니다만 사운드에 대한 이야기를 우선 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다양한 음향 효과를 위해 영화를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 다채로운 소리의 활용이 펼쳐집니다. 날카롭게 찌르는 현악 연주가 숨 막힐 듯 깊게 드리워진 산세와 함께 관객의 이목을 끕니다. 힘차게 내달리는 소녀의 모습과 넓은 화각의 공중촬영 영상 뒤로 경건하고 극적인 현악 연..

컨트리 뮤직 메들리 _ 하늘 높이, 오틸리아 포르틸로 파두아 감독

# 0. 경쾌한 컨트리 음악 같은 다큐멘터리입니다. 현란하면서 푸근한 중저음의 기타 소리, 늘어난 테이프처럼 몸을 기대게 만드는 나무의자, 붉은빛과 노란빛이 연인처럼 뒤엉켜 펼쳐지는 노을, 희끗희끗한 덥수룩 수염의 다소 마초적인 할아버지의 느낌입니다. 하늘을 나는 새들의 자유로움과, 새들이 살아 숨 쉬는 자연의 평화로움과, 그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37분간 잔잔한 메들리처럼 흐릅니다. '오틸리아 포르틸로 파두아' 감독, 『하늘 높이 - 국경의 철새들 :: Birders』 입니다. # 1. 우리말 제목은 입니다만 원제는 입니다. Bird + er + s. 직역하자면 '새... 사람' 쯤 되려나요? 접미사 '-er'은 행위자를 의미합니다. manager, player, employer 등 대부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