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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Mystery & Thriller

원리를 찾아라 _ 레이어 레이크, 매튜 본 감독

그냥_ 2024. 12.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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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넘는 것과 넘겨지는 것의 차이

 

 

 

 

 

 

 

 

매튜 본 감독,

『레이어 케이크 :: Layer Cake』입니다.

 

 

 

 

 

# 1.

 

마약과 혈흔이 낭자한 누아르의 제목은 레이어 케이크. 여러 겹의 시트 사이에 크림이나 잼을 쌓은 익숙한 디저트다. 영화는 원작자 J. J. 코널리가 이름 붙인 것처럼,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했던 가이 리치의 초기작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복잡 다난한 레이어가 켜켜이 쌓여 있는 듯하다. 범죄 조직의 내부 구조가 그러하고, 여타 조직들 간의 관계도 그러하다. 사건은 각기 다른 파편화된 소동의 적층으로 연계되어 있고, 플롯은 그것을 다시 최대한 얇게 저며 쌓아 나가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감독은 주인공의 이름을 숨긴다. 크레디트에서조차 XXXX로 표기하는 건 명백한 의도다. 통상적인 영화에서 이름은 자아를 상징하지만 본작에서는 욕망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오프닝의 담담한 네레이션에서 확인할 수 있듯, 주인공은 '코카인을 상품으로 취급할 뿐인 비즈니스맨' 정도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의 목표인 은퇴는 욕망의 반의어인 셈이다. 누아르의 주인공으로서는 상당히 이질적인 설정이다. 누아르는 범죄에 집어던져진 인간의 어둠을 탐미하는 장르고, 각 인물들이 범죄에 함몰되어 가는 건 기존의 질서 안에서는 실현되지 않는 욕망을 추동하기 위함인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매튜 본은 왜 주인공의 욕망을 통제한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자신의 영화가 욕망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 2.

 

레이어 케이크를 한 겹 씩 벗겨 먹는 변태는 없다. 선은 넘으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레이어는 무너트리기 위해 쌓는 것이다. 화려한 연출로 쌓아나간 작품의 레이어 역시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넘기 위한 것임에 분명하다. 주인공을 포함한 모든 인물들은 각기 다른 욕망들 이를테면 명예, 권위, 성공, 물욕, 성욕, 쾌락, 복수 따위로 인해 각자에게 주어진 레이어를 넘거나, 혹은 넘겨진다.

 

작품은 스스로 레이어를 넘는 것과, 다가오는 레이어에 대처하는 것을 엄격히 구분한다. 자신은 가만히 있는 데 레이어가 다가온 경우 영화 속 누구도 (아무리 폭력적인 방식으로 대처한다 하더라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영화 내내 지켜보았듯 주인공은 위험 한가운데에서 개고생을 하지만 그의 죽음은 마약과 마피아 때문이 아니다. 지미를 살해했음에도 그조차 주인공을 파멸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 잔뜩 화가 난 진에게 매를 맞긴 하지만 녹취를 들려줌으로써 먼저 선을 넘지 않았다는 것을 해명하자 금세 책임에서 벗어난다.

 

반면, 스스로 레이어를 넘은 경우에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듀크와 슬래셔가 죽은 건 세르비아 마피아의 마약을 털며 먼저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럭키가 죽은 건 거래를 약속한 드라간에게 총구를 겨눠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지미가 죽은 건 경찰과 결탁해 부하를 배신하고 에디의 딸을 노리는 식으로 선을 넘었기 때문이고, 프레디가 끔찍하게 구타당해 죽는 것 역시 잔뜩 화가 난 모티 앞에서 눈치 없이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 3.

 

주인공의 최후 역시 마찬가지다. 허망한 주인공의 죽음은 오롯이 타미와의 치정 때문이다. 영화 내내 XXXX가 스스로 선을 넘은 건 자신을 신뢰하던 시드니를 배신하고 타미를 품으려 한 것이 유일하다. 각각의 이름들과 그들의 최후를 나열한 결말은 착실히 쌓아 올린 레이어 케이크를 크게 포크질해 단면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작품 속 세계의 원리, 인과응보(因果應報)다.

 

애초에 매튜 본은 윤리를 논할 생각이 없다. 윤리에 대한 것이라면 비윤리적인 사람들, 마약과 관련된 모두가 대가를 치르는 공동파멸의 피카레스크 쪽으로 가닥을 잡았겠지만 그러지 않는다. 에디, 진, 모티, 세르비아 마피아, 시드니 모두 사람을 살해했음에도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그들은 악당임에 분명하지만 적어도 먼저 선을 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리하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로 수많은 인물들과, 복잡한 서술트릭과, 화려한 영상 연출 따위가 혼란을 가중시키는 데, 이는 일련의 원리란 숨어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듯 세계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포함한 세계의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상황논리로 합리화해 선을 넘는 순간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고 이는 노회한 에디가 젊은 주인공에게 전하는 조언의 행간이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내려다볼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욕망에 등 떠밀려 선을 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단속해야 하는 존재들. 그것이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고통스러운 이유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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