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어쩔 수 없는 악은 어찌해야 하나
존 S. 베어드 감독,
『필스 :: Filth』입니다.
# 1.
<트레인스포팅>으로 익히 알려진 스코티시 소설가 어빈 웰시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익숙한 부패 경찰의 범죄 스릴러 위로 양극성장애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내면을 심도 있게 그린다. 1인극에 준할 정도로 작품을 혼자 견인하게 되는 주인공 브루스 로버트슨은 제임스 맥어보이가 연기했다. <23 아이덴티티>(2017) 못지않은 폭발력으로 표현된 정신적 문제에 시달리는 경찰의 이야기는, 현실과 착란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에게 흥미로움과 불쾌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다소 어지러운 표현에도 불구하고 플롯의 방향은 간명하다. 주인공의 내면을 파고들며 입체성을 보강해 악행의 원리에 다가가는 것이다. 캐릭터라는 원인을 먼저 알려준 후 현상을 보여주는 보편의 방식과 달리, 행동을 먼저 보여준 다음 원인을 알려주는 것은 인물에 대한 당신의 '판단'을 논하기 위함이다. 영화의 제목 <필스(Filth)>의 원래 뜻은 오물이지만 속어로 더러운 경찰을 뜻한다. 중반즈음까지 관객이 가지게 될 납작한 판단이라는 면에서 감독의 착점을 짐작케 하는 것이다.
브루스는 승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표독스러움과 거만함으로 소개된다. 영화 내내 자신의 권력과 입지를 활용해 타인을 조종하고 기망하길 주저하지 않으며, 이익이 된다면 타인의 고통까지 기꺼이 이용한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 수사자처럼 당당해 보이는 공격적인 표정 뒤엔 움추러든 성기처럼 초조하고 소심한 콤플렉스가 숨어있고, 그 움추러든 내면에 어떤 불안이 숨겨져 있는지 묘사하는 것을 지나 과거의 트라우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생과 관련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의 상실, 이로 인한 정서적 고립은 주인공을 괴물로 만든 근원이다. 극심한 외로움과 상실감을 느낀 주인공은 술과 마약과 모함과 기망과 거짓말과 섹스와 장난전화와 폭력 따위를 방황하며 때론 억누르고 때론 분출한다. 그가 주변인들을 기망하는 방식들이 강박적일 정도로 자신의 콤플렉스가 투사된 피학적 증상들이라는 것은 폭력과 트라우마 사이에서 필연적인 인과관계를 부여하고 있다.
# 2.
피학적 트라우마의 반동으로서의 폭력은 그가 원하는 것이 결코 아니었으며, 내면 깊은 곳엔 다정함과 선량함을 가진, 목 졸라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누구보다 자신을 증오하는 가여운 브루스가 있다. 흔히 부패 경찰이라는 키워드에, '부패'에 집중하기 마련이지만 그의 직업이 굳이 '경찰'이라는 것을 잊어서도 곤란하다. 과거에 좋은 경찰이라 들었다는 아만다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결말에서 그는 자신으로 인해 고통받은 친구에게 진심 어린 다정한 조언을 전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직전.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 그의 선택은 자신의 끔찍한 최후를 불쌍한 모자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한 연약하고 절실한 발버둥이다. 위험에 빠진 남자를 위해 달려가 응급조치를 취하는 본연의 기질인 것이다.
브루스는 악이다. 그것은 재고의 여지가 없다. 다만 '어쩔 수 없는 악'이다. 그냥 악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악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이라 정의하는 것이 예리한 평가다. 주인공을 본 관객들은 손쉽게 참으면, 안 하면 되지 않느냐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후반부 완전히 해리된 끝에 아내의 모습으로 행동하는 시퀀스를 통해 타인의 태만한 컨설팅을 해제한다. 잘못은 분명하나 무슨 잘못인지 알 수 없고, 누구의 잘못인지 알 수 없고,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가장 비극적인 행태로 평온을 얻은 브루스의 주검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관객의 고민과 엮어 대롱대롱 매달아 걸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 3.
인간은 트라우마가 삐져나오는 순간 고립된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승진에 대한 집착은 점점 무의미해지고 그가 진정으로 갈망했던 것은 인정과 애정을 포함한 타인과의 연결임이 드러난다. 그가 관계를 파괴하는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괴적 형식을 빌린 극단적인 관계의 갈구임을 알 수 있다. 누군가를 비방함으로써 자신에게 종속되길 기대한다거나, 그 외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주목하길 기대하는 식이다. 하지만 결과는 당연하게도 무수히 반복적인 관계의 파괴라는 악순환이다. 정신적 문제가 고통스러운 건 즉발적인 증상의 고통뿐 아니라 그것이 인간을 한없이 쓸쓸하게 한다는 것이다. 불같이 뜨거운 분노와 쾌락에 대한 영화는 역설적이게도 더없이 차가운 슬픔과 좌절에 대한 영화다.
물론 그것에 대해 남을 탓할 수는 없다. 주변인들에게 고립시킨 당신들 잘못이라 말하는 영화가 아님은, 수많은 도움의 손길을 스스로 밀쳐내고 있는 브루스를 통해 확인된다. 감독은 주인공의 내적 모순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시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고, 이는 '룰'은 누구에게나 적용된다는 단호한 최후를 통해 명징하게 확인된다. 영화는 주장하기보다는 직시할 뿐이다. 그들의 고립감과 우리의 무력함을 말이다.
주인공의 붕괴를 시각적 스타일로 풀어내 톤을 형성한 것은 성취다. 왜곡이 강조된 카메라 앵글과 공격적인 몽타주 등을 통해 인물의 인식을 시각화함으로써 혼란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편집의 리듬은 점점 가속되어 혼란에 중력을 부여한다.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장면들을 통해 관객 역시 혼란을 그대로 경험하게 만드는 것 역시 몰입을 돕는 좋은 연출의 결과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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