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때가 되긴 했다.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트랩 :: Trap』입니다.
# 1.
원래 샤말란의 영화가 그렇다. 참신한 판타지 아이디어와 과격한 반전 플롯 아래로 강력한 가족주의 드라마를 깔아 두는 것이다. 걸작 <식스센스>(1999)에서부터 망작 <라스트 에어벤더>(2010)에 이르기까지 어긋나는 법이 없다. 문제는 아이디어와 드라마를 접합하는 퀄리티에 기복이 심하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마음처럼 풀리지 않을 때면 어린아이처럼 되지도 않는 억지까지 부려댄다는 점이다.
부활을 알렸던 <더 비지트>(2015)로부터 얼추 10년. 쿨타임이 돌 때가 되긴 했다. 안 좋은 의미에서의 샤말란 말이다. <23 아이덴티티>(2016), <글래스>(2019), <올드>(2021), <똑똑똑>(2023)까지 챙기는 시늉이라도 했던 최소한의 완성도는 신작과 함께 장렬히 무너진다. 포위된 범죄자 시점의 스릴러라는 아이디어의 잠재력은 거의 활용되지 못한 채 가슴절절한 딸에 대한 사랑과 구구절절한 아버지의 변명에 꼬라박힌다. 하찮은 가족 모임에 수많은 콘서트 관객과 그보다 더 많은 영화 관객들이 왜 끌려 나와야 하는 건지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딸바보 모드에 진심인 감독에게 남의 사정 따윈 알 바가 아니다.
카드키와 무전기 시스템, 판타지적 디자인의 적대자, 무대 뒤라는 과도하게 검증된 목적지와, 그곳에 도달하기까지의 작위적인 스테이지 구성은 전형적인 샤말란식 퍼즐게임이다. 주인공은 숨 쉬듯 쏟아내는 거짓말과 타인의 위험에 주저 않는 냉혈한으로 표현되지만 사실 진짜 능력은 놀랍게도 '잽싸게 옷 갈아입기'다. 대부분의 위기를 적당한 소매치기를 곁들인 옷 갈아입기로 돌파하다 마지막 단계에서 허망하게 협박으로 탈출하고 나면. 이전까지 어떻게 하면 포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함께 고민하던 관객은 덩그러니 바보가 된다.
# 2.
애써 쿠퍼의 입장에 이입한 관객을 내팽개친 채, 영화는 갑자기 레이븐 시점의 스릴러로 전환된다. 살인마 포위 현장을 방금 벗어났지만, 수많은 소녀들을 열광시키는 슈퍼스타지만 그 어떤 경호인력도 경찰인력도 배치되지 않는 건 익숙한 태만함이다. 착하게 잘 자란 감독의 딸은 용기와 객기를 구분하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가 되어 인스타그램으로 인질을 구하고, 수많은 사람을 살해한 근육질 살인마는 잠긴 화장실문을 우악스럽게 열어 자신의 계획을 망친 원수를 곱게 돌려보낸다.
영화가 끝나감에도 물음표는 늘어만 간다. 리무진에 태워 레이븐을 납치했다가, 레이븐이 탈출했다가, 경찰에 포위됐다가, 이번엔 쿠퍼가 탈출했다가, 자신을 유일하게 의심한 아내와 조우한다. 왜 갑자기 웃통을 벗어제끼는 건지 알 수 없고, 왜 케이크를 처먹고 있는 건지 알 수 없고, 왜 미련하게 휘슬 주전자로 시그널을 주는 건지 알 수 없고, 미친 프로파일러는 무슨 깡으로 민간인을 미끼로 쓴 건지 알 수 없고, 대체 어떻게 해야 맨살에 테이저건을 처맞아도 버틸 수 있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하나만 있어도 경이로운 염병이 속출하는 진풍경은, 14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골든 라즈베리에 빛나는 <라스트 에어벤더>(2010)의 노스탤지어를 맹렬하게 불러일으킨다.
영화 속 유일하게 정직한 대목은 체포되기 직전 자전거 스포크를 떼어내는 장면이다. 체포되는 와중에 뜯어낸 자전거 창살을 아무도 모르게 소매에 숨겼다는 억지를 보면 '진짜 지랄한다' 소리가 절로 나오는 데, 영화 전반이 감독 자신을 비유하고 있는 것처럼 이 영화가 그 자체로 거대한 지랄이라 자백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 3.
겉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한 꺼풀 벗겨내고 나면 결국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가 네 명의 여자와 미팅을 반복하는 것'으로 재구조화된다. 딸 라일리, 뮤지션 레이븐, 프로파일러 그랜트, 아내 레이첼인데 영화를 하찮은 가족모임이라 단호하게 규정한 것은 이 네 명의 파트너가 너무나도 노골적인 형태로 감독의 가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는 상황을 만들고 그것을 영상으로 관찰하는 쿠퍼는 감독 본인이다. 페르소나로 조시 하트넷을 캐스팅한 건 너무 뻔뻔하지 않나 싶지만, 그만큼 자아가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져 있다 생각하면 참작의 여지는 있다. 라일리는 감독일하느라 함께 해 주지 못한 유년기 딸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다. 레이븐은 그럼에도 장성한 자랑스러운 지금의 딸이고, 감독의 친딸인 살레카 샤말란을 섭외한 것은 노골적인 근거다. 그녀에 대한 사랑은 가타부타할 것 없이 아티스트로서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이다. 전반부 콘서트를 통해 뮤지션으로서의 공간을 최대한 열어주는 이유이자, 후반부 저택에서 연기자로서의 공간을 최대한 열어주는 이유다. 살레카의 발연기가 영화를 망칠까 걱정되지 않느냐 묻는다면? 앞서 이야기했듯 감독에게 남의 사정 따윈 알 바가 아니다.
사건이 폭로된 후 조수석의 레이븐은 마치 엄마인 것처럼 쿠퍼와 이야기하는 데, 그때의 대화는 그랜트 박사의 프로파일링 결과라는 면에서 흰머리의 헤일리 밀스는 곧 샤말란의 엄마가 된다. 마지막 체포되는 씬에서 쿠퍼가 박사와 엄마를 겹쳐보는 이유다. 레이첼은 당연히 감독의 아내, 바브나 바스와니다. 불안한 감독으로서의 자신과 부족한 아버지로서의 자신을 이해해 준 사람.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낸 침착하고 신중한 아내에 대한 사랑을 폭력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비틀어 낸 것이라 이해하면 무리는 없다. 문제는,
# 4.
앞서 설명한 대로 메시지가 이야기를 전혀 지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살인마의 탈출 스릴러가 설득되지 않다 보니 제 아무리 드라마를 설파해 봐야 허망하다. 감독 눈엔 이쁜 딸이겠지만 관객의 눈엔 연기 못하는 남의 집 딸일 뿐이다. 혹여 내가 내 가족 위해 내 돈 들여 영화 만들었는 데 니가 무슨 상관이냐 말할지도 모르지만, 극장을 찾는 관객의 티켓값은 니 돈이 아니다. 1
여담으로 조시 하트넷이 연기를 잘했다는 일부의 평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쿠퍼는 평생 거짓말을 통해 문제를 돌파한 사람이다. 어쩌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진심으로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는 자아를 새로 만드는 캐릭터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그의 실체를 꿰뚫어 본 사람은 같이 사는 아내뿐이라는 면에서 그의 거짓 연기는 완벽했어야 하고, 이는 당연하게도 관객에게까지 발각되지 않았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을 살해했음에도 정체를 들키지 않았던, 같이 사는 아내가 일부러 흘린 정보가 아니었다면 그 어떤 단서도 잡을 수 없었던, 그래서 천재 프로파일러 양반이 아니면 대적할 수조차 없었던 캐릭터의 카리스마란 그런 것이다. 울그락불그락하는 광기의 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저 사람이 살인마가 아닌 것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게 했어야 진짜 연기를 잘한 것이라는 것이다. 연기는 격앙된 얼굴로 핏대 세우기가 아니다. 예리한 캐릭터 분석과 디렉팅으로 조각된 예술적 표현이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 "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 워너 브라더스에선 배급만 전담할 뿐, 3000만 달러의 제작비는 전액 감독의 사비로 충당했다 전해진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