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그 ㅈ같았던 영화를 위한 사소한 변호
토드 필립스 감독,
『조커 폴리 아 되 :: Joker Folie à Deux』입니다.
# 1.
당황스러운 영화다. 전작을 호평한 사람들이 느꼈을 이질적인 인상은 평가와 별개로 부정할 수 없다. 더 잘 만든 영화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전작, 1편이다. 담백하게 그쪽이 완성도가 더 높다. 개인적으로도 영화는 상당히 양가적인 감정으로 즐겼다. 대단히 ㅈ같은 영화이면서, 그렇기에 흥미로운 영화라는 것이 솔직한 양심이다. 리뷰한다면 내적인 디테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당장은 어색할 듯하다. 언젠가 적당한 시기가 있지 않을까.
뮤지컬 영화인 탓에 <라라랜드>(2016)가 함께 거론되곤 하는 데, 사실 방법론적으로는 같은 감독의 <퍼스트맨>(2018)에 훨씬 가까운 작품이다.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가 '우주'를 체험하는 영화라면, 데미안 셔젤의 <퍼스트맨>은 인류 최초로 달을 체험한 '사람'을 체험하는 영화다. 데미안 셔젤은 철저히 닐 암스트롱의 감각을 쫓고 내면을 조명한다. 정확히는 닐 암스트롱의 감각'만을' 쫓고 내면'만을' 조명하며 그 외의 것을 배제한다. 달에 처음 발자국을 찍은 인류사적 영웅의 업적을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본 일대기가 아닌, 자연인의 불안과 두려움에 섬세하게 동기화시키려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방해로 간주되어 배제되는 것에는 달까지 포함된다. 제 아무리 웅장한 우주도, 장엄한 지구도, 화려한 우주선도 닐의 시야에 벗어난 순간 차갑게 외면하는 이유다. 퍼스트맨이 훌륭한 것은 클라이맥스 압도적인 달의 전경이 아닌, 굳이 지구로 돌아와 유리벽 넘어 아내와 고요하게 조우하며 끝내는 그 뚝심에 있다.
비유하자면 이전의 조커 영화들과 <폴리 아 되>의 관계는, <그래비티>와 <퍼스트맨>의 관계와 유사하다. 기존의 조커 영화들은 조커가 활개 치는 어떤 '사건'을 관찰하는 영화다. 그것이 잭 니콜슨의 만화적 조커든 히스 레저의 철학적 조커든 자레드 레토의 연극적 조커든 와킨 피닉스의 심리적 조커든 마찬가지다. 각각의 스타일은 조커의 해석으로서 겉으로 보이는 현상일 뿐이고, 그것을 대하는 동안 관객은 언제나 관찰자일 뿐이다. 반면, 폴리 아 되는 사건이 아닌 사건의 중심에 있는 '조커'라는 뒤틀린 인격을 직접 체험하는 영화다. 영화가 ㅈ같은 건 당연하다. 조커가 ㅈ같은 새끼이기 때문이다. 이는 퍼스트맨이 우주 SF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침잠하는 드라마였던 것과 같다. 데미안 셔젤이 닐 암스트롱을 그린 작품의 제목을 빌려온다면,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퍼킹맨>이다. 1
# 2.
코믹스와 영화를 막론하고 관객들이 조커에 열광했던 건 그가 타인, 정확히는 나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못하는 안전한 타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빌런이라 표현만 요구하거나 훔쳐가기에도 용이하다. 어쨌든 우리 편일 수밖에 없는 히어로 배트맨을 좋아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그의 내적 모순을 함께 가져가게 되지만, 빌런인 조커는 인생 막사는 듯한 일탈만 체리피킹할 수 있다. 찢어진 입과, 기괴한 웃음소리와, 와이 소 시리어스와, 동전 던지고, 계단 내려오고, 할리퀸과 뽀뽀하고, 머레이에게 총갈기는 모습 따위가 주는 일탈의 대리만족만을 핼러윈 코스튬처럼 가져간 후 나머지는 쓰레기통에 버려도 그만이다. 어차피 조커는 미친 새끼고, 그 새끼의 사정까지 들여다봐야 할 의리는 관찰자에게 없다.
하지만 쓰레기통에 버린다 해서 있던 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굳이 <배트맨>(1989)도 아니고, <다크 나이트>(2008)도 아니며, <수어사이드 스쿼드>(2016)가 아닌 온전히 조커를 주인공으로 한 <조커>를 만든 감독은 그 버려진 것에 주목한다.
'지금부터 아서 말고 조커 시작!'이라 주문한다 해서 뚝딱 들어먹을 만큼 누군가의 인생이 그렇게 편리할 것이라 생각했다면 착각이다. 감독이 주목하는 것은 의기양양하게 배트맨 앞에 나타나 자신의 계책을 풀어놓는 익숙한 조커가 아니다. 혼자 처박혀 착란적 정신세계를 비집고 그 계책이란 것을 한 땀 한 땀 마련하는 모순된 조커다. 언제나 당연하다는 듯 아캄을 탈출하며 시작하는 조커가 아니다. 탈출하기까지 감옥에서 긴 시간 서서히 침몰하듯 괴리감을 증폭시키는 조커다. 배트맨을 조지기 위한 생체 탄환으로 할리퀸을 발사하던 조커가 아니다. 그런 할리퀸과 1초 1초 갈구하고 사랑하고 실망하고 외면하며 조울하는 미치광이 조커다.
# 3.
폴리 아 되는 비로소 만나게 된 온전한 의미의 조커다. 조커의 패악질을 관찰하던 기성의 방식을 넘어 조커가 되어버린 인간의 내면에 처음으로 청진기를 들이댄 자의 영화다. 이 미친놈이 어떤 미친 짓을 할까 궁금해하기 이전에, 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에 대한 영화다. 2
영화에는 ㅈ같은 뮤지컬이 ㅈ같이 연출되어 ㅈ같이 많이 나온다. 비아냥이 아니다. 진심이다. 혹평을 쏟아내는 다수의 관중과 달리 제법 잘 만들어진 수작이라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돌이켜봐도 담백하게 ㅈ같은 건 맞다. 다만 그래서 솔직하고 그래서 특별하다는 것이다.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정확히 그 정도로 음울하고 모순되고 의심하고 비겁하고 찌질하고 저항하는 ㅈ같은 새끼고, 이 새끼가 얼마나 ㅈ같은 정신세계에 농축되어 가는 ㅈ같은 새끼인지를 조각해 그 입체성을 단단히 하는 과정으로 내러티브는 구성되어 있다.
조커는 열광하게 하는 화려한 외면과, 침을 뱉어주고 싶은 내면의 결합이다. 첫 번째 영화 <조커>(2019)가 대중을 열광하게 만드는 조커의 탄생을 그린 트럼프의 앞면이라면, <폴리 아 되>는 그렇게 조커가 되어버린 자가 짊어져야 할 혐오스럽고 짜증스러운 뒷면이다. 일반이라면 진즉 붕괴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양단의 간극은 우리가 미쳐 잊고 있었던, 그래서 마냥 간지 난다 착각하던 캐릭터의 생생한 실체다. 멀어지면 환호하고 다가가면 저주하는 조커에게, 멀어져도 환호하지 않고 다가가면 저주하지 않는 존재는 수많은 관객들이 증명하듯 세상에 단 둘 뿐이다. 배트맨, 그리고 할리퀸. 그러니 별 수 있나. 하염없이 그녀 품에 안겨 ㅈ같은 노래나 처 부를 수밖에.
# 4.
정신 장애를 다룬 드라마 영화들이 있다. 더스틴 호프만의 <레인 맨>(1988)이나 숀 펜의 <아이 엠 샘>(2001), 우리나라 영화로는 역시 조승우의 <말아톤>(2005)이 대표적이다. 해당 작품들의 메시지는 결국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인데, 과정에서 '그들'과 '우리'가 필연적으로 분리되게 된다. 관객은 장애가 없는 안전한 '우리'에 위치한 상황에서 충분히 사려 깊은 관찰자가 되어 그들을 포용할지 말지를 택일한다. 그 어떤 리스크도 없이 말이다. 일련의 접근법의 한계는 박은빈이 연기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직면해야 했던 몇몇의 비판들, 이를테면 드라마적으로 요긴하고 사랑스러운 형태로만 자폐가 소비된 것 아니냐는 지적의 근거다.
반면,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자폐에 접근하는 작품도 있다. 증상을 간접 체험하는 영상으로, 만약 아래의 방법론으로 장편의 영화를 만든다면 어떨까. '편리한 3인칭의 우리'는 '가혹한 1인칭의 그들'이 될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고통스럽고 불쾌하며 심지어 공포스러울 공산이 크다.
그런 영화는 보고 싶지 않다, 돈 아깝다, 이런 건 줄 알았다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싫다, 재수 없다 말하는 것은 충분히 정당하다. 다만 그런 영상이기에 <레인 맨>이나 <아이 엠 샘>이나 <말아톤>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역시 엄연하다. 관객을 불편하고 힘들게 한다는 것이 완성도가 낮다 말할 근거가 되는 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세상엔 일부러 불편함을 찾아 들어가서라도 다른 곳에선 얻지 못할 무언가를 가져오길 즐기는 사람도 더러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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