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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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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단편 몰아보기 두번째 _ 통일전야 / 무단조퇴 / 연애가 고달픈 남자 / 상담

그냥_ 2020. 4. 5.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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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오랜만이네요. 단편 몰아보기, 두 번째입니다.

 

 

 

 

 

'김성윤' 감독,
『통일 전야 : 어느 저녁식사』입니다.

 

 

# 1.

 

통일을 하루 앞둔 밤. 간첩 출신 남파 공작원 가장을 둔 어느 가족의 저녁식사입니다.

 

'송중기'와 '수지' 등 엔터테인먼트 셀러브리티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격의 상업화. 성형 수술로 대변되는 외모 지상주의적 세태. 유행어와 밈과 일베 드립 따위의 북한과 차별화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등의 '남한' 코드들과, 몰래 보는 남한 드라마로 대변되는 사회 통제력의 한계. 상류층에겐 암암리에 개방되어 있는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모순적 계급성. 가족에게까지 가차 없이 적용되는 즉결처분의 잔혹함과, 이념과 정체성의 폭력적 합치. 북한 김 씨 3대의 액자 사진으로 대변되는 신앙적 숭배와, 극단적으로 거세된 시대 적응력과 같은 '북한'의 코드들은 (다소 평범한 느낌도 없잖아 있긴 합니다만) 썩 나쁘지 않습니다. 이토록 많은 아이템들을 짧은 런타임 속 저녁식사 자리의 대화라는 단편적 상황 안에 그럴싸하게 엮어냈다는 건 그 자체로 성취라 할 수 있겠네요.

 

# 2.

 

다만 장점은 거기까지 입니다. 위의 코드들을 자연스레 녹여내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래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아이템들이 무슨 의도로 수집되어 있는가라는 목적의식은 희미합니다. 대부분의 코드들은 수집된 소스의 나열에 가깝게 배열되는 가운데, 웃음을 주는 코미디로서도, 감흥을 부르는 드라마로서도, 아이템에 대한 함의를 곱씹게 만드는 풍자로서도 작동하지 않습니다. 상황 속에서 관객의 관심을 이끌만한 서사를 구축하는 데도,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데도 실패합니다. 그러다 보니 죽도 밥도 아닌 그냥 개콘식 공감물처럼만 보이게 되고 말죠. 일베 드립은 감독 나름대로 준비한 한방, 의도된 파격성일 텐데요. 여기가 승부수라고 동네방네 광고하고 다니는 승부수는 언제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법이죠.

 

협상 결렬로 인한 반전은 두 번째 승부수일 텐데요. 각자 숨겨뒀던 속마음을 쏟아내버리고 난 이후의 모습을 그려 보겠다는 아이디어는 나쁘지 않습니다. '김혜수'의 리즈시절 사진을 털썩 떨어트리는 장면. 딱 거기까지는 다소 관습적이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다 싶습니다만, 그 이후 대놓고 김 씨 사진을 떼 내고 '송중기', '수지', '김혜수' 사진을 붙여두는 건 너무 직설적이고 또 작위적이죠. 블랙코미디이려나 싶었던 개콘식 공감물은 이 후반부 이후 다시 한번 길을 잃으며 교훈극으로 힘없이 마무리된다는 인상입니다. 이러지 말고 차라리 반전 없이 저녁 식사만을 힘 있고 짜임새 있게 짯더라면 어땟을까요. 굳이 반전을 주고 싶었다면 가슴팍에서 사진을 떨어트리는 장면에서 끝냈더라면 어땟을까요.

 

 

 

 

 

 

'안소희' 감독,
『무단조퇴』입니다.

 

 

# 1.

 

이혼을 앞둔 부모와 이를 어렴풋이 알고 있는 아이의 하루입니다.

 

어른들의 얄팍한 거짓말들이 아이의 눈높이에서 어떻게 보이는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어른들이 쏟아내는 말의 내용과 어투와 태도는 아이를 위하는 듯 치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대단히 관습적이고 무신경하고 사무적인 표현에 불과하며, 그것이 아이에게 전혀 가려지지 않는다는 것이 새삼 부끄럽게 합니다. 기본적으로 묘사가 친절한 영화가 아닙니다만, 그 불친절함을 영화의 주제의식으로 설득합니다.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네가 아이의 눈높이에서 봐 봐라. 이게 보이나 안 보이나.' 라고 되묻는 느낌이랄까요.

 

# 2.

 

흐트러진 집안과, 한 순간도 자신의 자리를 얻지 못하는 아이와, 잠자리에서의 깊은 뒤척임이 명확한 주제의식을 조준하고 있습니다. 여자 동생들이 어디에 가느냐 묻는 순간 이미 동생들이 아빠를 따라갔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차마 그렇게는 묻지 못하는 두려움과, 다시 보지 못할 동생들에 대한 벌써부터의 그리움과,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 버리고 만 데 대한 숨길 수 없는 아쉬움과, 그 과정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슬픔이 겹쳐 담겨 있음을 분명하게 묘사합니다.

 

정갈한 마무리가 돋보입니다. 깔끔한 시나리오와 구성을 가진 대단히 '단단한' 단편이라는 인상입니다. 물론 특별히 창의적이진 못합니다. 어디서 보았을 법한 무던한 상황들과 무난한 은유들로 영화는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점이라기보다는 영화를 더욱 안정감 있게 만듭니다. 메시지를 향해 힘 있게 걸어가는 단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영화. 이런 작품은 언제나 나쁘지 않죠.

 

 

 

 

 

 

'강형규' 감독,
『연애가 고달픈 남자』입니다.

 

 

# 1.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연애달픈 남』.라는 제목과 그 가운데 '연애', '고', '자'라는 글자에만 색을 넣어 부제를 다는 순간. 아, 이건 가망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대감이 바닥을 뚫고 지하실을 향해 내려가는 건 당연합니다. 연애가 고달픈 이 남자가 연애 고자라는 걸 마지막에 까는 게 아니라 감독이 먼저 신나서 시작부터 까는 걸 보면 어쩌자는 건가 싶죠. 작품의 퀄리티까지 엉망이다 보니 고작 이 언어유희 하나를 위해 만든 영화라는 인상마저 들게 되는군요.

 

영화는 기본적으로 이야기입니다. 공포는 무서운 이야기이지 귀신 분장 놀래키기가 아닙니다. 로맨스는 사랑스러운 이야기지 물고 빠는 베드신이 아니죠. 코미디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상황으로 만들어야 합니다만, 이 영화는 오로지 코믹한 연출을 통해서만 코미디를 만드려고 합니다. 관객인 내가 즐기는 코미디가 아니라 감독 혼자 즐거운 코미디라는 거죠. 정신머리 없는 화면 전환과, 전혀 공감되지 않는 주인공 혼자만의 뇌내 망상과, 그런 순간마다의 맥락 없는 과잉된 표현들에, 디렉팅이 상실된 채 콩트쇼가 되어버린 수준 이하의 연기가 더해져 무자비한 시너지를 일으킵니다.

 

# 2.

 

물 마시다 말고 입에서 내뱉는 장면은 눈 뜨고 보기 힘듭니다. 마음에 있는 여자가 때리는 게 아프다고 성질을 부리는 걸 보면 감독은 연애란 걸 해본 적이 없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수업 시작과 끝의 모습을 아무런 완충 없이 냅다 붙여두는 탓에 주인공은 갑자기 기절해버린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마음에 둔 여자가 수업 끝나고 카페를 간다는 데 혼자 가라 말하는 것 역시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화장실 간다는 여자의 말에 깔리는 째깍째깍 시계 소리는 완성도와 별개로 너무도 촌스러운 발상이죠. 보노라면 이거 백 프로 저학년 학생 영화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데, 역시나. 앤딩 크레디트에서 지도교수 이름과 함께 2학년 2학기 작품이라는 자막이 뜨는군요.

 

학생 작품이라는 걸 알고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저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만, 그럼에도 리뷰를 하기로 한 이상 매몰차더라도 솔직한 말을 하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아무리 스트리밍 서비스라 하더라도 돈을 내고 본 영화에 있어 관객이 학생 작품이라는 걸 감안해 줘야 할 의무 따위는 전혀 없거니와,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것보다는 훨씬 잘 만든 학생 작품들 역시 너무도 많습니다. 글쎄요. '연애 고자'에 대한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영화 고자'를 면하는 게 더 선행되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재혁' 감독,
『상담』입니다.

 

 

# 1.

 

대사를 잘 쓴다는 건 '문장의 구조적 주술 관계가 안정적으로 확립되어 있느냐', '어휘가 풍부하면서 정합적이냐', '화려한 문장력이 적재적소에 활용되어 있느냐'라는 것뿐 아니라, '청자의 이해를 수월하게 하느냐', '행간에 담긴 뉘앙스를 잘 담아내고 있느냐', '인물과 상황에 어울리냐'라는 질문에도 적절히 부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기준에서 본다면 이 영화의 대사는 낙제점을 주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대사가 너무, 너무 문어적입니다. "배신당한 적이 있으세요?"로 시작하는 대화를 듣는 순간 정신을 잃게 됩니다. 이 나이 때의 학생은 '그 사람'이라는 말보다는 '걘'이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지 않나요? "왜 그랬을까요? 전 그냥 좋아했을 뿐인데."와 같은 도치를 어느 누가 평어에서 쓰나요.

 

# 2.

 

상황도 엉망입니다. 다짜고짜 신고부터 하자고 덤벼드는 상담사가 세상에 어딨나요. 선생님이 알아서 해주겠노라 말하는 걸 나더러 몰입하라고요? 그 애 이름이 뭐냐도 아니고 그 애 이름을 '아느냐'고 묻는다구요? 처음에 좋아하는 친구라 그랬는데? 감독은 '상담사'라는 직업에 대한 최소한의 취재를 하긴 한걸까요? 영화의 처음엔 믿었던 사람, 좋아했던 사람이라면서요. 근데 아는 사이냐고 물으니까 이번엔 학원에서 몇 번 마주쳤다 한다고요? 아니, 영화고 나발이고 이전에 작가로서 최소한의 '퇴고' 뭐 이런 거 안 하나요?!

 

밑도 끝도 없이 피아노 음이 나오기 무섭게 상담사는 미친년 널뛰기하듯 급발진을 합니다. 연극을 보는 건지 영화를 보는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어색한 연기가 터져 나오는 데, 이건 배우 탓이라기보다는 대사가 개판이라 그걸 따라가다 보니 감정선이 갈피를 잃었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설정은 나름 참신합니다만 말씀드린 대로 그 참신한 설정을 풀어내는 동안의 상황 묘사가 너무 작위적이고 부자연스럽고... 네, 허접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무지막지하게 불편한데 이건 성폭행과 관련된 상황이 불편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가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 3.

 

마무리는 대단합니다. 이 무신경한 시나리오 가운데서도 가장 무신경한 지점입니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가 상담사가 가해자의 엄마인 걸 알고서 찾아왔다는 건데요. 말도 안 됩니다. 저 상황에서 성폭행 피해자가 무슨 도덕적 우월감이나 영웅심리 따위에 취해 가해자 엄마를 찾아가는 멘탈리티가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이건 알량한 영화의 반전을 위해 캐릭터를 복무시킨 거죠.

 

이 순간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있었던 건 성폭행 피해자 '민희'가 아니라 감독이라고 봐야합니다. 성폭행 피해자가 성폭행 가해자의 엄마에게 상담하러 왔다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멘탈리티를 조명하겠다는 아이템을 들고, 자신이 설정한 세팅의 부조리함이라는 겉멋에 취해 있는 사람의 사고 방식입니다. 진짜 중2병도 적당해야지. 이건 무례한 겁니다. 성폭행 피해자들에게도, 상담사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에게도, 관객에게도 말이죠.

 

 

 

 

 

 

# 1.

 

이전의 '박은정' 감독의 『기대』, '옥대훈' 감독의 『바빠서』, '박상균' 감독의 『한수탕』, '김현정' 감독의 『여름의 소리』를 봤던 첫 번째 단편 몰아보기에서도 몇몇 작품들에 나름의 비판을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요. 이번 몰아보기의 라인업에 비하면 그때 영화들은 다시 보니 선녀였군요. 단편 고를 때 적중률이 썩 나쁘지는 않은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조금 더 신경 써서 골라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범한 관객 누구에게라도 『무단조퇴』는 추천할 만 합니다. 관대한 관객에게 라면 『통일 전야』까지는 권할 수 있겠네요. 나머지 두 작품은 솔직히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김성윤' 감독 『통일 전야 : 어느 저녁식사』, '안소희' 감독 『무단조퇴』, '강형규' 감독 『연애가 고달픈 남자』, '김재혁' 감독 『상담』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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