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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두번 보세요 _ 스트레인저, 김유준 감독

그냥_ 2020. 5. 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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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두 번 이상 봐도 좋은 환상적인 영화'라기보다는 '두 번 봐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는 영화'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개인적으론 어차피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독립영화를 만들 요량이었다면, 차라리 그냥 똑같은 13분짜리 영상을 연달아 붙여 26분짜리 영화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마저 합니다.

 

반전 영화에서 반전을 이야기하지 않고 썰을 풀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혹시 이 영화를 반전 없이 보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이후의 글을 읽지 않고 페이지를 나가시기를 권합니다.

 

 

 

 

 

 

 

 

'김유준' 감독,

『스트레인저 :: Stranger』입니다.

 

 

 

 

 

# 1.

 

어린 소녀가 되어버린 할머니를 아들 내외가 찾는 이야기입니다. 치매 가정에 대한 영화라는 거죠. 감독은 기억을 잃어 소녀가 되어버린 할머니의 눈에 비친 왜곡된 세상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옮겨냄으로써 치매에 걸린 사람의 순수함과 가족들의 비극을 역설적 대조와 함께 담아냅니다. '박상균' 감독의 『한수탕』이나, '강제규' 감독의 『민우씨 오는 날』과 결이 유사한 영화 정도로 이해하신다면 적절하겠군요.

 

 

 

 

 

 

# 2.

 

몇번을 들어도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매정한 말 앞에 구겨지는 표정. 애기 때부터 많이 봤다 말하는 순간에 지칭되는 애기의 존재. 처음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등장하는 남자의 모습과, 납치에는 도무지 적합해 보이지 않는 멀찌감치 주차된 승용차와, 자신의 외할아버지 이름을 떠올리는 순간의 꺄웃 거리는 머리.

 

이는 모두 장르적인 측면에서 중의적 해석의 여지를 열어둔 복선이자 관객이 실체를 탐구할 수 있는 실마리로서 성공적으로 작동합니다. 영화가 지향하는 감수성에도 충실히 복무하고 있구요.

 

 

 

 

 

 

# 3.

 

페인트를 어느 집 옥상에서 가져 내려오는 걸 보노라면, 페인트가 잔뜩 칠해진 아들의 모습에 며느리가 냄새를 말하는 걸 보노라면 이쁜 벽화는 아름다운 핑크빛 페인트가 아닌, 남의 집 장독에 담긴 장(醬)들로 그린 것이라 보는 게 합리적일 겁니다. 굳이 남의 집 옥상에 올라 장으로 그림을 그린다는 설정의 어색함을 생각할 때, 애초엔 벽에 똥칠하는 모습을 연상하는 것으로 출발했다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순화한 것이라 보는 것이 자연스럽겠죠. 그리고 할머니의 순수성을 가득 투영한 핑크빛 페인트로 다시 한번 영화적 순화가 된 것일 테구요. 따뜻하고 세심한 배려라 할 수 있겠네요.

 

 

 

 

 

 

# 4.

 

 

소녀가 웃으며 "아... 미안하다." 말하는 장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아저씨, 누구세요" 라 말하는 장면.

냄새나는 장이 칠해진 벽면의 손자욱에 "꽃을 그리는 거냐" 묻는 손주의 장면.

 

 

이 세 장면은 여느 걸작의 클라이맥스 못지않은 큰 울림을 줍니다. 기껏해야 13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영화에 각기 다른 세 층위의 극적 정서를 모두 욱여넣었다는 건 그 자체로 훌륭하다 하지 않을 도리가 없죠.

 

 

 

 

 

 

# 5.

 

다만 작위적인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계단에서 아들과 맞닥뜨리는 순간 아들은 "엄마! 어디 갔었어!"라고 질러버리는 게 훨씬 자연스럽죠. 물론 영화의 반전을 위한 당연한 선택 아니냐라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장르적 이유라는 것이 개연성을 변호해 주지는 못하는 법이니까요. 적어도 감독은 이 지점에서 지금보다는 더 설득력 있는 맥락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노년의 치매 할머니가 장성한 아들보다 더 잘 달린다는 것도 좀 무리수죠. 달리기 하는 동안의 영화와 완전히 따로 노는 연출적 실패는 차치하고서라도 말이죠.

 

 

 

 

 

 

# 6.

 

소녀가 깨진 거울을 돌아보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아쉬운 지점입니다. 서사의 실체를 공개하는 이 중요한 지점에서 감독은 두 컷을 겹쳐 교차시킬게 아니라 사후에 합성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한 개의 테이크로 쭉 이거 갔어야 했습니다. 소녀에서 거울 속 할머니까지 한 호흡에 연이어 등장함으로써 오해 없이 명백히 한 인물로 읽히도록 했어야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작품에 대한 몰입도가 썩 높지 않은 관객의 경우 이 화면 연출 때문에라도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를 고민하느라 장르적 감동을 놓칠 수도 있었을 겁니다.

 

 

 

 

 

 

# 7.

 

얘기하는 김에 사족으로 제목이 굳이 영어여야 했을까라는 생각도 살짝은 듭니다만 자꾸 흠을 잡게 되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네요. 사실 영화가 제법 맘에 들었기 때문에 하는 소리들입니다. 좋으니까. '아~ 이것만 이렇게 했더라면.', '아~ 요것만 저렇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드는 거죠. '김유준' 감독, 『스트레인저 :: Stranger』였습니다.

 

제21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단편부문 상영작입니다. 독립 영화제 화이팅!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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