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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악녀를 보았다 ⅱ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그냥_ 2020. 4. 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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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를 보았다 ⅰ _ 레이디 맥베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 0. 뒷모습으로 소개되는 여자. 실루엣을 짓누르는 베일. 앳되고 가녀린 목소리와, 그를 제압하는 고압적인 저음의 성가. 소녀의 연약한 요구와, 그 요구를 거절보다 폭압적인 명령으로 제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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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돌아온 보리스와 함께 코르셋은 다시 채워지지만, 지금의 코르셋은 이전의 코르셋과는 다르고 지금의 캐서린 역시 이전의 캐서린과 다릅니다.

 

시아버지와 단둘이 나누는 늦은 저녁의 식사. 테이블의 방향으로 조명이 강하게 집중된 공간을 달그닥 소리를 내며 밀고 들어오는 캐서린. 화면의 중앙을 지배한 캐서린은 이전과 다른 자신을 가감 없이 표출합니다. 전에 볼 수 없던 시원한 웃음과 함께 자유롭게 식당을 가로지르는 동안, 시아버지와의 '규율'과 '지배'는 극적으로 역전됩니다. 일련의 연출적 은유들은 앞서서와 마찬가지로 서사를 통해 재확인되죠. 애나의 행동을 지배하는 보리스의 호통을 제지하고 압도하는 캐서린의 눈빛은 이 영화가 준비한 첫 번째 롤러코스터입니다. 감독은 이 파괴적 낙차를 한층 더 심화시키기 위해 캐서린과 관념적으로 쌍을 이뤄 대조되는 애나를 네발로 기어가게 만들죠.

 

식사 후 복도에서의 장면은 작중 가장 인상적인 구도와 배치 중 하나입니다. 복도에서 계단실로 도드라져 나온 캐서린과, 복도의 그늘에 숨은 혹은 남겨진 애나와, 계단 밑에서 거슬러 올라와 며느리의 빰을 때리는 보리스. 인물의 배치를 통해 이 순간에서의 역학적, 서사적 관계를 미술적으로 형상화합니다. 식당에서의 철저한 패배에 대한 보리스의 물리적 저항과, 품위의 탈을 벗어던진 저항으로도 굴복시킬 수 없는 캐서린의 광기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네. 이전의 사례를 보자면 이다음엔 서사의 진행이 이어지겠죠.

 

 

 

 

 

 

# 7.

 

'빰을 때린다'라는 물리적 충돌을 벌인 두 사람은 논쟁적인 서사적 충돌을 연이어 벌입니다. 그 결과 캐서린은 보리스를 독살하게 되죠. 캐서린의 자리에 앉은 캐서린으로서 보리스의 자리에 앉은 보리스를 압도하던 직전의 상황과 달리, 그녀는 결국 보리스의 자리에 스스로 올라 저택의 규칙과 규율을 찬탈했음을 과시합니다. 어찌할 바 모르는 애나의 미친 듯이 흔들리는 눈은, 지배의 대상이 역전되고 교체되었음을 그 순간의 불안을 극적으로 묘사합니다. 보리스의 죽음과, 보리스의 의자에 올라선 고양이. 애나의 절규와, 옆으로 길게 누은 시아버지를 단호하고 도도하게 가로지르는 캐서린의 움직임은 모두, 힘의 역전을 통한 해방감과 타락의 상쾌함 따위의 정서들에 대한 세리머니입니다.

 

검은 옷을 입고 관에 누은 보리스와 흰 옷을 입은 세바스찬은 의도된 대조입니다. 마치 체스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 백색은 어디까지나 캐서린이 입혀놓은 백색에 불과합니다. 캐서린은 애인에게 저택의 주인 같다 말하지만, 그 역시 세바스찬 스스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캐서린으로부터 허락받았을 뿐이죠.

 

목소리를 잃은 검은 애나와 흰 옷을 입은 세바스찬을 통해 '캐서린' & '세바스찬' vs '알렉산더' & '애나'의 대립을 환기하면서, 동시에 이 구도는 어디까지나 캐서린의 독단에 의해 설정된 세팅일 뿐 애나와 알렉산더의 이해관계 역시 온전히 같은 것은 아니고, '캐서린'과 '세바스찬' 역시 온전히 같은 편은 아니라는 것을 짚고 넘어가는 데에도 성공합니다.

 

 

 

 

 

 

# 8.

 

감독은 자신이 무슨 정서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불륜을 숨기는 동안의 서스펜스가 아니죠. 타인과의 격정적인 갈등 구조를 동력으로 삼는 드라마는 더더욱 아니구요.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주인공 캐서린의 격정적인 내-외면을 추적하는 심리극입니다.

 

즉, 남편에게 자신의 불륜을 들킬까 말까 따위에 시간을 허비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알렉산더가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아내의 불륜을 알고 있었다는 것은 장르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캐서린이 최소한의 윤리마저 포기했음을 과시하는 ntr 메타를 짤막하게 보여준 후 남편의 뚝배기를 깨부수는 것 역시 주제에 부합하는 합리적 전개라 할 수 있죠. 식어가는 알렉산더의 시신 앞에서 세바스찬을 탐닉하는 모습까지. 감독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영화를 만들고 있는지, 어떤 인간을 다루고자 하는 지를 명확히 하고 있기에 가능한 이야기 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독은 알렉산더의 최후를 끝으로, '수평선의 들판'과 '가시나무의 숲'에 이은 세 번째 풍경 '풍성한 녹음의 숲'을 보여줍니다. 보리스와 알렉산더의 통제로부터 완벽히 벗어난 그녀는 이전과는 달리 풍성한 녹음이 된 것만 같아 보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가시나무 숲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차갑고 공허하기만 했던 가시나무 숲엔 죽은 말의 시체와 들끓는 파리들이 생겨나고 말았죠. 중세미술적 구도로 끌어 안는 캐서린과 세바스찬의 모습에 이어 썩어 들어가는 말을 보여주는 것은, 그녀의 파괴적 저항이 가지는 당위로서의 숭고함과 그럼에도 합리화될 수 없는 과정의 추악함을 극적으로 대조합니다.

 

 

 

 

 

 

# 9.

 

'애그니스'와 '태디'가 등장합니다. 이 둘은 보리스 부자와 달리 캐서린에게 아무런 도덕적 부채감이 없는 인물들이죠.

 

만약 캐서린이 처음의 순수성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둘과는 갈등해서는 안됩니다만, 그녀의 타락은 여기서 멈춰 서기에 너무 멀리 오고 말았습니다. 위의 두 사람이 등장하면서부터 극은 '구도 중심의 묘사'에서 '관계 중심의 서사'로 잠시 넘어갑니다. 남편의 시체가 묻힌 숲에 스며드는 사람들과 비밀이 벗겨져 나가는 동안의 위협과 '세바스찬'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제약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일련의 위협과 제약에 대한 캐서린의 인내심이 다하는 순간. 수평선의 숲에 이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폭포'가 등장하죠. 폭포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본질적인 선량함과 순수함마저 붕괴되어 무너져 내리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기어코 태디를 본인의 손으로 해치는 캐서린. 이 순간은 이전의 그 어떤 죽음들과 달리 비극적으로 묘사됩니다. 비어있는 의자의 배치와, 깊게 드리우는 그림자입니다. 연기된 눈물을 보여준 후 닦아내는 캐서린과 오열하는 세바스찬. 사람을 하나둘 죽일 때마다 키스를 갈구하는 캐서린에게서, 이 모든 것들이 색욕과 무관한 광기이자, 테디의 죽음이며, 동시에 캐서린의 죽음이라는 역설을 읽게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홀에서의 힘 있는 배치가 인상적입니다. 주변 잡기들을 배제한 체 인물들과 그 인물들의 내면에 최대한 집중시킨 구도가 압도적입니다. 절망적인 자백을 하고 난 후 오히려 평온한 표정의 세바스찬과, 모두가 떠나간 후 계단을 스스로 내려와 처음과는 전혀 달라진 얼굴로 소파에 앉는 '캐서린'. 승리자이지만 승리자라 할 수 없는 인간의 홀로 남겨진, 혹은 버려진 마지막이 섬뜩합니다. 깊은 눈빛과 그 속에 혼탁하게 얽혀 있는 수많은 부정적 정서들과, 그 모든 정서적인 것들의 일탈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강렬한 '광기'입니다.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출발한 서사의 끝에 더 깊은 공허함으로 회귀하고 만다는 것이 역설적이고 또 비극적이죠.

 

 

 

 

 

 

# 10.

 

서사는 단순하다면 단순하고 명쾌하다면 명쾌합니다. 메시지와 정서는 서사보다 더 명쾌한 가운데 정서를 풀어내는 방식은 그보다 더 명쾌하죠. 자유로움을 꿈꾸던 속박된 인간의 폭력적 저항 끝에 결국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린 괴물이 되어버린다는 비극. 규율을 파괴할 때의 쾌감과 내면이 부서져 나갈 때의 불안 등의 대칭적 정서가 빚어내는 압도적인 전율, 그 끝의 공허함. 소유되고 통제되던 '수평선의 들판'은 '가시나무의 숲'처럼 메말라가고, '풍성한 녹음'이 되고자 했던 발버둥의 끝은 역설적이게도 순수했던 '수평선의 들판'마저 '폭포'와 함께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랄까요.

 

파격적이고 파괴적인 전개와는 대조적이게도 한 인물을 지배하는 심화되어가는 특정한 정서를 포착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섬세하게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문학적 묘사와 영화적 연출과 서사적 진행의 층위를 명확히 구분해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유의 격식이 영화를 다소 답답하게 만들기는 합니다. 마치 고전 세계 명작 류의 딱딱한 소설을 읽는 것과 같은 지루함이랄까요. 딱딱한 나무의자에 앉은 것만 같은 불편함이랄까요. 고지식한 노년의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무료함이랄까요. 시대착오적인 문체에 대한 관객의 배려와 합의가 필요한 고전 명작 소설들처럼 이 영화 역시 어느 정도 기호를 탈 수도 있어 보이긴 합니다만, 그럼에도 볼만한 가치가 있냐 물으신다면, 악녀 '캐서린'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듯하군요.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 『레이디 맥베스』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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