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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공장제 드라마 _ 와인을 딸 시간, 프렌티스 페니 감독

그냥_ 2020. 4. 1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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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신박한 은유와 리드미컬한 라임의 말장난으로 점철된 수다스러운 흑인 힙합 문화를 가져다 온건한 가족주의라는 주제 의식에 때려 박아 만든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공산품 드라마 영화입니다. 물론 이때의 '흑인스러움'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주류 사회가 선별적으로 취사선택한 흑인 문화의 솔직함과 유쾌함만을 의미합니다. 

 

 

 

 

 

 

 

 

'프렌티스 페니' 감독,

『와인을 딸 시간 :: Uncorked』입니다.

 

 

 

 

 

# 1.

 

영화가 어떻게 굴러갈지를 이해하는 덴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인물과 배경 세팅이 끝나는 10여분이면 이후 전개가 어떻게 될지 손바닥에 올려놓은 듯 훤하게 드러나거든요. 소믈리에를 꿈꾸는 아들과, 막 암이 나았지만 차마 가발을 버리지는 못하는 엄마와, 할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아 자식에게까지 물려주고 싶은 가업이 있는 아빠에, 일침충 여자 친구라는 세팅이 끝나는 순간. 영화의 전개는 너무도 제한됩니다. 생각해보죠.

 

가족 소개가 끝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부자간 갈등은 심화될 겁니다. 아빠는 아들에게 가업을 이을 것을 압박할 테고, 아들은 아랑곳 않고 소믈리에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아 나가겠죠. 임계점에 다다르면 서로에게 상처가 될 말을 주고받을 테구요, 그로 인해 서먹한 사이가 되고 말겠죠. 하지만, 그렇게 아빠와 아들은 의절하였고 죽을 때까지 다신 보지 않았답니다. 짜잔! 하면서 막을 내릴리는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두 사람이 화해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생길 겁니다. 그 계기라는 것은 100% 확률로 엄마가 마련하게 되겠죠. 엄마와 관련된 단서는 최근에 암에 걸렸었다는 것 밖에 없으니 당연하게도 엄마의 암이 재발하는 걸 겁니다. 아들은 자신의 꿈과 무너져 내리는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겠죠.

 

 

 

 

 

 

# 2.

 

이후 갈등을 벗어나는 방식이 ⑴ 나태함에 빠진 주인공이 가족의 사랑으로 구원받으며 가정으로 돌아와 가업을 잇게 되고, 돌아온 아들과 함께 엄마는 암에서 나았답니다! 라고 한다면 70`~ 80` 감성의 고전적 드라마일 테구요. 아들의 진지한 꿈을 이해하게 된 아빠가 든든한 조력자가 되며 부자의 환상적인 콤비플레이 끝에 시험을 통과하게 되고, 발랄한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두 남자의 모습 뒤로 죽은 엄마가 예토 전생 해 흐뭇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면 90`~ 00`년대 감성의 근대적 드라마. 아빠와 힘을 모아 시험에 도전하지만 시험에는 떨어지게 되며 현실의 쓴맛을 보지만 그래도 가족의 위로를 받으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나간다는 식으로 마무리된다면 10`~ 20` 감성의 현대적 드라마라 할 수 있겠죠.

 

이 영화가 2020년에 나온 영화니까 대단히 높은 확률로 세 번째 방법을 선택할 겁니다. 맞죠?

 

 

 

 

 

 

# 3.

 

학교엔 언제나 뺀질뺀질한 밉상 라이벌이 있고, 주인공이 흑인인 이상 라이벌은 십중팔구 부유한 집안의 포마드를 진하게 바른 곰돌이 몸매의 찹쌀떡같이 뽀얀 백인이겠죠. 주인공에게 시종일관 깝죽거리면서 딴지를 걸 텐데요. 그 결과 중요한 순간 망신을 당하거나 동료가 되거나 둘 중 한 가지 선택을 하게 될 겁니다.

 

가족의 든든한 후원으로 편안하게 소믈리에가 되어가는 식의 캐릭터라면 망신을 당하게 될 테고요. 주인공과는 또 다른 형태의 현실적 갈등 하에 놓여 있는 캐릭터라면 동료가 되게 되겠죠. 이 라이벌이 어떤 식의 캐릭터이든 간에 라이벌과의 관계가 정리되는 지점은 영화가 마련한 중간보스가 될 겁니다. 최종 보스는 주인공과 아빠의 갈등이 해결되는 지점일 테구요. ⑴ 파리에 유학을 가는 순간까지의 서사적 상승과, 라이벌이 소믈리에를 포기하는 시점부터 엄마가 병에 걸리는 순간까지의 정서적 하강. 그리고 극의 성격을 희극으로 규정하게 만드는 마지막 살짝의 반등으로 이와 같은 류의 드라마는 간단히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시작한 지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밑그림이 훤히 그려지는 가운데, 역시나 그 그림 그대로 영화는 진행됩니다. 덕분에 안정감과 범용성을 얻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관객으로 하여금 이야기로서의 충분한 재미를 주었느냐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빈약하다고 밖엔 달리 말할 도리가 없죠.

 

 

 

 

 

 

# 4.

 

아빠와 아들. 훈연 레스토랑과 소믈리에. 대가족과 스터디그룹의 대칭은 좋게 말하면 친절하고 나쁘게 말하면 단순한 구조입니다. 이 세팅의 장단점 이전에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감독이 이 구도를 선악의 구렁텅이에 처박아 넣지는 않았다는 점이죠.

 

개인주의적 자유로움의 추구와 자기실현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현대 사회에서 가업이나 가족 공동체를 위한 희생 등의 아이디어들은 짐짓 구태의연 해 지루하고 진부한 것으로 취급되기 쉽습니다만, 다행히도 이 영화는 그런 우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아들은 그동안 여러 번 꿈이 바뀌었고 꿈을 바꾸어 나가는 과정에서 진지한 탐색을 하지 않았다는 도덕적 페널티를 받습니다. 부모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고 가업을 잇게 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며, 엄마는 암에 걸렸다가 최근에 회복했기에 아빠의 조급함은 충분히 이해 가능한 것일뿐더러, 아빠 나름대로 아들을 위한 배려를 게을리하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아빠를 위한 어드벤테이지 역시 부여하고 있죠. 즉 아들과 심정적 동화가 쉬운 관객들에게도 부자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도덕적 줄타기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균형을 조정하려고는 했다는 뜻입니다.

 

 

 

 

 

 

# 5.

 

하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잡아내는 데 '성공'했는 가라는 질문에는 의문이 따릅니다. 감독은 아빠를 '변호'하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설득'하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갈등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갈등이 이해가 되지는 않거든요.

 

왜 저렇게까지 아들의 장래를 반대하는 건지 중반 이후부턴 공감이 안됩니다. 애가 와인이 좋다. 소믈리에가 되고 싶다 말하는 초반부까지의 반대야 그렇수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학교에 입학하고 유학 프로그램에 응시하는 등, 나름의 가능성과 진지함을 보이는 순간부터는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돼?'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게 되죠. 특히나 와인바가 포함된 2호점을 만들 듯 아들의 꿈과 아빠의 레스토랑이 상보적으로 소집될 여지가 충분해 갈등을 극복할만한 모멘텀을 너무 쉽게 떠올릴 수 있다는 점은 의문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식당을 하는 아빠를 둔 아들이 아싸리 비행기 파일럿이 되고 싶다 말하는 바람에 빼도 박도 못하게 식당 문을 닫아야 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잖아요. 대체 뭐가 그리 불만인 거야?

 

 

 

 

 

 

# 6.

 

부자 갈등을 관객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선 두 직업 간에 더 확실하고 극적인 대조를 만들었어야 합니다. 가업이 영세한 가운데 아들의 꿈이 너무 많은 돈을 필요로 한다거나, 역으로 가업이 거창한 가운데 아들의 꿈은 영세하다거나, 하다못해 아들의 꿈이 지구 반대편에서만 이룰 수 있어 물리적으로 접점을 찾는 것이 아예 불가능하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반면 영화의 대립구조는 너무 빈약합니다. 절대 가난하지도 않지만 무지막지하게 부유하지도 않은 적당히 성공한 안정적인 자영업자와, 같은 요식업계 전문직으로서의 소믈리에는 충분한 대립구도를 형성하지 못합니다. 막말로 그냥... 고깃집이 주점으로 바뀌는 업종변경 같잖아요? 관객의 입장에선 당연히 왜 저렇게 까지 싸우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요. 팔자 좋은 사람들의 어리광 같달까요.

 

엄마가 아픈 것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엄마가 죽어버리기까지 하는 건 너무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다는 느낌도 없잖아 있습니다. 이렇게 판이 깔려버리면 부자가 화해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죠. 엄마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갈등 해소의 마중물일 뿐 결국엔 두 사람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함으로써 두 사람 스스로 자신들의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데, 마치 두 부자 모두에게 헌신적이었던 엄마의 부재가 부채감이 되어 '엄마를 위한 화해'를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초중반까지 제법 유효한 역할을 하던 여자 친구 역시 중반부 이후부터 아예 극에서 밀려나 버린다는 것 역시 캐릭터 구성에 있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지점이구요. 이렇게 되어버리면 여자 친구는 그저 '양희은'에 빙의해 <네 꿈을 펼쳐라> 한번 불러주고 사라지는 응원 토템이 되어버리고 말죠.

 

 

 

 

 

 

# 7.

 

와인에 대한 조예가 있다면 조금은 더 흥미롭게 볼 여지가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와인에 대한 배경지식들이 작품의 서사와 연동되고 있다는 인상은 희미합니다. 거론되는 무수히 많은 와인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저 영화가 영화로서 성립하기 위한 최소한의 볼륨을 확보하기 위해 치장된 수사에 그칩니다.

 

클럽에서의 연출이나, 파리의 전경, 미술관에서의 그림들과, 파티장의 비주얼 등 역시 영화 속에서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입니다. 모조리 그럴싸한 그림을 위한 그럴싸한 그림일 뿐이죠. 과격하게 말하자면 평평하고 단순한 플롯의 드라마의 볼륨을 억지로 부풀리기 위해 동원된 눈뽕에 불과합니다.

 

 

 

 

 

 

# 8.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연출과 서사가 충분히 조응하느냐 라는 비평적 견해와는 별개로, 어쨋든 눈요기하고 귀요기할만한 것들은 제법 풍성하기에 킬링타임 용 영화로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도 됩니다. 맛있어 보이는 고기를 서걱서걱 썰어내는 모습. 고급스러운 와인들과 그런 와인병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모습. 적재적소에 배치된 힙하고 췰한 힙합 음악들과, 멋들어진 그림을 곁들인 파리의 전경과, 여자 친구와의 러브신과, 주방을 도배해 놓은 아들의 질문지 따위들이 주는 감각적 풍성함은 분명하니까요.

 

큰 기대 없이 적당한 기분으로 선량한 드라마 한 편을 즐긴다는 목적으로 본다면 납득할 수 없는 작품은 결코 아닙니다만, 그래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잘 만든 좋은 영화냐 물으신다면 글쎄요, 그렇다 말하기는 어렵겠군요. '프렌티스 페니' 감독, 『와인을 딸 시간』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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