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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Action

육조거리의 무녀 _ 전, 란, 김상만 감독

그냥_ 2024. 10. 18.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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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붉게 타오르는 분노와 푸르게 침몰하는 희망 사이에서 체제를 논할 뻔하다.

 

 

 

 

 

 

 

 

김상만 감독,

『전, 란 :: Uprising』입니다.

 

 

 

 

 

# 1.

 

주인공은 강동원의 천영도, 박정민의 종려도 아니다. 신분제를 포함한 조선의 법도라는 체제(體制)다. 인물들은 체제를 대하는 각기 다른 방식들로 분류되어 배치되어 있고, 액션은 체제에 대응하는 방식들 간의 갈등 관계를 물리적으로 대신할 따름이다. 때문에 보다 보면 전혀 다른 장르임에도 마틴 맥도나의 <이니셰린의 벤시>(2022)가 계속 머리에 맴돈다. 허무를 대하는 각각의 방법론을 개인에 투사해 그 관계를 관찰했던 것과, 본 작이 체제를 대하는 방식은 제법 유사하다. 허무를 놓고 절친이 피 흘리던 영화의 제목을 이니셰린의 벤시라 한다면, 체제를 놓고 절친이 피 흘리는 김상만 감독의 영화는 이를테면 육조거리의 무녀랄까.

 

선조는 단순하게 비열한 위정자 이전에 체제의 논리구조를 의인화한 인물이다. 펼쳐지는 이야기의 기준점으로 기능한다는 면에서 가장 중심적인 인물이라 해도 무리는 없다. 선조의 함의를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은 여럿이다. 수도를 달아나자 백성들이 궁에 불을 지르는 데, 이를 본 선조는 화를 내기보단 당황한다. '아니, 왜?' 왕의 권위로 작동하는 그의 체제에선 백성이 궁을 태우는 건 비윤리적이기 이전에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를 때리듯 비논리적인 것이다. 팔매질한 백성들에게 '사람 새끼들이냐' 분개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피난 가는 백성을 도륙하는 장면과 대비되어 현대의 관객은 당황하게 되지만, 그의 체제 안에서는 백성의 목숨보다 왕의 목숨이 중요한 것은 집단의 존립을 위해 당연했을 뿐이다. 오히려 체제 안에서 왕을 위해 백성이 대신 복무하고 희생함이 '윤리'적이다.

 

 

 

 

 

 

# 2.

 

천영은 그런 체제에 배신당한 인물이다. 양인으로 태어나 양인으로 자라지만 갑자기 노비가 되어 부모를 잃은 건 특별한 누군가에 의한 특별한 음모가 아닌, 당대 법도라 불린 체제의 마땅한 결과다. 종려 대신 회초리를 맞던 천영은 종려에게 검술을 가르침으로서 매질을 피하는 데, 이 역시 체제에 반항하는 방식이 아닌 나름의 순응이고, 이후 종려 대신 무과를 봐 장원에 급제하는 것 또한 체제에 순응한 결과다.

 

체제의 당위가 자신을 추락시킨 것처럼 복권도 시켜주리라 믿었던 천영은 종려의 아버지 극조에게 배신을 당하게 되는 데, 여기서의 배신은 극조 개인의 배신과 체제로부터의 배신이 중첩되어 있다. 분노한 천영은 극조에 대한 분노와 체제에 대한 희망이 겹쳐져 있는 상태로 혼란스러워하다, 자령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체제로부터 배신당했음을 각성하게 된다.

 

반면, 종려는 체제의 바깥에서 배신당한 인물이다. 체제가 허락하는 공간 너머에 있는 천영을 품은 유일한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체제를 거스를 생각도 용기도 이유도 없다. 체제의 아량을 조금이나마 넓히는 것이 전부고, 그에게 천영을 대하는 방식은 노비를 집 안으로 들이는 것이 아닌 자신이 집 밖으로 나가는 정도의 소극적인 것이다. 평생 칼을 맞대온 친구에 대한 신뢰보다, 충직한 종복의 한 마디 증언을 더욱 신뢰한 것은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그의 실체다.

 

노비들에 의해 일가가 몰살했음을 알게 된 종려는 분노하게 되는 데, 이는 노비들 뿐 아니라 체제의 바깥을 내다본 자신에 대한 분노를 포함한다. 출중한 검술을 가지고도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던 종려는 차가운 눈으로 백성을 베며 체제의 외곽에 서서 침입자를 차단하는 인물이 된다. 마지막에 목숨을 잃는 종려의 눈물은 친구에 대한 미안함 뿐 아니라 자신 역시 체제 안에서 사고하고 있었던, 그래서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음을 깨닫는 의미에서의 눈물이다. 천영과 종려는 모두 배신당한 인물이되, 각각은 '체제 안'과 '체제 바깥'에서 배신당했다는 면에서 대칭되는 관계다.

 

 

 

 

 

 

# 3.

 

그 외에 자령은 체제의 선의를 신뢰하는 존재다. 의병장이 된 것은 백성을 수호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고, 이는 내려놓지 못하는 갓과 어색한 젓가락질 따위로 유머러스하게 표현된다. 부패를 저지른 관리를 처단하는 대신 고발하는 이유이자, 세상의 부조리를 왕에 대한 상소로 해결하려는 고지식함의 이유다. 극조는 체제의 선의를 기망하고 전횡하는 역할이다. 오프닝에서의 수많은 노비들을 대하는 방식은 부패한 체제의 전형으로서 자령과 대칭관계다. 범동은 체제를 불신하는 것을 넘어 부정하는 인물로서 선조와 대칭된다.

 

이처럼 영화는 체제를 중심으로 태도의 거리에 따라 짝을 짓는 방식으로 인물들을 나열하고 있다. 체제에 논리와 당위를 제공하는 선조, 체제를 내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는 극조, 체제의 외곽을 차단하는 종려가 한편이 되어 체제를 구축한다. 상대방은 부조리한 체제에 대한 각기 다른 리액션들이다. 체제의 선의를 믿으며 수정할 수 있다 생각하는 자령, 체제에 선의가 남아있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는 천영, 체제를 불신하는 범동이 한 편이 되다 분열한 것은 그런 의미다. 전자는 붉게 타오르는 불의 이미지로 묶어내고, 후자는 푸르게 침잠하는 물의 이미지를 입혀 그 대칭성을 강조해 시각화 한 디자인은 칭찬받아도 좋은 것이다.

 

 

 

 

 

 

# 4.

 

영화의 제목은 전란(戰亂)이 아닌 전과 란이고 전(戰)은 전쟁(戰爭)을, 란(亂)은 반란(叛亂)을 의미한다. 둘은 체제가 공격받는 두 가지 유형으로, 이 모든 것이 체제에 대한 이야기임을 선명히 한다. 전쟁은 구체제에서 신체제로의 교체, 반란은 체제 그 자체의 전복으로써 감독이 정치학적으로 해석한 임진왜란기의 원리다. 셋은 모두에 대해 양립할 수 없기에 세르조 레오네의 <석양의 무법자>처럼 맞물리게 되고, 각각 구체제를 대변하는 종려와 전쟁을 대변하는 깃카와 겐신과 반란을 대변하는 천영으로 의인화되어 연무 속에 뒤엉켜 싸우는 액션으로 귀결된다. 감독의 결론은 천영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선의를 잃은 구체제는 후회 속에 죽고, 무자비한 신체제는 저주를 실천하며 죽는다. 살아남은 천영은 광장에 동지들과 모여 대동 대신 범동을 이야기하며 태극을 그리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크게 아쉬운 결말이다. 작품의 후반부가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화려한 액션에도 불구하고 지지부진한 것은, 체제에 대한 담론을 다룰 것만 같던 영화가 별 다른 발전 없이 관객에게 아부하며 주저앉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이 짊어지고 있던 사상적 갈등이 고작 "오해였어?", "오해했어?" 라는 방식으로 해갈되어 버린 것은 허망하다. 설마 하니 헤게모니를 둘러싼 전란의 인류사를 고작 오해 때문인 것으로 진단하려는 것은 아닐 것 아닌가. 전반부 피난길의 액션과 비교하면 더욱 안타깝다. 관군이 백성을 베고, 의병이 왜군을 베는 시퀀스는 액션과 편집의 완성도뿐 아니라 체제의 속성과 민낯을 보여준다는 면에서도 인상적이었던 것에 반해 결착은 그렇지 못하다. 인상적인 총평까지는 무리라 하더라도. 이야기를 제안한 사람 나름의 고민이 담겨있는 견해는 결말에서 드러나야 했음에도 그러지 못했다는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고, 이는 전반부의 세팅을 주장하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냐는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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