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Action

캡사이신 우유 _ 렌필드, 크리스 맥케이 감독

그냥_ 2024. 9. 8. 06:30
728x90

 

 

# 0.

 

유리멘탈 현대인을 위한 다정하고 매콤한 캡사이신 우유

 

 

 

 

 

 

 

 

크리스 맥케이 감독,

『렌필드 :: Renfield』입니다.

 

 

 

 

 

# 1.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소설 <드라큘라>(1897)의 등장인물 렌필드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러, 코미디, 액션, 판타지 영화다. 한창 유행인 리메이크나 리부트가 아닌 보조적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것, 특히 외전 격의 이야기 대신 기존 서사를 전복시켜 독자적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에 도전했다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영화는 야심에 걸맞게 고전의 고풍스럽고 음습한 분위기를 대신하는 컬트적이고 경쾌한 현대적인 모습이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감독은 드라큘라 신화를 현대 사회의 권력 구조와 종속 관계에 대한 알레고리로 재해석한다. 드라큘라와 렌필드의 관계를 통해 사회와 유리된 인간의 소외, 독성적인 직장 문화, 동반의존적 대인 관계, 만성적인 중독과 번아웃과 가스라이팅 따위를 폭넓게 고발한다. 렌필드는 순종적이지만 내면의 권태와 갈등이 한계에 달한 인물로 자아실현을 갈망하는 현대인이다. 드라큘라는 자기중심적이고 폭력적인 권력으로 관객마다의 특별한 악당이자, 부조리한 시스템 그 자체를 은유한다. 드라큘라가 렌필드에게 행사하는 심리적 조종은 직장, 가정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적용되는 미묘한 권력관계의 축소판이다.

 

렌필드의 자아실현은 카를 융(Carl Jung)의 개성화이론(Principium Individuationis)을 연상시키며, 현대인의 정신적 각성의 방법을 제안한다. 스스로 통제하고 검열하게 하는 드라큘라라는 페르소나에서 벗어나 다크서클처럼 짙은 내면의 그림자를 수용하며 자아를 모색하는 렌필드의 서사는, 사회적 압박과 기대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짓눌려 있는 줄도 모르는 현대인들의 강력한 지지를 요청한다. 중독의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도 하다. 창백한 피부와 의존성은 다양한 형태의 중독이다. 드라큘라가 주는 힘과 피는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하며, 반복된 탈출 시도와 실패 역시 중독자의 현실을 재현한다. 단순한 흡혈귀 이야기를 넘어 일중독, 약물중독, 관계 중독 등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을 감안해 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다.

 

 

 

 

 

 

# 2.

 

B급 호러 특유의 과장된 특수효과는 에드가 라이트의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나 루벤 플레셔의 <좀비랜드>(2009) 등을 연상시키는 데, 차이점이라면 두 작품은 공격의 대상이 좀비인 것에 반해 렌필드에서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건 살아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좀비 영화의 강점은 폭력의 대상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인간을 공격하는 영화는 반드시 죄책감을 관리할 대책이 요구된다는 의미다. 크리스 맥케이의 해법은 공격당하는 사람들을 렌필드적 기준에서의 괴물들로 제한하는 것이다. 영화는 살아있는 사람의 팔을 뜯어도 죄책감을 느끼기는커녕 속 시원함만 느꼈을 렌필드들의 투쟁 영화다.

 

때문에 영화는 고어(Gore)하지만 호러(Horror)하지는 않다. 폭력을 당하는 타깃이 철저하게 악의 무리이기 때문이다. 호러가 작동하기 위해선 '내(관객)'가 공격당하는 느낌이 들어야 하지만, 영화 내내 '우리 편'이 공격당하는 장면은 묘사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도입에서 렌필드의 내장이 쏟아지는 장면 정도고, 그마저도 인물이 자아를 탐색하는 시점 이후로는 말끔히 사라진다. 수틀린다고 배를 갈라버리던 드라큘라가 렌필드의 배신을 알고서도 공격하지 않은 이유이자, 드라큘라가 교회의 치료모임 사람들을 공격하는 모습이 생략된 이유이며, 레베카의 언니가 공격당해 죽는 장면 또한 연출되지 않는 이유다. 이 모든 것은 영화가 어루만지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연약한 유리멘탈을 보호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래서 과격한 묘사 이면에 지극히 유약하다. 캡사이신 한 꼬집을 넣었지만 우유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내내 렌필드는 스스로를 변호하고 감독 역시 렌필드를 변호한다. 90년 동안 어마어마한 범죄를 저지르긴 했지만, 미숙하고 용기가 없었을 뿐 타고나길 글러먹은 악당은 아니라는 식이다. 결과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렌필드는 적당한 영웅이 되고, 아버지 팔아가며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던 레베카는 거짓말처럼 그를 두둔한다. 수녀 몇 명과 행복해 보이는 커플 버스 1대만큼의 치어리더는 드라큘라의 먹이 이전에 렌필드를 주눅 들게 만드는 존재들이다. 그들 앞에서 멋지게 활약하는 렌필드는 심리치료 모임에서조차 말 한마디 못하는 찐따의 망상이다.

 

 

 

 

 

 

# 3.

 

드라큘라는 자칫 가장 폭력적인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불쌍한 존재라는 것은 흥미롭다. 온몸이 불에 타질 않나, 걸레짝이 되어 그지 같은 곳에 숨어 살지 않나. 먹이는 죄다 렌필드가 구해왔고, 악행은 대부분 테디 일당이 저지른다. 그럼에도 잘못을 누적하는 과정이 생략된 드라큘라는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어떤 면에선 가장 '감정적인 분풀이'를 당한다. 당연하다. 드라큘라는 현대인이 무찌르고 싶은 괴물들을 대신하는 더미 샌드백으로, 캐릭터의 악행이 구체화될수록 현실의 렌필드들이 자신의 괴물을 얹는 데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

 

결말에 이르러 드라큘라를 처단하는 방식은 특히 지독하다. 드라마틱한 액션으로 역전하는 것이 아니라 퇴마진에 의한 포획이라는 것이다. 뭔가에 단단히 묶어놔야, 그래서 내가 안전하다는 것이 확실해야 마음이 놓이는 건 찐따들의 습성이다. 렌필드가 직접 드라큘라를 극복한다면 그런 건 렌필드라 가능한 것이라며 시무룩해할 찐따들을 위로하기 위함이기도 있다. 퇴마진을 어떻게 알아냈냐는 물음에 레베카는 인터넷 주술 사이트에서 봤다 말한다. 다행이다. 혹여 친구한테 배웠다고 하면 친구 없는 우리들은 어쩔 뻔했나.

 

끝으로 두 니콜라스의 연기는 훌륭하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과장된 연기는 제한적인 만화적 캐릭터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니콜라스 홀트는 수많은 액션뿐 아니라 갈등으로 가득한 피곤한 인물을 두텁게 표현한다. 활용이 단순한 캐릭터들임에도 불구하고 입체감이 있었던 것은 카리스마를 연출하는 두 배우의 공이 크다. 아콰피나는 특별히 좋은 연기를 하진 않지만 매력적인 캐릭터의 덕을 보고 있다. end.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