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아빠. 방금 사람을 죽였어요.
로버트 에거스 감독,
『라이트하우스 :: The Lighthouse』입니다.
# 1.
데뷔작 <더 위치>(2015) 보다 더 난감한 상징과 피학적 연출로 돌아온 호러다. 특유의 절망적인 각본과 음습한 묘사는 여전하다. 습기 가득한 공간, 바늘로 찌르는 듯한 캐릭터, 인물을 포획하는 화면, 신화적 모티브를 재구성한 스타일, 타협 없이 투철한 형식미는 지독하다. 두 주인공을 극단적 공간에 붙들어 매는 중력과 그 반동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원 없이 뿜어내는 배우의 열연, 최대치의 비장미를 더하는 흑백의 미술은 다소의 호불호와 별개로 이견이 없을 강점이다.
호러로 소개하긴 했지만 관객을 직접 자극하는 류는 아니다. 두 주인공, 특히 젊은 등대지기 에프라임 윈슬로(로버트 패틴슨 분)의 영혼이 깎여나가는 절망과 폭발하는 광기를 관찰하는 작품이다. 거의 정사각형에 가까운 1.19:1의 화면비는 인물을 옥죄는 것임과 동시에 관객을 손아귀에 쥐고 미쳐가는 인간의 눈을 마주 보게 하기 위함이다. 광기와 환각과 분노와 공포와 피로와 애증이 뒤엉켜 프로메테우스적 최후로 추락하는 주인공은 일견 처연하고 서글픈 것으로, 영화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건 무너지는 윈슬롯을 통해 관객 자신의 죄책감을 상상하는 것에 있다.
# 2.
복잡한 상징이 뒤엉킨 미장센과, 환각과 현실과 신화를 넘나드는 플롯은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다. 이후의 글은 나름의 추측으로 풀어낸 '죄책감과 남성성을 둘러싼 프로이트적 해석'으로, 영화란 본질적으로 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니 굳이 얽매일 필요는 없음을 전제한다.
작품이 난해한 것은 본질적으로 화자를 신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을 살해한 과거도 그러하고, 정신적으로는 더욱 그러하다. 관객은 윈슬롯이 비춰내는 세계가 사실인지 환각인지 망상인지 착란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환각과 망상과 착란을 세계와 구분하지 못하는 윈슬롯의 불안만큼은 의심할 수 없다. 우스갯소리로 데카르트를 빌리자면 윈슬롯이 불안하다는 명제야 말로 전능한 기만자가 속인다 하더라도 반드시 참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는 영화가 윈슬롯의 불안에 대한 것임을 의미한다. "융과 프로이트가 둘 다 팝콘을 맹렬히 먹는 영화가 되길 바랐다."는 감독의 인터뷰처럼 로버트 에거스의 다크 판타지는 지극히 정신분석학적이다.
윈슬롯은 살인자고, 그 이름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훔친 것이다. 이름은 일반적으로 자아를 의미한다. 자신의 이름을 죽인 사람의 이름으로 대신함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에 완전히 포획됨이다. 섬에 고립된 등대지기의 상황을 윈슬롯의 내면이라 추측한다면, 이를 둘러싼 거센 파도와 폭풍은 엄습하는 죄책감이라 생각하면 무난하다. 마땅히 그가 오르고자 하는 등대는 어떤 형식으로든 구원일 수밖에 없다. 구원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던 인물이 늙은 등대지기를 죽여서까지 빛에 도달하려 했으나 허구적 구원에 눈이 먼 이야기라 이해하면 큰 틀이 잡히기 시작한다.
# 3.
늙은 등대지기 토마스 웨이크(윌렘 대포 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윈슬롯은 바다새를 죽인다. 토마스에 따르면 바다새는 죽은 선원의 영혼으로 인간과 다름이 아니다. 처참한 바다새의 패대기는 곧 살인과 같은 것이다. 수조에서 발견된 죽은 새의 시체와, 어망에서 발견된 목 잘린 머리는 자신의 죄를 유일하게 목격한 증인으로서 스스로 만들어낸 환각이다. 초반 통나무 밑에 깔려 익사하는 꿈을 꾼다거나 순간순간 살해당한 남자의 섬광을 보는 장면을 지나, 마지막 토마스를 살해하는 방식이 땅에 파묻는 것이 아니라 도끼로 찍어 죽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살인의 자백이다.
죽은 새의 시체와 목 잘린 머리가 각각 수조와 어망에서 발견되는 것은 비단 고압적인 파도와 폭풍우뿐 아니라 모든 '물'이 죄책감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윈슬롯은 쏟아지는 물을 말리기 위해 젖은 석탄을 옮겨 불을 지피고 애써 못질해 집을 고치지만 한없이 미약하다. 그칠 기미 없는 죄책감을 잊어보려 술을 탐닉하고 섹스에 매몰되려 하지만 부질없다.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것조차 충분치 않다. 최후에 구명정을 타고 도피함은 살인 일체를 잊는 것으로 그마저도 실패하는 데, 이를 가로막는 도구는 다름 아닌 자신이 살해하는 데 쓴 도끼다. 살점을 찍었던 그날의 감각은 원한다 해서 도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 4.
토마스와 윈슬롯은 엄격한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 시작해 아내와 남편을 지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뒤엉킨 것으로 묘사된다. 윈슬롯의 본명이 같은 이름 '토마스'였음이 밝혀지는 것을 넘어, 심지어 동성애적 표현까지 이어지며 두 사람의 강한 관계성이 반복적으로 암시된다.
토마스는 윈슬롯의 유년기에 형성된 자아의 조각으로서 아버지이자, 동시에 아버지를 닮은 자기 자신이다. 어릴 땐 아버지의 강인한 힘에 동경하고 복종하다 성장한 후 실망하며 증오하게 된다는 프로이트적 분석에 영화의 플롯이 지나치게 들어맞는 이유다. 영화는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 죄책감에 잠식된 남자가 무의식 깊은 곳에서 사랑과 증오의 아버지에게 구원을 갈구하는 이야기다. Papa, just killed a man. put a gun against his head pulled my trigger, now he's dead.
분노와 폭력, 공포와 굴종의 양면성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것으로 두 사람의 애증은 남성성 그 자체에 대한 탐구로 과격하게 확장된다. 바다의 인어를 욕망하다 바다의 신인 프로테우스를 살해하고 남근처럼 우뚝 솟은 등대의 끝에 오르는 윈슬롯은 어머니를 독차지하기 위해 아버지를 증오하는 오이디푸스다.
거친 바다를 지배하기 위해 만든 인공의 북극성은 오만이고 이는 프로메테우스적 결말과 연결된다. 그렇다면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대신하는 윈슬롯의 빛은 무엇일까. 결말부 윈슬롯의 뒤를 쫓는 토마스의 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씬은 사샤 슈나이더의 그림 <최면>(1904)의 오마주다. 최면은 거짓된 안식이다. 죄책감의 폭풍우에 미쳐버린 윈슬롯이 찾아 헤맨 최면은 물론 면죄다. 자신을 구원해 주지 못하는 아버지의 윤리를 살해하고 신을 찾아 면죄를 꿈꾸던 남자는 결국 눈이 멀어 새에게 가슴 쪼이는 형벌을 받는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음이다.
# 5.
그 외에도 감독은 추상적인 정신을 다양한 신화적 모티브를 차용해 영화 언어로 활용한다. 프로메테우스와 프로테우스의 그리스-로마 신화, 고딕 건축, 근대 미술, 크툴루가 혼재하지만 이들의 이미지에 크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윈슬롯의 정신세계를 감각하는 데 각각의 뉘앙스만 접근할 수 있다면 충분히 훌륭하다.
전작 <더 위치>는 무지의 어둠 속에서 등불을 들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였고, 차기작 <라이트하우스>는 죄책감의 어둠 속에서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이야기다. 토마신의 등불은 윈슬롯의 등대와 강하게 연결된다. 등불이 등대만큼 커졌다는 것은 역으로 인간이 작아진 것이기도 하다. 등불을 들고 선 인간의 사회적 이야기는 작은 등불이 큰 등대처럼 보이는 개인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면에서 연작이라 이해해도 무리는 없다.
더 위치에서도 중요한 것은 등불이 아니었다. 등불로는 턱없이 부족한 무지의 어둠에 대한 공포다. 마찬가지로 빛으로서의 등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등대로도 밝힐 수 없는 죄책감이라는 어둠에 대한 공포다. 더욱 크고 잔인해진 어둠은 휘몰아치는 태풍과 들이치는 파도가 되어 내면을 깊은 연옥으로 인도한다. 처음엔 정돈된 복식으로 격식을 갖춰 등장한 두 사람은 점점 해지고 지저분해지고 벗어던지고 속살을 내비치다 결국 장기를 꺼내 먹힌다. 의식의 영역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심연과도 같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다가감이다. 죄지은 자의 두려움에 다가감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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