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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Horror

최면은 세 번이었습니다만 _ 악마와의 토크쇼, 케인즈 형제 감독

그냥_ 2024. 5.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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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도대체 언제부터... 내가 최면을 걸지 않았다고 착각한 거지?

 

 

 

 

 

 

 

 

캐머런 케언스, 콜린 케언스 감독

『악마와의 토크쇼 :: Late Night with the Devil』입니다.

 

 

 

 

 

# 1.

 

내레이터의 보이스오버가 주인공 잭 델로이의 배경을 설명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그는 인기 심야 토크쇼의 진행자로 능력과 야망을 겸비한 인물이지만, 전설적인 진행자 자니 카슨(Johnny Carson, 1925-2005)의 뒤에 가려진 만년 이인자다. 급작스런 아내의 죽음으로 극심한 슬럼프를 겪은 그는, 재기를 위해 오컬트 에피소드를 기획하며 승부수를 던진다. 사이비 종교의 생존자 릴리, 심령술사 크리스투, 초심리학자 준 로스-미첼, 트릭 파괴자 카마이클의 라인업은 영원히 역사에 남을 에피소드를 예고한다. 하필 그 소원을 들은 것은 원숭이 손이었지만 말이다.

 

부드러운 코미디로 흘러가던 쇼에 점점 미스터리한 일들이 벌어진다. 크리스투의 이상 행동과 죽음, 이해할 수 없는 방송 사고, 혼자 연주되는 테레민 따위에 스텝들은 크게 동요하지만 조급한 진행자와 탐욕적인 제작자는 방송을 강행한다. 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행해지고. 결국 릴리의 몸을 빌린 악마가 강림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파멸에 치닫는다. 초현실은 최면이라는 모습을 빌려 스튜디오뿐 아니라 브라운관 너머까지 공격해 1977년의 시청자와 2024년의 관객 모두를 공포에 떨게 한다. 영화는 몇몇의 서술 트릭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선형적인 이야기로서, 명확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조금도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다.

 

 

 

 

 

 

# 2.

 

1977년 심야 토크쇼 <나이트 아울즈(Night Owls)>의 핼러윈 에피소드에서 벌어진 기이하고 충격적인 사건의 기록이다. 파운드 푸티지와 모큐멘터리 기반의 영화는, 호주 국적의 형제 감독 캐머런 케언스, 콜린 케언스에 의해 연출된다. 통상의 파운드 푸티지는 과거 사건과 현재 관람을 분리한 후 그 간극을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데 반해, 두 감독은 방송 시청이라는 형식을 빌려 상호적 관계를 실험한다. 영화 속 초현실적 사건뿐 아니라, 지켜보는 관객까지 악마로부터 주시되는 듯한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작품의 킬링 포인트다.

 

영화의 매력은 매우 넓은 이야기를 매우 가까이서 풀어낸다는 점이다. 경제적인 제작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레이어는 기대보다 더 광활하다. 출연진의 무대와, 연출진의 백스테이지와, 방청객의 객석과, 시청자의 거실과, 관객의 영화관과, 악마의 지옥이 동시에 작동한다. 1977년의 핼러윈과, 그 이전에 벌어진 잭의 과거와, 릴리와 사이비 종교의 내막과, 관객의 2024년 역시 동시에 작동한다. 눈앞에 벌어지는 현실과, 머릿속에 존재하는 기억과, 최면에 의한 망상과, 카마이클의 논리적 추론과, 초현실적 심령 현상이 동시에 작동한다. 면 매우 협소한 영화이기도 하다. 관객은 스튜디오를 주로 보게 되지만, 진정한 영화의 공간은 '심야 방송을 보는 시청자의 눈과 브라운관 사이 1미터 남짓'이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각각의 레이어 사이에서 관계가 발생할 때마다 관객은 초현실적인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감독은 그것을 1미터 남짓의 초근거리에 투사시켜 악마의 존재감과 권능을 설득해 장르를 작동시킨다.

 

 

 

 

 

 

# 3.

 

영화에는 최면이 두 차례 등장한다. 하나는 거스에게 건 카마이클의 최면이고, 둘은 잭을 향한 악마의 최면이다. 관객은 두 최면 모두를 경험하게 되는 데, 흥미로운 것은 둘의 연출이 상이하다는 점이다. 거스의 최면은 1970년대 시청자의 환각으로 표현된다. 이는 지금 기준에서 다소 조악한 고어 연출이 증명한다. 문제는, 카마이클은 1977년이라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는 그저 사람들에게 최면을 시도했을 뿐이고, 최면이 관객 스스로의 상상이 만든 환각이라면, 어느 시점에서 쇼를 보는가와 무관하게 오롯이 개인적이어야 한다. 즉, 2024년의 관객은 2024년 기준의 최면을 봐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1977년의 최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일련의 연출은 40년의 시간이 악마의 영향으로부터 관객을 보호하고 있다는 안심을 주는데, 이는 카마이클 능력 밖의 일로서 관객을 안심시키고자 하는 '어떤 존재'가 관객이 영화를 보는 그 순간에도 개입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안심은 두 번째 잭의 최면을 통해 기망이었음이 가감 없이 폭로된다. 만약 카마이클의 최면도 2024년의 연출이었다면 비디오는 최면이 동반된 과거의 기록에 불과하겠지만, 첫 번째 조작으로 말미암아 2024년의 당신을 명확히 인지하고 의식하고 기망하는 존재의 초현실적 최면으로 승화된다. 과거를 기록한 테이프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시청자에게 개입한다는 면에서 <링>(1998)이 연상되기도 하는 대목이다.

2024년의 시청 경험조차 악마의 손아귀에 있다면 그보다 하위 레이어의 조작들이 모조리 악마의 장난 아래에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릴리의 의아한 행동뿐 아니라 릴리의 생존과, 쇼의 기획과 전개, 게스트의 구성, 악마의 소환, 잭의 과거, 진행자와 프로듀서의 욕망, 매들린의 죽음까지 모두 말이다. 그 시점에서 잭이 과거를 거슬러 쇼의 시작을 되짚어가듯, 관객 역시 영화를 되짚어가며 소름 끼치는 순간들을 되돌아보게 되는 데, 그것이야 말로 영화 속에는 등장하지 않는, 악마가 당신에게 던진 세 번째 최면이다.

 

 

 

 

 

 

# 4.

 

1970년대를 묘사하는 연출은 그 자체로 큰 재미다. 특유의 아카데미 비율과 컬러 팔레트는 당대의 분위기를 정확히 묘사하며 독창성에 기여한다. 문제의식 없는 실내 흡연, 레트로 의상과 분장, 양식적인 무대 연기와 대사 처리 따위만으로도 일정한 즐거움이 있고, 이는 모큐멘터리로서 몰입과 개성의 근거가 된다. 몇몇의 시대적 묘사들, 누가 보더라도 제임스 랜디에서 따온 카마이클 헤이그의 캐릭터는 마치 실제 있었던 일인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특히 자니 카슨(Johnny Carson)이라는, 어쩌면 잠시 잊혔을지도 모를 위대한 이름은 동시대를 살았을 관객들에게 짙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운명의 밤에 녹화된 것으로 알려진 마스터 테이프와 광고 시간의 비하인드가 교차하는 구성이다. 비하인드는 흑백의 HD 화면, 녹화분은 자글자글한 컬러 VHS 화면으로 연출되는데, 다만 일련의 교차 구성이 효과적인 가는 다소 의문이다. 비하인드 씬이 영화를 따라가는 데 필수적인 정보와 완급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친절'처럼 느껴져도 이상하진 않다. 후반부 잭의 환각과 관련된 연극적 장르전환 역시 의도와 별개로 호불호를 동반하는 듯하다. 순간 화면을 흔드는 노이즈라거나, 카메라를 바라보는 릴리의 시선, 처음 보는 사람의 이름을 아는 등 암시적인 위화감이 중요한 작품인데, 만약 그것을 재빠르게 캐치하지 못한다면 자칫 템포가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인트의 공포 요소와 연출의 창의성 등이 단점을 상쇄하고 있음엔 분명하지만 말이다.

 

 

 

 

 

 

# 5.

 

잭 델로이를 연기한 배우는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이다. <다크 나이트>(2008), <프리즈너스>(2013), <앤트맨>(2015)을 통해 착실히 성장한 그는 번듯한 장편 영화를 홀로 이끌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한다. 당대 미국 토크쇼 진행자를 연상시키는 능청스러움과, 생방송을 수습해야 하는 사람의 불안과 욕망을 입체적으로 연기한다. 정통 호러라기보다는 코미디와 판타지가 접목된 멀티 장르이지만 그럼에도 일정한 긴장과 집중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배우의 기여가 크다.

 

영매사 크리스투 역의 파이살 바지, 초심리학 박사 준 로스-미첼 역의 로라 고든, 초능력 사냥꾼 카마이클 헤이그 역의 이안 블리스, 보조진행자 거스 맥코넬 역의 리스 오테리 모두 개성적인 연기를 선보이지만 그럼에도 짚어 칭찬할 만한 것은 릴리 역의 잉그리드 토렐리다. 다양한 암시를 알게 모르게 줘야 하는 사람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도 좋고, 폭발력을 보여야 하는 순간의 집중력과 카리스마도 훌륭하다.

 

호러로서는 조금 마일드하지만 그래서 자유롭고 입체적이다. 흥미로운 캐릭터들 간의 상호작용, 라이브를 강조하는 카메라 워크, 잭 델로이의 드라마적 진지함과, 초자연적 현상 사이에서의 팽팽한 균형을 통해 유머와 공포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데 성공한다. 미국의 심야 토크쇼까지는 무리라 하더라도 어릴 적 <이야기 속으로>나 <토요 미스터리 극장> 등의 텔레비전 쇼를 보고 자란 사람들에겐 특별한 반가움이 있을지도 모른다. 파운드 푸티지 특성상 멀리 큰 화면의 극장에서 보는 것보다 작지만 가까운 화면으로 집에서 보는 편이 경험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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