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모른다는 것을 안다.
드니 빌뇌브 감독,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 Sicario』입니다.
# 1.
자신만만한 젊은이는 선언한다. "사람은 초록이다." 그가 아는 아무개들 모두 초록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연두를 만난다. 잠시 당황한 그는 초록색 계열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하루는 푸른색을 만난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청록의 무리라 수정한다. 붉은색 사람을 만나며 혼란에 빠진다. 사람은 색인가 보다 후퇴한다. 시간이 흘러 어릴 적 초록색이었던 아무개가 노란색이 되어 있음에 당황한다. 사람의 색은 변하기도 하는 것인가. 파란색인 줄 알았던 누군가는 원래부터 보라색이었고,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처음으로 돌아가 자신의 판단부터 의심한다. 그리고 마침내 투명의 누군가를 만난다. 어쨌든 사람은 색이라 생각하던 믿음은 허탈하게 무너진다. 어린 손주가 질문한다. "할아버지, 사람은 뭐예요?", "글쎄다... 이 할애비는 평생을 살아도 모르겠구나..."
현명한 노인은 모른다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람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삶이 무엇인지 모르겠고,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말한다. 물론 여기서의 모른다는 것은 정보의 총량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범주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우주를 모른다는 것을 알기 위해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짓궂게 추궁하길 즐겼다는 어느 그리스의 철학자가 말한 '모른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 2.
<시카리오>는 첩보 스릴러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단순한 전개다. 미국의 CIA와 FBI가 공조해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과정은 일방적인 살육이다. 흔한 위기나 역습은커녕 방해조차 없다. 단순한 상황은 단순한 관계로 이어진다. 건식 벽체에 숨겨진 수십구의 시신과 과격한 연출은 선악을 명확히 한다. 주인공 케이트에게 산탄총을 먼저 갈긴 것도 카르텔이고, 그가 받은 총알 세례는 선제공격의 대가임에 분명하다. 지하실에 폭탄을 숨겨놓고 터트리는 잔혹한 악행과 뿌연 먼지 속에 떨어진 참혹한 손목은 주인공과 관객에게 손쉬운 당위를 제공한다. 태스크포스를 지원한 그녀는 자신이 이 전쟁의 선량한 편에 있고, 미국도 그 편에 있다 믿을 만큼 젊고 순진하다.
반면 작전은 케이트의 기대와 달리 흘러간다. 그녀는 내내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정보를 얻지만 사건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누가 누구인지, 심지어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 알지 못한다. 교통 체증 속에서 누가 마약 카르텔인지 알 수 없다. 이민자들 사이에서 누구를 선별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거만하고 허술해 보이는 멧을 믿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술집에서 만난 다정한 남자를 안아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미로의 골목 너머너머 누가 숨어 있을지 알 수 없다. 누가 자신에게 총을 겨눌지 알 수 없고, 겨눠진 총이 정말 발사되리라는 것조차 알 수 없었다.
케이트의 시점에서 영화는 모르는 과정이자, 정확히는 '모른다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드니 빌뇌브는 선악과 피아가 지극히 단순한 상황에서조차 도무지 알 수 없는 인간과 세계가 존재함을 소개한다.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와의 첫 만남에서 "미국인에게는 아무것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의심하게 될 것"이라 말하는데, 이는 케이트뿐 아니라 관객에게 건네는 충고를 겸한다.
# 3.
건물을 단숨에 파괴하는 트럭과, 하늘을 나는 전용기와, 깨끗한 유리벽의 보호를 받던 케이트는 땅에 추락해 황무지를 걷고 보이지 않는 미로를 지나며 현실을 마주한다. 작전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케이트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첫 작전에서 가장 선두에 섰던 그녀는 마지막 작전에서 가장 뒤에 나타난다. 그녀가 뒤로 간 것은 아니다. 앞으로 가지만 가장 더디게 앞으로 가고 있었을 뿐이고, 그것은 작전을 방해하며 뒤로 가는 것과 구분되지 않는다. 영화 내내 작전팀은 공격자이지만 케이트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공격당하기만 한다. 선량하고 정의로운 방해자인 그녀는 끝내 작전은커녕 자신의 처지와 행동의 의미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야간 투시경으로 바라본 흑백의 시선으로 세계를 알고 있다 착각하는 것은 한심하다. 동굴을 나와 철없는 주먹질을 날리는 케이트는 경험 많은 맷에게 호되게 제압당한다.
멧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세계의 20%가 마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유와, 카르텔을 완전히 소탕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기에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인물이다. 그는 위법적이고 초법적이지만 (미합중국 대통령으로 추측되는) 선출된 누군가의 지지를 받는 가장 당위의 존재다. 능청스럽고 여유롭고 거만하지만 강인하고 냉소적이며 책임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알레한드로는 정체불명의 복수귀다. 케이트는 그를 제거하려는 갱단의 경쟁자라 생각한다. 그는 악행을 하는 사람이고 악당이니 당연히 멕시코의 카르텔일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알레한드로는 아내와 딸을 비참하게 잃은 멕시코의 검사였다. 법치를 수호하는 케이트와 같은 과거를 가진 인물이었으나, 선량한 가족을 보호해 주지 못한 법의 배신에 위법의 영역으로 뛰어든 또 다른 케이트다. 만약 도입에서 손목이 날아간 사람이 케이트의 부하가 아니라 그녀의 가족이었다면, 그녀는 알레한드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 4.
부패한 경찰 실비오는 아들이 있다며 애원하지만 결국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 관객은 실비오를 살려줬으면 하는 마음을 느낄 것이다. 가족에게 다정한 모습이라거나, 아들과의 축구 약속, 총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 모습 따위를 통해 연민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레한드로가 그의 이름을 묻는 것 또한 이름을 관객에게 들려줌으로써 의미 있는 존재로 격상시키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실비오가 카르텔에 부역한 부패경찰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직후 알레한드로는 중간 보스를 협박하며 그의 차에 올라타 이동한다. 복수자가 부역자를 협박해 보스에게 다가간다는 상황은 동일하지만, 관객은 후자의 경우 실비오와 달리 안타깝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는 다정한 사정이 없었을까. 이 얼마나 편협한가.
딸이 생각나게 한다는 케이트의 목에 총구를 겨누고 눈물을 닦아주는 알레한드로는 감독의 마지막 질문이자, 관객이 이겨내야 할 진정한 최종 보스다. 이젠 이 사람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겠냐고 말이다. 시카리오는 화려한 액션 연출이 아닌 마지막 순간까지 모순된 알레한드로라는 존재를 설명하기 위한 영화다. 서명을 손에 든 알레한드로에게 안과 밖이 중첩된 발코니에 선 케이트가 총을 겨누자 뒤돌아 지긋이 바라보는 데, 케이트가 쏠 수 없다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케이트가 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여기서 죽어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당신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말할 수 있는가.
# 5.
케이트는 알레한드로에게 무슨 일이냐 질문한다. 그는 차분하게 대답한다. "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물어보시는군요. 그냥 시간만 잘 보고 있으면 돼요." 시간만 잘 보고 있어라는 말은 시간조차 잘 보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고, 시간도 볼 줄 모르면서 시계의 작동을 알고 있는 양 하는 것은 케이트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영화는 선량한 살육과, 불가피한 고문과, 비겁한 정의가 혼재하지만 그럼에도 매우 단순하고 직관적인 상황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보다 더 단순할 수 없는 상황조차 이렇게 복잡하다면 그보다 복잡한 상황은 얼마나 입체적인 것일까. 이렇게나 단순한 상황에서조차 이해하고 구분하고 분류할 수 없는 부조리가 가득하다면, 그보다 더 복잡한 인간들과 복잡한 이해관계가 뒤엉킨 세계는 어떻게 안다 말할 수 있는 것일까.
너머를 알 수 없는 석양을 지긋이 바라보는 전경, 무엇이 숨겨져 있을지 모를 대지를 내려다보는 조망이다. 영화는 마약 카르텔에 대한 이야기도, 멕시코 국경 도시의 이야기도 아닌, 세계의 원리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빌뇌브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도 모르기 때문이다. 묵시록적인 연출을 지나 도달하는 처연한 결말은 허무하고 무자비한 세계를 바라보는 염세적인 시선과 짙은 한숨이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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