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인생을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피로감, 고독감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
『드라이브 :: Drive』입니다.
# 1.
<푸셔 시리즈(1996-2005)>를 연출한 덴마크 영화감독 니콜라스 빈딩 레픈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연은 감독을 추천한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캐리 멀리건이다. 브라이언 크랜스턴, 알버트 브룩스, 오스카 아이삭, 론 펄만 등이 참여한다.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연출과 리드미컬한 편집, 배우진의 열연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제64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처음으로 자신의 운전대를 잡아본 사람의 이야기다. 비록 주인공은 능숙한 드라이버지만 말이다.
전반부를 통해 쌓아 올린 주인공의 정체성은 모두 대리만족이라는 공통점 아래에 있다. 비유하자면 운전석이 아닌 보조석에 탄 인물인 것으로 일종의 비겁한 체리 피킹이기도 하다. 드라이버(라이언 고슬링)는 범죄자들의 도주를 돕는 모습으로 소개된다. 위험과 책임은 범죄자들에게 버리고 경찰을 상대로 하는 익사이팅만 선택적으로 피킹 한다. 낮엔 자동차 정비사로 일하는 데 그 역시 남이 소유한 차를 대신 만지는 직업이다. 스턴트맨이라는 직업 또한 자신의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남의 영화를 대역할 뿐이다. 레이싱 드라이버를 제안받는 것도 마찬가지. 그는 운전대만 잡을 뿐 돈을 대는 사람도, 차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도 타인이다.
이는 이웃집 여인 아이린(캐리 멀리건)과의 관계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스탠더드의 아내를 사랑하고 가정을 욕망하지만, 남편을 밀어내고 운전대를 잡을 용기는 없다. 남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대리만족 할 수 있다면 그만이고, 그의 비겁함은 적대적 관계인 스탠더드를 돕는 아이러니로 이어진다. 주인공이 앉은 스탠더드의 보조석은, 아이린과 함께 공터를 달렸던 드라이브의 따뜻하고 환상적인 눈부심으로 표현되나, 그것은 도로를 벗어나 제자리를 맴도는 고립된 망상에 불과하다.
# 2.
영화는 스탠더드의 죽음과 함께 급격히 전환된다. 마피아를 상대로 한 범행에 억울하게 휘말린 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일 뿐이다. 본질은 주인공이 스탠더드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남이 운전하는 차량의 보조석에 앉아 있던 그가 처음으로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갑작스레 잡는다. 그런 면에서 남편의 이름이 스탠더드라는 것은 흥미롭다. 감독은 자기 삶을 스스로 운전하는 모든 사람들을 '스탠더드 한 사람'이라 지칭한다.
따라서 액션이 공격적으로 전개되는 후반부는 이전까지의 비겁함이 뒤집어지는 시간이다. 타인의 고장 난 자동차를 수리하던 주인공은 스스로 차를 몰고 파괴한다. 타인의 영화에 스턴트맨으로 출연하던 드라이버는 아이린과의 사랑에서 오롯이 주인공이 된다. 다른 배우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쓰던 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면을 쓴다. 범죄자들의 도주를 돕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도주한다. 남의 이름으로 남의 돈을 벌기 위해 트랙을 달리는 대신 진짜 돈가방을 싣고 자신의 거리를 달린다. 사건의 계기가 되는 동부 해안 마피아와 그들의 돈 백만 달러는 맥거핀이지만, 자기 삶을 운전하는 가치의 값, 보다 정확히는 버거움의 값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이린과의 관계도 훨씬 솔직해지고, 이는 마지막 클라이맥스의 엘리베이터 씬으로 고백된다. 사건 전후로 구분한다면, '다른 남자의 아내와 밀애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사랑을 고백한 후 이별하는 상황'으로 전환된 것이라 요약할 수 있다. 다시 운전에 비유하자면 남의 자동차 보조석에 앉는 대신 자신의 자동차를 떠나보내는 선택이라 할 수 있고, 후자의 선택이 차라리 낫다는 것이야말로 영화의 진정한 주제의식이다.
# 3.
액션 영화는 문자 그대로 '액션'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장르의 핵심은 타격의 쾌감에 있고, 파괴는 타격을 증명하는 '리액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 니콜라스 빈딩 레픈은 '액션' 보다 '리액션'에 집중한다. 산탄 총을 쏘는 박력을 보여주는 대신 그 산탄에 날아가는 불쌍한 크리스티나 핸드릭스를 묘사하는 것에 집중한다. 즈려밟는 발길질 보다 짓이겨진 머리를 묘사하는 것에 집중한다. 면도칼을 휘두르는 폭력보다 칼에 베이는 감각에 집중하고, 포크를 휘두르는 움직임 보다 공격당한 사람의 고통에 집중한다. 이는 작품이 캐릭터를 운전석에 앉은 운전자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의 위험은 언제나 바깥에서 벌어진 사고의 리액션이며, 이는 더없이 잔인하고 생생하고 실존적이다.
감독은 인생을 하나의 드라이브로 은유한다. 다만 여기서의 드라이브란 여타의 드라마처럼 낭만적인 것은 아니다. 내달리는 동안의 뜨거움과, 가라앉는 순간의 차가움이 대비된다. 시야를 좁히고 행동을 반복적이게 만드는 빠름과, 파괴된 뒤를 두려워하게 만드는 느림 사이에서의 갈등이다. 입체적인 변속은 하얀 바탕에 노란 전갈이 그려진 재킷이라거나, 낮의 온화함과 밤의 서늘함이 공존하는 로스앤젤레스 따위의 미감과 어우러져 스타일리시한 작품성으로 승화된다.
결국은 인생을 스스로 운영하는 개인의 짙은 피로감, 그리고 고독감이다. 감독은 비슷한 괴로움에서 발버둥 치던 <영웅본색>의 소마, <올드보이>의 오대수를 끌고 와 입에 문 이쑤시개와 입 안을 노리는 장도리로 오마주 한다.
# 4.
스쳐 지나는 대사로 '개구리와 전갈'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닐 조던의 <크라잉 게임(1992)>에서도 주요하게 쓰인 바 있는 반가운 우화다. 혹자는 드라이버가 우화 속 개구리라 주장한다. 파괴에 휘말린 후반부 전개와 등 뒤에 그려진 전갈 무늬가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혹은 전갈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범죄자를 돕는 등 폭력성이 내재된 주인공이 그것을 숨기고 아이린과의 평범한 삶을 꿈꿨지만 결국 본성이 발현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둘 모두 충분히 흥미롭다.
다만 구분에 의미가 있는지는 의아하다. 모두는 각자의 순간 전갈이면서 타인의 순간에서는 개구리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드라이버는 물론이고, 범죄를 거절하지만 결국 단행할 수밖에 없었던 스탠더드, 아들을 책임지는 엄마이지만 드라이버에 이끌리는 마음이란 본성은 통제하지 못한 아이린, 그 외에 섀넌, 버니, 니노 모두 전갈로서 공격하고 개구리로서 공격당한다. 일련의 입체성은 가로로 길게 뻗은 화면을 사분절해 상황에 따라 동시다발적인 정보를 대비시킴으로써 인간을 탐구하고 있다.
라이언 고슬링에 대한 찬사는 굳이 불필요하다. 이젠 칭찬이 클리셰다. 위에서 설명한 모든 내러티브가 완성될 수 있었던 건 감독뿐 아니라 혼자 극을 끌고 나간 배우의 기여가 크다. 캐리 멀리건은 플롯 상 상당히 도구적인 역할이다. 로맨스의 상대인 것은 표면적일 뿐 본질은 주인공이 변화하는 동기이자 보상에 가깝다. 사랑과 동경과 희망 그 모든 것의 아름다움으로써 운전석에 쏟아지며 산란하는 햇빛의 의인화 같은 캐릭터라는 것이다. 즉, 보호본능을 최대한 자극하는 미친 듯한 아름다움이 본인의 역할이고, 캐리 멀리건은 자신의 몫을 더없이 훌륭하게 소화한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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