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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영화 - 배우 = 0 _ 마약왕, 우민호 감독

그냥_ 2018. 12. 2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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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벌써 2018년도 다 지나갔네요. 야심한 밤, 미떼 광고 속 아저씨들처럼 스웨터 차림에 핫초코 한잔 뽑아 들고 창가에 서서 지난 한 해를 떠올려 봅니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에게 2017년은 아마도 김수현 주연 <리얼>의 광풍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간 해로 기억되시겠죠. 곱게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날 모텔로 향하는 커플을 본 솔로의 마음처럼 너덜너덜 해진 팬들에게, 12월 끝자락에 혜성같이 나타난 장준환 감독의 <1987>은 1달 만에 뽑기 성공한 무신사 할인 쿠폰처럼 따뜻하셨을 겁니다.

 

다행히 올해 2018년은 <리얼>과 같은 인피니티 건틀렛 장착한 타노스가 나타나진 않았습니다만, 슬프게도 유례를 찾기 힘든 망작의 다단 히트에 멍든 한 해로 기억됩니다. 관상과 이승기 팬덤 빨로 날로 먹으려다 체한 <궁합>이나, 부동산 투기의 유구한 역사를 보여준 <명당>, 한 해에 두 작품 말아드신 현빈 배우와 세 작품 말아드신 마동석 배우의 영화들도 있었구요, 중요 부분 스킵하느라 내용은 생각이 안 나는 무슨 야동도 하나 나온 거 같네요. 이런데 절대 빠지지 않고 언제나처럼 설 시즌에 한번 추석 시즌에 또 한번 해서 두건 해 드시는 J.K.도 있었습니다.

 

망작들이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 사준 명품백 할부금 날아오듯 주기적으로 팬들의 마음을 찢는걸 불쌍히 여긴 믿고 보는 배우, 국민배우가 한 해의 끝자락 구원투수로 등판합니다. 과연 송강호는 작년 장준환 감독처럼 관객들에게 한줄기 희망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우민호 감독,

『마약왕 :: THE DRUG KING』 입니다.

 

 

 

 

 

# 1.

 

70' 유신시대를 호령하던 마약왕, 이두삼의 이야기입니다. 나름 순수했던 주인공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협력하기도 하고, 때론 배신하기도 하면서 화려한 성공가도를 달려 절정기를 맞지만, 그 절정과 함께 찾아온 물질적 풍요에 젖어 목적을 잃고 타락하면서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렸던 사람들에게 보복당하면서 몰락한다는, 뭐 전형적인 그런 류의 영화죠. 시사회에서 평론가들은 <내부자들>의 마이너 카피 같다 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글쎄요. 전 차라리 <스카페이스>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가 연상되는 영화인 것 같았습니다.

 

송강호가 연기한 이두삼은 금은방을 운영하며 얻은 재주를 이용해 일본으로부터 금붙이를 밀수하는 조직에서 일하는 말단 밀수꾼입니다. 나름 승승장구하던 중 우연찮게 중정부 소유의 배에 밀수품을 실은 게 문제가 되어 곤욕을 치르게 되죠. 고초를 겪으며 자신에게 소위 '빽'이 없어 이런 일을 당한 거라는 트라우마가 생긴 주인공은 이 사건을 계기로 물욕과 더불어 강한 권력욕을 가지게 됩니다.

 

한국과 일본, 중정부와 양아치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배경이 될 수 있다 생각되는 모든 사람들을 붙잡고 이용하며, 집착적으로 점점 더 많은 부와 높은 권력에 다가갑니다. 감독은 이 과정을 통해 욕망에 매몰되다 못해 욕망 그 자체가 내면화되어버린 인간의 참혹한 말로를 보여주려 하네요. 초반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스카프를 사주던, 작지만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아이들과 춤을 추던 주인공의 웃음과, 마지막의 대 저택에 홀로 버려진 짐승과 인간 그 중간 어딘가의 존재가 되어버린 주인공의 처참한 몰골은 그 극명한 대비를 잘 보여줍니다.

 

 

 

 

 

 

# 2.

 

영화는 크게 시작 1시간여 서사적으로 보면 배두나가 등장하는 지점을 전후로 나눠볼 수 있는데요. 전반부는 이두삼의 성공기이면서 동시에 주변 인물들을 직렬적으로 나열해 소개하는 파트라 할 수 있습니다. 김대명이 연기한 약쟁이 사촌동생 이두환, 김소진이 연기한 깡다구 있는 듬직한 아내 성숙경. 이희준이 연기한 대일 밀수통 최진필, 조우진이 연기한 국산 야쿠자 조성강, 이성민이 연기한 부패경찰 서상훈, 윤제문이 연기한 재일동포 양아치 김순평, 조정석이 연기한 공안 출신 검사 김인구, 배두나가 연기한 고위 권력의 꽃 김정아 등입니다.

 

하나같이 나름 멋지고 매력 있는 캐릭터와 배우들입니다. 감독은 이들을 순차적으로 균등한 기회와 위계 하에서 관객에게 소개하고, 이 인물들이 어떤 설정 하에서 이두삼의 행동을 조정하고 개입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후반부는 전반부에 소개된 주변 인물들의 존재 의미와 파편적인 사건들이 회수되며 무소불위의 존재처럼 보이던 이두삼이 어떻게 몰락하는지 외형적으로 표현하면서, 동시에 무언가에 중독되어 몰락하는 인간이 얼마나 극단적인 현실 부정으로 치닫는지 그 내면을 묘사하려 합니다.

 

 

 

 

 

 

# 3.

 

안타깝게도 영화는 총 3번의 큰 실패를 보이는데요. 첫 번째 실패는 이 전반부 구성에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캐릭터들은 나름 멋있습니다. 멋있고 매력적이에요. 매력적이긴 한데 캐릭터들이 너무 도구적입니다. 그럼 도구적인 게 나쁜 거냐? 아뇨. 도구적일 수 있죠. 감독이 캐릭터를 그렇게 쓰고 싶으면 쓰는 거죠. 분명 감독에겐 그럴 자유와 권한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기능적인 목적으로 동원된 캐릭터들을 쓰기는 마치 되게 입체적인 인물 다루듯 한다는 것이죠.

 

크리스토퍼 놀란을 예로 들어볼까요. 놀란 감독은 캐릭터를 플롯에 복무하게 만들어 필요한 용도로 쓰고 버린다는 비판을 많이 듣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 입장에서 크게 불편하지 않는 건 그런 목적으로 쓴 캐릭터들을 정말 필요한 만큼만 딱 쓰고 깔끔하게 버리기 때문입니다. <다크 나이트>의 라미레즈는 조커가 이용하기 위한 인간의 이기심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된 인물이죠. 그런 목적으로 라미레즈를 쓰면서 놀란은 라미레즈의 부모님이 얼마나 아픈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반면 <마약왕>은 캐릭터의 깊이에 비해 이야기가 쓸 데 없이 장황합니다. 윤제문이나 이성민이나 캐릭터들 모두 특정 목적만을 지향하는 대단히 단편적인 인물들인데, 그에 비해 할당되어 있는 영화의 시간은 너무 길다 보니 지루합니다. 관객 입장에선 쓸모도 없고 관심도 없는 주변부의 얘기를 계속 듣고 있어야 하는 셈이니까요.

 

 

 

 

 

 

# 4.

 

두 번째 문제는 전반부를 캐릭터쇼로 만들 거라면 적어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확실한 분위기 전환이라도 성공했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나름대로 노력은 합니다. 윤제문의 첫 등장이나 조우진의 첫 등장이나 배두나의 첫 등장. 그런 등장 씬들을 보면 신경 써서 힘줘서 만든 티는 납니다만 글쎄요. 연출의 힘이라기보단 노련한 배우들이 본능적으로 포인트를 잡은 덕이 더 커 보입니다.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분위기가 딱딱 바뀌며 국면 전환이 직관적으로 전달되야 하는 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 인물들이 중구난방으로 우르르르 쏟아지는 느낌만 듭니다. 그것도 마약왕의 세계관 속 캐릭터로서 쏟아지는 게 아니라 2018년 현실에서 알고 있는 배우 누구누구 씨가 쏟아지는 느낌으로 말이죠.

 

안 그래도 런타임이 2시간 20분이나 되는 긴 영화에서 전반부 절반의 분위기가 일관되게 무난히 흘러가 버리니까 그냥 <범죄와의 전쟁 (ver. 송강호)>를 보는 느낌입니다. 쿵짝쿵짝 70년대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최민식이 성공가도를 달리던 걸, 똑같이 쿵짝쿵짝 70년대 음악과 함께 송강호가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으로 반복해서 또 보는 느낌인 것이죠.

 

 

 

 

 

 

# 5.

 

여차 저차 소개한 주변 인물들이 이두삼을 포위하고 옥죄는 과정을 그리게 되는 후반부 여기서 세 번째 실패가 일어납니다. 관객 입장에서 지루함을 억지로 감내하며 힘겹게 기억하고 받아들여준 이 주변 인물들이 정작 하는 게 없어요. 실제로 이두삼 몰락은 스스로 빠진 마약 때문이 8할이고 하필 박정희가 죽은 게 2할입니다.

 

송강호가 몰락하는 과정에서 주변 인물들이 결정적인 역할, 송강호를 추적하는 조정석에게 절실하게 필요했던 비어있는 퍼즐을 딱딱 맞춰내는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합니다. 끽해야 마지막에 위치를 따주는 와이프 정도?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죠. 저 부호가 사는 그 큰 저택의 존재 자체를 검찰이 몰랐다는 게 설득력이 있을리가요. 여하튼 뭐 몇 보 양보해 그럴 수 있다 치더라도 그것 역시 이미 몰락할 대로 몰락한 송강호에게 막타를 날리는 정도지 몰락의 원인이 되지는 못합니다.

 

배두나는 그냥 호구구요. 이성민도 호굽니다. 이희준은 중간에 쓱 사라지구요. 김대명은 송강호가 잠시 잡혀 들어가게 만들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배두나가 빼줘서 별 의미 없습니다. 윤제문은 알아서 사고 치고 알아서 죽어주죠. 조우진 역시 가오는 엄청 잡는 데 무난하게 목욕하다 무난하게 칼 맞아 죽습니다. 다들 이런 식입니다. 하는 게 없어요. 주변 인물들이 등장은 하는 데, 배우들 모두 열심히 연기도 하고 하는 데, 실제로 이 인물들이 송강호의 발목을 전혀 잡지 못합니다. 그러니 흥미가 없죠. 흥미가 없으니 긴장감도 없구요.

 

송강호가 살인을 하고 나서 마약 하는 장면. 거기서 마약만 안 했으면, 그냥 송강호는 적당히 잘 살았을 거 같지 않으시던가요? 뭔가 할 것 같이 등장한 인물들이 죄다 쓸모없이 리타이어 하다 보니 얘네가 등장할 때마다 짜증이 납니다. 이야기가 또 늘어지는 기분이거든요. 전반부에 늘어져봐서 알아요 관객들은. 저 인물들이 등장하면 지겹다는 걸. 일례로 데모하는 곳에 윤제문이 나타났다가 도망가는 데 벌써부터 지겹습니다. 전혀 긴장이 안돼요. 왜? 쟨 살아 있으나 죽으나 아무 역할도 못할 테니까요.

 

 

 

 

 

# 6.

 

이런 큰 세 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영화 마지막 30분, 송강호의 연기는 훌륭하다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송강호 영화니까요. 송강호는 자신의 연기력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면 클수록, 연기력을 발휘해 놀 터가 넓으면 넓을수록 자신의 기량을 폭발적으로 이끌어 내 영화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는 배우죠. 영화 초중반까지는 안정적일지언정 특기할만한 연기는 없지만, 혼자 저택에 고립되어 마약에 빠져 강박적으로 미쳐 들어가는 상황에서의 연기는, 말 그대로 살벌합니다.

 

<사도>에서 아들을 잃고 난 이후의 영조 연기와는 또 다른 깊은 처연함이 있습니다. 그건 송강호 밖엔 못할 것 같아요. 대부분의 배우들, 연기 잘한다는 대부분의 배우들도 그 상황에선 마냥 미쳐서 막 화를 내는 연기를 할 것 같은데 송강호가 만든 이도삼은 묘하게 처연합니다. 미쳐있는 사람이고 분명 나쁜 사람인데도 묘한 동정심을 함께 불러일으킵니다. 그의 삶에 대한 도덕적 동의가 아니라 그냥 그런 삶을 살아온 인간, 불가역적인 파멸을 맞이하기 직전에 놓인 인간에 대한 본능적인 연민 같은 걸 불러일으키는 연기를 합니다. 기가 막히죠.

 

사족을 조금 달자면 마지막에 조정석이 저택에 왜 기어들어가는지는 지금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거 미친 짓이거든요. 검사가 왜 거길 자기가 총을 들고 들어가나요. 군인들 다 불러 모아놓고. 그래야 했던 이유는 하나겠죠. 마무리 수습을 하려면 송강호를 여기서 죽일 순 없으니까. 송강호를 살려야 되니까 조정석을 밀어 넣은 겁니다.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를 만들면 이물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죠. 합리적인 선택을 캐릭터들이 하는데 그 결과가 자연스럽게 송강호가 살아 있는 걸로 귀결되게끔 시나리오가 짜여 있는 게 아니라, 송강호를 살려야 하니까 조정석을 억지로 등 떠밀어 밀어 넣은 겁니다. 좋은 연기 몰입해서 잘 보다 마지막에 되게 불편했던 기억이네요.

 

 

 

 

 

 

 

# 7.

 

원튼 원치 않든. 한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는 탓에 어느 정도는 역사적 맥락에서 영화가 읽힐 수 밖엔 없을 겁니다. 주요 인물들은 직접적으로 대응되는 당시의 군상이 있습니다. 도덕을 압도하는 물질에 대한 집착, 내면화된 맹목적 애국주의, 독재자라는 일점에 집중된 국가권력의 가공할만한 파괴력, 빨갱이 몰이와 몽둥이로 통제되는 사회, 법을 무력하게 만드는 인맥주의, 일본 친화적인 경제성장 모델, 선전적인 새마을 운동과 뿌리 깊은 권력자들의 카르텔. 그 모든 것들의 조합이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어졌을지 언정, 동시에 내부적 모순을 견딜 수 없는 임계점에 다다르는 순간 무너져 내릴 수 밖엔 없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그 임계점이란 자기 성장에 대한 과시와 과신, 내부에 대한 불신과 목적을 상실한 인지부조화였다는 게 우리 역사 성장기의 아픈 단면을 축약하는 듯하죠.

 

여러 생각이 스치며 이런저런 영화의 제목들을 거론했는데 상업적인 측면에선 <보헤미안 랩소디>도 떠오릅니다.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무려 팔백만을 넘었다는 그 영화. 솔직히 영화는 별론데 퀸이 깡패라 잘 팔린 거잖아요? 이 영화도 약간 그런 느낌입니다. 영화는 별론데 송강호가 깡패라 팔리긴 잘 팔릴 것 같습니다. 딱히 위협적으로 보이는 경쟁작이 없다는 것도 비슷하구요.

 

분명한 건 티켓값은 송강호가 책임지고 돌려줍니다. 특히나 마지막 한 30분동안의 송강호의 연기는 미쳤습니다. 왜 사람들이 송강호의 연기에 열광하는 지를 지겹지도 않은지 그렇게나 보여주고도 또또 보여줍니다. 다만 배우의 연기가 훌륭했다는 얘기를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얘기하는 건 그거 외엔 볼 게 없다란 말도 되겠죠. 치트키 덕에 극장가 관객수로 싸우는 이 게임에서 이길 것 같긴 합니다만 글쎄요. 빈말로라도 이런 식의 흥행이 주는 뒷맛이 좋다 할 순 없습니다. 우민호 감독 보단 송강호 주연. <마약왕> 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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