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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참신한 발상, 소심한 결말 _ 납치해주세요, 팻 힐리 감독

그냥_ 2019. 1. 2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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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의심하지 않는 고정관념을 뒤틀어 역설을 이끌어 내는 건 창작자들이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론 중 하나입니다. 당연한 게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나 당연한 세상 속 당연하지 않은 이질적인 요소를 하나 삽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마찰을 조명함으로써 암기된 선입견에 의문을 던지는 거죠.

 

이 작품 역시 그러합니다. '납치'라는 아이템과 그 아이템을 둘러싼 모든 요소들을 반전시킨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려 합니다. 박찬욱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를 통해 '착한 유괴'를 다뤘다면, 팻 힐리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당사자가 원하는 유괴'를 다루려 합니다. 소재는 제법 흥미로운데요. 과연 그 결과도 흥미로울 수 있을까요?

 

 

 

 

 

 

 

 

'팻 힐리' 감독,

『납치해주세요 :: Take Me』입니다.

 

 

 

 

 

# 1.

 

영화는 납치와 관련된 모든 고정관념을 뒤틀어 보려 합니다.

 

'팻 힐리'의 세계 속 납치는 사업입니다. 음지에서 활동하는 불법적 사업이 아닌 피-납치인에게 정당한 비용을 받는 건전한 사업이죠. TV 광고까지 하는걸요. 고객들은 납치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나쁜 습관이나 습성을 고치려 하고 이를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고객에 대한 물리적 구타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방법은 어디까지나 계약을 통해 결정되며, 시간도 최대 8시간까지로 제한됩니다. 나름의 디테일들은 제법 설득력 있게 작동됩니다.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에게 순간적으로 많은 뱀을 보여준다는 식의 대상에 대한 과노출을 통한 트라우마 치료법이 없는 것도 아니니, 돈을 싸들고 자신을 납치해 달라 말하는 고객들의 심리 역시 괴상하지만 동시에 그럴싸하죠.

 

 

 

 

 

 

# 2.

 

주인공 '레이'는 초보 사업가입니다. 납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납치범, 아니 납치사라 할 수 있겠죠. 레이는 납치범이 가지는 선입견에 정반대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작업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억지 합리화가 아니라 자신의 납치가 대단히 공격적인 형태의 트라우마 치료법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으며 이 사업이 사회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편견과 달리 레이는 대단히 소심한 사람입니다. 잔인하게 말하자면 나약한 루저죠. 돌아가신 엄마를 잊지 못하고 하나뿐인 누이에겐 찍소리도 못합니다. 그 나이 먹도록 자립하지 못해 매형에게 손을 벌리는 한심한 인물이지만 그래도 돈이 벌리면 먼저 갚을 줄 아는 염치 정도는 있네요. 머리는 벗겨져 있고 그걸 감추기 위해 가발을 씁니다. 영화 내내 많은 부분에서 섬세한 모습을 보이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어리숙한 모습 역시 보입니다. 사람을 급습해 납치하는 어처구니없는 사업을 하면서 고객의 때려달라는 요구엔 어쩔 줄 몰라합니다. 납치가 진행되는 내내 누구보다 간절히 아무도 다치지 않길 상처받지 않길 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레이죠.

 

납치범이 피-납치인의 주변을 맴도는 동안 고객이 납치범의 어설픔을 지적합니다. 더 리얼하게 해 달라고 말하죠. '애나'를 납치하는 이틀 동안 '레이'만 점점 만신창이가 됩니다. 총은 가짜고 가짜 총에 맞는 사람은 그 총을 준비한 납치범이구요. 심지어 영화 말미엔 오히려 납치범이 피해자에게 결박당하고 역으로 납치되기까지 합니다.

 

 

 

 

 

 

# 3.

 

레이의 납치 사업은 그럭저럭 굴러왔습니다. 적당한 손님들이 적당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찾아와 적당한 조건으로 적당한 거래가 이루어졌었죠. 하지만 이 평온한 사업체는 '애나'라는 문제의 손님이 등장하며 어그러집니다.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파격적이고 파괴적인 조건들과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거액의 계약금이 제시됩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레이는 결국 그녀의 의뢰를 받아들이고 납치를 감행합니다.

 

그런데 어라? 납치하고 보니 이 여자가 '자신은 납치를 의뢰한 적이 없다' 말하네요? 어떡하지? 경찰이 출동하고 수배가 내려집니다. 이건 예상 밖인데요. 수습해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레이 자신은 납치범이 아니라 납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건전한 사업자일 뿐이니까요.

 

# 4.

 

누차 말씀드린 대로 흥미로운 설정입니다만, 문제는 이 흥미로운 설정 안으로 관객을 불러들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감독은 어떤 식으로든 관객이 감정이입에 성공하도록 만들었어야 합니다만 철저히 실패합니다. 영화가 아무리 코미디 팝콘무비라지만 어쨌든 그 소재가 납치인 이상 범죄 스릴러의 특성들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관객의 몸을 스크린 가까이로 끌어당기려면 몰입의 매개가 될 인물이 있어야 함은 당연합니다.

 

관객 입장에서 감정을 이입해 걱정하고 응원할 대상이 없습니다.

 

레이는 무작정 선한 인물도 아니거니와 그의 선택을 공감하고 동정할 만한 지점이 없습니다. 레이가 쿵짝쿵짝해서 감옥에 간다 해도 관객은 심드렁합니다. 그렇구나. 감옥에 갔구나. 끝이죠. 그렇다고 애나에 감정이입을 하기엔 이 인물에 대한 설명이 너무 빈약합니다. 기본적으로 그녀의 모호함이 이야기의 핵심이다 보니 인물 묘사가 디테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테일러 쉴링'의 절규에도 심정적 동화가 이루어지지 않죠. 배우는 소리를 지르고 울고불고 하지만 관객은 저 여자가 걱정되지도 않거니와, 애초에 관객은 그녀의 신변이 너무도 안전하다는 것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극에 따라 스릴러임에도 감정의 동화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감독의 선택이 그러했다면 김성훈 감독의 <끝까지 간다>처럼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압도적인 분위기라도 연출적으로 만들었어야 했습니다만, 이 역시 실패하죠.

 

영화에선 포크로 등을 찍고, 경찰이 나타나 압박하고, 곰도 잡을 법한 장총이 겨눠지고, 적막한 별장으로 장소를 옮기고, 막 서로 목도 조르고, 욕조에 묶어 놓고, 피도 흐르고 하면서 끝으로 끝으로 치닿는데, 관객은 되려 심드렁합니다. 그전까지 만들어온 영화의 톤이 코미디의 톤이라 어떤 인물이 죽어나갈 것 같지도 않거니와, 백보 양보해 인물이 리타이어 한다고 해도 그러려니 할 테니까요. 여자가 죽는다구요? 그럴 수도 있겠죠. 남자가 죽는다구요? 뭐 죽을 수도 있겠죠. 드르렁드르렁.

 

 

 

 

 

 

# 5.

 

영화의 마지막의 마지막 한방을 날려야 할 결말에서 비장의 무기로 반전카드를 제시합니다. 그 반전이란 게 무려...

 

애나가 직접 납치를 의뢰한 게 맞았습니다!

애나는 더 극적인 납치 체험을 위해 레이에게 거짓말을 했던 거죠.

우와! 신난다! 만세!!

 

팻 힐리는 감독이자 주연입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납치범의 소심함이 감독에게까지 이어졌나 봅니다. 아니, 소심함 이전에 반전물에 대한 감독의 이해도가 낮다고 밖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반전물은 기본적으로 중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서사에서 관객을 한쪽으로 몰아넣고 반전이 터지며 중의적인 복선들과, 다른 경로였음을 암시하지만 관객이 놓치거나 무의식 중에 외면했던 떡밥들이 좌르르 회수되면서 쾌감을 주는 장르... 니까요.

 

영화의 반전은 서사를 다시 짚어가도록 하지 못합니다. 애나가 직접 의뢰한 게 맞다는 걸 보는 순간 '아...'가 전부입니다. '아... 그랬구나. 뭐, 그럴 수 있지.' 이 반전으로 인해 관객이 느낄 감정은 '그 여자 참 연기 잘하네.'가 전부입니다. 물론 '레이'의 입장에선 눈이 돌아갈법한 대반전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레이에게 감정이입이 안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6.

 

전형적인 넷플릭스 스타일 팝콘무비입니다. 나름 발칙하고 유쾌하고 도발적인 아이디어, 예산 대비 깔끔한 영상의 수준, 드라마와 영화 사이 어딘가에 포지셔닝될 듯한 애매함, 거창한 도입에 흥분한 게 민망한 용두사미식 힘없이 마무리까지. 그래서 보고 나면 막 시간이 아깝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딱히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데 또 누가 뭐 볼까 하면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서 이거 볼까라고 콕 집어 얘기하면 '봐~'라고 심드렁하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영화랄까요. '팻 힐리' 감독, <납치해주세요>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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