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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그냥 퀸이 깡패임 _ 보헤미안 랩소디, 브라이언 싱어 감독

그냥_ 2018. 11. 4.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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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전기 영화는 늘 어렵습니다. 눈 시퍼렇게 뜬 마니아들이 영화가 좋으면 누가 깔까 봐 화가 나 있고, 영화가 안 좋으면 감독을 조지느라 화가 나 있거든요. 실화 영화처럼 대상이 서사면 좀 수정해도 넘어 가지지만, 실존 인물의 전기는 까딱 잘 못 건드리면 부두술사 빙의한 팬들의 저주를 맨몸으로 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실패하면 인생 조지는 거 한 순간이죠.

 

그럼에도 전 역적이 될 각오를 했습니다. 백만 퀸덕들이 죽일 듯 한 눈으로 죽창을 들고 있겠지만 이불 안에서라면 제 절개는 쉬이 꺾이지 않죠. 미리 말씀드리건대 전 이 영화에 불만이 많습니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보헤미안 랩소디 :: Bohemian Rhapsody』입니다.

 

 

 

 

 

# 1.

 

우선 제목부터 마음에 안 들어요. 보헤미안 랩소디? 뭐 어쩌라구요.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단 건가요, 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단 건가요. 퀸 음악을 엮어 뮤지컬 영화를 하겠단 건가요, 가사를 영상화하겠단 건가요, 냅다 아무 상관도 없는 제목을 따다 쓴 건가요. 너무 무성의한 거 아닌가요? 엑스맨만 디립다 찍다 보니 감이 떨어진 걸까요? 그래도 유주얼 서스펙트 같은 걸작도 만드신 분이었잖아요?

 

다행히 퀸 멤버들이 레코딩한 20세기 폭스 오프닝이 지나기 무섭게 아~ 프레디 머큐리 전기영화구나 하는 건 금방 알 수 있는데요. 문제는 전기영화로서의 완성도 역시 매우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프레디가 상하차 알바를 하고, 아빠랑 싸우고, 멤버 결성되고, 밴드 데뷔하고, 여자애랑 뽀뽀하고, 스타 되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만드는 데까지 딱 30분 걸립니다. 퀸이 되는 과정보다는 퀸이 된 이후의 이야기를 하겠다 선언하는 건데요. 전기 영화로서 성장기를 버린다는 건 상당히 큰 페널티입니다. 인물에 밀착하는 데 있어 성장기만 한 게 없으니까요. 물론 이런 선택이 나쁠 건 없습니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죠. 다만 그랬다면 이후의 영화를 통해 성장기를 포기했다는 페널티에 대한 착실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스타가 된 이후의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묘사도 심하다 싶을 정도로 허술합니다. 사실상 익히 알려진 사실들만 나열하는 수준이죠. 대외적인 것 말고 내면에 대한 묘사라도 있냐? 그런 것도 없습니다. 뮤지션으로써의 프레디 머큐리나 퀸의 리더이자 멤버로서의 프레디 머큐리, 락스타로서의 프레디 머큐리 모두 없다시피 합니다. 그저 '불안한 자아를 가진 독선적 천재' + '돈이 썩어 나서 술 마시고 마약 하는 락스타'의 클리쉐로만 소비합니다. 그나마 추가적이란 것이라 해봐야 게이로서의 프레디 머큐리가 전분데 이 마저도 '동성애 = 불안함' 식의 무신경하고 투박한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게 무슨 전기 영화야.

 

 

 

 

 

 

# 2.

 

주인공이 이 모양이라면 주변 인물들 대접은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모든 인물들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도구적입니다. 아빠는 프레디에게 착하게 살라 말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엄마와 동생은 가족 1호기, 가족 2호기라 할머니와 삼촌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합니다. 짐 비치는 개그 치러 나왔습니다. 칠 개그가 없을 땐 설명충 역을 부업으로 수행합니다. 존 리드는 그냥 악당 게이입니다. 얘는 프레디 머큐리의 시련, 그중에서도 양성애자로서의 갈등을 구체화한 인물일 뿐입니다. 얘 자리에 베트맨 스토킹 하는 게이 조커를 대신 데려다 둬도 달라질 건 전혀 없죠.

 

여기까진 조연이니 그럴 수 있다 칩시다. 주요 인물인 메리의 멘탈리티 묘사는 어디 갔을까요. 전 남편이자 동경하는 스타이자 상처를 주고받는 애증의 남자이면서 동시에 평생을 교류한 벗을 바라보는 메리의 멘탈리티 말이죠. 그녀는 묘사의 도움을 충분히 받지 못해 호구로 전락하고 맙니다. 멤버들은 더 심합니다. 영화 말미에 프레디가 멤버들에게 너희가 필요하다 말은 하는 데 정작 영화는 멤버들을 전혀 대접하지 않거든요. 그냥 같이 연주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인물 1호기, 2호기, 3 호기로 소비됩니다. 때문에 비 맞으며 나타난 메리의 일침도, 라이브 에이드를 앞둔 프레디의 진심 어린 사과도 와닿지 않습니다. 막말로 영화에 따르면 프레디가 솔로로 전향한 후에 존 리드한테만 안 말렸어도 딱히 멤버들은 필요 없었을 거 같은데? 란 불만에 영화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실존 인물을 함부로 건드리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연출의 묘라도 살렸어야죠. 인물이 놀 수 있는 터를 만들어 줄 자신이 없으면 영화적 연출로라도 인물에 대한 감독의 해석을 살렸어야 합니다. 연출적인 면에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특유의 비비드 한 톤 외에는 아무 내용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노래들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끊어 댑니다. 좀 듣나 싶으면 툭. 다음 곡! 좀 듣나 싶으면 툭. 다음 곡! 좀 듣나 싶으면 툭. 다음 곡! 영화에 대해 박한 평가를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 듯한데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됩니다. 여기까지 쓰는 데 벌써부터 아재, 아지매들이 도끼눈 뜬 게 보이는 기분이네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네가 퀸을 알아?

어린노무새x가 건방지게 우리 프레디가 나오는 영화를 까? 짜증 나는 놈이네?"

 

 

 

 

 

 

# 3.

 

훼이크다 이 퀸덕들아!

 

분명 전기영화로써의 완성도는 부족합니다. 그걸 부정하기는 쉽지 않죠. 하지만 완성도 부족은 그냥 음악 하나로 다 커버됩니다. 아니 커버하고 남는 음악이 꿀이 되어 귀에서 줄줄 흐릅니다. 라이브 에이드에서 하늘이 찢어질 듯 내 지르는 손 끝, 떨어져 나갈 듯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에 관객의 눈에서도 꿀이 떨어집니다. 양봉업을 극장에서 해도 될 정도죠. 웸블리를 가득 메운 관객들이 보내는 박수의 물결에 소름이 돋고 전율이입니다. 음악이 깡패란 말을 절감합니다.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지금 어플 열고 예매해서 영화관 가셔서 '들으세요'.

 

실황을 들을 수 없는 현시점에 일반인에게 극장에서 듣는 것보다 더 풍성한 공간감과 현장감의 음악을 접할 방법은 없다고 봐도 좋을 겁니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실 수 없다면 차라리 VOD로도 보지 마십시오. 극장에서 봐야 아니, 들어야 합니다. 이 영화를 싼마이 이어폰 끼고 보는 건 덩케르크를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만큼이나 부질없는 짓입니다.

 

 

 

 

 

 

# 4.

 

이런 류의 영화에는 클리쉐처럼 따라붙는 말이 있습니다. "OO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봐야 하는 영화!!" 하지만 제 생각은 반대입니다. 이 영화는 오히려 퀸의 팬이 아니거나 퀸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말미의 자막에서 보시다시피 퀸은 프레디 머큐리가 사망하는 91년을 기점으로 사실상 활동을 멈춥니다. 따라서 주로 활동한 시기를 80년대라 보고 리스너들이 보통 인생 음악을 접하는 게 십 대쯤이라 생각하면, 최소 70년생 정도나 돼야 활동하는 중의 퀸을 접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올해가 2018년이니까 벌써 50입니다. 그보다 어린 분들에게 퀸은 몇몇 옛날 음악 덕후들을 제외하면 간접적으로 학습한, 즉 모차르트나 베토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역사 속 음악가일 뿐인 겁니다. 팬들에게 뮤지션을 다시 선물하는 추모영화로 해석하기에는 쿨타임이 지나도 너무 지났다는 것이죠. 따라서 인물을 회고하는 평범한 '전기영화'로 바라봐선 곤란합니다. 그럼 뭐냐? 네. 이건 '입덕 영화'입니다.

 

입덕 영화의 기준으로 바라본다면 앞서 전기영화로서의 단점들도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게 됩니다. 영화 전체적으로 그 시대를 단순화시키고 로망만을 따다 마치 환상처럼 미화해 전달한 건 부실함이 아니라 따뜻함이 됩니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캐릭터들도 처음 인물들을 소개받고 관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친절함이 됩니다. 골골대는 프레디 머큐리를 억지로 보여주는 식의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것도 섬세한 연출이 되구요, 게이 코드도 뺄 수는 없으니 넣기는 합니다만 가급적 가볍게 순화해서 표현하는 것도 좋은 연출이 됩니다. 감질나게 토막 낸 음악들도 뉴비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음악을 들려줘서 영화관을 나서서 찾아보고 싶게 만들기 위해서로 이해되죠. 단순한 플롯과 인물들 덕에 정줄 놓고 음악을 들어도 영화를 곧잘 따라갈 수 있게도 해줍니다.

 

 

 

 

 

 

# 5.

 

뉴비들에게 이 영화는 여왕님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가 되어 줄 겁니다. 스쳐 지나는 예능 프로그램 브금으로만 들었던 음악들이 사실은 한 시대를 정의하는 음악이었음을, 그 음악들이 짱짱한 사운드에서 얼마나 큰 감동과 박력을 전달하는 지를, 그리고 그런 음악을 한 뮤지션 퀸이 얼마나 매력적인 전설들이었는 지를 소개해 줄 겁니다.

 

팬들에게 이 영화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하나 남은 낡고 찢어진 사진 같은 영화로 보일 겁니다. 팬들이 보기엔 아쉬운 부분들이 분명 많을 겁니다. 팬들만 알 수 있는 사실 관계가 잘못 묘사된 부분이라든지, 프레디의 뮤지션으로서의 묘사가 부실한 점이라든 지, 소외되어 버린 다른 멤버들에 대한 연출 등이 불편할 겁니다. 하지만 그런 낡고 찢어진 부분들에도 불구하고 그냥 있어줘서 고마운 영화란 것도 있는 법이죠. 다소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와 줘서 들려줘서 보여줘서 그것만으로도 고마운 영화. 자유로운 보헤미안이었던 프레디에게 바치는 첫 번째 헌화. 브라이언 싱어 감독, <보헤미안 랩소디>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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