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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청주대... 영화학과... 메모... _ 어떤 하루, 정가영/전선호/최진혁 감독

그냥_ 2019. 5. 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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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녀 '영주', 떠나가 버린 젊은 날을 동경하는 중년의 소녀 '로라', 처절한 현실에 지쳐 쓰러지기 직전의 가장 '연희'가 그들 나름의 어떤 하루를 보냅니다. 청주대학교 영화학과에서 만들어낸 풋풋하고 생동감 넘치는 단편 옴니버스 영화라. 5월을 시작하기에 딱이군요. 

 

 

 

 

 

 

 

 

'정가영', '전선호', '최진혁' 감독,

『어떤 하루 입니다.

 

 

 

 

 

가을. 그리고 단기. 그리고 방학.

[가을 단기 방학. 정가영 감독]

# 1.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소녀. '영주'의 이야기입니다.

 

소녀의 하루는 특별히 비극적이거나 특별히 위험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괴롭히는 건 그저 '무심함'이죠. 친구들은 연주가 엄마와 살고 있지 않다는 걸 모릅니다. 절친한 친구도 연주가 포켓몬 스티커를 모으고 있다는 건 모르죠. 아빠는 가족을 건사하느라 얼굴 한번 보기도 힘들고, 사춘기의 언니는 한창 방황하고 있습니다. 홀로 어렵게 손주를 돌보는 할머니는 아이의 학교생활에까지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고, 아빠의 동료는 엄마를 대신한다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르죠. 엄마 대신 소녀를 마중 나온 아저씨는 소녀의 마음까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아저씨의 아들은 아직 타인을 배려하기엔 어린 학생입니다. 영화 내내 얼굴을 알 수 없는 엄마는 연주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열쇠고리를 남자 친구에게 쥐어주고, 놀이동산 직원은 다정한 목소리로 가슴 아픈 말을 건네며, 집을 나간 어린아이의 편지는 온종일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죠.

 

 

 

 

 

 

# 2.

 

무심하다는 게 때론 이렇게나 무거울 수 있다는 걸 효과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혼자 동떨어져 부유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불안함과 위태로움이 영화의 발랄한 톤과 맞물리며 역설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연주를 걱정하는 관객들과, 소녀의 삶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무심함이 대조를 이룹니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함에도 영화는 담백하게 흘러갑니다. 전 영화를 지배하는 이 담백함이 좋았습니다. 아이를 어떠한 존재로 규정하려는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 역시 자신을 특별히 불쌍한 존재라 함부로 규정하지 않죠. 아이의 입을 빌어 어울리지 않는 처절함이나 외로움을 토로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쓸데없이 현학적인 대사를 만들어 주문하는 류의 겉멋이 없다는 것도 훌륭합니다. 일련의 삼삼함이 곤란한 처지를 오롯이 선명하게 합니다.

 

씩씩하게 혼자 나선 연주의 길은 위태로운 방황기이자 발랄한 모험기이기도 합니다. 양측면에서의 균형이 적절하군요. 특유의 아기자기한 감성과 섬세함이 살아 있다는 것은 작품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연주는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주인공이자, 환경을 관객에게 비추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그려진 '어떤 하루'는 평범하지만 어른인 우리들에겐 특별해 보이기도 하네요.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아이의 시선에서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정가영' 감독은 좋은 관찰자이자 친절한 사람이군요.

 

 

 

 

 

 

# 3.

 

물론 특유의 관습적 연출이 군데군데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몇몇 씬에선 대사가 매끄럽게 삼켜지지 않는 부분들도 느껴집니다. 화면에 직접 그래픽을 입히는 부분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할뿐더러 특히 버스가 지나는 장면에선 기술적으로 어색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빼버리거나 버스를 비스듬히 찍지 않는 편이 나았을 텐데요. 사운드도 섬세하게 매만져지진 않은 듯합니다. 질감이나 크기에서 불편할 때가 간혹 있었네요. 

 

그렇지만 이것들 모두 영화의 감상을 방해할 큼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몇몇의 아쉬운 점들은 '수인' 양의 깨끗하면서도 풍부한 연기가 처리했으니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 4.

 

아이는 엄마를 찾아 나섰지만 결국 엄마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울산을 향해 떠난 아이는 이제 길 잃은 아이입니다. 집에는 아빠가 없고 울산엔 엄마가 없고. 슬프네요. 결국 혼자 방학숙제를 마친 소녀에게 엄마를 찾아 나선 그날의 그 길은 쓸쓸한 가을이고, 속상할 만큼 짧으며, 하릴없이 공허한 방학입니다. 가을처럼 처연한 소녀의 일탈이 짧은 단기 방학으로 끝나길 응원하게 됩니다. 

 

소녀는 자신을 찾아온 포켓몬을 따라가며 영화의 막을 내립니다. 늦은 밤 혼자 걷는 아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무심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소녀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소녀는 마지막 퍼즐인 포켓몬을 만나 소원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소녀 로라

[로라, 전선호 감독]

# 1.

 

떠나가 버린 젊은 날을 동경하는 중년의 소녀. '로라'의 이야기입니다.

 

부부가 함께 펜션을 운영하는 '로라'가 우연히 극단에서 연기를 하는 청년을 만나 꿈같은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 내용의 단편입니다. 불륜 등의 정서보다는 젊음과 가능성, 혹은 꿈과 열려있는 시간 그 자체에 대한 동경을 표현합니다. 꿈꾸는 소녀 '로라'의 '어떤 하루'는 연극 제목처럼 황홀하면서도 허망한 '한 여름밤의 꿈'이죠.

 

동경과 회한이 중첩된 중년 여성의 감정선이 그 나이에 아직 닿지 않은 사람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만큼 잘 세공되어있습니다. 무대에 올라 젊은 청년들 앞에서 멋진 춤을 선 보이는 '로라'의 모습과, 무대에 오른 자신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던 찰나 꺼져버리는 조명은 '로라'의 내-외면의 간극과 복합적인 감정을 은유하는 문학적인 장면입니다. 젊은 청춘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로라'의 모습이 왜 이렇게 서러워 보이는 걸까요. 꿈에서 깨어난 소녀 '로라'는 청년들의 프레임 밖에 서 있습니다.

 

 

 

 

 

 

# 2.

 

영화의 마지막 비올 것 같은 날씨에 우산 걱정 하는 남편의 문자는 희망적인 좋은 결말로 보입니다. 젊음을 동경하는 중년이라고 해서, 그들이 무언가를 잃은 불쌍하고 슬픈 존재가 아님을 말합니다. 젊음은 언제나 그립고 언제나 눈부시고 언제나 동경하지만, 지금의 '로라'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걸,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불행하지 않다는 걸 담담하게 말하는 듯합니다. 이런 주제를 학생이 만들었다는 게 이채롭습니다. 뭔가 애 늙으니 같네요. '그땐 그랬지'를 만들었다던 20대 초반의 '이적'과 '김동률'이 생각나는군요. 

 

'로라' 역의 '김영서' 배우의 마스크와 연기는 인상적입니다. 소녀의 빛나는 눈과, 숙녀의 사려 깊은 표정과, 중년의 단아한 몸짓을 함께 표현합니다. 사랑스러움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녔을 텐데요. 배우는 자신의 능력으로 결과를 이끌어 냅니다.

 

 

 

 

 

 

# 3.

 

전반적으로 좋은 영화였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젊은 남자 캐릭터가 조금 더 담백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그는 '로라'를 젊음의 세상으로 초대할 안내자 정도에서 멈췄어야 합니다만, 굳이 후배를 매몰차게 거절하면서까지 '로라'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양새로 그려져 버립니다. 때문에 팔에 쓰여진 싸인을 애지중지하며 꽃을 사들고 극단을 찾는 '로라'가, 자신의 젊음을 찾는 사람이 아닌 불륜녀처럼 보이고 말죠. 주변 캐릭터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설계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보입니다. 영화 중반까지 보는 동안 '뭐지? 불륜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뭐... 말 다 한 거죠. 그리고 이런 애매한 감정선 탓에 마지막 남편의 진지한 감상이 불륜녀를 목격하고도 아무 말 못 하는 호구처럼 보이고 말았습니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솔직히 남편 캐릭터엔 문제가 많아 보입니다. 일단, 쓸데없이 너무 무례해요. 그냥 오래된 중년 부부의 무심함과 건조함 정도여도 충분했을 텐데, 감독은 굳이 이 인물을 '악당'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이건 무리수죠. 남편의 못된 행동들 탓에 중년 여성의 젊은 날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주제의식에 닿아 있는 감정이 보편성을 잃습니다. '로라'라는 보통명사가 고유명사로 전락하고 마는 거죠. 또, 후반부 남편의 내면 묘사는 영화의 사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제의식과 동떨어져 있달까요. 남편이 느끼는 감정은 이미 관객들이 스스로 느끼고 있을 텐데요. 관객은 '로라'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로라'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은 데 자꾸 남편이 끼어드는 모양새가 되어버립니다.

 

'로라'가 발레 하는 장면은 물론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습니다만, 그럼에도 설득력은 더 갖추었어야 합니다. 감성은 감성이고, 이야기는 이야기니까요. 아예 추상적인 예술영화를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언제나 감독은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야 합니다. 개연성에 이물감이 없어야 감정도 올곧이 전달되죠. 연극이 끝난 후 무대에 올라 연습하고 있는 젊은 이들 사이에 웬 펜션 주인아줌마가 시키지도 않았는 데 갑툭튀 하더니 음악도 없이 발레를 냅다 추는 건, 박수 칠 만한 그림이 아니라 뜬금없는 그림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 4.

 

매몰차게 얘기한 감은 있지만, 그럼에도 역시 이 단편은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전 제 주변을 살아가는 중년 여성들, 어머니와 이모, 선배, 은사님 등을 잠시 떠올렸습니다. 그녀들의 표정과 눈빛을 떠올렸습니다. 겉은 주름이 늘었어도 마음만은 여전히 소녀인 우리 주변의 '로라'들을 말이죠.

 

글쎄요. 문득 '로라'와 '연주'가 같은 사람인 양 함께 읽히는 건 저만의 착각일까요? :)

 

 

 

 

 

 

텅빈 주제의식 위에 전시된 절망
[속죄, 최진혁 감독]

 

# 1.

 

육중하고 피로한 영화입니다. 치매에 걸려 대소변도 가리기 힘든 엄마와, 사채 빚더미에 앉은 편부모 가족이 등장합니다. 딸은 검정고시가 꿈인 저학력자에, 아들은 아직 제 앞가림도 버거운 고등학생이죠. 집 앞에는 퇴거 명령을 전하러 온 공무원이, 집 안에는 무자비한 차압 딱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채업자는 어린 학생에게 신체포기각서를 내밀고, 빚에 떠밀린 아들은 더러운 성행위 영상을 팝니다. 하루하루가 버거운 딸 '연희'는 끝내 생계를 유지할 마지막 일자리마저 잃고 말죠. 말씀드린 대로 영화를 지배하는 정서와 상황은 대단히 치열하고 또 대단히 처절합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인상 찌푸리게 하며 주시하게 하는 무언가는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딱 거기까지 뿐이란 게 문제죠. 

 

 

 

 

 

 

# 2.

 

영화는 전반적으로 불친절한 가운데 혼자 내달리는 느낌입니다. 기승전결 없이 전전전전 하다 끝나는 느낌이랄까요.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절망과 불행을 마구잡이로 수집해 전시해둔 느낌에 가깝습니다. 불쾌하군요.

 

감독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요. 엄마가 스스로 목숨을 거둔 그날, '어떤 하루'가 가지는 의미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굳이 억지로 찾아보자면 '부모의 죽음이라는 불행'과 '현실의 짐이 덜어진 안도감'이 중첩된 미묘한 정서 정도를 찾는 게 전부입니다. 아무리 옴니버스라지만 다른 에피소드들과의 결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도 관객을 불편하게 합니다. 주제의식도 딱히 느껴지지 않고, 몰입할 만한 서사도 없죠. 어색할 정도로 너무도 많은 요소들이 마구 등장하는 가운데 그것들은 모두 제각기 따로 놉니다. 

 

누나 몰래 각서까지 쓰며 돈을 빌린 동생은 그럼 그 돈은 어디다 쓴 건가요? 밑도 끝도 없이 몰카는 갑자기 너무 뜬금없지 않나요? 허구헛 날 사채업자들에게 맞는 게 일인 동생의 등장 씬이 당구장인 건 너무 나태한 것 아닙니까? 생명보험을 들어놓고 엄마에게 올가미 매는 걸 알려주는 프롤로그를 생각할 때, '연희'는 이 일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어 보이는데요. 그런 '연희'를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란 건가요. 저기, 그리고 쫓겨나는 와중에 보험금은 어떻게 넣은 거죠? 아니지, 그 이전에 자살은 보험 지급이 안될 텐데요?

 

 

 

 

 

 

# 3.

 

옴니버스에서 벗어나 독립된 작품으로 생각해도 『속죄』라는 제목 역시 아무런 함의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무언가 '책임'을 지는 사람은 결국 연희의 엄마 외엔 전무합니다. 그렇다면 '속죄'하는 사람은 엄마인걸 텐데요. 그럼 엄마는 무슨 죄를 진 거죠? 대체 어떤 죄를 사하기 목숨을 스스로 거둔 거죠?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게 한 게 잘못이란 걸까요? 자신이 치매에 걸린 것이 죄라도 된다는 건가요? 글쎄요. 이건 너무 폭력적인 것 같은데요.

 

서사와 주제의식 모두 없다시피 하다 보니 캐릭터들 역시 너무 평면적입니다. 연희와 동생은 '힘듦'의 실체화에 불과합니다. 엄마는 '치매'의 실체화에 불과합니다. 노래방 사장과, 동생의 양아치 후배와, 사채업자도 그저 '악당'에 불과합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읽히는 게 업죠. 앞선 에피소드의 '연주'와 '로라'에 비하면 이 작품의 캐릭터들의 내면은 압도적으로 납작합니다.

 

 

 

 

 

 

# 4.

 

물론 학생작이란 걸 감안할 때 연출은 기술적으로 괜찮아 보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어지간한 경력의 감독들이 만든 저예산 상업영화 못지않은 안정감 있는 화면 구성을 보여줍니다. 배우들의 감정 연기 또한 이만하면 훌륭합니다. 군데군데 묵직한 대사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드린대로 그게 다라는 게 문제죠. 겉보기엔 훌륭해 보입니다만, 글쎄요. 죄송하게도 전 남의 불행을 관전하는 취미는 없습니다.

 

앞선 두 편에 비해 마무리가 아쉽네요. GOOD DAY, GOOD DAY, BAD DAY. 정가영, 전선호, 최진혁 감독의 옴니버스 영화, 『어떤 하루』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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