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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무지개는 이미 아이의 손에 _ 레인보우, 나게쉬 꾸꾸누르 감독

그냥_ 2019. 7. 1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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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너의 성지엔 언제나 네 개의 등이 빛나네.

이제 내가 다섯 번째 등으로 모습을 드러냈도다.

다섯 번째 등을 밝히러 내가 왔도다.

빨간 가운의 신이여.

신이시여, 신드와 세환의 친구이자 왕이여.

내 안에 숨 쉬는 신이시여, 영광 받으소서.

 

 

 

 

 

 

 

 

'나게쉬 꾸꾸누르' 감독,

『레인보우 :: Rainbow, Dhanak』입니다.

 

 

 

 

 

# 1.

 

가난으로 눈을 잃은 소년과, 동생의 눈을 뜨게 해 주고픈 누나가 무지개를 찾아 나서는 영화입니다. 런타임 내내 화면 너머 기분 좋은 순풍이 불어오는 듯한 기분에 빠져듭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 마을 다이어리>와 같은 여유롭고 시원한 순풍이 아니라, 추운 겨울 마음까지 녹여줄 것만 같은 따뜻한 훈풍 말이죠.

 

기존의 인도하면 떠오를 법한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비루한 이미지가 아니라 여유롭고 온정이 가득한 공간을 효과적으로 창조합니다. 작은 아이 둘이서 사막 한가운데를 떠돌아다녀도 위태로움이 느껴지지 않는 건 감독의 세심한 배려 덕입니다. 남매를 스쳐 지나는 사람들과 사물들 모두 인도 특유의 문화와 현실을 유쾌하게 전달합니다. 무난하고 착한 이야기로 인한 심심함은 휘향 찬란한 묘사와 다채로운 인물들이 깔끔하게 메워냅니다. 확실히 이 영화에는 다른 양산형 영화에선 쉬이 느끼지 못할 인도 영화만의 매력이 가득합니다.

 

 

 

 

 

 

 

# 2.

 

물론 맛살라 영화 특유의 묘사는 여지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영화처럼 밑도 끝도 없는 뮤지컬이 펼쳐지지는 않는군요. 숨어 있던 사람들이 떼거지로 쏟아져 나와 룰루랄라 춤을 추는 대신, 주인공 '초투'가 자신을 돕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자연스레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대체되어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질적인 건 이질적인 겁니다. 제가 이 영화를 아무리 기분 좋게 봤기로서니 뻔히 있는 걸 없다 할 수는 없죠. 특히나 인도를 여행하던 백인 형아가 되지도 않는 랩을 하는 부분에선 상당한 정신적 충격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의 <세 얼간이>나, '카란 조하르' 감독의 <내 이름은 칸>처럼 국내에도 잘 알려진 몇몇 인도영화들 덕에 이런 맛살라식 표현이 익숙하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이 점은 미리 염두에 두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3.

 

영화라기보단 동화의 실사화에 가깝습니다. 맑고 건강하고 순수한 에너지만으로 영화 한 편을 끌고 나갈 수 있다는 걸 멋지게 증명합니다. 이 영화에서 환상과 주술을 들어 인도 토속 문명을 비웃는 건 한심한 일입니다. 우연에 우연을 넘어 진행되는 서사를 개연성으로 진단하는 것 역시 부질없는 짓이죠. 마치 '어린 왕자'를 물리적으로 논박하는 것만큼이나 '토이 스토리'를 과학적으로 검증하는 것만큼이나 공허한 일입니다. 스크린을 넘어 흐르는 따뜻하고 천진난만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셔보세요. 그 기운을 온몸에 휘감은 후 시원하게 내뱉어 보세요. 정서가 건강하고 맑아지는 기분을 만끽하세요. 이런 류의 영화는 그렇게 봐야 합니다.

 

시작한 지 몇 분 되지 않아 어린아이 '초투'가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그런 아이의 손을 꼭 잡은 누나 '파리'가 동생의 눈을 띄우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는 걸 아는 순간, 관객 모두는 이 영화가 어떻게 끝날 지 알고 있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남매가 국민스타 '샤룩 칸'을 못 만나고 길가에서 아사한다거나, 어렵게 만난 '샤룩 칸'이 매정하게 남매를 버려버릴리는 없다는 걸 말이죠.

 

어찌어찌 여정을 떠난 끝에 남매는 '샤룩 칸'을 만나 무사히 수술을 받아 동생이 눈 뜬다는 걸 관객 모두는 영화 시작과 동시에 알게 됩니다. 제 아무리 중간중간 남매의 위기와 같은 상황들이 펼쳐진다 한들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는 건 당연합니다. 이런 영화에서 세상 물정 다 아는 어른이 서사를 즐기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 우린 무엇을 즐겨야 할까요. 전 영화 속 요소들의 성격과 상징, 대사에 몰두해 즐기시라 권하겠습니다.

 

 

 

 

 

 

# 4.

 

가장 중요한 인물은 주인공 '파리'나 '초투'보다도 '샤룩 칸'입니다.

영화에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그 '샤룩 칸' 말이죠.

 

주변 인물들은 모두 '샤룩 칸'을 동경합니다. '샤룩 칸'과의 인연을 이야기하죠. 누군가는 함께 잠을 잔적이 있다 말합니다. 누군가는 함께 일을 한 적이 있다 말합니다. 누군가는 '샤룩 칸'의 누이와의 인연을 자랑하고, 누군가는 열렬한 팬을 자처합니다. '샤룩 칸'이 걸었던 발자국과 그가 입을 댓던 컵은 돈을 주고서라도 사진을 찍고 싶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자 다시, '샤룩 칸'은 누구인 걸까요. 영화 속 샤룩 칸은 정말 발리우드의 3대 칸이라 불리는 인도의 국민배우 '샤룩 칸'을 말하는 걸까요. 그저 돈 많고 인기 많은 유명인에게 꼬마 아이들이 불쌍함을 토로해서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영화인 걸까요.

 

저는 '샤룩 칸'은 관념의 실체화로 이해합니다. 사람들의 순수한 선의와 이타심을 물리적으로 형상화한 사람으로 말이죠. '예수'가 사랑이라는 근원적 감정의 실체화이듯, '부처'가 자비라는 추상적 관념의 실체화이듯, '샤룩 칸' 역시 이타심과 선량함이라는 관념의 실체화라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영화에선 샤룩 칸이 등장하지 않는, 아니 등장할 수 없는거죠. 그가 등장하는 순간 '샤룩 칸'은 모든 인도 사람들의 따뜻한 이타심이 아니라, 구체적인 자연인으로 전락하고 말 테니까요.

 

 

 

 

 

 

# 5.

 

감독은 왜 하필 다른 것도 아닌 아이의 눈을 앗아간 걸까요. 눈을 잃은 '초투'는 어떻게 그렇게나 정서적으로 당차고 건강할 수 있는 걸까요. 물론 누나 '파리' 덕이죠. 누나는 동생에게 '샤룩 칸', 즉 사람들의 이타심과 선의를 충분히 나눠 받으면 밤에도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누나의 말에 따르면 앞을 볼 수 없는 동생의 시야는 늘 밤과 같이 어둡지만, 수많은 거리의 샤룩 칸들과 조화하는 동안 늘 무지개를 만나고 있었던 거네요.

 

네, '초투'의 무지개는 사람들의 선의로 자신을 이끄는 누나, '파리'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무사히 안구 이식 수술을 받고 눈을 뜨는 '초투'의 시야에 얼핏 무지개가 드리우고, '초투'는 말합니다. 무지개를 보았다구요. 그치만 렌즈에 얼필 걸린 무지개는 함정입니다. 동생에게 무지개는 언제나 손을 꼭 잡아주던 누나, 생일 케익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어 보이는 누나, '파리'였으니까요.

 

 

 

 

 

 

# 6.

 

영화 속 인도인들은 놀라울 만큼 평화롭고 또 놀라울 만큼 걱정이 없습니다.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누고 없으면 구할 뿐입니다.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토속적 신앙들이 삶과 합치를 이루는 걸 목격하게 됩니다. 특유의 운명론적 결정론이 압도적인 여유로움과 안도감으로 전달됩니다. 인디언 기우제와 같은 그들의 기도는 짐짓 서양의 과학적 사유에 익숙한 우리의 눈엔 한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기우제는 때론 실패할 테고 그때마다 우리는 절망할 테지만, 그들의 기우제는 늘 실패하지 않을 테고, 그렇기 때문에 절망하지도 않으리란 점이죠.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의 무지개를 향한 여정이라는 대단히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주제를 특유의 낙천주의와 유쾌함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인도 영화의 저력이라 할 법합니다. 문득 어쩌면 슬픔도 습관인 걸까란 생각도 드는군요. 눈을 잃은 '초투'는 주변의 무수히 많은 '샤룩 칸'을 만나기 전부터 이미 무지개를 손에 쥐고 있었습니다. 앞을 볼 수 있다 자신하는 당신의 손에는 지금 무지개가 들려있으신가요? '나게쉬 꾸꾸누르' 감독, <레인보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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