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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Thriller

위조지폐 ⅱ _ 돈, 박누리 감독

그냥_ 2019. 3. 2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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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지폐 ⅰ _ 돈, 박누리 감독

# 0. 우리는 이런 류의 영화를 왜 볼까요. 베일 듯 날카로운 계획과 이해관계의 충돌, 냉혹하게 말라붙은 인간성, 돈에 매몰된 인간들의 타버릴 듯한 광기,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휘향 찬란한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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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번호표는 명실공히 최악의 캐릭터입니다. 캐릭터성, 설정, 연기, 대사 모든 게 구리죠. 당장에 드는 의문만 해도 얘는 무슨 능력으로 그런 작전을 세우는 거지? 어떤 과정으로 그런 작전들을 세우는 거야? 왜 브로커들이 얘한테만 목을 매는 거지? 번호표가 얘 하나뿐인 건 아닐 거 아냐? 접선을 위해 그렇게 신중을 기하는 인간이 나중 가면 사람 득실득실한 지하철역에서 만난다고? 자기 집에까지 부른다고? 정도가 있습니다.

 

예전에 <협상>을 리뷰하며 그런 얘기를 한 바 있습니다. 천재 캐릭터를 만들 때 정상적인 감독들은 열심히 취재하고 고민하고 발품 팔아서 시나리오를 다듬지만, 무능한 감독들은 주변 인물들을 바보로 만드는 걸로 때우려 든다고 말이죠. 이 영화 역시 중반까지만 해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적당히 상투적인 바보연기를 소화할 수 있는 감초 배우들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감독은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참신한 방법을 찾아내는 데 성공합니다. 바로 유지태에게 데스노트를 쥐어주는 것이죠.

 

유지태는 거슬린다 싶으면 사람들을 죽이는 걸로 모든 문제를 극복합니다. 사신 역으로는 검은 가죽옷으로 깔맞춤 한 퀵서비스 칼잡이죠. 귀찮다 싶으면 죽이고 주가 떨어트리고 싶으면 폭발 사고를 일으킵니다. 문제 해결이 죄다 단편적이고 직접적인 방법들로 이루어지다 보니 나쁜 놈이긴 한데 도무지 똑똑한 놈 유능한 놈처럼 보이지가 않습니다. 일련의 무식하다고 밖엔 달리 말할 수 없는 방법 덕에 류준열이 돈을 내팽개친 채로 생존에 목매게 되면서 돈이란 아이템은 중반 이후 완벽히 휘발해 버리죠. 엔딩에서 번호표가 류준열에게 역으로 당하는 장면 역시 전혀 힘을 받지 못합니다. 칼잡이 쓰는 거밖에 할 줄 모르는 멍청이를 속이는 데 희열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요.

 

 

 

 

 

 

# 12.

 

스스로 만든 캐릭터가 자기가 보기에도 너무 병신 같아 보였는지 감독은 되지도 않은 변수 타령으로 배우의 가오를 지켜주려 합니다만 깊이 없는 캐릭터가 억지로 폼을 잡으려 들면 들수록 더더욱 병신 같아 보이기만 합니다. 영화의 분위기와 완전히 어그러진 연기톤의 유지태는 지금 <돈>의 번호표를 연기하는 건지 <올드보이>의 이우진을 연기하는 건지조차 모호하죠.

 

번호표가 돈을 벌려는 이유가 재미라는 것도 정말 말도 안 됩니다. 그런 이유에서라면 더더욱 사람들을 죽이거나 공장 폭발사고를 내면 안 되거든요. 왜? 재미가 없으니까요!!

 

게임을 왜 하나요. 난제를 풀었을 때의 성취감과 상대를 이겨냈을 때의 승리감으로 하죠. 치트키 치면서 CPU랑 하는 게임을 재미로 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는 겁니다. 사람들이 배신을 하고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 머리를 굴리느라 변수가 생기면 생길수록 '그래 얼마든지 발버둥 쳐봐. 그래 봐야 내 손바닥 위야. 내 머리로 니들 작전을 몽땅 깨부숴주지.' 이렇게 가야 재미로 돈을 버는 인간이란 설정에 최소한 앞뒤 말은 맞을 거 아닙니까?

 

 

 

 

 

 

# 13.

 

번호표에 가려있습니다만, 조우진의 한지철도 만만찮은 병신입니다. 이젠 옆집 아저씨처럼 친근하기까지 한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미친개 기믹의 수사관 캐릭터인데요. 정작 얘가 하는 게 없거든요. 빨빨거리면서 여기저기 오지게 돌아다니는 데 한지철이 알아내서 수사한 성과가 정말이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줄초상이 나는 데 하나도 막지 못합니다. 내내 번호표에 대한 일말의 단서 하나 잡아내지 못합니다. 심심하면 투자사 찾아와 털어가는 데 정작 캐내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밥 먹는 데 쓱 나타나고 집 앞에 쓱 나타나 주저리주저리 방언을 터트리는 데 실익은 전무합니다. 영화 말미 진행을 위해 억지로 알아내는 것들도 죄다 내부인이 자기 이해관계를 위해 제 발로 퍼다 준 정보뿐이죠. 번호표를 체포하는 클라이맥스에서 조차도 류준열의 장기판 위에서 노는 졸일 뿐입니다. 이전 글에서 '조일현'을 무능하다고 그렇게나 깟는데 그런 애한테 당하는 얜 대체 얼마나 무능한 건가요.

 

그리고 궁금한 게 류준열을 풀어주겠다 그러는 데 무슨 권한으로 그런다는 거죠? 류준열이 제공하는 증거가 본인의 범행 일체를 자백하는 증거잖아요? 한국에는 사법거래가 명문화되어 있지 않을 텐데요? 설령 사법거래가 있는 가상의 세계관이라 하더라도 일개 수사관이 막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요? 그리고 태블릿. 그거 2개씩이나 받아도 되는 겁니까? 그거 누가 봐도 뇌물이잖아요? 씩 웃으며 '당했다...' 이런 표정으로 배우가 연기는 하는데 너 인마, 그거 받는 순간 공범이야!

 

 

 

 

 

 

# 14.

 

'전우성'은 류준열을 위해 태어난 인물입니다. 류준열 대신 얼빠 관객들을 빨아먹으려고 넣은 인물이구요. 류준열의 열등감을 만들기 위해 설정된 캐릭터구요. 류준열과 브로맨스 하려고 만든 캐릭터구요. 초반 류준열의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한 캐릭터구요. 이후 류준열의 무례함을 받아내기 위해 만들 캐릭터구요. 마지막 류준열이 회개할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캐릭터죠. 아빠가 우성산업 사장인 금수저라구요? 웃기시네. 이 인물의 아빠는 류준열입니다. 거 보세요. 결국 우선 산업도 류준열이 먹잖아요? 사랑한다 아들아.

 

다니엘 헤니는 가타부타 이전에 일단 딕션이 개판입니다. 우리말 하는 게 맞긴 한건 가 싶죠. 차라리 영어로 말하게 하고 자막을 다는 게 나았을 텐데요. 캐릭터도 엔딩에서 써먹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은 티가 너무 많이 납니다. 예상대로 마지막에 대충 문제를 수습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쓰이고 식상한 TV 뉴스 찬조출연 후 버려지죠.

 

정만식은 그놈의 바보연기 좀 그만하면 안 될까요? 코미디와 바보연기는 분명 다른 것일 텐데요. 원진아는 이쁩니다. 그것 외엔 할 말이 없을만한 게 애초에 캐릭터의 목표 자체가 꽃병풍이에요. 이 인물이 쉴 새 없이 여기저기 껄떡대고 심심하면 몸매가 다 드러나는 쫄쫄이 입고 러닝머신이나 죽어라 뛰는 건 이 인물이 동원된 목적 자체가 철저히 눈요기이기 때문입니다. 역겹고 좋네요.

 

 

 

 

 

 

# 15.

 

엔딩에 앞서 전우성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넘어가게 생긴 우성산업과 관련된 쓸데없는 소리를 브로맨스 커플이 쏟아내지만, 이 부분에선 화장실을 다녀오신다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중반부 이후부터 돈 따위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제 아무리 우성산업이 다니엘 헤니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해도 류준열이 유지태가 보낸 퀵서비스 류크의 오토바이에 치여 뒤져버리면 어차피 새드 앤딩이기 때문입니다. 제목 값하기 위해 억지로 집어넣은 쓸데없는 장면들은 한켠에 치워버리고 진眞 앤딩인 지하철 역 씬으로 바로 넘어갑시다.

 

이런 류의 영화들은 언제나 (다른 의미에서) 완벽에 가까운 피날레를 선사합니다. 말이 안 되는 요소들만 일부러 모아둔 게 아닐까? 일부러 관객을 먹이려고 이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결말들 말이죠. 씬 자체는 단순합니다. 류준열이 유지태를 낚아서 체포되게 만들고 자신은 빤스런 하는 데 성공한다. 가 그것이죠. 문제는 그 과정에 있는 요소요소들이 몽땅 말이 안 된다는 점입니다.

 

 

 

 

 

 

# 16.

 

우선 류준열은 왜 위험하게 유지태를 만난 걸까요. 만나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건가? 아뇨. 없습니다. 유지태가 살인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류준열이 그런 위험을 자처할 이유가 없어요. 마지막으로 만나 수집해야 하는 증거라도 있나?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이미 수십 개의 전화기와 라이터 녹음기가 있으니까요. 상식적으로 유지태와 약속 장소를 잡아놓고 조우진 보고 잡아가라고 한 다음 자신은 안전한 곳에 숨어 비밀 계좌가 있는 해외로 출국각을 재는 게 무조건 합리적입니다.

 

유지태는 그럼 왜 위험하게 류준열을 직접 만난 걸까요. 이름조차 숨기고 접선 과정에 매번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유지태가, 사무실에 버젓이 대리 역을 앉혀두고 달아난 안전제일 유지태가 왜 하필 직접 류준열을 또 만나러 나가냐는 말입니다. 꼭 직접 전달받아야 할 물건이라도 있나? 없습니다. 직접 전달해야만 하는 거라도 있나? 없습니다. 심지어 유지태는 퀵서비스 살인마를 시켜 류준열을 죽일 작정이었어요. 그럼 왜 거길 굳이 기어나가서 잡히냐는 거죠.

 

감독이 억지로 마련한 상견례 자리에서 주고받는 대사도 가관입니다. 이 상황이란 게 무슨 굳은 신뢰로 이루어진 오랜 벗을 어쩔 수 없이 배신하는 절절한 상황이 아니에요. 서로 죽고 죽이려는 대단히 건조한 관계란 말이죠. 근데 무슨 되지도 않는 현학적인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개폼을 잡나요. 당연히 이런 상황이라면 <범죄와의 전쟁>에서 마지막 최민식이 하정우를 배신하는 장면에서처럼 철저하고 안전하게 상대 뒤통수를 갈길 방법만을 모색했어야 합니다.

 

 

 

 

 

 

# 17.

 

또 있습니다. 혹시 감독이 설정한 류준열은 슈퍼히어로인 게 아닐까요? 교통사고를 당하고 배에 칼빵을 맞아도 훌훌 털고 살아간다구요? 초보 얼치기들이 실수한 것도 아니고 퀵서비스 류크는 사람 죽이는 전문가일 텐데, 방심한 상대의 배에 확실한 자상을 넣었는 데도 멀쩡하게 지하철 타고 귀가한다구요? 혹시 유지태가 살살 찔러라고 부탁이라도 했다는 걸까요? 그리고 배에 칼빵을 놓은 유지태가 류준열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살아있어야 나와서도 만나지라고 한다구요? 아니 그럼 애초에 칼빵은 왜 놓은 건데, 이 등신아!

 

유지태가 잡혀 들어가게 되는 근거라는 것도 너무할 정도로 어설픕니다. 결국 번호표를 기소하게 되는 결정적 물증이 몰래 모은 전화기들과 녹음파일이란 건데요. 유지태 본인의 말에 따르면 여의도의 절반이나 된다는 이전 조력자들 중에 전화기 안 버리거나 녹음해야겠다고 생각한 놈이 단 한놈이 없었다는 건가요?

 

류준열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듯 도망간 곳이 지하철이란 것도 진짜 말~도 안 됩니다. 무슨 개인택시라도 되나요? 운전해서 경로 틀어서 가고 싶은데로 도망이라도 가나요? 결국 노선표 따라 곱게 다음 역에 갈 거 아닌가요? 금감위도 국가기관인데 확실한 물증도 있겠다, 지하철 공사나 경찰과 공조해서 다음 역에서 기다리면 쉽게 잡잖아요? 뭐 어찌어찌 놓쳤다 쳐도 서울 한복판의 지하철입니다. 지천에 널린 cctv가 류준열이 받은 수수료보다 많아요. 귀찮으면 그냥 인근 병원에서만 기다려도 배에 구멍 난 류준열은 자기 발로 잡히러 찾아올 겁니다. 근데 이게 안 잡힌다구요?

 

 

 

 

 

 

# 18.

 

우리나라 관객들의 독특한 특징 중 하나는 '어떤 영화'를 소비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행위' 그 자체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무슨 영화가 개봉했으니 저 영화를 보고 싶어. 라고 생각하는 관객만큼이나 오랫동안 영화를 안 봤으니 영화를 봐야겠다, 요즘 뭐하지? 라고 생각하는 관객이 많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영화 시장 전체가 수요는 거의 고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파이를 나눠먹는 제로썸 게임에 가깝게 되어버리는 데요. 따라서 영화의 흥행은 작품의 완성도에 달린 절대평가가 아닌 보편성과 범용성에 기댄 극단적인 상대평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마도 이 영화는 제법 잘 팔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날씨도 적당히 풀리는 벚꽃피는 3월 말에 개봉한 덕에 영화관을 찾는 관객의 파이가 한창 부풀어 오를 시기인데다 경쟁작들 중에 압도적으로 범용성이 높은 작품이거든요. 글을 쓰는 현시점에서 예매율 2위인 <캡틴 마블>은 주연배우와 관련된 구설이 있는 데다 어느새 개봉한지 보름도 넘어 하향세에 들어간다고 봐야하구요. 3위인 <우상>은 봄날 가족이나 연인들이 보기엔 포스터에서부터 느껴지듯 소재와 톤이 너무 무겁습니다. 4위에 랭크된 이선균 주연의 <악질경찰>은 애초에 청불인데다 버닝썬 게이트라는 악재가 엮여 어려운 싸움이 예상되죠.

 

날 풀렸고 마침 미세먼지도 적어 외출하기 좋은 주말. 여자친구나 부모님 혹은 배우자, 자녀와 함께 모처럼 만에 극장나들이를 했는데 걸려있는 영화가 <돈>, <캡틴 마블>, <우상>, <악질경찰>이면 저같아도 울며 겨자먹기로 <돈> 봅니다.

 

 

 

 

 

 

# 19.

 

그래서 더 씁쓸합니다. 이 영화는 돈벌기 위한 조건들을 차곡차곡 수집해 놓은 잡동사니와 같습니다. 훈남 류준열을 주연으로 쓰고 훤칠하고 잘생긴 김재영과 유지태를 얼굴마담으로 동원했습니다. 개성있는 미모의 여배우 원진아에게 핏 좋은 수트와 쫄쫄이를 입히고, 유망한 충무로의 배우 조우진, 김민재, 정만식, 진선규를 모조리 불러 모았습니다. 청년 실업, 직장생활, 브로맨스 등 먹힌다 싶은 힙한 아이템들을 쏟아 부어 최대한 관객층을 넓게 확보했습니다. 조잡할 지언정 눈요기가 될만한 것들을 꾸역꾸역 모아둬 관객을 현혹시키면서도 15세 관람가만은 철저히 지키기 위해 수위조절엔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 사이로 서사는 커녕 주요 아이템부터 간데없이 휘발되고 주요 요소들의 개연성과 핍진성 양측면 모두 깔끔하게 상실됩니다만, 그런건 감독의 알바가 아니죠. <자전차왕 엄복동>과 본질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작품입니다만 한 영화는 욕을 왕창 먹고 한 영화는 흥행을 달린다는 게 되려 자본주의의 비극을 목격하는 기분이랄까요. '박누리' 감독, <돈>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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