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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Mystery & Thriller

창렬 _ 브이아이피, 박훈정 감독

그냥_ 2019. 6. 1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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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소신발언 하나 할까요? 여자는 죽여도 됩니다. 까짓 거 강간해도 상관없죠. 아이들도 죽일 수 있습니다. 토막살인을 해도 상관없고 연쇄살인을 해도 상관없죠. 찰지게 다진 다음 햄버거 패티를 만들어도 전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단, 영화 안에서라면 말이죠.

 

 

 

 

 

 

 

 

'박훈정' 감독,

『브이아이피 :: V.I.P.』입니다.

 

 

 

 

 

# 1.

 

물론 이런 선택이 흥행에는 불리하게 작동할 수는 있습니다. 자극적이고 과감한 표현이 관객층을 제한하는 건 틀림없을 테니까요. 쌩돈 꼬라 박은 투자자들은 무지막지한 연출에 피눈물이 나겠지만, 그런 것 따위 관객이나 감독의 알 바는 아닙니다. 불법의 영역만 아니라면 감독은 언제나 원하는 대로 시나리오를 쓰고 다듬어 영화를 찍을 권리가 있습니다.

 

영화적 선택이 자연인으로서의 도덕성과 연결된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킬빌』이 선혈 낭자하며 살점이 흩날린다고 해서, 『인터스텔라』가 영화 시작과 동시에 지구에 종말을 가정한다고 해서 감독들이 인명과 생명을 경시하는 반-지구적, 반-환경적 인격파탄자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마찬가지로 『브이아이피』를 들어 '박훈정' 감독에게 여성 혐오자니 하는 굴레를 씌우는 건 합리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습니다. 그럼 왜 이 영화가 그토록 욕을 들어 먹었던 걸까요? 왜 감독은 그런 모욕적인 비난과 비판과 비평을 받아야 했을까요? 욕한 사람들이 잘못한 것이기라도 한 걸까요?

 

 

 

 

 

 

# 2.

 

알고 계시다시피 영화에도 '경제성'이 있습니다. 관객들은 단순히 티켓값만을 지불하는 듯하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알게 모르게 지불하고 있죠. 두어 시간에 걸친 런타임과 오가는 데 걸린 시간의 총합, 이야기를 따라가기 위한 집중력과 체력, 불편한 장면을 보는 동안의 불쾌감, 좁은 의자에 몸을 구겨 넣느라 뻐근해진 허리, 휘향 찬란한 효과에 어지러운 눈, 시끄럽고 큰 소리에 피곤해지는 귀, 주변 관객들의 짜잘한 소음들이 주는 스트레스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고가의 팝콘과 콜라.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관객은 이런 유무형의 비용을 영화를 보는 행위를 하는 동안 지불합니다. 영화는 사람들이 쉽게 생각하는 것보다 더 비싼 취미죠.

 

따라서 감독은 영화를 잘 만들어야 합니다. 단순히 런타임 동안 뭉개고 치울 수 있는 양산형 영화들에 관객들이 진지한 비평과 비판을 남기는 건 그런 이유에서죠. 충분한 재미와 장르적 쾌감은 당연합니다. 주제의식이 선명해야 하고, 그 주제 의식을 위한 서사는 참신하되 합리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연출은 명쾌하고 과감하되 섬세해야 하고, 편집은 관객의 시선에 충실히 복무해야 하며, 연기는 그런 감독과 관객 사이의 훌륭한 가교가 되어야 하죠. 탐구할만한 디테일이나 사회적 메시지, 생각해볼 법한 혹은 잊고 있었던 문제의식까지 전달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겁니다. 그러고 보니 이거 다 되어 있는 영화가 최근에 개봉했었요.

 

여튼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는 경제적이지 못하다는 점입니다. 오프닝에서부터 불편한 요소들을 관객이 관람한데 대한 감독의 보상이 너무도 빈약한데, 영화가 전반적으로 그러합니다.

 

 

 

 

 

 

# 3.

 

다른 영화 이야기를 잠시 해 볼까요. 

 

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 남자는 근친상간을 하죠. 다른 커플도 하나 나오는 데요. 그 커플도 근친상간을 합니다. 한 근친상간녀는 상상임신을 하게 되고 결국 연인이자 가족의 눈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거두죠. 두 커플 모두 젖가슴은 예사로 나오구요 노골적인 베드신도 찰지게 나옵니다. 난데없이 칼질이 난무하고 망치로 뚝배기도 사정없이 깨구요. 사망자는 쏟아지고 몸에선 개미가 뚫고 나오고 지하철엔 사람만 한 벌레가 앉아 있죠. 사람이 개처럼 짖다 못해 스스로 혀까지 잘라내는데, 심지어 원래 시나리오에선 성기를 자르는 거였답니다. 

 

다들 눈치채셨겠죠.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입니다. 올드보이의 과격한 설정과 폭력 묘사는 『브이아이피』의 그것을 가볍게 상회합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올드보이』를 보며 '박찬욱' 감독이 반인륜적인 패륜아라느니 인명을 경시하는 사이코패스라느니 하는 평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긴커녕 대한민국 영화상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기억하고 추억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돌려주는 게 많기 때문이죠.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올드보이』는 비싼 영화가 맞습니다. 굉장한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하는 영화임엔 틀림이 없죠.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 불편함을 납득하고도 남을 만큼의 보상을 확실히 돌려줍니다. 불편하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의식과 그 주제의식에 충실히 복무하는 서사,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미장센과 메타포, 디테일, 구도가 가득합니다. 감독은 관객이 들인 비용에 곱절을 쳐서 돌려주죠. 그걸 하나하나 짚으려면 3박 4일은 걸릴 테니 『올드보이』는 다음에 한번 리뷰하기로 하고 지금은 넘어갑니다.

 

 

 

 

 

 

# 4.

 

다시 『브이아이피』의 문제의 오프닝으로 돌아갑시다. 이종석이 부하들을 시켜 소녀를 납치해 폭행, 강간, 살해합니다. 매우 잔인하고 매우 불편하죠. 뭐 좋습니다. 누차 말씀드렸다시피 그럴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불편함을 감수함으로 인해 관객이 돌려받으게 뭐가 있을까요.

 

우선 이종석이 나쁜 놈이라는 건 알 수 있습니다. 부하들을 동원해 사람을 납치하는 걸 보니 뭔가 두목 비슷한 건가 봅니다. 다들 옷 벗고 있는데 이종석만 굳이 입고 있는 걸 보니 얘가 고자라는 암시 정도는 알 수 있겠네요. 또 뭐가 있을까요. 솔직히 그 이외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모르겠습니다. 즉, 오프닝의 과격한 장면을 통해 관객이 얻은 메시지는 '고자인 두목 이종석이 존나 나쁜놈이다!'가 전부란 거죠.

 

이건 너무합니다. 그야말로 '창렬'이죠. 고작 저 문장 하나 전달받기 위해 관객이 소비한 불쾌감이 너무 큽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브이아이피』의 오프닝을 관람하는 건 손해 보는 장사를 한 셈이죠. 관객은 직관적으로 자신이 받은 불쾌감이 폄하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모욕감은 자연스레 창렬하게 팔려나간 영화 속 요소들로 이전되죠. 즉, 극 중 소녀의 인격과 목숨을 고작 '고자인 두목 이종석이 존나 나쁜놈이다!'라는 문장과 바꿔도 되는 요소로 취급받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속되게 말하면 '여성 캐릭터의 목숨값이 그렇게 저렴해?' 랄까요. 그러다 보니 '감독, 이거 여혐 종자 아니야?' 란 소리를 들었던 거죠.

 

 

 

 

 

 

# 5.

 

만약 쓱 스쳐 지나가는 시계나 사진 같은 게 하나 있어 그게 이후 결정적인 복선이었다면 어땠을까요. 희생당한 소녀가 서사상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라 소녀에 대한 무분별한 폭력이 차후에 이종석의 발목을 잡게 된다면 어땠을까요. 아니면 강간을 당하는 동안 소녀의 발버둥이 남긴 생채기 같은 게 있어 그게 추적의 단초가 되었다면 어땠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영화에 대한 전문가의 비평과 상업적 성패 모두 지금과는 상당히 달랐을 겁니다.

 

참고로 첫 번째 방식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 두 번째 방식은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세 번째 방식은 '강우석' 감독의 『공공의 적』의 방식입니다. 세 영화 모두 굉장히 폭력적임에도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각자 나름의 성취를 얻었던 영화들이죠.

 

 

 

 

 

 

# 6.

 

오프닝을 지나 영화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동어반복 같아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영화는 오프닝의 무신경함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나쁜 놈은 나쁜 짓을 하고 당하는 사람은 그냥 당할 뿐입니다. 서사는 고전 동화에서나 볼법할 정도로 뼈대만 겨우 살아있어 부실한 가운데, 단편적이고 말초적인 메시지가 과격하고 폭력적인 묘사로 분칠 되어 있을 뿐입니다. 설정은 따로 놀거나 관습적인 와중에 이야기를 끌어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조정되고, 영화에 동원된 번지르르한 요소들은 그런 폭력성을 표현한다는 일차원적인 목적만을 위해 낭비되죠. 이런 말하기 미안하지만 리뷰하고 싶어도 할 내용이 없는 영화랄까요. 

 

 『신세계』의 흥행 뒤에 매달린 『무간도』의 그림자가 감독에게 너무 큰 짐이었을까요. 국민배우 '최민식'을 주연으로 쓴 대작 『대호』의 참패가 감독을 이렇게나 조급하게 만들었던 걸까요. 영화를 보던 당시나, 영화를 회상하는 지금에나 창작자가 무언가에 심하게 쫓기고 있다는 인상을 이렇게 강하게 받는 경우는 드물었던 기억입니다. 영화와는 별개로 어딘가 묘하게 서글프고 쓸쓸하군요. '박훈정' 감독, 『브이아이피』 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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