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봉작들을 살펴봅시다. 우선, 독전이 나왔네요. 이런저런 문제가 참 많았지만 더 문제가 많았던 다른 영화들 덕에 올 상반기 흥행 1위를 이룬 영화죠. 연상호 감독의 염력이 보이네요. 아.. 이 영화도 참 할 말 많은데요. 시간이 된다면 한 번 갈아 마실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감독의 명성과 실력에 비하면 다소 아쉬움이 남았던 버닝이 나왔고요. 보자, 인랑이 나왔네요. 들어가주시고요. 궁합이 나왔네요. 같이 가주시고요.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는 영화도 나왔네요. 어디 보자.. 제작사가.. j.. k? 넘어갑시다.
오랜만에 나온 웰메이드 공포영화 곤지암도 나왔네요. 7년의 밤은 사라진 밤이랑 손잡고 7년간 사라져 주시고요. 골든 슬럼버가 나왔네요. 강동원과 한효주는 인랑까지 2연타석 삼진이네요. 그 비주얼을 왜 이따위로 쓰는 걸까요? 마녀, 허스토리는 아직 못 봤네요. 창정이 형한테 형은 그냥 노래만 하면 안 될까라 하고 싶은 게이트가 나왔고요. 클레멘타인, 멘 데이트의 기시감을 듬뿍 주시는 최악의 영화 1순위 데자뷰가 나왔고요. 0순위 변산이 나왔군요.
음. 왜 이러는 걸까요? 박근혜의 블랙리스트에 대한 저항을 이렇게 하는 건가요? 차라리 제작거부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관객들은 무슨 죄라고요. 이런 X 묻은 휴지 같은 영화들을 CGV에 독점으로 걸면서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냐? 내가 너 좋아할 수도 있잖아'라고 하면 '이건 너무 한거 아니냐고'? 관객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는데 이병헌은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박정민의 응가나 닦아주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한국 영화가 죄다 반지처럼 닦이고 있다고요. 영화를 보는 당일, 신과 함께 2 가 천만이 들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부관참시를 당하는 기분이 이럴까요. 하지만 영화팬들의 인내심이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던 바로 그때.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군도의 감독이 황정민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을 거느리고 헬름 협곡의 힘법사처럼 나타났습니다. 로히림!! 뚜더킹!!!!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입니다.
4개의 상징, 4개의 캐릭터
영화 공작은 90년대 말, 국내에선 YS의 IMF, 한나라당의 총풍사건, 역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게 되고, 중국은 공산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소위 중국식 개혁개방을 통한 비약적 경제 발전을 이루며, 체제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난 북한이 핵무기를 위시한 비대칭 전력의 구축을 돌파구로 삼으려던 혼란의 시대 한가운데 놓인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개인을 거대한 조직 논리 속에 복무하거나 시대 흐름 사이에서 표류하는 유약한 존재로 그리는 게 아니라, 각 개인에게 세력을 상징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부여한다는 점입니다. 코드네임 흑금성으로 불리는 공작원 박석영(황정민 배우), 북한의 대외경제위 차장 리명운(이성민 배우),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 배우), 보위부 과장 정무택(주지훈 배우). 이 네 캐릭터는 각각 하나의 이념을 대변합니다. 흑금성은 대한민국의 온건 평화노선을 상징합니다. 전직 군인이 사업가의 모습으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건 군비경쟁을 중심으로 한 냉전시대의 종언을 보여주는 듯하죠.
최학성은 대한민국 내 강경 대결노선을 상징합니다. 공작과 대결의 일상화가 내면에까지 닿은 인물이죠. 때론 극단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핵무기 발사까지 운운하는 여당 의원들을 저지하고, 안기부 김 부장의 노골적인 조직 논리에 불편함을 느끼는 건, 최학성이 체제 경쟁 시대에 매몰되어버린 시대착오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그것이 왜곡되고 뒤틀렸다 하더라도 그들 역시 그 나름의 애국을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감독이 마음만 먹었다면 최학성을 얼마든지 나쁘게, 밉게 그릴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다고 지금 시국에 욕할 사람도 없고요. 하지만, 감독은 그러지 않죠.
리명운은 북한 내 온건 개혁개방 노선을 상징합니다. 1당 독재국가의 엘리트이자 지도부이면서도 그들 모두가 오롯이 김 씨 왕조에 복무하기 위해서만은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주죠. 그곳에도 사람이 있고, 연민이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도 그것이 더 나은 북한을 위하는 거지 철저한 인본주의에 기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재밌는 인물이죠. 정무택은 북한 내 강경 대결노선을 상징합니다. 다른 세 캐릭터와는 달리 세속적이고 권력지향적인, 대단히 비 인간적이면서도 동시에 굉장히 인간적인 정치 군부를 잘 표현합니다.
각각의 노선은 서로가 서로에게 명확한 대립도, 명확한 협력도 하지 않습니다. 흑금성과 최학성은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한다는 목표는 같지만 그 안보의 모습과 정의는 다른 인물로 방법론에서 뚜렷이 대립합니다. 흑금성과 리명운은 북핵 염탐과 개혁개방의 물꼬라는 각자의 목적을 위해 광고 사업에서 상호 협력하지만 영화 말미까지도 서로를 의심하고 불신하죠. 흑금성은 정무택에게 끊임없이 견제 받고 공격받지만 골동품 반출에서는 이해관계가 일치하기도 합니다. 최학성과 리명운은 서로의 틈을 벌려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하고, 심지어 물리적 대립의 주체인 최학성과 정무택 또한 총풍 사건을 중심으로는 협력합니다. 굉장히 흥미로운, 입체적인 구조죠.
모르긴 몰라도 감독은 이 구조를 손에 들고 정치극을 만들고 싶어 뜬 눈으로 날밤을 샜을 겁니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면 굉장한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르죠. 물론 그랬다면 영화의 런타임은 벤허 수준으로 늘어나고 예산은 사대강처럼 소모됐을 테지만요. 현실적인 작품 제작을 위해 감독은 네 세력 중 흑금성에 초점을 맞추고 서사를 정리합니다. 여차하면 '기획'이 될뻔했던 영화가 비로소 '공작'이 되는 거죠.
피가 나오지 않는 첩보영화가 있다?
구조를 정리하며 다이어트를 했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짊어져야 햐는 아이템은 아직도 너무나도 많습니다. 전직 군인이 사업가의 탈을 쓴 공작원으로 변해가는 과정, 핵무기 개발의 배경과 당시의 진척 정도와 같은 배경 설명, 공작원이 접선하게 되는 인물들, 무역에서 시작된 계획이 광고로 흘러가는 인과와 광고기획자 한창주의 소개, 총풍사건과 총선 대선 등의 국내 정치 지형의 변화, 북한의 실상과 김정일의 접견. 하나하나 만으로도 제법 번듯한 단편 하나씩은 만들어 낼 수 있을법한 소재들을 137분 안에 녹여내야 합니다. 너무 무성의하면 관객이 길을 잃을 테고 너무 장황하면 정의 닦이에 이은 공작 닦이가 되어버리겠죠. 마치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근데 이 영화는 그걸 합니다. 풍부한 소재는 전부 살아있으면서도 관객 누구라도 큰 피로감 없이 서사를 따라갈 수 있게 합니다. 흑금성의 이야기에서 총선 국면으로 아이템이 전환되는 장면에서 살짝 들뜨는 느낌이 들지만, 그 정도를 제외하면 훌륭하게 아이템들을 엮어 냅니다. 진짜요, 직접 보세요.
영화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유혈이 낭자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한국의 첩보 영환데 흔한 칼부림하나 나오지 않습니다. 영화는 철저하게 구도와 대사로 극의 긴장감을 끌고 갑니다. 첩보와 공작으로 서사를 엮어갑니다. 복잡하게 꼬인 문제들도 굳이 하나하나 말로 풀어나갑니다. 그냥 죽였다, 매수했다로 퉁 칠 수 있는 위기들을요. 감독은 쉬운 길을 내버려 두고 어렵고 피곤한 길을 뚝심 있게 걸어갑니다. 그리고 감독이 더 불편한 딱 그만큼 관객은 더 편하고 좋은 이야기를 만나게 됩니다.
연기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황정민은 그냥 황정민 합니다. 오늘 어떤 기사를 보니 관객이 황정민에 피로감을 느낀다는 데, 그건 그 레벨까지 올라와 경쟁하지 못하는 후배 연기자들의 탓이지 대체하기 어려운 좋은 연기를 해준 배우의 잘못이 아닙니다. 딴에는 쿨하다고 쓴 기사겠지만, 이건 쿨한 게 아니라 무례한 거죠. 하긴 뭐 그런 걸 알면 기레기겠습니까마는. 황정민과 투 탑이라 할 수 있는 이성민 배우도 역시 훌륭합니다. 인간이라면 짊어질 수밖에 없는 특유의 피로감을 노골적이지 않게 표현하는 건 이 배우가 최고죠. 이번 영화에서도 리명운이 카리스마와 인간미를 동시에 뿜어낼 수 있었던 건 이성민 배우의 공이 큽니다.
조진웅 배우는, 개인의 연기는 참 좋은데... 이제 올백에 바바리코트 고정에 작품 따라 콧수염 뗐다 붙였다 하며 나오는 걸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시그널 때처럼 요긴히 써줄 감독이 영화판엔 없는 걸까요. 연기 잘하는 좋아하는 배우가 이미지를 너무 허망하게 낭비되는 거 같아 아쉽습니다. 주지훈 배우는 연기에 여유가 없는 것 같아 다소 아쉽습니다. 같이 영화에도 나온 박성웅 배우의 이중구를 상기해봤다면 어땠을까요. 카리스마는 화내고 총 꺼낼 때가 아니라 웃어넘기고, 총을 내려놓을 때 나오기도 할 텐데요. 뭐 그럼에도 선전했다고는 생각합니다. 주지훈 배우도 벌써 데뷔 15년이 넘는 베테랑이긴 하지만 상대가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이면 쉽지 않았겠죠. 전체적으로 영화 공작은 확실히 배우들의 연기를 즐기는 맛이 풍부합니다. 소위 연기만 봐도 티켓값 본전은 봤다 하는 류의 영화란 거죠.
2% 부족하긴 하지만.
물론, 이 영화라고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선, 흑금성이 너무 유능해요. 스파이물은 상대의 심장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예상치 못한 변수와 상대의 암수에 계획은 계획대로 틀어지고 감시망은 아랑곳 않고 점점 조여오고 하는 쫄깃한 맛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문제도 별로 없거니와 몇 안 되는 난관도 주인공에게 너무 쉽게 극복됩니다. 감독도 좀 찝찝했던지, 중간에 정무택에게 정체를 발각당할 뻔한 장면을 넣어 긴장감을 벌어보려 하지만, 다소 작위적이고 노골적인 느낌이 듭니다. 약물을 맞고도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방식도 호소력이 좀 떨어지고요.
또한 정무택의 무게감이 너무 가볍습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김정일과 독대까지 할 수 있는 보위부 과장이라면 여유로운 가운데 날카롭게 폐부를 찌를 수 있는 포식자의 그것을 부여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캐릭터가 매번 실속 없이 화만 내고 있으니 되려 위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배우 본연의 개인기로 황정민을 찍어누르게 하기엔 주지훈에겐 아직 버거운 일이죠. 물리적인 위압감을 줘야 할 정무택이 흑금성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나버리니 주인공이 너무 안전해 보입니다. 차라리 이 정무택 역을 조진웅이 맡았다면 어땠을까요. 끝까지 간다에서의 조진웅을 생각하면 더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러면 조진웅이 맡은 최학성은 좋으냐, 사실 여기도 나사가 좀 헐겁습니다. 스파이를 관리하는 요원이면 지적인 면에서 황정민을 확실히 통제하고 압도하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거든요. 최학성이 공작을 기획하고 흑금성이 실행하는 느낌이 아니라, 흑금성이 알아서하고 최학성이 뒤치다꺼리를 해주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흑금성이 최학성의 지시에서 벗어나는 장면에서도 극적인 느낌이 없어요. 신세계에서 최민식이 이정재를 대할 때를 떠올려 보면, 그 차이는 더욱 뚜렷합니다. 그리고 김응수 배우의 김 부장을 등장시킬 거면 최학성의 모순적인 내적 갈등을 조금 더 과감하게 묘사해도 괜찮지 않았을까요? 김 부장이 조직 논리를 설파하고 최학성이 그 논리를 흑금성에게 기계적으로 전달해버리니까 안 그래도 존재감 없는 배역이 힘을 더 못 받거든요.
영화를 지지하는 4개의 축 중 최학성과 정무택이라는 두 축이 힘을 못 받는 만큼 리명운은 반사이익을 확실히 봅니다. 영화를 본 누구라도 화내는 정무택을 저지하고, 몸수색을 쓸데없다 치부하며 일 얘기로 들어가는 리명운을 보며 '저 인물은 분명 거물이다. 무언가 있다. 결정적인 순간 황정민을 가장 큰 곤경에 빠트리는 최종 보스다.'라 생각하셨을 겁니다. 온갖 감언이설을 더해 쌍상 초상휘장을 흑금성에게 달아주고는 뒤돌아 대화 내용을 염탐해 김명수를 잡아내는 장면은 정무택의 무수한 헛발질과 대비되며 리명운의 카리스마를 극대화합니다.
하지만, 한껏 존재감을 키우던 리명운과 흑금성은 영화 종반부에 이르러 거짓말처럼 길을 잃습니다. 광고를 빌미로 북핵의 여부를 확인하겠다는 흑금성의 목적도, 중국식 일당독재 중심의 개혁개방 모델을 통해 인민을 살리겠다는 리명운의 목적도 어느 순간 광고 그 자체에 매몰돼 버립니다. 광고 성사가 단순한 수단에서 지상목표로 변해버리면서 두 주인공은 협력, 견제하는 관계가 아닌 이해관계가 완전히 합치되는 동반자가 되어버립니다. 여기에 감독이 각자의 인간미와 파트너 GAEM성을 끼얹어 버리니 갈등관계가 소멸되고 스파이 영화가 갑자기 버디무비로 돌변해버리게 됐습니다. 리명운이 흑금성에게 총을 들이미는 장면은 공작원에 속은 적국 요직의 모습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연인의 모습이었죠.
그리고, 이효리의 카메오 활용은 명백히 역효과였다고 봅니다. 너무 세요. 이효리의 존재감과 카리스마가 감독이 상정한 것보다 너무 쎕니다. 마지막의 광고 성사 장면은 화려한 카메라 앵글 뒤에서 활동한 남북의 공작원과 실무자를 보여줘야 하는 장면인데, 그러한 상징성은 흐려지고 덩그러니 이효리만 남았거든요. 영화 내의 스포트라이트는 중앙이 받더라도 영화 밖 관객의 시선은 오롯이 주변으로 향해야 하는 데 이효리의 존재감이 관객의 시선까지 상당 부분 잡아먹어버립니다. 두 인물의 내면에 집중하며 서사를 마무리해야 하는 순간, 아마 생각보다 많은 관객이 '어? 이효리다!'라는 주변 소리를 들으셔야 했을 겁니다.
사막같은 한국영화에서 찾은 오아시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여전히 훌륭합니다. 중국과 대한민국, 북한을 오가는 복잡한 상황에서도 별다른 설명 없이 공간이 이해될 수 있도록 연출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특히, 임무에 떠밀려 부유할 수밖에 없는 공작원의 숙명을 흑금성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쁜 걸음과 번자한 중국 시장으로 표현하는 것이나, 북한의 처절한 실상과 대조적인 주석궁의 위엄, 켜켜이 레이어를 넘어 김정일에 닿는 시퀀스는 그 자체로 훌륭했습니다. 정무택의 춤추는 장면이나 김정일의 강아지와 같은 개그씬은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절히 분위기를 환기하는 데 성공했고, 신세계의 낡은 낚시터가 떠오를 도입부에서 감독의 재치가 느껴졌으며, 흑금성이 불 꺼진 어두운 문을 나서는 장면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은 상투적이지만 충분히 효과적이었습니다.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는 요원 흑금성이 마지막 리명운의 집에서 술잔을 들며 잠시 인간 박석영로 돌아가는 장면도 친절하면서도 괜찮은 비유였고요. 다만, 시계와 넥타이핀은 좀 과하다 싶긴 했습니다. 두 아이템으로 인해 술잔의 은유가 직유로 바뀌어버렸거든요. 하지만 그런 아쉬움 뒤로 감독의 상업적 불안감도 살짝 보이는 듯해 짠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훌륭한 건! 박근혜 정권 때 총풍 사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영화화할 생각을 한 감독의 용기이겠죠. 영화에서 여러 번 강조되는 명대사, 호연지기의 진짜 주인은 감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15년 전인가요. 2003년, 박찬욱과 봉준호라는 두 명의 미친 감독이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라는 역작을 한 해에 선보인 이후로 수많은 아류 감독들이 한국 영화를 누아르나 스릴러, 범죄, 미스터리 물의 천국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옛날 경찰 영화, 조폭영화들 마냥 갈수록 질이 떨어지는 가운데 근 2년간은 무능력한 감독들의 무기력한 아류작들이 피크를 이뤘죠. 저를 포함한 많은 한국 영화 팬들은 한숨을 쉬셨을 겁니다. 리얼이 뭡니까? 데자뷰는 또 뭡니까? 김지운 감독님, 감독님의 명성을 생각하면 인랑은 좀 너무하잖아요. 에휴.. 그렇다고 팬들이라고 무슨 모두가 매번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보이 같은 영화를 토해내라는 거 아닙니다. 그건 봉 감독, 박 감독 본인들도 못해요. 팬들이 바라는 건 비슷해도 좋으니까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달라는 겁니다. 앞뒤 말은 되게 해달라는 겁니다. 거기에 자기 색깔을 조금만 더해서 보여달라는 겁니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열심히 일해 번 돈, 피 같은 시간 들여서 영화관 찾는 관객이라면 그 정도 부탁은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이를 굉장히 성공적으로 수행합니다. 충분히 성의를 가지고 노력해서 만든 영화고, 충분히 윤종빈의 색깔을 담아낸 영화니까요. 돈 만 원에 두 시간. 이 정도만 해줘도 감사, 압도적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쫄깃쫄깃한 영화는 좋아하는 데 피 튀기는 게 좀 부담스럽다고요? 황정민과 이성민 등의 눈부신 연기를 좋아하신다고요? 날카롭게 파고드는 근현대사극을 좋아하신다고요? 숨기지 않고 속 시원하게 이야기하는 '호연지기'를 좋아하신다고요? 이 영화를 추천드립니다, 윤종빈 감독의 신작, '공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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