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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뉴저지의 자신감 _ 패밀리 맨, 브렛 라트너 감독

그냥_ 2024. 12.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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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자신감 넘치던 그 시절 중산층을 위한 프로파간다

 

 

 

 

 

 

 

 

브렛 라트너 감독,

『패밀리 맨 :: The Family Man』입니다.

 

 

 

 

 

# 1.

 

나무로 지어진 2층 집에는 적당한 크기의 정원이 딸려있다. 유머러스한 아빠는 익숙한 듯 잔디를 깎고, 아름다운 엄마는 주방에서 펜케이크를 굽는다. 어린 아들은 아빠 옆에서 자전거 타거나 물놀이 하자며 잔망을 떤다. 사춘기 딸은 하이틴 스타의 포스터로 뒤덮인 다락방 침대에서 미래를 꿈꾼다. 할머니는 거실 흔들의자에 누워 스웨터를 뜨고, 멋들어진 페도라를 쓴 할아버지는 낡은 벤치에 앉아 시가를 태운다. 틈틈이 집 앞을 지나가는 친구 가족과 반갑게 인사하는 걸 제외하면 주말마다 맥주를 곁들인 바비큐 파티가 소소한 이벤트의 전부인 나날들. 미국의 시스템이 보장하는 근심걱정 없는 중산층의 삶이란 적어도 각자의 가정에게 완벽한 유토피아이고, 그 삶은 특별히 침해받지 않는 한 이탈할 이유도 수정할 필요도 없는 확신이다.

 

90년대 미국 코미디 드라마들에는 특유의 온화함과 안정감이 있는데, 그 이면엔 미국 중산층의 자신감이 숨어있다. 스스로 엇나가지 않는 한 자신의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자, 그것이 유난히 똘똘한 막내 아이가 장성할 때까지 이전될 것이라는 자신감 말이다. 당대의 낙관주의적 시대상을 투영한 영화들이 아무리 지지고 볶더라도 마을 단위를 벗어나지 않는 소동극에서 통제되는 이유이자, 어쨌든 결론은 중산층의 증명을 넘어 부자들의 삶보다 우월하고, 심지어 '옳다'는 데까지 비약되는 이유다.

 

 

 

 

 

 

# 2.

 

그래서 핵심 내러티브는 언제나 선택이다. 상승하고 싶었지만 실패해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능력이 있음에도 상승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는 설정이 타겟층의 자존감을 보호하기엔 훨씬 용이하다. 선택을 합리화하는 수단으로써 상류층 인간은 유난히 고독하고 비참하게, 그래서 대외적 과시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인생처럼 그려진다. 감정이 제거된 탐욕적인 섹스, 텅 빈 펜트하우스에서 맞이하는 공허한 아침, 굳이 검은색 스웨터를 입고 비영리 변호사를 비웃는 케이트, 권위적이고 전투적인 회의실 풍경 따위는 익숙한 것이다.

 

'우린 뉴저지에 집이 있어!'로 시작하는 잭의 일장 연설은 사실 케이트에게 하는 말이 아닌 관객에게 하는 것으로, 아주 시니컬하게 보자면 미국이 스스로의 시스템을 찬양하는 프로파간다라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상류층의 뉴욕과 중산층의 뉴저지를 대비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비행기의 종착역을 미국 밖 런던과 파리로 설정한 것은 그래서 재미있다. 반동분자라는 혐의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뉴저지는 뉴욕에 비해 우월하지만 뉴욕이라고 나쁘지는 않다. 나쁜 건 런던과 파리다. 아메리카 만세다.

 

평범한 중산층인 당신의 올해는 틀리지 않았고, 지금의 평화는 매년 돌아오는 크리스마스처럼 순리와 같은 것이라 말하는 영화는 의외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국인에게는 자기 삶에 대한 확신을 주는 콘텐츠였다면, 고도성장기 한국에서는 중산층 가정의 이상향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90년대 전후 가정을 꾸리기 시작한 가장들에게 '지금은 고생스럽더라도 노년엔 나도 저런 전원주택에서 살아야지'라는 로망이 되었달까. 물론 환상은 IMF와 함께 개박살 나긴 하지만, 그럼에도 고도성장기의 낙관적 분위기를 경험한 바 있는 베이비부머들에겐 희망과 활력이 가득하던 시절의 은은한 노스탤지어로서 나름의 지지를 꾸준히 받고 있다.

 

 

 

 

 

 

# 3.

 

중산층에게 만세를 부르던 일련의 유행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감쪽같이 자취를 감춘다. 영화가 개봉했던 시기인 2000년과는 달리 2023년 기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해 영화에서 서민층에 속하는 주인공이 살고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평행 세계의 직업인 월 스트리트 금융인의 직업이 필요하다[각주:1] 말하는 자조적인 농담처럼 말이다. 때문에 갈수록 영화는 따뜻함보다는 아련한 거리감 같은 것이 먼저 느껴지기도 하다. 나는 경험해보지 못한 낙원이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버린 듯한 무력감과 함께.

 

여담으로 뭇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 영화로 분류되곤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단순한 은유에 불과하다는 면에서, 이 영화를 크리스마스 영화라 분류하는 건 <존 윅>을 강아지 나온다고 동물영화라 소개하는 것만큼이나 황당하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사건의 시작점일뿐,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는 뉴저지는 크리스마스와 무관한 일상적인 겨울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가족과의 행복이란 선물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이기에 생일날 벌어진 생일 선물이어도, 이별한 날 벌어진 이별 선물이어도 내러티브는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증명 가능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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