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적외선을 보지 못해 불행한 사람은 없다.
다리우스 마더 감독,
『사운드 오브 메탈 :: Sound of Metal』입니다.
# 1.
여자친구와 투어 중인 드러머 루빈(리즈 아메드)은 어느 날 거짓말처럼 청력을 잃는다. 드럼 사운드도, 연인 루(올리비아 쿡)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된 그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비보를 전달받은 밴드의 후원인은 청각장애인 커뮤니티 운영자 조(폴 레이시)를 소개한다. 조의 공동체는 재활시설이라기보다는 장애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공간에 가깝지만, 루빈의 눈에 비친 그곳은 원형으로 둘러앉은 마약중독자 모임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정한 조는 루빈에게 커뮤니티에서의 생활을 제안하는 대신 루를 포함한 이전 세계와의 단절을 요구한다. 두 사람은 크게 고민하지만 받아들이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루빈은 서서히 자신의 장애에 적응하는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이전 생활에 대한 관성은 그리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의 변화 앞에 개인은 너무 사소하다. 루가 덜컥 엄마의 손에 키워져야 했던 것처럼, 아빠를 원망하며 자랐음에도 기억은 남아있었던 것처럼, 모처럼 돌아온 딸이 훌쩍 집을 나가버린 것처럼 말이다. 작은 낙원인 캠핑카를 몰듯 자신의 인생을 통제한다 생각하던 루빈에게 장애는 처음으로 겪은 저항할 수 없는 변화다. 영화는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놓인 사소한 개인의 내면을 다룬다.
인간은 적외선을 볼 수 없다. 적외선을 감각할 수 없는 세계에 있다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를 불행하게 하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단지 최선을 다해 가시광이 존재하는 세계를 받아들이고 향유할 뿐이다. 마찬가지다. 감독은 장애를 다른 세계로 옮겨가는 것뿐이라 규정한다. 소리를 듣는 세계에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세계로의 '추락'이 아닌, 소리가 존재하는 세계에서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의 '이전'이다. 정상상태에서 결손 된 것으로 오해되기 쉬운 청각장애인 커뮤니티에 루빈은 손쉽게 적응할 것이라 예상하지만, 그는 아주 오래전 소리가 들리는 세계에 처음 태어났을 때처럼 새로운 세계의 신생아다. 수화와 표정으로 소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홀로 소외된 모습은 그런 의미다.
# 2.
결국 루빈은 모든 것을 팔아 임플란트 수술을 받는다. 하지만 수술도 그를 과거의 세계로 돌려보내주지는 못한다. 영화가 이야기하는 세계의 변화는 운명적이고 비가역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점에서 반론이 존재할 수 있다. 마지막 성장은 인공와우의 노이즈 때문인데, 이는 기술적 문제지 철학적 문제가 아니지 않냐는 것이다. 소리가 완벽히 재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완벽한 소리가 나(루빈)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인공와우의 노이즈가 거슬렸기 때문이라면,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면 영화의 성찰을 상징하는 청각장애인 커뮤니티는 부정되는 것 아니냐 반문할 수 있다.
감독은 이 문제를 루를 통해 극복한다. 루빈은 기술의 한계에 실망하지만 절망하지는 않았다. 그는 소리에 집착하고 있다기보다는 소리로 상징된 과거의 세계에 집착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전의 낙원인 캠핑카를 되찾아 평화로운 루와의 아침을 회복할 수 있다면 인공와우의 노이즈쯤은 문제 될 것이 없다. 하지만 그는 루와의 하룻밤을 통해 자신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는다. 엎드려 루프스테이션을 누르던 루는 이미 새로운 세계의 의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루빈의 존재는 그녀를 다시 이전 세계로 끌어당기는 집착이고, 이는 한결 편안해 보이는 루로 하여금 다시 상처 가득한 팔을 긁게 만드는 것임을 확인한다.
모든 것을 잃은 내면의 갈림길 앞에서 마음을 어지럽히는 소음을 차단하고 천국의 문 앞에 선 루빈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들리지 않아 들리는 것이 유의미하게 존재함을 보여준다. 집중하던 청각의 공백을 파고드는 관객 마다마다의 얕은 숨소리는 자기 성찰적인 앤딩이다. 인공와우를 뗀 로빈의 앞날을 펼쳐놓고 마무리하듯, 관객 역시 부정하고 있었을지도 모를 운명과 거스르고 있었을지도 모를 세계의 출발선에 자신을 담담히 내려놓는다.
# 3.
제목에서처럼 대단히 청각적인 영화다. 단순하게 좋은 음악이 적재적소에 배치된 것을 넘어, 음향과 스토리텔링이 완벽히 결합된 경험은 특별하다. 제목에 중의적으로 내포된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미끄럼틀의 울림, 인공와우의 질감은 뛰어난 완성도로 구현되어 주제의식의 성찰과 기민하게 조응한다. 미약한 청신경에 진동이 전달되는 감각을 음향적으로 구현하는 것도 인상적이거니와, 그 반작용으로서 시각적으로 각성되는 듯한 느낌을 미술로 환원하는 구성도 탁월하다. 영화를 보며 느끼는 관객의 몰입감과 공포감은 주인공의 드라마뿐 아니라 관객 역시 자신이 속해 있는 세계에 포획되어 있음을 고백하게 하는 데, 연출의 공헌은 분명 칭찬받을 자격이 있다.
막이 내리고 난 후 특히 감동적인 것은 체험적일지언정 감상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감정에 무턱대고 뛰어드는 것은 청각장애라는 망가진 것을 고쳐야 한다 주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어깨에 여자 팬티를 문신으로 새긴 헤비메탈 드러머의 영화에서 이 정도의 품위가 느껴진 것에는 배우의 역할이 크다. 놀랍도록 깊은 연기를 선보인 리즈 아메드의 공헌은 작품의 성취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에 분명하다.
영화 음악은 공간감과 파워가 중요한 경우도, 완급과 디테일이 중요한 경우도 있는 데 이 영화는 명백히 후자다. 소음이 섞여 들어올 수밖에 없는 극장에서보다 오히려 고요한 자기 집 거실에서 홀로 보는 것이 몰입에 유리할 것이다. 스피커보다 개인적인 헤드폰으로 들을 수 있다면 더욱 훌륭하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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