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
보속(補贖, Satisfactio)은 죄인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정교회의 성사 가운데 하나인 고해성사를 보고 나서 실천하는 속죄 행위⁽¹⁾를 말한다.
양재준 감독,
『보속 :: Sinner』입니다.
# 1.
성당 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성아(강서희)는 우연히 지갑을 주웠고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지만 돌려주지 않았다. 미워하는 사람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죄를 고해한 그녀는 신부로부터 이틀 간의 봉사를 보속으로 내려받는다.
좋은 일을 하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배려 없는 화장실 청소는 신도들을 불편케 한다. 밥을 산다 해도 사람들은 께름칙하다. 술을 강권하는 것도 불편하다. 결제를 하려 하지만 잔고가 부족해 다른 사람이 대신 계산한다. 술에 취한 나연(박세재)을 다독이려 했지만 그 역시 불편하다며 밀려난다. 감내하던 신도들은 그녀의 행동이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며 토로한다. 그녀의 선의란 이미 훔쳐간 지갑을 다시 돌려주며 칭찬해 달라 요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행동은 반복적으로 그릇을 깨먹는 설거지와 같고, 관계는 깨진 그릇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성아는 빈말로라도 친하기 힘든 인물이다. 사회적 맥락이나 타인의 불편을 읽어내는 감각이 매우 부족하고, 그것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관객의 시선에서도 충분히 공유된다. 영화 내내 선행만 함에도 관객이 심정적으로 가까움을 느끼는 것은 성아가 아닌 신도들일 것이다. 실제 불편을 겪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아의 눈치 없음이 고의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그녀는 불편한 인물이지만 그것을 죄라 말하기도 쉽지 않다. 성아의 선행이 사람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는 불만만큼이나, 구박받는 성아를 보면 측은함이 밀려든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결국 성아는 재활원을 나가지만 사회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죄를 덜어낼 길 없었던 그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재활원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나연은 시간이 지나 식당일이 익숙해진 듯하다. 성아의 소식을 들은 나연은 오래전 성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화장실 청소를 한다. 나연은 어떤 죄를 보속하고 있는 것일까.
# 2.
거대한 종교철학적 화두를 지극히 세속적인 갈등으로 풀어낸다. 영화는 죄와 속죄에 대해 다각도로 질문한다. 성아가 지은 죄는 지갑을 탐한 욕심인가, 경철을 향한 미움인가, 선행에 가려진 이기심인가, 아니면 눈치 없음인가. 죽음으로 끝난 일련의 비극은 성아의 죄인가, 신도들의 죄인가, 사회의 죄인가. 성아의 죄라면 그녀는 어떻게 보속 했어야 하나. 신도들은 어떻게 보속 할 것인가. 사회는 어떻게 보속 할 것인가. 그전에 보속 한다 해서 죄가 사라지기는 하나.
그래서 성아만 없어지면 행복한가? 아니다. 누군가가 그 자리를 대신할 뿐이라는 건 여전히 짜증스러운 식당이 증명한다. 성아의 실패와 별개로, 그녀에게 불편을 토로하는 사람은 있어도 다정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모두는 사회를 모르는 성아를 귀찮아만 할 뿐 그 사회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 모든 파멸이 믿음의 공간인 성당에서 벌어졌다는 아이러니와, 그 책임에서 죄를 대신 사한다는 성직자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은 비장하다. 끊임없는 수건 돌리기는 죄와 보속의 굴레를 벗어날 길 없는 불쌍한 인간이다.
가까우면 불편하고 멀면 연민하는 비겁함이다. 나연도 그렇고 관객도 그렇다. 나연의 화장실 청소는 감독이 던지는 거대한 물음표다. 관객은 직관적으로 성아의 화장실 청소와 나연의 화장실 청소를 연결하면서도 구분됨을 느낀다. 막이 내리고 나면 관객은 혼란 속에서 관용을 생각하게 되는 데, 관객의 성찰은 그 자체로 나연의 화장실 청소와 같다. 가엽게 여기는 마음은 죄 많은 인간의 보속이다.
# 3.
좁은 화면비는 죄와 속죄의 운명에 포획된 인물들을 표현한다. 필연적으로 어깨가 닿을 듯 부대끼는 동안 서로에게 죄를 지으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들인 것이다. 답답한 프레임은 관객이 질문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흑백의 화면은 빛과 어둠처럼 대비되는 죄와 보속, 자신과 타인, 이타심과 이기심, 개인과 사회, 종교와 현실 등을 은유하며 그 사이에서 회색의 답을 갈구한다. 어두운 그림자가 뚝 떨어지는 몇몇의 얼굴들과, 표정을 잃지 못하게 만드는 몇몇 장면의 포커스 또한 영화 속 사소한 사건을 엄숙하게 만들어 선의의 이면은 조명케 한다. 이기적인 이타심과 자학적인 가해자를 연기한 배우 강서희의 액션, 관객의 역할을 대신하며 화두를 끌어안는 배우 박세재의 리액션 사이의 균형 또한 준수하다. end.
⁽¹⁾ 보속 -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B%B3%B4%EC%86%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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