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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그럴 줄 알았다 _ 피해자는 누구인가, 미할 블라슈코 감독

그냥_ 2024. 4.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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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전과자인 그 집시 놈이 내 그럴 줄 알았다.

 

 

 

 

 

 

 

 

미할 블라슈코 감독,

『피해자는 누구인가 :: Victim』입니다.

 

 

 

 

 

# 1.

 

싱글맘 이리나가 부재한 사이 아들 이고르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에 황급히 체코로 돌아가며 영화는 시작된다. 의식을 찾은 이고르는 '하얀색 피부가 아닌 세 사람'에게 공격당했다 진술하고, 곧 위층의 로마니(집시) 형제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된다. 이리나는 방송 인터뷰와 정치적 시위를 제안받고 망설이지만, 사건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기라도 한 듯 그녀의 의지와 무관하게 발전한다.

 

중반부 이고르가 거짓말을 실토하며 이야기는 크게 전환된다. 여자친구에게 자랑하려다 다친 것이 부끄러워 거짓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치적 이해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된 상태다. 언론은 연일 사건을 추적하고, 활동가는 집회를 열어 행진을 벌이고 있다. 시장 또한 정치적 기회를 포착하고 서사의 소유권 경쟁에 참여한다. 아들을 보호한다는 일념뿐인 엄마의 분투는 전혀 예기치 못할 혜택으로 이어진다. 이민 심사 결과를 달리하게 만들 시장의 추천서와, 더 넓고 안락한 신축 아파트에서의 생활과, 미용실 계약금 8000 코루나를 압도하는 후원금 50000 코루나 따위다. 그 과정에서 이고르의 교우관계가 파괴되고, 윗집 로마니 가족이 붕괴되고, 다른 무엇보다 이리나의 윤리와 아들 이고르의 윤리가 함께 무너지겠지만, 인종차별적인 거짓말에 헌신하는 피해자를 연기할 수만 있다면 이 모든 혜택은 두 모자의 것이다.

 

루마니아 감독 미할 블라슈코의 장편 데뷔작은 79회 베니스 오리종티(Orizzonti) 섹션에서 최초 공개된 작품으로 윤리적, 제도적, 경제적 문제가 뒤엉킨 복합적 상황에 노출된 이방인의 고뇌를 진중하게 추적한다. 루마니아 뉴웨이브 스타일 특유의 리얼리즘은 부조리한 사회에 표류하는 인물의 위기에 안정적으로 집중케 한다. 그 뒤로 잿빛 하늘과 콘크리트 건물, 좁고 너저분한 방, 거리를 방황하는 아이들, 깨진 차창, 짙은 실루엣 따위가 더해지며 영화의 서사는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 구조적 문제로 부드럽게 확장되어 있다.

 

 

 

 

 

 

# 2.

 

배타적 선입견은 어떤 면에선 본능이다. 낯선 타인을 위해 구태여 위험을 짊어질 의리는 없다. 사고에 발 묶인 운전자들이 정체 모를 우크라이나인 여성을 체코까지 태워줘야 할 의무는 없듯 말이다. 문제는 자기 방어에 기반한 느슨한 선입견이 구체적 사안에 대한 직관과 일치하는 장면이다. 그 순간 사람들은 사안의 복잡성과 예외적 가능성에 대한 최소한의 조심스러움을 일거에 포기한다. "전과자인 그 집시 놈이 내 그럴 줄 알았다." 스스로 정의롭다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의 윤리적 분노는 거리낄 것 없이 광기를 정당화하기에 이른다. 그 근거가 고작 십 대 소년의 비겁한 거짓말이라도 말이다.

 

영화는 크게 이고르의 자백 전후로 구분된다. 전반부는 이리나의 배타적 선입견과 사건에 대한 직관이 일치하는 파트다. 이리나는 자신의 부조리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사회적 편견의 순풍에 올라타 편안하게 자신의 논리를 강화한다. 문제는 이고르의 자백으로 인해 선입견과 직관이 불일치했음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후다. 이때부터 언론과 시위와 정치는 편리한 순풍이 아닌 가혹한 역풍으로 바뀌고, 이리나는 광기의 격랑에 거슬러 버거운 노를 젓는다. 관객은 영화로부터 이리나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집요하게 질문받는다. 진실을 위해 날 선 야유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노를 저을 것인가, 편익을 위해 제노포비아의 순풍에 올라탈 것인가.

 

감독은 관객과 이리나가 윤리적 결단으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경제적, 이기적 동인을 추가해 갈등케 한다. 이를테면 이리나가 피해자임에도 이민 신청자라는 신분을 이유로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을 받게 함으로써, 인물이 보상받을 자격이 있는 듯한 착각을 유도하는 식이다. 체조 선수의 꿈을 접어야 하는 어린 이고르 역시 관객의 동정심을 손쉽게 유발한다. 갈등하는 이리나에게 스베타는 '로마니 소년은 어차피 감옥에 갈 운명이었다'라는 합리화를 제공하고, 때마침 소년에게 전과가 있다는 설정은 일련의 합리화를 편리하게 독려한다. 역으로 윤리적 가치를 외면할 때면 도의적 책임을 부가해 판단을 압박한다. 억울하게 붙잡힌 로마니 소년은 그 자체로 감금되고 격리된 이리나의 양심을 상징한다. 마트 캐셔로 일하는 로마니 싱글맘 또한 가정부인 이리나가 입장을 이입하기에 수월한 설정이다. 처음엔 자수를 바라던 아들이 엄마가 거짓말을 시킨 것이라 진술하겠다며 겁박하는 장면은 일련의 상황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것임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 3.

 

가혹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이리나는 나름의 최선을 부지런하게 수행한다. 아들의 미래를 챙기면서 윗집의 싱글맘도, 아들의 애인도, 다른 이민자 가족도, 친구 스베타와의 약속까지도 성실하게 살핀다. 이리나는 상황의 성격과 위험성까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다만 나약한 개인인 그녀의 힘으로 대중의 분노를 통제하지 못할 뿐이다.

 

결말에 이르러 연단에 올라 후원금을 포기하고 로마니 소년의 석방을 요구하는 것은 그녀에겐 큰 진심이자 결심이다. 연설이 끝나기 무섭게 날 선 야유가 뒤따르고 표독스러운 선동가는 반감과 공포감을 조성해 군중을 휘어잡니다. 마지막 연설을 통해 그녀는 이 사건의 원인임과 동시에 군중의 광기에 포획된 진정한 의미의 피해자가 된다. 감독은 이리나의 일그러진 표정을 빌려 현실에선 군중의 한 사람일 관객에게 질문한다. 정치적으로 편리한 서사 앞에 진실은 얼마나 무기력한가.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명확한 구조를 통해 화두에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은 분명하다. 반면, 주제의식을 이리나가 독점함에 따라 집시 가족은 고민에서조차 배제된다는 점은 한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를 통해 겪는 이리나의 대가는 몇몇의 기회비용과 이고르의 윤리적 타락이지만, 로마니 가족은 아예 아들을 잃었다는 면에서 이리나의 대가는 느슨하고 사소해 보인다. 일련의 고민이 하위 계층의 현실을 밟고 올라선 상황에서 윤리적 논증에 고통스러워하는 팔자 좋은 사치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제노포비아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고 그 태도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쓸데없이 가혹하겠지만, 그럼에도 제노포비아적인 인식의 체계 안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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