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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_ 믿을 수 있는 사람, 곽은미 감독

그냥_ 2024. 1. 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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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박한영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곽은미 감독,

『믿을 수 있는 사람 :: A Tour Guide』입니다.

 

 

 

 

 

# 1.

 

정착을 꿈꾸는 20대 이방인 한영의 서울 생존기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믿음'이라는 개념에 대한 고찰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통상 신뢰, 신앙, 신념, 신용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는데요. 작품에서는 신뢰와 신용을 선택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신뢰는 개인 간 주고받는 다정함에 대한 기대 정도로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신용은 사회인으로서 합의된 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도리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죠. 영화는 북한을 신용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로, 탈북민은 신용을 경험해 보지 못해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한국을 외국인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일이 영광스럽고 보람되며, 또 돈을 많이 벌어 잘살고 싶습니다."

 

한영은 위의 말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전의 대사는 굳이 중국어로 표현해 한 번 걸러준다는 면에서, 한국어 대답은 카메라를 정면에서 응시하게 한다는 면에서 해당 대사는 관객에게 인물을 소개하는 첫인사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론 인물의 선량함과 솔직함과 기대감을 보여주는 것일 텐데요. 동시에 '직업 행위의 의미'를 '돈을 버는 것'과 동치 시키고 있다는 면에서 사회적 신용이 간과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한영은 첫날부터 지각합니다.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다정한 선의로서의 신뢰가 아니라 마땅한 도리로서의 신용입니다. 일련의 설정은 그녀의 한국살이란 신용을 어기며 시작되고 있음을 가볍게 지적합니다. 인턴인 한영이 선배 가이드 미선의 멘트를 따는 장면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한영은 녹음을 하면서 필기도 하는 데요. 규칙 위반인 녹음은 신용을, 규칙 밖의 필기는 신뢰를 상징합니다. 선배가 녹음을 지우라 하자 한영은 필기도 찢어버립니다. 그 순간 한영은 신뢰와 신용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담당 보호 경찰의 전화번호는 '감시자'라 저장되어 있습니다. 한영에게 있어 태구는 자신을 감시하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거나, 자신에게 애정이 있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뿐입니다. 담당 경찰관으로서 도리를 다하는 신용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끝내 인지하지 못합니다.

 

 

 

 

 

 

# 2.

 

탈북자 친구 정미는 요양원에서 할머니를 간호하는 간병인입니다. 할머니의 가족들이 간병인을 고용한다는 것은 '가족 간의 신뢰'를 '고용인과의 신용'으로 대체했음을 의미합니다. 신용으로 작동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정미는 일련의 상황을 비정함으로 느낍니다. 정미 보다 먼저 한국에 왔다는 고모는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결국 '인맥'이라 말합니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인맥이란 사회를 신용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신용을 대신할 신뢰 관계를 개인 간에 인맥이라는 형태로 쌓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진단은 일견 서늘하죠.

 

영화의 전개는 신뢰는 배신되지만, 신용은 유지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인혁이든 샤오든 징미든 태구든, 어쨌든 모두와 순차적으로 이별하는 서사라 축약할 수 있을 텐데요. 한한령과 남북평화라는 거대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표류하는 개인 간의 신뢰는 위태롭게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신용은 유지되어 최소한의 사회적 기반을 지탱합니다.

 

여행사 사장은 화장품 강매 사건과 관련해 한영에게 화를 내는 데요. 그 순간은 인간적 관계에 근거해 신뢰를 깨트렸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으로서의 신용을 망가트린 것에 분노하고 있죠. 술집 사장이 한영에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 역시 '오래 일해서 좋았어. 월급 입금했어'라는 것입니다. 월급은 신용이고, 그 신용이 오래 유지된 것이 좋았다는 담백한 인사죠. 한영을 고발한 선배 미선 역시 강매는 고발하지만 가이드하는 영상은 고발하지 않습니다. 강매는 신용의 문제인 반면 가이드하는 방식은 신뢰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미선은 관광객과의 신용을 무너트리는 것이 부당하다 판단했을 뿐입니다. 짐짓 미선은 한영과 대척 관계에 있는 인물이라 악당으로 오해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감독은 가족과의 다정한 전화 장면을 집어넣어 인물의 인격을 보호합니다. 다방면에서 한영에게 도움을 주는 경찰 태구 역시 자신의 소임에 최대한 충실했을 뿐입니다. 이들 중 누구 하나라도 없었다면 한영은 서울살이를 유지할 수 없었을 테죠.

 

한영의 주변인물들은 신뢰와 신용이 상호보완적으로 공존하는 사회를 대하는 다양한 모습을 나열합니다. 리샤오는 신뢰로 가득한 세상에 막연한 기대를 꿈꾸는 사람입니다. 인혁은 적응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정미는 적응에 실패한 사람, 한영은 적응에 노력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죠. 탈북자들은 신용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하기에 신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도 신용만큼은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주변이 불신으로 가득하다 착각해 고통스러워하지만. 그들 모두는 한한령으로 어려운 와중에 알게 모르게 한국 사회의 신용으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었음에 분명합니다.

 

 

 

 

 

 

# 3.

 

한영은 영화 내내 한국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신용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북에 송금하는 것은 남은 가족에 대한 신뢰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신용에 반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갈등합니다. 리샤오는 중국에서의 약속이라는 신뢰를 지키기 위해 체류하려 하지만 한영은 불법이라는 이유로 신용에 반하니 돌아갈 것을 요구합니다. 가이드 자격증을 빌려주고 돈을 벌며 자신이 사회적 신용을 위반하고 있다는 압박감도 경험합니다. 사라진 인혁의 소재를 추적하고 보호할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라는 신용 덕이었음을 경험합니다. 신용과 신뢰는 명확히 다르며 신용이 신뢰를 온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경험합니다. 브로커를 만나 북에 다녀오고 싶다는 말하는 장면애는 주변인들이 이탈함에 따라 생긴 신뢰 관계의 결핍이 녹아있죠.

 

결말에서 한영은 공항으로 향하는 데요. 그녀가 어디로 가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꿈꾸던 세계 여행을 떠날 수도, 정미처럼 독일로 갈 수도, 샤오가 있는 중국으로 갈 수도, 브로커에게 말했던 것처럼 북한으로 갈지도 모르죠. 세계 여행은 온전한 적응을, 독일은 다른 신용 사회에의 재도전을, 중국은 도피를, 북한은 배신을 상징합니다. 영화는 갈림길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채 인물을 포획한 후 막을 내립니다. 작품의 제목은 <믿을 수 있는 사람>. 내내 그녀를 도왔던 신용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맨 한영의 이야기인 것이죠.

 

 

 

 

 

 

# 4.

 

동시에 한영은 관객인 당신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냐 묻는 것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탈북자에게 선택적으로 제한되는 신용의 문제를 간과해선 곤란합니다. 새로운 구직처에서 적응을 핑계로 채용을 거절하는 면접관, 이래서 탈북자 쓰겠냐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여행사 사장, 출신으로 압박하는 데 문제의식이 없는 경찰, 결국 분투했음에도 이곳에서 탈북민은 외국인만 못하다는 말과 함께 튕겨져 나간 정미의 존재는 그 근거라 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에게 뭘 믿고 돈을 빌려줘. 그렇지만 한영 씨는 믿을 수 있지"라는 술집 사장의 말은 본인에겐 선의였겠지만, 당사자에겐 절대 편리하게 들을 수 없는 말입니다. 한영의 직업은 가이드. 이들 모두는 한영에 의해 소개된 한국의 단상이라 할 수 있고, 길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길을 찾아 헤매는 영화라는 면에서 한국 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자유로운 한영이 어디로 갈지는 알수 없습니다. 다만 관객이 그녀를 온전히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으로서 '신용'하고 있다면, 적어도 그녀가 북한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야 합니다. 감독은 결말을 통해 질문합니다. 당신은 한영이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신용하고 있습니까. 당신에게 한영은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곽은미 감독,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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