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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소외된 자 기댈 곳 믿음뿐일지니 _ 신세계로부터, 최정민 감독

그냥_ 2024. 1. 2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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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최정민 감독,

『신세계로부터 :: From the New World』입니다.

 

 

 

 

 

# 1.

 

화신교 교주 신택과 신도 명선은 탈북자입니다. 화신교란 화신님을 믿음으로 모시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교리를 가진 작은 종교죠. 신택은 신도를 모으기 위해, 명선은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경남 고성의 한 마을에 정착하는 데요. 그 과정에서 벌어진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을 서늘하게 그린 미스터리 오컬트 드라마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겁니다. 주인공 명선은 배우 정하담이 맡았습니다. 독립영화 쪽에서는 착실히 인지도를 쌓고 있는 배우인데요. 대중에겐 <헤어질 결심>에서 질곡동 살인사건의 용의자 홍산호의 연인으로 익숙하지 않으실까 싶군요.

 

작품의 전개는 비틀린 부조리 점철됩니다. 탈북자가 자유와 권리를 강변합니다. 돈을 뺏는 거냐 비난하던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돈을 훔쳐 갑니다. 믿는다는 이유로 돈을 바치고, 믿어달라는 이유로 다시 돈을 바칩니다. 하루 종일 일하는 사람은 김밥을 먹고, 잠옷 한번 벗는 일 없는 사람은 상차림을 받죠.

 

큰돈 들여 고친 보일러에서는 불이 나고, 불을 낸 사람의 형제는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교인들이 몰려다니며 엄한 사람의 해고를 강요하는 동안, 방금 잘린 직원은 손님이 되어 다시 나타납니다. 하루 종일 전단을 나눠주던 사람은 잠시 쉬는 순간에조차 전단지를 받습니다. 신실함을 과시하던 사람은 배신하고, 가장 신실한 사람은 기도의 자리마저 잃습니다. 거짓된 말소리가 들리는 동안 절망의 표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신뢰할 수 없었던 교주의 말은 사실이었고, 누구도 믿지 않았던 부활은 거룩하게 성사됩니다.

 

 

 

 

 

 

# 2.

 

일련의 부조리 속에서 명선은 소외되고 소외됩니다. 가장 진솔하고 치열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방위적인 위기에 노출됩니다. 설령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금세 다른 위기에 직면합니다.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소외됩니다. 탈북자라는 출신으로 소외됩니다. 이단이라는 이유로 소외됩니다. 신도가 모이지만 그 안에서 다시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신천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소외되죠. 능력으로 소외되고, 위력으로 소외되고, 믿음의 차이로 말미암아 끝까지 소외됩니다. 밀려나고 밀려나다 더 이상 밀려날 수 없는 '부활의 순서'로 절규하는 장면보다 중요한 것은, 한 서린 절규가 무색하게도 그 순간에조차 무기력하게 소외된다는 점이죠.

 

명선은 타인을 공격하지도 음해하지도 않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수차례 반복되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라는 대사는 그녀의 순수성을 상징하고, 이는 관객에게 그녀의 소외를 설명해 달라 반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반면 그녀를 비난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공격하고 기만하고 거짓합니다. 이기적인 계급론이 강력하게 작동하는 가운데 가장 약한 자가 기댈 곳은 나약한 믿음뿐입니다. 모든 것을 잃고 흘러내린 끝에 도달한 강의 풍경과, 잃어버린 것에 비례해 쌓여나간 처연한 믿음은 무수히 많은 돌탑들로 은유됩니다.

 

 

 

 

 

 

# 3.

 

가장 낮은 층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풀어내는 방식은 거룩한 종교 신화에서 빌려오고 있다는 것은 썩 흥미롭습니다. 영화의 결말은 사사로운 범인들로부터 돌팔매질당하던 선지자가 죄를 대속하고 기적을 행한다는, 전형적인 기독교 서사에서 가져옵니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이 기독교인인 것은 이단을 기독교로, 기독교를 이단으로 치환하는 유머러스한 장치임과 동시에, 이 영화가 탈북자와 화신교뿐 아니라 기독교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근거라 할 수 있겠죠.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명선은 예수에서 가져온 캐릭터라 추측합니다. 결말부 어둡고 습한 창고는 목전에 둔 죽음을, 창 너머 비추는 한 줄기 빛은 하느님의 시선을 은유합니다. 명선은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갈 수는 없는 비가역적인 창고에 불을 지르는데요. 스스로 죽음을 각오한다는 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과 연결됩니다. 불에 탄 문이 장엄하게 열리는 장면은 창고를 영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으로 승화시킵니다. 벽에 붙여진 화신교의 심벌은 부활을 상징한다는 면에서, 그녀 역시 죽었다 부활했다 이해하면 그럴싸하죠.

 

제단 주변엔 돈을 받기 위해서든, 돈을 따기 위해서든, 죽은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든, 기적을 의심해서든, 구경거리가 생겨서든, 이방인을 내쫓기 위해서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습니다. 당연히 갇혀있는(죽은) 줄 알았던 명선(예수)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크게 놀라며 기적을 시험합니다. 명선은 끝내 빛을 잃는 대가로 아들을 부활시키는데요. 명선과 아들의 관계는 예수와 하느님의 관계를 뒤집어 비튼 것이라 이해할 수 있겠죠.

 

 

 

 

 

 

# 4.

 

굴을 다듬는 명선에게 아이 잃은 부부가 찾아오는 장면이 있죠. 자세히 보시면 높은 단에 올라 엎드려 통곡하는 부부를 내려다보는 명선의 목덜미 뒤로 멀리 쇠사슬이 시야에 걸리는 데요. 그에 맞춰 배우 또한 마치 목이 매달리기라도 한 듯 살짝씩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같은 신도가 되는 입장이라면 영 부자연스러운 구도의 장면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후 선지자가 될 명선의 가여운 신도들을 위해 예정된 희생을 그린 복선이라 생각하면 이해가 한결 수월합니다.

 

쉴 새 없이 돈이 새어나가는 지갑이 붉은색이라는 면에서 그 자체로 성만찬 속 '피와 살'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 온통 붉은색의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모든 것을 희생한 끝에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나체의 온건한 은유라 생각하노라면 섬뜩하죠.

 

같은 견해 하에서 교주 신택은 머나먼 핍박받던 땅에서 물(압록강/홍해)을 건너 새로운 땅에 도래한 사람이자, 다음의 선지자를 예언한다는 면에서 출애굽기의 모세를 끌고 들어 온 것이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명선을 창고에 가둔 인쇄소 사장은 자연스럽게 유다에서 가져온 캐릭터라 할 수 있을 텐데요. 한쪽이 피로 물들어 충혈된 눈은 악마에 의한 타락을 은유한다 할 수 있겠죠.

 

 

 

 

 

 

# 5.

 

다만, 종교 신화적 상징들을 끌고 들어오고만 있을 뿐 그것에 특별히 신성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부조리 속에서 소외되는 자의 처절한 고통과 뒤틀린 믿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죠. 영화가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것은 어디까지나, 사람을 구분 짓고 배신하고 위협하고 압박한 끝에 소외시키는 세계의 부조리를 드라마틱하게 연출하기 위한 장치에 불과합니다.

 

일례로 공룡과 화석은 대표적인 진화생물학적 근거일 텐데요. 공룡도 살릴 수 있느냐 묻는 것은 창조설화에 대한 조소라 할 수 있습니다. 화신교와 기독교가 터미널에 모여 마주 보고 소리 지르는 장면 역시 기독교를 사이비 종교와 등치 시킨 후 차갑게 전시함으로써 초라하고 한심하게 연출합니다. 그 뒤로 소란스러운 큰 소리를 뜻하는 '고성'이라는 도시의 이름과 슬로건 '행복도시'를 비추어 강한 비판을 더하고 있기도 하죠. 영화 내내 제단에 올릴 돈을 추궁하는 장면들은 헌금을 강요하는 세태에 대한 비판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그렇게 모은 돈을 신에게 바친 돈이라 변명하는 교주의 모습 역시 목회자들에 대한 풍자가 녹아있죠. 끝내 화신교가 의심을 딛고 기적을 이루는 것 역시, 자신들이 믿어 의심치 않는다던 부활을 스스로 의심하는 기독교 신자들을 비꼬는 효과가 있습니다.

 

 

 

 

 

 

# 6.

 

관객 경험의 측면에서 영화는 결국 명선이 마지막 기적에 도달하기까지 끊임없이 돌을 맞는 과정으로 점철되는 데요. 의심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회복하기도 하며 신앙심을 키운 끝에 결국 새로운 교주에 도달해야 하는 데, 이를 연기하는 정하담의 연기력은 정말이지 탁월합니다. 특히 온갖 감정에 뒤엉켜 길 모퉁이에 서서 전도를 소리치는 장면들은 인상적이죠. 반면, 명선 다음으로 중요했을 신택 역 김재록의 연기는 냉정하게 몰입을 해칩니다. 하나의 환경으로서 건조하게 명선의 발목에 매달린 족쇄처럼 작동해야 했을 텐데요. 더 능숙한 배우가 연기했더라면 작품의 평가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군요.

 

시나리오 차원에서 보자면, 결말의 기적에 도달하기까지의 밀도를 높이는 데 조금 더 충실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기는 합니다. 좋게 말하면 정하담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정하담 말고는 볼 것 없다는 일부 관객의 평이 나름 정당해 보인다는 것을 부정하기도 힘듭니다. 최정민 감독, <신세계로부터>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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