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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민규는 민규 _ 당신도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 강동완 감독

그냥_ 2024. 1.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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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우디 앨런을 좋아하시나요?

 

 

 

 

 

 

 

 

강동완 감독,

『당신은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 ::

Do you like Chow Shing Chi?』입니다.

 

 

 

 

 

# 1.

 

여친한테 차이고 찐따처럼 혼자 영화 보던 민규는 불쑥 홍콩 여행을 떠납니다. 숙소에 막 도착한 민규는 침대에 기대 잠시 쉬려 하는데요. 최강희병 말기 환자 같은 여자 하나가 냅다 들이닥치더니 자기 방이라 우기기 시작합니다. 알고 봤더니 예약이 꼬여 같은 방을 둘 다 잡았던 것이었죠. 졸지에 이스라엘 당한 팔레스타인 꼴이 된 민규는 서윗하게 방을 빼기로 하는데요. 그냥 물러서기엔 본전 생각이 났던 건지 시은에게 따라다녀도 되냐 제안하고, 여자는 승낙합니다. 시은의 전직은 가이드였던 걸까요. 어지간한 패키지 투어보다 코스가 깔끔합니다. 세기말 홍콩 영화들에서 본 것만 같은 네임드 여행지를 달달한 에그타르트처럼 쏙쏙 빼먹은 후 숙소로 돌아와 늦은 술자리를 가집니다.

 

여행기나 이별담은 표면적일 뿐, 정체성에 대한 영화라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민규는 화양연화의 차우(양조위)에 정서적으로 이입해 있는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대부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시은과의 데이트는 지극히 왕가위스러운 공간과 연출을 끌고 들어오고 있는 데요. 이는 자신이 왕가위의 영화 속 양조위라 착각하는 민규의 인식에 대한 표현처럼 보입니다. (의도인지 능력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화면들의 어설픈 완성도 역시, 양조위가 되지 못한 민규의 어설픈 인식을 훔쳐보는 것 같아 오히려 그럴싸하기도 하죠.

 

술자리에서의 대화를 보건대 그에게 양조위 닮았다 말한 건 전 여자친구였던 듯 보입니다. 시은은 실소를 터트리며 양조위는 개뿔. 주성치 같다 말합니다. 심지어 영화를 보고 있을 관객조차 굳이 주성치와 양조위 중 하나를 고르라면 십중팔구 주성치를 고를 것만 같죠. 민규는 전 여자친구가 왜 헤어지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그게 자신을 힘들게 한다 말합니다. 자신에 대한 충분한 성찰이 되지 않고 있는 인물인 것이죠.

 

 

 

 

 

 

# 2.

 

양조위는 전 여자친구, 그것도 한창 민규를 사랑하던 그녀의 눈이 비친 정체성에 불과합니다. 민규 본인이 생각한 정체성도 아니고 심지어 이별을 고한 지금의 전 여자친구가 증명하는 정체성도 아닌 것이죠. 어떤 근거도 없는 허황된 정체성에 매몰되어 차우를 연기하는 양조위를 연기하는 민규는 비극적이기도 하고 그만큼 희극적이기도 합니다. 자기 정체성이 없는 사람으로서의 민규의 텅 빈 내면을 들여다본 시은은 왜 헤어지자 했는지 알 것 같다며 확인사살을 날립니다.

 

이튿날 민규는 어딘가 달라 보입니다. 단추를 적당히 풀어헤친 푸른 카라티 대신 시장에서 파는 이소룡 티셔츠를 사 입습니다. 허리춤에 페니백도 하나 둘러 매구요, 은근 잘 어울리는 머리띠도 하나 두릅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달아서 별로라던 에그타르트를 사 한입 베어뭅니다. 익숙하지 않은 듯 어색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으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주성치였음을 자각하는 결말이군요.

 

민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스스로 양조위라 믿고 있었던 주성치라 할 수 있습니다. 주성치를 진정한 자아의 상징이라 이해한다면, 영화의 제목인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라는 물음은 그 자체로 당신은 자신의 정체성을 좋아하시나요? 라 질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연하게도 누군가를 좋아하려면 우선 그 존재가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할 텐데요. 관객들에게 당신은 각자의 주성치를 좋아하느냐 묻는 것에는 그에 앞서 각자 자신의 주성치를 충실히 발견하고 있느냐 묻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 3.

 

여기까지는 최대한 무난하게 바라본 정석적인 이해라 할 수 있을 텐데요. 다만 생각해 볼 것은 민규는 양조위도 아니지만 주성치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딘딘은 딘딘인 것처럼, 민규는 민규니까요.

 

주성치를 떠올리게 된 것 역시 스스로의 고찰 끝에 다다른 내적 성장의 결과물이 아닌 시은의 인상에 불과합니다. 접점도 없고 사심도 없는 사람의 담백하고 솔직한 인상이라 주장할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역시 타인이 바라본 나라는 사실은 달라지지는 않죠. 당장 왜 굳이 홍콩 사람인 걸까. 두 사람이 홍콩을 여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파리였다면, 뉴욕이었다면, 프라하였다면 시은은 전혀 다른 이름을 떠올렸을지도 모르고 민규 역시 전혀 다른 인물을 내면화했을 지도 모르죠. 그런 면에서 제목의 <당신은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는 '나는 양조위가 아닌 주성치를 좋아한다며, 스스로 양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동시에 주성치의 진가를 꿰뚫고 있다는 것에 묘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성치는 맞는 것 같냐? 도발적으로 되묻는 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여기까지 오고 나면 명시적인 의미에서 정체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마저 들기도 합니다. 양조위도 아니고 주성치도 아니라면 대체 누구냐는 것이죠. 정체성을 탐구한 결과가 고작 양조위에서 주성치로 갈아탄 것이라는 면에서 되려 비관적이고 풍자적인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치 우디 앨런의 그것처럼 말이죠. 동시에 영화의 스타일 역시 강동완 고유의 정체성이 아닌 왕가위스러움을 적극적으로 차용하고 있다는 면에서 자기 모순을 스스로 폭로하는 듯한 뉘앙스가 읽히기도 합니다. 그 또한 우디 앨런과 닮았죠. 강동완 감독, <당신은 주성치를 좋아하시나요?>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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