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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Comedy

개 같은 날의 저녁 _ 좋은 말, 이용수 감독

그냥_ 2023. 10. 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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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남의 돈 벌어먹기 힘들어요.

 

 

 

 

 

 

 

 

이용수 감독,

『좋은, 말 :: Advice입니다.

 

 

 

 

 

# 1.

 

악의 없는 무례를 견뎌야 하는 사회인의 스트레스를 담백하다면 담백하게, 코믹하다면 코믹하게 그려낸 단편입니다. 하나하나는 사소하지만 쌓이면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일이라는 건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너무나 잘 알고 계시겠죠. 그럴 수도 있지만 굳이 그러지 않으려 서로 양보하고 지나가는 사회적 에티켓들이 의뭉스럽게 삐져나와 선을 넘는 순간들. 저 연놈(...)이 일부러 저러는 거라는 걸 뻔히 알고 있어 잔뜩 긁히긴 긁히는 데, 그걸 굳이 입에 올려 탓하는 순간 나만 쪼잔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마냥 티 낼 수 없는 간질간질한 순간들을 흥미롭게 묘사합니다.

 

일처리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시점에서 한 번. 술집에서 나와 담배를 꼬나문 시점에서 또 한 번. 질러버릴까 싶다가 에휴... 하고 숨을 삼키는 리듬은 쫄깃쫄깃합니다. 결국 임계에 부딪히자 엄한 곳에 욕설을 내뱉더니, 음주운전에 감봉-정직 크리까지 터지면 가여운 직장인의 멘탈은 가루가 되고 말죠.

 

콱 죽어버리고 싶은 이튿날 아침. 잠을 깨우는 "자매님,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소리는 비슷한 처지의 관객들의 눈물샘을 애처롭게 자극합니다. 능글맞은 표정도, 잠을 깨우는 벨소리도 아닌 좋, 은, 말, 씀이라는 네 글자야 말로 미라가 겪고 있는 소위 개 같은 날을 상징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모든 말들은 저마다의 좋은 말.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나쁘고 상스러운 말을 하는 사람이 가장 고통받는 미라였다는 아이러니는,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 2.

 

여기까지는 정석적인 감상이라 할 수 있겠죠. 주인공 미라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탓에 관객은 직관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다 터져버린 착한 주인공'과 '스트레스를 주는 못된 주변인'으로 구분 지었을 텐데요. 꼭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해봄직합니다.

 

일례로 스쳐 지날 수 있습니다만 중요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공장에 도착한 미라가 높은 곳에 올라 아래에서 여우짓 하는 윤규를 내려다보는 씬인데요. 해당 장면에서 미라는 공장 직원의 나름 진지한 이사 얘기를 귓등으로 듣고 있었죠. 그 순간 윤규가 미라에게 그러하듯 미라 역시 해당 직원에게 악의 없이 무례합니다. 다만 당사자인 미라와, 미라의 사정에 한창 공감 중인 관객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죠.

 

이처럼 영화 내내 주변인들도 미라에게 악의 없이 무례하지만, 미라 역시 타인에게 악의 없이 무례합니다. 당장 미라는 남의 말은 귓등으로 듣는 사람이었고, 물량 관리는 후배에게 짬처리한 후 담배나 태우는 선배였고, 동승자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창문을 불쑥 여는 사람이었고, 윤규에게 너 담배 태우는 거 아니냐며 똑같은 여우짓을 하는 사람이었고, 남의 가게 앞에 차를 대면서 욕지거리까지 하는 사람이었으니까요.

 

영화는 단순히 특별한 악당들을 동원해 남의 돈 벌어먹기 힘들다는 페이소스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지 같은 날을 보낸 미라 역시 알게 모르게 주변 사람들에게 '악의 없는 무례', 최소한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무례'를 뿌리고 다녔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이는 역으로 미라로 인해 개 같은 하루를 보낸 사람 역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과, 미라에게 무례했던 사람들에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수 있음을 복합적으로 암시합니다. 작품의 마지막을 미라의 절규가 아닌, 초인종을 누른 사람들의 익숙한 한숨으로 마무리 짓는 것은 작품의 가치에 이 같은 입체성이 숨어있음을 추측케 합니다.

 

 

 

 

 

 

# 3.

 

영화에서 한 발짝 떨어져, 관객이 직관적으로 얄밉다 여겼을 윤규가 애처롭다 여겼을 미라보다 그렇게 나쁜 사람인가? 는 고민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타인은 단순하게 나쁜 사람이고 나는 복잡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문제의식을 숨기고 있다는 면에서, 현실적이고 편안한 표현에 가려 있을 뿐 제법 묵직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죠. 만약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미라에게 흠뻑 빠져 '맞아 맞아, 옳지 옳지' 하는 느낌을 받으셨다면. 오히려 자신이 윤규였던 건 아닌 지 곰곰이 고민해 보시는 것도 흥미로울 겁니다.

 

끝으로 연기 얘기를 짧게 해 볼까요. 잠시만 생각해도 연기하기 쉽지 않은 영화였을 것 같습니다. 잔뜩 빡치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라, 빡치지만 빡치지 않아 하는 듯한 연기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되는 일이 하나도 없는 것만 같은 개 같은 날임에도 평판 관리를 위한 사회적 에티켓을 지키면서, 동시에 그 아래 흔들리는 멘탈을 관객에겐 전달해야 합니다. 정치질에 밀리지 않으려면 타인의 에티켓을 지적하기 전에 나의 에티켓은 지켜놔야 할 텐데요. 하지만 완벽히 지켜버리면 내가 불편하다는 것을 전달할 수 없고, 그건 또 너무 억울합니다. 따라서 지금 너로 인해 불편하지만 나는 좋은 사람이라 그걸로 면박을 줄 수는 없으니 적당히 눈치만 채게끔 만들어야 한다. 라는 건데요. 그 경계를 믹싱 콘솔의 레버를 미세하게 오르내리듯 조절해야 하는 역할이 미라라 할 수 있고, 배우 방민아는 넉넉히 소화합니다. 좋은 배우예요. 이용수 감독, <좋은, 말>이었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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