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좋아하세요? :)

늦은 저녁 맥주 한 캔을 곁들인 하루 한편의 영화, 그리고 수다.
영화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Film/Comedy

문장의 모습, 소리, 그리고 맛 _ 쥐잡이 사내, 웨스 앤더슨 감독

그냥_ 2023. 10. 18. 06:30
728x90

 

 

# 0.

 

그 양반이 얼~마나 뛰어난 문장가였냐면 말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

『쥐잡이 사내 :: The Rat Catcher』입니다.

 

 

 

 

 

# 1.

 

로알드 달 원작의 단편입니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의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넷플릭스가 로알드 달 스토리 컴퍼니(RDSC)를 인수한 후 웨스 앤더슨을 섭외해 진행한 네 편의 결과물 중 하나인 작품이죠.

 

본론에 앞서 프로젝트의 성격을 짚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시도일 겁니다. 감독 입장에서 한꺼번에 영화를 네 편씩이나 만들어야 한다면, 각각의 작품 이전에 프로젝트 자체에 대해서도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테니까요. 비슷한 프로젝트들의 경우 지난 시대의 작가를 새로운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것에 목적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고, 해당 프로젝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새로 인수된 RDSC의 존재의의를 생각하면 추측은 더욱 그럴싸해 보이죠. 단편들이 각각 작가의 매력을 충실히 대변할 수만 있다면, 관객들은 네 편의 작품을 보고 느끼게 될 감동으로 로알드 달을 기억하게 될 겁니다.

 

이 같은 견해 하에서라면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는 이야기꾼으로서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영화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이번 <쥐잡이 사내>는 로알드 달이 얼마나 뛰어난 문장가였는가를 보여주려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입니다. 간략히 살펴보죠.

 

 

 

 

 

 

# 2.

 

오프닝입니다. 유일한 사람인 에디터는 오른쪽 하단에 치우쳐 스크린을 양보합니다. 화면은 유리벽에 걸린 무수히 많은 글자들과, 언론사 이름인 듯한 News Of The Day Journal이라는 글자, 작품의 제목인 The Rat Catcher라는 글자가 장악합니다. 에디터의 테이블에는 타자기가 하나 놓여있고, 구태여 차를 한 모금 마셔 관객의 집중을 테이블로 옮긴 후 첫 대사를 시작합니다. 감독은 자신의 작품을 '글자'와 '타자기'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죠.

 

에디터의 대사에 맞춰 쥐잡이 사내가 등장합니다. 이후로도 에디터는 반 템포씩 빠르게 대사를 치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쥐잡이 사내와 의뢰인 클로드가 행동합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관객은 ⑴ 에디터의 구술과, ⑵ 그 구술을 듣고 각자의 머릿속에서 떠올린 상상, ⑶ 그것이 영화적으로 구현된 모습이라는 세 층위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대조하게 됩니다.

 

도입에서 에디터가 쏟아내는 수다스러운 묘사를 모조리 걷어낸다 하더라도 '정보'로서의 영화는 별로 훼손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에디터가 묘사를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에는 '감동'의 차이가 존재하는 데요. 그 차이는 문장력의 힘인 것이죠. 이야기 또한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자신만만하던 쥐잡이가 쥐 잡으러 왔다 실패했을 뿐이니까요. 하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영화는 흥미진진하게 관객의 집중을 견인합니다. 여기서의 재미 또한 섬세한 묘사로 풀어내는 뛰어난 문장력에 근거합니다.

 

 

 

 

 

 

# 3.

 

작품에는 세 종류의 연출이 혼재합니다. ⑴ 문장으로 묘사하고 이를 확인하는 장면들이 있구요. ⑵ 에디터의 구술 없이 연기의 형태로만 표현되는 장면들이 있죠. 그리고 ⑶ 문장으로 묘사하되 그 모습은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영화의 방향은 그중 세 번째 방법이 얼마나 위력적인가를 증명하는 쪽으로 흘러갑니다.

 

긴 하수구를 들여다보며 쥐의 행태에 대해 설명하는 쥐잡이 사내의 씬은 문장의 가치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한창 대사를 치고 있는 쥐잡이 사내에게 카메라를 부여하는 대신, 관객이 최대한 쥐를 상상할 수 있게끔 파이프 멀리부터 카메라를 밀어 넣은 이유죠. 양철통 안에 담긴 독약을 굳이 마임으로 대신한 것도 같은 목적의 장면이라 할 수 있구요, 한 마리씩 데리고 다닌다는 쥐와 페럿을 마임으로 대신한 것 역시 같은 목적의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음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음에도. 관객이 독약 머금은 귀리 알갱이 소리를 상상하고, 몸속을 휘젓는 페럿의 끔찍함을 상상할 수 있었던 건, 모두 탁월한 문장에 근거합니다.

 

절정에 이르러 엄격하게 구분되던 연출의 경계가 무너져 내립니다. 쥐 모형의 입에 쥐잡이 사내의 목소리를 얹더니 그다음은 클로드로 하여금 쥐를 연기하게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쥐든, 사내든, 무엇이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묘사의 주체를 집시 하우스의 로알드 달로 끌어내리며 작품은 클라이맥스에 치닫습니다. 표현과 형식은 급격히 전환되지만, 강력한 문장의 힘은 상황과 이야기를 매끄럽게 연결시킵니다. 불쾌감과 긴장감이라는 감상 역시 전혀 문제없이 연결됩니다.

 

 

 

 

 

 

# 4.

 

눈에 보이지 않는 귀리가 든 양철통은 문장력에 의해 시끄러운 소리가 됩니다. 사실인지도 알 수 없는 쥐 피가 든 초콜릿은 문장력에 의해 달큰한 맛이 됩니다. 에디터는 쥐들이 귀리를 먹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며 '건초더미 안에 뭔가 영양가 높은 게 있나 보다'라는 말을 남긴 후 작품은 막을 내리는 데요. 관객은 이전까지 착실히 누적된 눈과 귀와 혀의 불쾌한 감각을 재조직해 상상합니다. 마치 시체라도 있는 양.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감각하게 하는 것을 넘어, 문장조차 존재하지 않음에도 상상하게 하는 엔딩입니다.

 

작품의 주인공은 쥐잡이 사내도 대사 외우느라 고생한 에디터도 아닌 빼곡한 대사 속 문장 그 자체입니다. 로알드 달의 원작은 쥐를 묘사하는 쥐잡이 사내를 묘사한 작품이었다면, 웨스 앤더슨은 쥐잡이 사내를 묘사하는 로알드 달의 문장을 탁월한 영화적 연출들을 동원해 입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 <쥐잡이 사내>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 본 블로그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글에서 다루는 작품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댓글", "포스트를 자신의 블로그로 유인하는 데 이용하려는 댓글", "무분별한 맞팔로우 신청 댓글" 등은 삭제 후 IP 차단될 수 있습니다.

 

 

"좋아요", "댓글""구독"

 

은 블로거에게 큰 응원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