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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Drama

만용을 도닥이는 온화함, 용기를 발견하는 세심함 _ 더 브레이브, 코엔 형제 감독

그냥_ 2023. 7. 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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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어떤 이야기를 쓰느냐보다 그 이야기에 어떤 인과를 부여하고 감동을 포착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코엔 형제 감독,

『더 브레이브 :: True Grit』입니다.

 

 

 

 

 

# 1.

 

서사만 보면 제법 가혹합니다. 삭막하고 잔인합니다. 현상금 걸린 범죄자 쫓는 서부극의 전형을 따라가고 있으니까요. 시작부터 살인 피해자와 사형수와 이미 죽은 시신이 즐비합니다. 죽거나 죽이거나의 이지선다가 매 순간 강요됩니다. 결국 결손까지 겪습니다. 애꾸 보안관 루스터 카그번은 총에 맞습니다. 레인저 라 뷔프는 혀가 찢어지고 턱이 부서져 내내 웅얼거리구요, 아버지를 잃은 소녀 매티 로스는 어린 나이에 팔을 잃습니다. 끔찍하죠.

 

모두는 개인입니다. 동기는 돈과 복수가 전부죠. 세 주인공의 동행이 분량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만, 인간적 교감이나 관계 형성 따위가 특별히 강조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대부분의 시간을 서로의 자존심에 소금을 뿌리는 짓에 허비하고 있죠. 몇몇의 관계적 상황조차 앙상하기 이를 데 없는 최소한의 인간적 도리에 불과합니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하는 생사고락을 함께했음에도 사소한 이별 인사조차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단절은 25년 후의 에필로그를 통해 재차 강조되기까지 하죠.

 

여기까지만 들으면 피도 눈물도 없는 독고다이 서부극처럼 들리는데요. 정작 작품은 서부극으로서는 이례적일 정도로 따뜻하고 또 온화합니다. 감독이 이 이야기에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처절한 비극과의 공백을 낭만으로 빈틈없이 메우는 감각' 따위의 서부극의 본질적 매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2.

 

국내에선 더 브레이브라는 열받는 제목으로 바뀌긴 했습니다만 원제는 True Grit. <진정한 용기> 정도로 이해하면 무난할 겁니다. 톰 채니는 맥거핀일 뿐, 영화는 세 주인공이 일련의 과정 끝에 진정한 용기를 발현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더라도 무방하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일반적으론 용기의 대척점으로 '두려움'을 상정하기 마련이나, 이 작품은 '만용'을 대비시킨다는 점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만용을 응징하고 반성케 하는 방식으로 진정한 용기의 모습을 북돋우는 것이 아니라, 만용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본성까지 온화하게 도닥이고 있다는 점이죠.

 

영화 속 서부라는 환경은 만용을 인정합니다. 대책 없어 보일 정도로 과격한 매티의 언행뿐 아니라, 오두막을 포위하는 장면과 매티가 럭키 네드 페퍼에게 납치된 장면 따위에서 수많은 지원 병력이 포위해 오고 있다 허세를 부리는 대목 등은, 서부라는 환경이 만용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처지를 포용하고 있음을 반복합니다. 만용은 때때로 위태로운 개인에게 실용일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만용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 역시 분명합니다. 영화에는 '세 명'이라는 코드가 반복되는데요. 도입에서 교수대에 선 사람도 세 명이었고, 인디언 지역에 들어선 이후 주인공 무리와 럭키 네드 일당 외에 죽임을 당하는 인물 역시 총 세 명이었죠. 그들은 각자 나름의 사연과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당위에 따라 만용 했고 그 끝은 죽음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면에선 진정한 용기를 발현하지 못한 세 주인공의 끔찍한 최후를 앞당겨 보여주기 위한 장치들이라 할 수 있고, 예언이 이루어지기라도 하듯 세 주인공 역시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 노출됩니다.

 

 

 

 

 

 

# 3.

 

거칠게 이야기한다면 영화 속 사건이란 둘이서 나머지 한 명을 구하는 상황을 세 번 나열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밋 퀸시의 오두막에서 위험에 빠진 라 뷔프를 다른 두 사람이 구하구요. 럭키 네드 일당과 결투를 벌이는 커그번을 다른 두 사람이 구하고, 뱀이 우글거리는 동굴로 굴러 떨어진 매티를 다시 다른 두 사람이 구하는 이야기니까요. 구태여 모든 경우의 수를 나열한 것은 진정한 용기의 발현에는 나이도 체력도 능력도 경험도 동기도 그 무엇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용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위태로움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런 상황에 놓인 타인을 이타적으로 구원하는 순간 진정한 의미에서의 용기가 발현됩니다. 자신을 위해 만용 하는 인물들이 타인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고 용기로운 선택을 하는 순간을 트루 그릿이라 정의한다면, 중요한 것은 타인을 위해 온전한 희생을 감수할 만한 마음가짐이 있느냐라는 것만이 중요할 뿐이라는 것이죠.

 

따라서 트루 그릿의 결과에 거래가 끼어들어선 안됩니다. 손익이 끼어들어서도 안됩니다. 소녀가 마을을 다니며 온갖 사람들과 거래하며 시작한 영화의 마지막에서 커그번이 돈을 돌려주며 거래를 거부하는 이유입니다. 주인공들이 끝내 만나지도 인사를 나누지도 못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카그번이 매티와 관계를 이어나가며 가족에게 모질었던 과거를 속죄한다거나, 역으로 아버지를 잃은 매티가 카그번을 통해 부성애를 대신 얻는다거나, 혹은 매티와 라 뷔프가 만나 서로를 친구로 얻게 된다면, 보상 따위의 이기심과 분리되어야 할 트루 그릿이라는 가치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죠.

 

얻는 것은커녕 희생이 뒤따릅니다. 진정한 용기라는 '작용'을 위해 감내하게 될 희생이라는 '반작용'은 메티가 당기는 총의 반동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은유됩니다. 내 몸이 내던져지는 희생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살리기 위해 총을 당기는 용기가 바로 트루 그릿이라는 것이죠.

 

 

 

 

 

 

# 4.

 

나이도 체력도 능력도 경험도 동기도 중요하지 않다는 트루 그릿이라는 가치의 보편성은, 세 캐릭터의 여정을 인간 일반에 대한 통찰로 확장케 합니다. 반복적으로 낮과 밤이 교차되는 시퀀스 구성, 길게 옆으로 내달리는 주요 장면의 연출 따위는 이들의 여정을 긴 연속성을 가진 인생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게 만들구요. 소년과 청년과 노년이라는 각기 다른 세 주인공의 나이대가 생애 주기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도 같은 의미에의 은유처럼 보이게 만들죠.

 

결손을 얻는 시점 역시 의미심장한 맛이 있습니다. 눈을 잃고 등장한 보안관은 과거, 지금 혀를 씹게 되는 레이저는 현재, 어린 모습으로는 팔을 잃는 것이 연출되지 않는 소녀는 미래를 의미합니다. 세 인물을 인간성 탐구의 표본이라 생각한다면 영화에서 다룬 서부라는 공간 역시 그 자체로 삶을 은유한다 할 수 있습니다. 서부극은 그저 환경일 뿐, 진짜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통찰하는 드라마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것이죠.

 

 

 

 

 

 

# 5.

 

만용 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도닥입니다. 희생 앞에 주저하는 인간도 도닥입니다. 그럼에도 타인을 위해 진정한 용기를 발현한 인간도 도닥입니다. 내내 사람들은 죽어나가지만 정작 작품은 끊임없이 인물을 독려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은 작품을 가득 메운 난색이 주는 온화함으로 승화됩니다. 전적으로 세 주연배우가 이끄는 작품임에 분명합니다만, 작품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밤하늘의 별빛과 드넓은 수풀과 따뜻한 모닥불 따위의 작품을 가득 메운 느슨한 온기일지도 모르겠군요.

 

세 인물의 용기를 적극적으로 감싸 안아 응원한다는 주제의식을 다름 아닌 연출만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인물들이 특별히 위태롭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은 놀랍기까지 하죠. 뱀을 막기 위해 잠자리에 든 소녀의 주변에 끈을 둘러친 것처럼, 영화가 인물들을 감싸 안고 있다는 착각마저 든달까요.

 

용기를 다룬 작품임에도 그 대비를 두려움이 아닌 만용에서 찾는다는 점, 그 만용조차 비난하지 않고 품어내고 있다는 점, 비극적인 상황을 온화함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점 등의 의외성으로 조립된 유니크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고전을 재해석하면서도 과시적이지 않은 형태로 완결된 작품성을 선보인다는 점은 넉넉히 평가받아도 좋은 거겠죠. 스토리도 연기도 아닌 영화 연출이 작품을 어디까지 지배할 수 있는 것인가 보여주는 듯한 작품이라는 생각입니다. 역시 괜히 오스카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미술상,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향편집상, 의상상 후보에 오른 게 아니라는 것이죠. 비록 수상은 하나도 못했지만요. 코엔 형제 감독, <더 브레이브>였습니다.

 

 

 

 

 

 


 

* 본 리뷰는 전문적이지 않은 일반인이 작성한 글이며, 상당 부분에서 객관적이지 않거나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해당 글이 가지는 의의의 최대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팬 중 단 1명의 견해"에 불과함을 분명히 밝힙니다. 모든 리뷰는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하거나, WatchaPlay, Netflix, Google Movie 등을 통해 "정상적으로 구매한 영화만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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